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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의미
마이클 콕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표지에 나오는 남자의 모습과 '찰스 디킨스와 코난 도일이 살아온 듯하다!'는 띄지문구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과 낯선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내용들, 게다가 온갖 지식의 향연으로 각주를 읽느라 많은 시간을 뺏겼지만, 주인공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끝까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1854년의 어느 날, 런던의 어두운 골목에서 한 남자가 살인을 저지른다. 피해자에 대해 아무런 악의가 없었던 범인은 자신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인지 '시험'해보고자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한다. 이렇게 시작된 주인공 에드워드 찰스 글리버의 이야기. 살인사건으로 시작되는 강한 시작때문에 사실은 그가 '살인마'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의 입을 통해 그의 과거에 대해,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적 포이보스 돈트에 대해 들으며 그가 궁극적으로 행햐려는 일은 포이보스 돈트에 대한 복수임을 알게 됐다. 학문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에드워드를 장난으로 파멸시킨 돈트. 그에 대한 복수를 준비하며 에드워드는 우연히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서 알게되고, 그곳에서는 또 다시 돈트와의 악연이 있음을 알게 된다.
빅토리아시대 후기소설을 연구하는 앤트로버스 교수가 우연히 발견한 소설이라고 밝히고 있는 이 책은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좀 더 깊은 배경지식이 있었더라면 작가가 설치해놓은 허구를 파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지식이 없는지라 그런 재미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에드워드의 입을 빌려 듣는 포이보스 돈트와의 악연과 그에 대한 복수,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사랑에 대한 이야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이야기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탄생의 비밀, 복수, 사랑 등 어떻게 보면 지극히 빤해보이는 이야기지만,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지적으로 풀어낸다. 30년 동안 작가가 꾸준히 써내려갔다는 작품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이 책의 방대한 자료는 작가의 끈기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마치 에드워드와 포이보스가 눈 앞에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쉬운 점이라면 초반에 에드워드와 안면을 익히기까지가 다소 지루했다는 점이다. 일단 그의 과거에 대해 파악하고서는 어느 정도 속도가 붙었지만, 초반 200페이지 정도는 약간 늘어지는 감이 있었다. 또 달리 반전이랄 것이 없는 결말도 약간 아쉬웠다. 만약 다른 결말이 있었더라면, 만약 에드워드에게 다른 삶이 주어졌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작가가 이 작품의 후속편을 쓰고 있다고 하니 거기에 기대를 걸어봐야 하는 것일까?!)
기존에 <핑거 스미스>나 <벨벳 애무하기>와 같은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좋아했던 독자라면 빅토리아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그리고 있는 지적인 이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제법 두꺼워 부담스럽긴 했지만 시대 표현과 심리 묘사가 괜찮았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