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노년과 건강에 대한 티브이 프로를 유심히 보게 된다.
그건 저자명, 지명, 책제목 막 이런 고유명사들이 머리속에서 뒤섞이고,
때로 구구단의 칠단도 얼른 답할 수 없는 상태와 함께 다가왔다.
일요일 홍대에서 매일 카페라떼 판촉 행사를 하는데 공짜 커피라도 마셔볼까 하고 줄을 서려는데 '스무살과 스물한살이신 분들만 드려요' 하지뭔가.
대낮에 나이트도 아닌 곳에서 거절당하다니 느낌이 별루다.
아마 성년의 날이라 그랬겠지만, 나도 커피 많이 사마시는데, 판촉인데 너무 한다 =.=
내 애인이라는 사람은 노년을 위해 살아가는 듯 하다.
내 소비행태에 대해 일일이 지적하면서 그러다 늙으면 자살할 거라며 윽박지른다.
현실이 그러하니 뭐 딱히 그를 탓할 수는 없지만,
한번 뿐인 인생
젊었을 때 많이 배우고 느끼지 못하면 나이들어 그러기는 더 힘들지 않겠는가.
어쨌거나 자신이 크게 생각하는 효용과 내가 크게 생각하는 효용이 다른 것을 틀리다 말하는 행태를 연애하는 내내 고치지 못하고 있다.
불편하다.
불편한데 한치의 삐그덕거림으로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게 이놈의 사회니 그를 탓할 수도 없다.
그저 내가 불편하고, 입을 다물 뿐이다.
그의 말대로 우리의 욕구욕망을 모두 충족시키려고 하다가는 지구가 파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기왕에 하는 소비라면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다.
그런데 그 원함을 만든 주체가 내가 아니라 미디어이고 기업일지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쓸모없는 것을 원하고 그 원하는 것을 사기 위해 원치않는 일을 하며 허덕거리며 사는 내 모습이 딱해 보이는건 당연하겠다.
뭐 어쩌겠는가.
여전히 나는 비싼 공연이 때로 보고 싶고, 봄이면 꽃놀이가 가고 싶고, 수입 탄산수도 궁금하고, 와인도 한잔씩 걸치고 싶은 날이 있다.
나는 알뜰살뜰 살아서 노년의 죽지만 않는 삶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거지꼴을 못면할거라는 윽박지름 역시 적들이 만든 이미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두려움을 이용해 이런 저런(그 받기 어렵다는 보험 연금 등등) 상품을 또 팔아먹고 있지 않은가.
열심히 산 사람들이 노년에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우리가 함께 풀 문제인듯 싶다.
나의 변명은 적들이 만드는 두려움으로 최소한 지금의 기쁨을 내놓지 않겠다는 것 정도.
그 즐거움을 좀 더 많은 사람과 좀 더 돈에 의존하지 않을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은 해보겠다는 다짐도 더불어 해본다. (자신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