방금 말 나온 김에… 내가 좋아하는 푸코.
호기심. 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호기심.
다르게 생각해야지만 나의 존재가 덜 위협 받는 상황-위치-자리에 대한 선연한 인식.
그리고 시도, 사고에서의 고행, 자기의 훈련.

“(26) 애를 쓰는 것, 시작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 시도해 보는 것, 틀리는 것,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하는 것, 그리고도 여전히 발걸음을 머뭇거릴 방도를 생각해 내는 것…”

나는 필요하다.
그런 나를 해명하는 것에대해 멈추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시선이나 이론이나 권위가 필요하지 않은. 스스로에 대해 확정짓지 않는 확신에 찬 언어가.



나를 충동질한 동기로 말하자면, 그건 아주 간단했다. 몇몇 사람들이 보기엔 그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은호기심인데, 어쨌든 유일하게 약간은 고집스럽게라도 실행될 만한 가치가 있을 그런 유類의 호기심이다. *알아야만 하는 것을 제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호기심이 그것이다.* 삶에 대한 열정이 지식의 획득만을 보장할 뿐어떤 식으로든, 그리고 되도록이면 아는 자의 일탈을 확실히 해주지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삶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하고,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다르게 인지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 문제가, 계속적인 인지나 생각을 위해 필요 불가결한 순간들이있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 같은 자기 자신과의 유희는 뒤에 숨어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내게 말하리라. 그리고 그 같은 유희는 기껏해야 효력을 발생하고 나면 스스로 사라져버리는 준비작업의 일부라고말하리라.
하지만 그렇다면 오늘날 철학은 ㅡ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철학적 활동인데 ㅡ무엇인가? 그것은 사고에 대한 사고의 비판작업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신에 어떻게, 그리고 어느 만큼까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가능할지를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철학적 담론이 밖으로부터 타인들을 지배하고 그들에게 그들의 진리가 어디에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찾는가를 말해주고자 할 때, 혹은 순수하게 실증적으로 그들의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다고 자부할 때, 그 철학적 담론은 얼마간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보다 바로 그 철학적 사고 속에서 철학과는 무관한 지식의 훈련에 의해 변화될 수 있을 것을 탐구하는 것이 철학의 권리인 것이다. 시도 —이것은 의사소통의 목적에 맞게 타인을 단순화시키는 것으로가 아니라 진실의 작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변형시키려는 시험으로 이해되어야만 하는데 —는 철학의 살아있는 본체이다.
적어도 철학이라는 것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예전과 같은 것이라면, 다시 말해 그것이 사고에서의 ‘고행‘, 자기의 훈련이라면 말이다.
다음의 연구들은 내가 이전에 시도했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다루는 영역이라든가 취하는 출전들로 볼 때 ‘역사‘에 관한 연구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가‘의 저작은 아니다. 이 연구들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을 수도 있을 작업을 요약하거나 종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의 ‘실용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건대 이 연구들은 오랫동안 모색된, 그리고 종종 새로 시작하고 정정할 필요가 있었던 훈련의 원형이다. 그것은 철학적 훈련이었다. 이 *철학적 훈련의 관건은그 자신의 역사를 사고하는 작업을 통해 사고가 어느 정도나 무언중의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얼마만큼이나 다르게 사고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었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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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5-18 2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푸코를 좋아하는 그대, 난 묵호를 좋아한다오…. 미안해요, 내가 술 좀 마셨어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5-18 23:46   좋아요 2 | URL
님하.. 나도 드렁큰… 나 많이 마셨다? 우히히히

공쟝쟝 2022-05-19 00:14   좋아요 3 | URL
뭐야ㅋㅋㅋ 아 ㅋㅋㅋ 이 귀여운 꽐라 언니님들 ㅋㅋ 나도 마실 걸 ㅋㅋㅋㅋ 나는 달렸어 ㅋㅋㅋ ㅋㅋㅋ 그 달린 거 아니고 진짜 달리기 🏃🏽‍♀️🏃🏽‍♀️🏃🏽‍♀️

유부만두 2022-05-18 23: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아하는데 … 미셸, 이라고 이름으로 불러요.

공쟝쟝 2022-05-19 00:45   좋아요 3 | URL
좋아하긴 하지만 싫어하기도 해서 풋코라고 부르겟사와요 ㅋㅋㅋㅋㅋㅋ
 

무학/독학
잡생각/사유
자아분열/아이러니
과계몽/지적 모험


그리고. 또.

언어가 중요하고 말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그게 생기면 상처가 인식되고 다룰 수 있는 형태로 변한다고. 절반만 맞았다. 나는 예쁘고 좋은 말도 필요했구나. 나를 표현하지만 나를 비난하지 않는 말들이. 이제 어떤 단어들은 빵처럼 나의 일부가 되겠지. 

내가 나쁜 말에만 귀가 솔깃했던 건지, 아니면 정말은 내게 예쁜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언어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기왕이면 나쁜 말보다 예쁜 말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나 자신과 그런 말들로 놀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여전히 의미없는 예쁘기만 예쁜말엔 머가리가 꽃밭이라 좋겠다며 썩소하지만. 자갈만 드글드글한 허허벌판 구석에 나도 쪼끄만 꽃밭…음 꽃🤔(물 자주 줘야해서)싫은데… 선인장 밭을… 예쁜 선인장으로… 가끔 천년에 한번 꽃도 피는 선인장… 뭐 그래야지. 그렇게 살자.




하지만 진짜 문제는 경험이 얼마나 중재되었는가, 당신이 그것을 얼마나 알아보는가였다.
당신은 연습을 통해 대화를 잠시 멈출 수 있다. 머릿속으로든 실제 행동에서는 그런 정지는 가능하지만, 대화 자체에서 벗어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 대화가 당신이며, 만약 운이 좋다면 당신이 대화가 되어, 우리 주변에 혹은 당신 내부에 존재하고는 있지만 형체가 없는 세계를 만들어 가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
당신은 스스로 힘들게 찾아내고 선택하여 손에 넣은 재료를 가지고 당신의 정체성과 신념, 인간관계, 애정 관계, 가정(家庭)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 모든 일에서 다른 이보다 선택의 폭이 훨씬 넓기도 하다. 당신은 빵을 소화하듯 어떤 생각이나 가치를 받아들이고, 그 역시 빵처럼 당신의 일부가 된다. 이 모든것을 통해 당신은 세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자기 몫의 기여를 하고, 이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에서 당신이 맡은 대사 같은 것이다. 수감자, 실업자, 선거권이 없는 사람 그리고 주변인의 비극은, 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에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사들이 만들어 내는 교향악은 세상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방법이기도 하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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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떠난 행성에 혼자 남은 잔류인구 할머니 오필리아 머모님 처음 본 외계인들한테 가사노동 시키는 중 ㅋㅋㅋㅋㅋ 

아닠ㅋㅋㅋ 너무 좋앜ㅋㅋㅋ 너무 웃곀ㅋㅋㅋㅋㅋ 오필리아 최고!!!
나도 오늘은 내 행성의 괴동물 홉스한테 물 걸레질 시키기 도전해보겠다😤ㅋㅋ



그리하여 오필리아는 수납장에서 대걸레와 빗자루를 꺼냈다. 나를 죽이러 왔다면 이 정도 특별대우는 해드려야지. 대걸레와 빗자루를 끌면서 복도로 돌아오니 괴동물들은 원래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자." 오필리아가 빗자루를 내밀며 말했다. 하나가 팔을 뻗어 빗자루를받아 들었다. 그는 다른 것에게 대걸레를 내밀었다. 그것 역시 받아 들었는데, 뭔지 모르는 물건을 받은 아이처럼 보였다. 그는 가르쳐보기로 했다. 자식들을 가르쳤던 것처럼, 외계인 일당의 무급 가사 도우미가 될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오필리아는 빗자루로 쓸어 보이면서 말했다. 빗자루를 든 괴동물이 커다란 눈으로 보고 또 보더니 동료들을 쳐다보며 끙끙거렸고, 계속 작게 끙끙대다가 마침내는 날카롭게 깍깍댔다. 동료들도 깍깍, 하고 대답했다. 오필리아는 넘겨짚고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난 정말로 네가 그걸 썼으면 해. 바닥이 젖었어. 너는 나보다 크고 힘도 더 세잖아. 빗자루로 쓸어봐."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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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5-16 15: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에 우리 둘째가 ㄲㅓ억하고 토해놔서 얼른 걸레로 치우라고 했는데, 물끄러미 쳐다만 보더라고요.....
퇴근 후 가보면 치웠을지?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5-16 16:28   좋아요 2 | URL
자 봐바! 이렇게 이렇게 시범을 열 번 넘게 보여주는 데도 멀찍이 쳐다만 보죠? 그렇다면 당신은 고양이 일당의 무급 가사도우미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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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개인사업자가 알아야하는 그냥 딱 세금 개괄. 절세 내용은 딱히 없고.. 세무사 도움없이 종합소득세 신고하고 싶은 저같은 사람에게는 비추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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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3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13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13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13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해지고 싶다. 세상에서 쉽게 소구하는 강인함과는 다른 의미로.
비감상적이고 분석적이고 냉소적인 건 타고난 성향이라면, 따뜻하고 동정적인 것에 어쩌지 못해함은 배운 것이고 습득된 것이며 양육된 방식이고 놓지 못하는 것이다. 이분법은 아니다. 이것들은 따로 떼어져 나눌 수 없이 섞여있는 채로 나를 구성하고 있고, 이 두가지 모두를 다 포기하고 가장 딱딱한 상태로 스스로를 구축했을 때 (내가 가장 견고하다 믿었지만 동시에 견고하지 못함을 가장 감추고 싶어했을 때) 역으로 나는 가장 취약했었다.


터프한 그녀들을 따라 읽을 것이다. 감응, 공감, 정서적 반응과 지지를 멈추겠다는 것이 아니다. 고통에 어쩔 줄 몰라하면서(이것은 당연한 반응 아닐까) 그 것에 공감했다는 사실만으로 슬며시 안도해버리고(합리화 섞인 환상일지도) 그것만으로 할 일을 다 한 것인 듯 사유를 멈추어버리지는 않겠다는의미다. (어쩌면 사유란 기실 노동이고 나를 볶아채는 것일지 모르는 습벽일테지만) 

감상적이지 않으면서도 결코 비정하지 않았던 그녀들을 배우고 싶고 따라서 살고 싶다.



이 여성 작가들은 직접적이고 선명한 시각으로 위로도 보상도 없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는 과업을 자발적으로 떠맡았기 때문에 터프하다. 이들 모두가 "감상적이지 않다"는 비평을 받은 적이 있다. (중략) 이렇게 감정적 스타일이 젠더화된다면, 결과적으로 감상주의를 배제하겠다는 선택을 하고 끝까지 사유를 밀어붙이고 한계를 시험하고 구체적 목적을 위해 이런 선택을 한 것이라 설명되는 이 여성 작가들은 예외적으로 비범하게 생각이 깊었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정도가 부적절하거나 진지하지 못한 감정적 표현과는 거리가 먼 비감상성은 이들 작가/예술가들이 평생에 걸쳐 추구한 기획으로, 엄청난 자의식으로만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사상 모두에서 그의 성정이나 삶의 경험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자전적 요소는 출발점에 불과하다. 그들이 무엇을 썼는지, 어떻게 썼는지, 어떻게 그들의 실천을 상상하고 방어하고 옹호했는지가 비감상성과 그 윤리학을 활용가능하게 만든다. - P15

감정의 전시를 아예 배제하거나 최소화하면서도 수난에 대해 진지하고 참여적이며 고통스럽게 다가가는 태도다. 포화와 부정 사이에 자리한 이 협소한 영역에서 글을 쓰는 이들은 시대와 어긋난 것처럼 보인다. 고통을 성역화하지도 않고 고통에 무관심하지도 않았던 한편, 비정과 냉정으로 오해받은 대안적 전통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실제로 이 대안적 전통은 전혀 다른 자질이며, 나는 그 자질을 터프함이라 부르고 싶다. 이 여성 작가들은 탐구의 대상으로 고통에 이끌렸지만, 고통의 매혹을 끝까지 매우 미심쩍어했다. 이들의 ‘터프함’은 무관심이나 냉담과 혼동하기 쉽지만 그러면 이들의 프로젝트를 곡해하게 된다. 이 작가들은 고통으로부터 위안을 찾은 게 아니라 소위 "현실"에 대한 고양된 감수성을 추구했다. 도착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나, 친근함, 공감과 유대감에서 고통의 위안을 찾는 것은 ‘마취 효과’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고통의 인내, 심지어 고통이 ‘평범’하다고 주장한 것 역시 이 작가들이 지닌 기벽의 일부이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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