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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지 않은 남자가 혼자 살겠다고 부모님 집을 나오면 독립적인 성인이라고 존중을 받죠. 반면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부모님 집을 나오면 결혼을 포기했거나, 결혼시장에 진입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을 받아요."
_ 81쪽

 

많은 한국인들이 주택청약예금은 만인이 꿈꾸는 내 집 장만의 미래를 실현할 수 있는 공정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이는 임대주택은 과도기적인 주거형태라는 신념을 강화한다. 하지만 내 연구참여자들을 비롯한 노동빈곤층에게 임대주택은 장기적으로 또는 영구적으로 유일한 선택지이다. 노동빈곤층도 일정 기간 이상 보유한 주택청약예금이 있으면 아파트 구입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싱글가구는 청약순위가 가장 낮고, 목돈이 없다보니 입찰 가격에서 아파트 가격에 덧붙는 프리미엄을 두고 경쟁을 할 수가 없다. 이런 구조에서 상당한 예금을 갖지 못한 사람은 독립적인 생활공간을 임대할 길이 전혀 없다.
_ 93쪽

 

"글쎄요. 정말 절약해서 큰돈을 모은 20~30대 여성들도 있어요. 근데 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난 돈이 있으면 그냥 써버리거든요. 경제관념이 없어요.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큰 자부심을 느끼긴 하는데 큰돈이 필요한 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구걸을 해야 하는 게 정말 싫어요."
_ 104쪽

 

자본주의 문명이 우세한 국가의 노동계급은 이상한 망상을 품고 있다. 이 망상은 사회적, 개인적 고난을 일으키면서 200년이나 슬픈 인류를 고문해왔다. 이 망상은 바로 한 개인과 그 자손들의 생명력을 소진시킬 정도로 퍼내는 노동에 대한 사랑, 노동에 대한 맹렬한 열정이다. 성직자, 경제학자, 윤리학자들은 이 같은 정신적 일탈에 반대하기는커녕 노동에 신성한 후광을 입혔다. 맹목적이고 유한한 인간들은 신보다 더 지혜롭기를 원했고, 나약하고 경멸받아 마땅한 인간들은 신이 저주했던 것을 주제넘게 복원시키고자 했다. 나는 기독교도도, 경제학자도, 윤리학자도 아니지만, 이들의 판단에 불복해 신에게 탄원한다. 이들의 종교적, 경제적, 혹은 자유사상 윤리의 설교들로부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끔찍한 결과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_ 폴 라파르크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여성단체들이 아이 엄마와 기혼 직장여성들의 고통을 설명하면서 사람들에게 일종의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기혼 여성의 모성과 육아 문제를 여성 문제의 대표처럼 다루는 건 불편해요. 그들이 힘든 상황에 있는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건 그들만이 아니에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건 그들의 선택이에요. 내가 여성노동 문제에 관심 있다고 말하면 기혼 여성노동자를 위한 육아 문제를 연구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질렸어요."
_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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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6일에 가장 많은 분량을 읽고는 묵혀 두었다. 조금만 더 보면 다 읽는 건데.

 

 

19쪽

 

습관적인 행동은 우리를 둔하게 만든다. 말 그대로 틀에 박힌 행동에 얽매이게 된다. 정신학자들은 이를 '변화 기피증' 또는 '반복학습에 의한 강요'라고 말한다.

 

 

31쪽

 

괴테는 "최고의 마법은 유쾌한 기분에 있다"라고 말했고, 디킨스는 "이 세상에서 웃음이나 유쾌한 기분만큼 전염성이 강한 것은 없다"라고 했으며, 칸트는 "비루한 인생을 견디는 데 힘이 되는 세 가지가 있다. 희망과 잠, 그리고 웃음이다"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사무실은 예외인 것 같다. 늘 웃고 있는 사람에게는 '뭐가 저리 좋다고…' 하는 의혹이 뒤따른다. 간부들은 이런 직원들에 대해 주의가 산만하거나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배부른 자는 더 이상 사냥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 문화는 엄숙할 수밖에 없다. 늘 눈치를 보고 침묵이 감돌기 마련이다. 객쩍은 농담이나 사심 없는 칭찬은 찾기 힘들다.

 

 

33쪽

 

쾌활함은 일종의 바이러스 효과가 있다. 좋은 기분은 주변 사람들에게 매우 빨리 전염된다. 나쁜 기분보다 몇 배 더 빨리 말이다.  

 

 

45쪽

 

에드워드의 법칙 : 어떤 일에 투자하는 비용은 처리하는 데 남은 시간에 비례해 상승한다는 법칙이다. 마감시간에 쫓길수록 일처리가 힘들어지고 소모되는 에너지도 더 많이 든다.

 

역사학자 토마스 칼라일은 "우리의 핵심 과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모호한 일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놓여 있는 분명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51쪽

 

'인지 부조화', '양심의 가책' : 행동 변화를 위한 심리적 트릭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사항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자신의 메시지(자신의 원칙, 자신의 목표)가 중요하고 또 옳은 것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어야 한다. 둘째, 자신들의 위선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런 트릭은 무의미해진다.

 

 

61쪽

 

"어디선가 본 듯한 컨셉이에요", "무척 좋은 아이디어인데 실현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이런 말들에는 모두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전에, 아예 점화조차 안 되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87쪽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러하다. 최고의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책상과 떨어진 곳에서 탄생한다. 샤워를 하거나, 조깅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아니면 화장실에서 말이다. 스위스의 세인트가렌대학에서 공학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기발한 착상을 하게 된 장소 중 연구실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응답자의 76%가 휴가지나 산책로를 돌아다니는 중에, 혹은 양치질 중에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고 답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 창의적이 되려면 심리적인 긴장 상태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압박과 단조로움, 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동일한 공간은 영감에 독이 될 뿐이다. 그래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예술가들은 종종 자연으로 떠나거나 낯선 여행지를 방랑한다. 그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훌쩍 떠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93쪽

 

몽상가의 임무는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이었다. 어떤 현실적 제약도 받지 않은 채 말이다. 몽상가의 임무가 끝나면 현실주의자가 등장해 몽상가의 상상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 점검한다. '상상속의 이미지를 현실화하려면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가? 비용은 얼마가 드는가? 현실화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비판가가 등장한다. 비판가는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것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인지를 냉정하게 분석한다. 이러한 과정 전체를 몽상가가 감동하고, 현실주의자가 확신하고, 비판가가 만족할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115쪽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지방노동법원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최소한의 신체적 거리를 유지하지 않는 자, 상대방의 신체 중 일부를 집요하고 불필요하게 만지거나 접촉한 자는 성추행을 한 것으로 간주한다"라는 판결을 내렸다(3 Sa 163/03). 이러한 판결로 고소된 자는 영구적인 해고를 당했다.

 

 

119쪽

 

회사생활은 시트콤과 비슷하다. 황당한 일, 어이없는 일, 민망해서 죽을 것 같은 일들이 날마다 반복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의 빌미는 대부분 우리 스스로 제공한다. 예를 들어 '사생활 떠벌리기'가 그렇다. 순진한 신입사원과 눈치 없는 외향형 인간들은 더 웃긴 캐릭터를 연기한다. 이들은 사무실에서 너무 많은 사생활을 공개한다. 이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소문이 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소문에 대한 평가다. 당신이 소문 속에서 어떠한 역할(영웅, 희생자, 멍청이)를 맡았는지는 상관없다.

 

 

125쪽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존재한다. 뭐든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가.치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남의 부탁을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줏대 없는 사람으로 불리게 된다. 오히려 제몫만 챙기는 이기적인 인간들보다 존중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일어난다.

 

 

139쪽

 

하루 일과 중 절반이 지난 뒤 가능한 오래 휴식을 취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업무능력이 몇 배 높아진다는 것이다.

 

 

154쪽

 

지구상 다른 곳에서는 낮잠이 당연한 일인 곳도 있다. 일본에는 이네무리, 스페인에서는 시에스타라고 하는 낮잠 전통이 있다. 중국에서도 헌법 제43조에 의거해, 직장에서 때에 따라 취침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런 이야기를 귓전으로 흘려듣고 있다.

 

 

193쪽

 

스탠포드대학의 데보라 그루엔팔트 교수는 이러한 주제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연구를 실시했다. 그루엔펠드는 인간에게 영향력이 주어지면 세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첫재,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일에 더 많이 집착하게 된다. 둘째, 아랫사람의 욕구에 대해 신경을 덜 쓰게 된다. 셋째,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규정을 준수하는 일이 점점 더 줄어든다.

 

 

212쪽

 

한 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인식하고 이를 대화의 대상으로 이끌어내는 사람이 더 성공적으로 협상할 수 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협상의 본질을 아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술적인 측면에서는, 이런 사람이 상대방보다 먼저 그의 문제를 받아들이고 해결해 줄 수 있으므로 자신의 진짜 요구사항을 나중에 관철시킬 수 있다.

 

 

222쪽~224쪽

 

연봉 올리는 법

1. 성과로 증명하라

2. 먼저 여우같이 굴어라

3. 선을 지켜라

4. 분명한 목표를 확실하게 표현하라

5. 상대의 반박을 예측하라

6. 다른 동료를 비하하지 말라

7.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라

 

특별 보너스를 위한 전제조건

1. 분명한 목표를 세워라

2. 현실성 있는 목표를 세워라

3. 대안을 조사하라

 

 

229쪽

 

만약 당신이 앞으로 좀 더 자주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어야겠다고 생각된다면, 아래의 기본 원칙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 스스로를 비하하지 마라 : "어쩔 수 없어", "역시 내겐 무리야", "나 같은 건…" 이런 자기비하는 자격지심만을 키울 뿐이다. 내면의 대화는 우리의 행동과 감정에 95%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나쁜 생각은 즉각적으로 때려잡아 머릿속에서 지우는 편이 좋다. "조금 더 해보자", "이제부터는 잘되는 일만 남았어" 긍정적인 문장을 말해보도록 하라.

 

- 스스로에게 솔직해져라 : 자신의 약점과 실패를 솔직하게 분석하라. 그래야만 앞으로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지 깨달을 수 있다. 개선할 점 역시 구체적인 문장으로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좋다.

 

- 저울질하라 :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기로 했다면 철저히 그렇게 하라. 자신에게 중요한 결정의 장단점을 논의하고, 이를 신중하게 저울질해보라. 중요한 것은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결정을 내린 후, 그 결정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에 놓인 장애물을 키우게 될 뿐이다.

 

 

233쪽

 

그렇다면 도대체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해야만 하는 것일까? 정기적인 휴식 외에 최선의 방법은 하나다. 바로 '몸을 움직일 것'. 스트레스는 우리 몸에서 최고의 에너지를 끌어낸 후 알람의 상황으로 몰아넣고, 우리의 신경이 후퇴 혹은 공격의 원천적인 반응을 하도록 프로그래밍한다. 그렇게 심각한 흥분 레벨은 사무실과 모니터 앞에서는 간단히 진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간 축적된 스트레스를 풀려면 우리 몸이 정해놓은 프로그램에 따라 도주 혹은 공격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이 좋다. 엄청난 스트레스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일단 책상 앞을 떠나라. 계단 몇 개를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거나 건물 주변을 한 바퀴 산책하는 것이 좋다. 반대로 고된 하루를 마친 후에는 가벼운 지구력 운동을 하는 것이 몸의 부담을 더는 최고의 방법이다. 20분 정도의 활기찬 산책은 분노를 가라앉혀주고, 호르몬 수치를 정상으로 돌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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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쪽
어떤 사람은 칼럼도 요약하던데, 그래서는 안 된다. 요약하다보면 중요한 것들을 생략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칼럼도 판타지가 된다. 그러지 말고 우리 다 얘기해보자. 끝까지 한번 가보자. (김연수)


61쪽
문제는 혼자서 꾸는 꿈이다. 인생이란 그렇게 혼자서 꾼 꿈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궤적이다. 친구가 타향이라면, 타인은 지옥인데 그게 다 혼자서 꾸는 꿈들 때문이다. 꿈은 본디 같이 꿔야만 한다. 1997년의 나는 이런 사실들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을 것이다. (김연수)


79쪽
최근 재미있게 읽은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는  "따끈따끈한 최신 꼴통 제품에 구미가 당기지 않을 때, 옛것이 새것보다 좋을 때, 그건 바로 철들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읽다가 무릎을 쳤다. 철이 든 게 아니라 철들 때가 된 거다. 그때가 됐는데도 정신 못 차리면 평생 철들지 못한 채 살아야 한다. 왜 남자들은 늦게 철이 들거나 아예 철이 들지 않는 걸까. 온갖 폼을 다 잡으며 인생에 대해 얘기하지만 왜 결국엔 인생을 낭비하며 사는 걸까. 그걸 내가 어찌 알겠나. 나도 남자인데. (김중혁)


89쪽~90쪽
이 영화를 본 다음날, 철거민들이 불타 죽은 용산 제4구역을 지나갈 일이 생겼다. 그 구역 전체는 거대한 의문부호처럼 내게 남아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한 수 배웠다. 말할 게 있다면, 잘 만들어야만 한다는. (김연수)


95쪽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모든 것이 파일로 오가는 요즘의 문화가 불만스러울 때가 있다. 원고지에다 글을 쓸 때는 실물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쓰는 글의 부피와 노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로 글을 쓴 다음 그걸 파일로 보내고 나면 뭔가 허망하다. 허공에다 글을 쓰고 바람이 그걸 지워버렸을 때처럼 허망하다. (김중혁)


107쪽
나는 그때 변변찮은 소설을 쓰고 있었고, 몇 군데의 출판사에서 거절 편지를 받았고, 문학상 응모에는 매번 떨어졌다. 책을 사면 늘 저자의 나이를 계산해봤다. 몇 년생인지, 첫 번째 책은 몇 살에 펴냈는지 늘 확인하곤 했다. '이 사람은 서른두 살에 첫 책을 냈군. 아직 내겐 7년이 남았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스물두 살에 데뷔하다니, 천재네, 천재. 부럽군'이라며 나의 재능없음을 한탄했다.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했으며 천재가 아닌 채로 점점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에 또 한번 절망했다. 요즘에도 새 책을 사면 저자의 나이를 확인해보곤 하지만 이젠 천재들의 재능을 시샘하지 않는다. 천재라는 사실은, 살아가는 데 오히려 좀 불편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인생을 좀 깨닫고 있는 건가. (김중혁)


145쪽
희망이라는 게, 참, 그렇다. 희망은 거대할 필요가 없다. 한 사람을 자살하게 만드는 절망의 크기가 다른 사람이 보기엔 터무니없이 작아 보일 수 있고, 한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희망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을 수 있다. (김중혁)


163쪽
외국에서 지내다보면 아주 간단한 법칙을 하나 알게 되는데, 그건 정색하면 제아무리 많은 돈을 들였더라도 그 여행은 실패라는 점이다. 음식이 나왔는데 정색하면 지는 거다. 식은땀이 흘러나왔어도 웃으면서 먹는 사람이 여행의 승리자다. (김연수)


167쪽
모든 상황에 대비해서 모든 장르의 음악을 챙겨간다. 그런데 막상 외국에 나가면 음악을 듣는 일은 거의 없다. 여행을 하면 언제나 귀를 열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잘하는 방법 중 하나가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도시에는 각각의 독특한 소리가 있어서 그 소리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나는 비엔나를 생각하면 트램 지나가는 소리와 횡단보도의 째깍째깍하는 경보음이 떠오른다. 런던을 생각하면 템스 강 위로 보트가 지나가던 소리가 떠오른다. 로마는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떠오르고, 스톡홀름은 새가 날아가는 소리가 유독 생생하다. 당연히 저마다 기억하는 소리가 모두 다르다. 정답이 있을 리 없다. 소리를 떠올리면 풍경이 살아나고 풍경이 살아나면 감정이 동영상으로 재생된다. (김중혁)


212쪽
'모험의 정신'이란 비록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뿐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에 굴하지 않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의 정신일 것이다. (김연수)


223쪽
말이 많으면 빨갱이. 양심을 자극하면 빨갱이. 국가폭력으로 간신히 유지되는 승자독식 사회가 아니어도 우리는 충분히 잘살 수 있다고 말하면 빨갱이. (김중혁)


284쪽
오늘 낮 카페에서 김연수 군을 만나 물어보았다. "왜 이런 글을 쓰세요?" 김연수 군은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엔 멋져 보여서 시작했는데, 그 다음에는 갚을 게 많아서였고, 지금은 그냥 써야 할 글이 자꾸 생기는 것 같네." (김중혁)


299쪽
고통에 적응하고 나면 감각의 문은 닫힌다. 인간은 잊기 위해 스스로 감각의 문들 닫아버린다.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무감각한 몸이 편안하긴 하겠지만 때로는 고통이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주기도 하니까. 때로는 절대 잊지 않아야 할 고통도 있는 법이니까. (중략) 익숙해진다는 것은 편리한 일이지만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김중혁)


331쪽
여건이 허락한다면 그렇게 살아도 재미있겠지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놀기도 하는 거다. (중략) 대책이 없더라도 재미있게 사는 건 중요하다. 나는 1년 동안 재미있었다. (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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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 읽은 날짜 : 7월 어느 날

 

 

 

 104쪽

 

 장애인을 언급하는 표현인 '장애우'라는 용어 자체도 문제가 많잖아요? 장애인 스스로는 장애우라는 말을 쓸 수 없는데 말이에요. 그렇게 보면 장애인을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본다거나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장애에 대한 인식이 참 극단적이죠? 한쪽에서는 장애우라고 부르면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지역 사회에서 같이 살 수 없는 존재로 여겨요. - 장애인 매체 전직 기자 박현진

 

 

 

 109쪽

 

 장애인 사이에서도 다시 계급이 갈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증 장애인이 취업을 걱정한다면, 중증 장애인은 취업은 아예 생각하지 못해요. 어떻게 하면 나라에서 조금 더 많이 보조 받아서 살 수 있을지를 생각해요. 현재 장애 연금이나 기타 뒷받침이 너무 열악하니가요. 그것으로 살 수가 없으니 일을 하고 싶은데, 일을 하면 기초생활수급권이 박탈되니 결국 이래저래 생존의 문제로 넘어가는 거죠.

 

 

 118~119쪽

 

 그런데 관련 공청회에서는 복지를 운운하면서도 꼭 이갸기하는 게 부정수급자에요. 항상 시혜적 관점에서 '우리가 예산을 너희에게 주는데 여기에 부정수급자가 끼어들 수 있으니 어떤 조건은 들어줄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해요. 2011년에 박근혜 의원이 전 생애 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논할 때 공청회에 갔는데 그때도 나오는 이야기는 부정수급자예요. 그러니가 항상 부정수급을 염두에 두면서 '이게 어떠어떠한 면에서 예산을 낭비할 수 있다'라고 덧붙여요.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한다고 하면서 조건을 다는 거죠.

 


 122쪽

 

 예전에 라는 시사 프로그램에 미국의 한 시각 장애인 요리사가 나왔는데 그분의 사례가 시스템의 필요성을 잘 보여주는 듯해요. 그 요리사의 상사가 나와서 그러더라고요. "비장애인을 뽑아도 일에 익숙해지려면 적응 기간이 필요한 것처럼 그 사람에게도 적응 기간을 준 거다. 내가 배려한 게 아니다." 이렇게 각각의 핸디캡을 배려하는 문화가 장애인에 대해서건 비장애인에 대해서건 있으면 좋은데 그런 회사가 거의 없어요.

 


 124쪽

 

 많은 장애인들을 만나보면 그렇게 '효율성 저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일할 수 있어요. 한데도 장애가 있으니 당연히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을 뽑지 않는 것이죠.

 


 158쪽

 

 저는 청년유니온 조합원이지만 기본적으로 청년 문제에 접근하는 그들의 방식에 비판적이에요. 청년유니온의 기본 기조를 보면 청년이 극악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호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더라고요. 호소하는 것과 권리를 찾는 것은 다르죠. 그러니까 권기를 주장하면서 호소하면 '저들도 권리가 필요한 동등한 시민이구나' 하고 여기게 되지만 호소만 하면 시혜를 베풀어야겠다고 여기게 되겠죠. -방랑 좌파 조병훈

 


 160쪽

 

 저는 지금이 청년 어젠다가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정당에서 청년 비례대표니 청년 어젠다니 말들은 많이 꺼내잖아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도 청년을 끼워넣는 상황인데, 사실 거기에 청년 정치나 정책은 없어요. 민주당 같은 경우에도 원래 청년학생위원회가 있어서 엘리트들을 키우잖아요? 그런데 이번 청년 비례대표는 청년학생위원회에서 움직이는 게 아니에요.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진짜 의도는 다른 데 있잖아요? 진보 정당도 마찬가지예요. 진보신당과 사회당은 워낙 사람이 없으니까 어떻게 장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시도하고 통합진보당까지는 요깃거리로 삼는 거죠.

 


 167~168쪽
 
 유럽에서 기본소득 논의는 재벌이 꺼내기도 해요. 이마트 같은 유통 회사로 독일의 데엠DM이 있잖아요? 데엠 회장이 주장하는 게 '괴츠 베르너 모델'이라고 해요. 괴츠 베르너 회장이 주장한 게 있어요. 지금 기업이 내는 모든 세금을 기본소득세로 만들어서 기업이 내면, 그래서 그것을 기본소득으로 부여하면 독일 국민이 1인당 매달 800유로 정도를 받을 수 있대요. 거기는 제1세계니까 그게 가능하겠죠. 그렇게 지급하면 내수가 엄청 활발해지겠죠. 그런 우파적인 기본소득 모델이 있는 거예요. 일종의 사민주의적인 기본소득 주장인 거죠. (중략) 그러니가 한국은 어차피 지금 가려져 있는 주금융세, 토지세 등등을 강화해서 불로소득 환수로 가는 수밖에 없어요. (중략) 그 과정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이 충분히 위력 있다고 보는 거고요.

 


 175쪽
 
 여성이 섹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성 해방'이라고 이야기하는 수준인데, 여성을 위한 섹스 시장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질 만한 토양이 아닌 거죠. -페미니스트 랭

 

 

 177쪽

 

 "성폭력은 남성의 고유한 본능이다." 이 문구를 교재에서 봤는데 이게 대체 뭔가 싶었다니까요. 그런데 그런 문제가 있는 내용이나 발언이 한두 군데가 아니더라고요. "에이즈는 많이 해서 걸리는 병이다", "아주 많이 해으면 아주머니고 할 만큼 했으면 할머니다" 발언 같은 건 얕은 수준이고요. 더 엄청난 발언이 쏟아졌어요.

 

 

 196쪽

 

 직업에 대한 관점은 단순해요. 기자나 PD 같은 직업이 각광받는 이유는 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이잖아요?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면, 경력을 오랫동안 쌓으면 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있고, 그 사람만의 시각이 생기죠. 그런데 사실 현대사회에서 이뤄지는 노동 대부분은 대체가 가능하다고 보잖아요? 실제로 대체 가능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일을 하지, 일을 하기 위해 무언가를 투자한다는 것은 되게 좁은 영역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어요. 다시 말해서 예술과 가까운 창조적 행위와 연관이 있는 직업들만이 그런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요새 젊은이들은 돈 문제를 떠나서도 언론, 예술 계통에서 일하고 싶어 하죠.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영역에서 기쁨을 느끼고 싶다는 건데, 시장은 그런 것들과는 무관하게 굴러가고 있으니가. 가장 중요한 건 사실 나만의 고유한 것들이 노동 시장에 없다는 거. -게으른 전복을 꿈꾸는 자유주의자 피코테라

 

 

 199쪽

 

 (...) 그리고 세대론이 옳은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선배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나보다 공부도 덜 했는데, 나보다 더 널널하게 살아놓고는‥‥.'

 

 

 237쪽

 

 사실 일이 그런 경로를 통해 저에게까지 오면 도저히 쓸 수 없는 상태인 원고들도 많아요. 서로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내용을 제시하다보면 결국 처음부터 새로 쓰는 셈이죠. 사람 심리라는 게 참 재밌어요. 의뢰인은 그게 완성된 원고라고 생각하니까요. -직업 유랑기 거친 고졸 청년 김슷캇

 

 

 267쪽

 

 그런 것뿐만 아니라 그냥 노는 공간도 부족해요. 20대가 친구들을 만나는 곳이라고 해봤자 카페나 노래방, PC방 같은 데잖아요. 재미도 없을뿐더러 얼마나 주체적이지 못해요? 맨날 하는 것도 똑같고. 그래서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움직이고 실천하는 강남 좌파? 프리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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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읽은 날짜 : 2012년 7월 25일 수요일

 

 

 

 13쪽

 

 시인에게 바람을 맞던 날, 나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나는 시인이 나를 편안하고 유쾌하게 만날 수 있을 때 나오기를 원한다. 나는 시인이 약속 때문에 억지로 나와서 내 앞에 앉아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건 껍데기와 앉아 있는 것이니가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시인과의 만남은 이루어졌다. 물론 그날의 만남은 아주 행복했다. 시인은 정말 나와 만나고 싶을 때 나왔기 때문이다.

 

 

 

 30쪽

 

 유아는 자신에게 쾌락을 제공하는 젖꼭지가 이제는 금지되었다고 느끼게 된다. 이 경우 젖꼭지는 아이의 쾌락을 충족시켜주는 단순한 대상을 넘어선다. 한때 쾌락을 주었던 젖꼭지가 금지되자마자, 이것은 유아에게 욕망 대상이 된다. 당연히 이 순간 유아는 욕망주체로 탄생한다. (중략) 우리는 금지된 것만을 욕망한다. (중략) 현재 작동하는 우리의 욕망은 모두 과거 금지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라캉이 인간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40쪽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는 인문학의 정신과 그 힘이 어디에 있는지 직감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솔직함과 정직함이다. 자신의 상처나 약점을 솔직하게 토로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고칠 수가 없다. 상처를 냉정하게 진단하지 않는다면, 치료의 전망도 없을 것이다.

 

 

 41쪽

 

 진정한 인문학자는 일체의 허영과 가식을 걷어내고 인간과 사회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아이와 같은 눈을 가지고 잇기 때문이다.

 

 

 55쪽

 

 어떻게 해야 이 네모난 얼음이 둥근 그릇과 소통할 수 있겠는가? 이 얼음이 네모남이란 고착된 자의식을 버려야만, 그래서 그릇의 둥긂을 수용할 수 있을 대에만 소통은 가능할 것이다. (중략) '얼음'과 '물'의 비유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얼음'과 '물'이 상이한 두 가지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실체substance가 가지는 두 양태mode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략) 결국 치열한 자기 수양에 의해 우리는 성인도 될 수 있고, 아니면 평범한 사람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67~68쪽

 

 혜능은 시를 통해서 신수가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혜능에 따르면 신수는 왜 마음을 닦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저 이전의 부처들과 선배 스님들이 마음을 닦았기 때문에 자신도 닦을 뿐이라는 식이다. 다시 말해 신수의 생각에는 도대체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숙고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76쪽

 

 만들어진 습관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변화가 지나가버린 것이라면, 습관은 그것을 낳은 변화를 넘어서 존속하는 것이다. 게다가 습관은 그것이 습관인 한에서 그리고 그 본질 자체에 의해 그것을 낳는 변화에만 관계될 뿐이라고 했을 대, 그것은 더 이상 그런 변화가 존재하지 않아도 존속하는 것이다. (중략) 바로 이것에 의해 습관이냐 아니냐가 가려진다. 습관은 따라서 단지 어떤 상태일 뿐만 아니라 어떤 경향이자 어떤 능력이기도 하다. -『습관에 대하여』

 

 

 83쪽

 

 [우리는] 가까이 '손안에 있는' 존재자를 '배려함'에서 사용 불가능한 것으로, [다시 말해]특정한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것으로 만나게 될 수 있다. 이 경우 작업 도구는 파손된 것으로 판명되고 재료는 부적합한 것으로 드러난다. 도구는 여기에서도 어쨌거나 손안에 있기는 하다. (중략) 이런 사용 불가능성의 발견에서 도구는 마침내 우리 '눈에 띄게' 되는 것이다. - 『존재와 시간』

 

 

 84~85쪽

 

 결국 하이데거에게 있어 '배려함'이 '특별하게 의식하지 않고 어떤 것과 관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눈에 띔'은 '어떤 것과의 친숙했던 관계가 좌절되어 어떤 것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략) 하이데거는 오직 '손안에 있지 않은' 예외적인 경우, 즉 특이한 사건이 발생한 경우에만 우리의 생각, 즉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눈에 띔'의 작용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중략) 바로 낯섦이 찾아오는 바로 그 순간이 우리의 생각이 깨어나 활동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96쪽

 

 광학은 무엇보다도 빛, 그리고 그것을 느끼는 눈에 대한 사유라고 할 수 있다. 광학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 학문이 우리의 일상적 경험을 근본적으로 낯설게 만들면서 출현했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붉은 장미꽃을 보고, 이 꽃은 붉은색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마치 그 장미꽃이 붉은색을 성분으로 가지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광학은 전혀 다른 사실을 알려준다. 꽃이 붉게 보이는 이유는 그 꽃이 태양빛 중 붉은색을 띠는 파장대의 빛만을 반사하고, 그 빛을 우리 눈이 감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 꽃은 붉은색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붉은색을 튕겨내는 셈이다.

 

 

 104쪽

 

 욕쟁이 할머니의 식당에서 느끼기 쉬운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이 어떤 삶의 문맥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섬세하게 읽어내야 한다. 자신의 문맥에 따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재단하는 순간, 오해와 갈등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112쪽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산 사람에게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121쪽

 

 이처럼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자유가 없다면 책임도 있을 수 없다.

 

 

 123쪽

 

 어떤 행위가 사회적 통념에 맞느냐 그르냐가 쟁점이 아니라, 행위자가 자율적인 선택을 했느냐 타율적 선택을 했느냐가 쟁점이기 때문이다.

 

 

 127쪽

 

 정확히 말해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긍정했다가는 살아남기도 힘든 사회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중략) 한마디로 남자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남성들은 여성을 타자로 경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거나 숨기고 있는 여성에게서 어떻게 낯섦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 생각과 욕망에 상대방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때에만 그는 나에게 타자로 드러날 수 있다.

 

 

 131쪽

 

 어머니나 아이에게 남은 유일한 관계는 책임이란 관계다. 이 관계를 통해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타자로 긍정하면서 그에 부단히 반응할 수 있고, 아이도 자신의 어머니를 타자로 긍정하면서 그에 반응할 수 있다. 완벽한 일치도 아니고 완벽한 분리도 아닌 관계. 이것이 바로 레비나스가 생각했던 타자와의 진정한 관계다.

 

 

 142쪽

 

 자공이 물었다. "평생 동안 실천할 만한 한 마디 말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바로 서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일은 남에게 행하지 말아야 한다." -『논어』「위령공」

 

 

 149쪽

 

 맹자와 주희의 윤리적 감수성이 인간의 본성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정약용의 그것은 바로 위기에 빠진 어린아이에 가 있었던 셈이다. 다시 말해 우리 마음에 '측은지심'이 생겼을 때 주희는 그것을 발생시킨 '본성'이라는 내적 원인으로 자신의 사유를 진행시켰던 반면, 정약용은 그 어린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실천'이라는 외적 방향으로 자신의 사유를 진행시킨 것이다.

 

 

 154쪽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중략)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56쪽

 

 "지금 당신은 근면과 성실이란 미명 아래 사유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당신이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있는가?"

 

 

 171쪽

 

 유한자인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것을 파괴해야만 한다.

 

 

 184쪽

 

 다시 말해 이리가라이에 따르면 남녀평등 이념 속에서 평등이란 잣대는 여전히 남성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자신을 만들어가게 되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남성적 정체성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1쪽

 

 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냐? 옛날 바다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자기와 같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 아니다. -『장자』「지락」

 

 

 231쪽

 

 상업자본은 공간의 차이, 다시 말해서 가격의 차이가 나는 서로 다른 두 공간에서 이윤을 획득한다. (중략) 그러니까 상업자본이 이용한다는 공간적 차이는 단순한 공간적 차이라기보다 가격 차이가 나는 공간적 차이인 셈이다. 반면 산업자본은 상업자본과는 달리 시간의 차이를 이용해서 이윤을 남기려고 한다. (중략) 상업자본이 이미 존재하는 공간적 차이를 이용할 수 있을 뿐이지만, 산업자본은 스스로 유행을 만들어서 시간적 차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233쪽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자신이 벌어들인 돈으로 자신이 만든 상품을 활기차게 구매할 경우에만 유지되는 체제이다.

 

 

 237쪽

 

 "오히려 나는 우리나라에 사치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중략) 왜냐하면 부자들의 사치는 많은 수공업자와 가난한 사람을 먹여 살리기 때문이다." -『사치와 자본주의』

 

 

 247쪽

 

 자본주의는 상품을 가진 사람보다는 자본을 가진 사람에게 우월함을 보장하는 체제다. (중략) 그렇지만 월급을 받아 소비자가 되는 짧은 한순간,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순간적이나마 노동자는 상품을 구매할 돈을 가지고 있고 자본가는 팔아야 할 상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순간 노동자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중략)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자본가가 월급을 준 이유는 노동자가 자신이 만든 상품을 자신이 받은 돈으로 사게 하기 위해서이다.

 

 

 250쪽

 

 결국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이미지들에 길들여짐에 따라 스펙터클 사회의 거주민들은 점점 현실에 대한 방관자, 혹은 구경꾼으로 변하게 된다. (중략) 아니 정확히 말해 온몸으로 겪어야만 했던 현실 세계는 사라지고 시각적으로 특화된 이미지의 세계만 남게 된 것이다. (중략) 권력의 입장에서는 좋을 것이다. 현실에 치열하게 참여하는 실천가가 줄어들고 거리를 두고 냉소적으로 구경하는 방관자가 늘어나게 되니까 말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대중매체의 볼거리들이 기본적으로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 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볼거라기 선정적이고 자극적일수록, 우리는 대중매체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자본은 이를 이용해 우리의 내면에 신상품의 유행과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결국 우리는 여가시간마저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셈이다.

 

 

 269쪽

 

 빼앗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만 한다. 이것을 '은미한 밝음'이라고 말한다. 유연하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법이다.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게 해서는 안 되고, 국가의 이로운 도구는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도덕경』36장

 

 

 307쪽

 

 자신의 적성이나 혹은 아이의 적성을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훈계나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자신이나 아이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즐거워하는지, 혹은 어떤 일을 할 때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는지 관찰하기만 하면 된다.

 

 

 312쪽

 

 민주주의에서 시간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다양한 개인들을 엄연한 권리의 주체로서 긍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랑시에르에게 고마워할 일이다. 그는 합의라는 절차 속에 내재하는 억압과 불평등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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