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쪽
어떤 사람은 칼럼도 요약하던데, 그래서는 안 된다. 요약하다보면 중요한 것들을 생략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칼럼도 판타지가 된다. 그러지 말고 우리 다 얘기해보자. 끝까지 한번 가보자. (김연수)


61쪽
문제는 혼자서 꾸는 꿈이다. 인생이란 그렇게 혼자서 꾼 꿈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궤적이다. 친구가 타향이라면, 타인은 지옥인데 그게 다 혼자서 꾸는 꿈들 때문이다. 꿈은 본디 같이 꿔야만 한다. 1997년의 나는 이런 사실들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을 것이다. (김연수)


79쪽
최근 재미있게 읽은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는  "따끈따끈한 최신 꼴통 제품에 구미가 당기지 않을 때, 옛것이 새것보다 좋을 때, 그건 바로 철들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읽다가 무릎을 쳤다. 철이 든 게 아니라 철들 때가 된 거다. 그때가 됐는데도 정신 못 차리면 평생 철들지 못한 채 살아야 한다. 왜 남자들은 늦게 철이 들거나 아예 철이 들지 않는 걸까. 온갖 폼을 다 잡으며 인생에 대해 얘기하지만 왜 결국엔 인생을 낭비하며 사는 걸까. 그걸 내가 어찌 알겠나. 나도 남자인데. (김중혁)


89쪽~90쪽
이 영화를 본 다음날, 철거민들이 불타 죽은 용산 제4구역을 지나갈 일이 생겼다. 그 구역 전체는 거대한 의문부호처럼 내게 남아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한 수 배웠다. 말할 게 있다면, 잘 만들어야만 한다는. (김연수)


95쪽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모든 것이 파일로 오가는 요즘의 문화가 불만스러울 때가 있다. 원고지에다 글을 쓸 때는 실물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쓰는 글의 부피와 노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로 글을 쓴 다음 그걸 파일로 보내고 나면 뭔가 허망하다. 허공에다 글을 쓰고 바람이 그걸 지워버렸을 때처럼 허망하다. (김중혁)


107쪽
나는 그때 변변찮은 소설을 쓰고 있었고, 몇 군데의 출판사에서 거절 편지를 받았고, 문학상 응모에는 매번 떨어졌다. 책을 사면 늘 저자의 나이를 계산해봤다. 몇 년생인지, 첫 번째 책은 몇 살에 펴냈는지 늘 확인하곤 했다. '이 사람은 서른두 살에 첫 책을 냈군. 아직 내겐 7년이 남았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스물두 살에 데뷔하다니, 천재네, 천재. 부럽군'이라며 나의 재능없음을 한탄했다.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했으며 천재가 아닌 채로 점점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에 또 한번 절망했다. 요즘에도 새 책을 사면 저자의 나이를 확인해보곤 하지만 이젠 천재들의 재능을 시샘하지 않는다. 천재라는 사실은, 살아가는 데 오히려 좀 불편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인생을 좀 깨닫고 있는 건가. (김중혁)


145쪽
희망이라는 게, 참, 그렇다. 희망은 거대할 필요가 없다. 한 사람을 자살하게 만드는 절망의 크기가 다른 사람이 보기엔 터무니없이 작아 보일 수 있고, 한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희망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을 수 있다. (김중혁)


163쪽
외국에서 지내다보면 아주 간단한 법칙을 하나 알게 되는데, 그건 정색하면 제아무리 많은 돈을 들였더라도 그 여행은 실패라는 점이다. 음식이 나왔는데 정색하면 지는 거다. 식은땀이 흘러나왔어도 웃으면서 먹는 사람이 여행의 승리자다. (김연수)


167쪽
모든 상황에 대비해서 모든 장르의 음악을 챙겨간다. 그런데 막상 외국에 나가면 음악을 듣는 일은 거의 없다. 여행을 하면 언제나 귀를 열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잘하는 방법 중 하나가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도시에는 각각의 독특한 소리가 있어서 그 소리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나는 비엔나를 생각하면 트램 지나가는 소리와 횡단보도의 째깍째깍하는 경보음이 떠오른다. 런던을 생각하면 템스 강 위로 보트가 지나가던 소리가 떠오른다. 로마는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떠오르고, 스톡홀름은 새가 날아가는 소리가 유독 생생하다. 당연히 저마다 기억하는 소리가 모두 다르다. 정답이 있을 리 없다. 소리를 떠올리면 풍경이 살아나고 풍경이 살아나면 감정이 동영상으로 재생된다. (김중혁)


212쪽
'모험의 정신'이란 비록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뿐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에 굴하지 않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의 정신일 것이다. (김연수)


223쪽
말이 많으면 빨갱이. 양심을 자극하면 빨갱이. 국가폭력으로 간신히 유지되는 승자독식 사회가 아니어도 우리는 충분히 잘살 수 있다고 말하면 빨갱이. (김중혁)


284쪽
오늘 낮 카페에서 김연수 군을 만나 물어보았다. "왜 이런 글을 쓰세요?" 김연수 군은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엔 멋져 보여서 시작했는데, 그 다음에는 갚을 게 많아서였고, 지금은 그냥 써야 할 글이 자꾸 생기는 것 같네." (김중혁)


299쪽
고통에 적응하고 나면 감각의 문은 닫힌다. 인간은 잊기 위해 스스로 감각의 문들 닫아버린다.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무감각한 몸이 편안하긴 하겠지만 때로는 고통이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주기도 하니까. 때로는 절대 잊지 않아야 할 고통도 있는 법이니까. (중략) 익숙해진다는 것은 편리한 일이지만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김중혁)


331쪽
여건이 허락한다면 그렇게 살아도 재미있겠지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놀기도 하는 거다. (중략) 대책이 없더라도 재미있게 사는 건 중요하다. 나는 1년 동안 재미있었다. (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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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이 해피엔딩 -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김연수.김중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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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감상

 

1. 김연수와 김중혁의 책이라니,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절친한 친구라는 걸 모르고 왜 두 소설가가 만나서 책까지 썼지? 싶었다. 나중에 둘이 친구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기대했던 조합이 아니라 그런가 그냥 생소한 묶음이라고만 생각했다.

 

2. 김연수의 글은 당시 상황에 대해 좀 더 지적하고 질책하는 편이었고, 김중혁의 글은 보다 가볍고 유쾌했다.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지 않아 좋았다. 무려 40대 아저씨의 글인데 이렇게 경쾌할 수가! 역시 글에는 그 사람의 특성이 묻어난다. 김중혁의 소설을 좋아했던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였다. 번뜩이는 감각과 기발함,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가는 와중에도 잃지 않는 위트,랄까. 구어체로 술술 쓴 글이 많아서인가 더 쉽게 잘 읽혔다. 그렇다고 해서 김연수의 글이 어렵게 읽혔다는 말은 아니다. 김연수의 소설도 유명작이 많았는데 빨리 읽어봐야지.

 

3. <씨네21>에 실린 글을 모아둔 책인데, 사실 영화보다는 두 사람의 '개인의 취향'에 대해 더 속속들이 알게 된 기분이다. 물론 보고 싶어지는 영화도 있었다. 불행하게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이건 작가들의 글이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단지 내 기억력이 너무 짧아서다.

 

4. 무엇보다 제목이 매우 맘에 드는 책이었다. <대책 없이 해피엔딩>이라니!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생 평탄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도 맞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그래서 나는 김중혁의 <뭐라도 되겠지>라는 책 제목을 발견했을 때 무릎을 탁 쳤다. 내 인생의 모토는 저거다, 라고. 어느새 아무 색깔도 없이 회색빛이 된 것 같은 일상을 총천연색으로 물들이고 싶다는 맘이 들어서 뽑아든 책이다. 왠지 휴식을 줄 수 있는 책인가 싶어서. 다행히도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지막에 와서 늑장을 부려 그렇지, 앉은자리에서도 다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유쾌하다. 글 쓰는 사람들이 쓴 글이라(뭔가 말이 이상하다) 이야기가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흐른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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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임시저장 기능이 사용 중이고, 3분마다 저장했다면서 왜 때문에 제 글은 없죠? 아 미친 노트북 때문에 화가 다 난다. 올리기 전에 전체복사라도 해 놓을걸. 아주 훌륭한 글은 아니었어도, 글이 날아가면 진짜 짜증부터 난다.

 

이미 빡침 게이지가 올라갔으니 간단히 써야겠다. 오늘은 두 권의 다른 책을 읽었다. 『대책없이 해피엔딩』은 하루 만에 100쪽 넘게 읽어 이제 끝이 거의 보일 정도다. 『모서리에서의 사유』는 40몇 쪽 읽은 것 같다. 전자는 좀 가벼운 마음으로 슬슬 넘길 수 있는 책이고, 후자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건드린 책이라 전자보다는 약간 정자세로(?) 읽어야 할 것 같은 책이다. 둘 다 재밌다.

 

『대책없이 해피엔딩』은 소설가 김연수-김중혁이 주고 받듯 나눈 영화 칼럼을 묶었고, 『모서리에서의 사유』는 문화비평가 최태섭이 그동안 매체나 블로그에 쓴 칼럼을 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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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책을 읽거나 책 소개 메일을 읽거나 독후감을 쓰고 싶어진다.

이것이야말로 '책으로의 도피'!

 

집중력을 잘 발휘하는 하루라고 했으니 일을 미뤄두어 오늘 새벽처럼 또 기사 마무리하느라 5시 다 돼서 잠들지 말고 오늘은 제때 일을 마치고 책을 읽어야겠다. 서울도서관 대출 가능 권수가 3권뿐이라 아끼고 아끼면서 고른 책들이니, 아마 어느 걸 집어들어도 충분히 재미있을 테다.

 

늘 일 생각만 하고 있다고 일의 능률이 오르는 건 아니다. 되도 않는 여유를 부리며 더 이상 늦으면 안 될 때까지 다다라,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고 일에 매몰되게 만드는 습관은 이제 그만 버리자. 그런 건 결국 내 무능력함을 보여주는 일일 뿐이다.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책읽기에 빠져들 수 있게, 바지런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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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통장 사용설명서 - 통장 7개로 시작하는 세상에서 제일 쉬운 재테크
이천 지음 / 엘도라도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읽었던 『저축 기술』보다는 편집이 깔끔해 읽기 좋았다. 비슷한 수준의 책이라면 이왕이면 '보기 좋은 책'이 더 좋지 않나. 요새 '돈을 더 모아야 해!'라는 위기의식이 닥쳐오면서 재테크 관련 책을 뒤져보고 있다. 동생이 사 놓은 책이 있어서 운 좋게 쉽게 구해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자유 입출금식 통장, 청약통장, 예금통장, 적금통장, 보험, 펀드, CMA 등 다양한 상품을 다루면서 어떻게 이용하는 게 좋은지 길잡이 역할을 해 준다. 저자가 중시하는 건 작은 이율 차이라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좋은 상품이 있을 때는 귀찮더라도 품을 좀 들이라는 것. 돈을 모으기 위해서라면 그 의지와 열정만큼 수고하라는 게 그의 지론인데, 신선함은 떨어지지만 늘 상기할 만한 말인 것 같긴 하다는 생각이 든다.

 

재테크 책이나 습관 바꾸기, 성격 바꾸기 등의 실용서가 아주 새로운 내용을 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비슷비슷한 모습처럼 느껴지는 건, 아마 단순한 느낌에만 그치는 일은 아닐 테다. 역시나 이 책도 딱 그 정도의 감상을 하게 했다. 내용 평범하고 편집 깔끔한 자기계발서 정도. 그리고 일단 통장 7개 관리가 버겁게 느껴져서 거리감이 좀 있었다. 사재기 논란이 있어 좀 찜찜하지만 『4개의 통장』을 보는 편이 더 나았으려나.

 

기대를 많이 하고 봐서 그런지 헛헛한 마음도 크다. 뾰족한 수를 알려주는 재테크 책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차라리 평소 하는 군것질과 과시적 소비(내 생활에 그런 게 있긴 한가 싶지만)를 줄여 푼돈이라도 더 모으려고 열을 올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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