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국내에 이미 몇 권의 작품이 소개되면서 은근한 입소문을 듣게 된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호평을 들은 것은 <벽장 속의 치요>였지만, 입소문으로 먼저 알게된 만큼 <소문>이라는 제목에 끌려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뭔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한 표지를 보면서 대체 어떤 내용의 책일까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겼다. 

  광고기획사 컴사이트와 도쿄 에이전시에서는 이제 막 일본에 론칭을 시작한 향수 '뮈리엘'의 홍보를 위해 "한밤중에 시부야에는 뉴욕에서 온 살인마 레인맨이 나타나서 소녀들을 죽이고 발목을 잘라 간대. 하지만 뮈리엘을 뿌리면 괜찮데"라는 WOM(word of mouth)를 활용한다. 얼핏 듣기에는 터무니없이 들렸지만, 뮈리엘은 10대 소녀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그리고 얼마 뒤, 그저 홍보를 위해 조작해냈던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지기 시작하고, 어린 소녀들이 발목이 잘린 채 발견되기 시작한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에는 그 어느 때보다 입소문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긍정적인 소문보다는 부정적인 소문이 훨씬 더 빨리 퍼진다. 일례로 예전에 모 과자에서 쥐가 발견된 뒤 판매량이 10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을 정도로 하나의 소문은 판매를 좌지우지한다. 이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왕이면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입소문이 나기를 바라고, 되도록 자신들이 네거티브한 소문에 휘말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추세다. 상대방을 깎아내려 반사 이익을 얻는 방법이나 파워블로거들에게 상품을 무료로 제공해 입소문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등 다양한 사람들을 동원해 기업은 한편으로는 소문을 내면서, 한편으로는 소문을 관리한다. 실제로 광고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저자는 이런 광고업계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미스터리에 적용시켜 오싹하게 보여준다. 그저 도시괴담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냥 듣고 흘리기엔 찝찝한 이야기. 그런 찝찝함이 뮈리엘이라는 향수의 판매를 낳고 결과적으로 약간의 장난으로 효과적인 마케팅을 이룬다.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관계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 책은 '소문을 실행에 옮긴 레인맨은 누구인가?'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책을 읽다보니 레인맨의 존재를 밝혀내는 결말보다는 곁가지로 등장하는 상황들에 더 눈길이 갔다. 여고생인 딸과 둘이서 살아가는 고구레 형사와 딸의 대화라던지, 나이는 젊지만 고구레보다는 계급이 높은 (게다가 여자인) 나지마 경부보와 고구레라는 묘한 콤비, 겉보기와는 다르게 어린 구석이 있는 시부야를 주무대로 삼고 있는 소녀들, 정체가 베일에 감춰진 광고기획사 컴사이트의 쓰에무라 등등 이 책은 누가 범인일까라는 목적을 깜빡할 정도로 잔재미가 풍부했다. 

  범인의 존재가 의외로 쉽게 드러나서 아쉬웠는데, 그런 아쉬움을 마지막의 한 줄로 달랬다. 물론 약간 사족 같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단순히 사건 자체보다는 인간의 심리적인 부분을 잘 다룬 소설이라 마음에 들었다. 범행 자체는 잔혹했고, 사이코적인 범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영 찝찝했지만 고구레와 나지마 콤비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다시 한 번 이 콤비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기와라 히로시와의 다음 만남에서는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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