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 - 어느 TV 중독자가 보내는 서툰 위로
이승한 지음, 들개이빨 그림 / 한겨레출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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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바로 이 책을 다 읽기 하루 전날인 어제,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와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선배는 대뜸 올해 미디어업계 뉴스를 꼽는다면 1위는 무엇인 것 같냐고 물었다. 그 다음은? 5위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 정말 나는 잘 모르는구나. 나름대로 관심 있고 공을 들여왔다는 분야에 대해서도 즉답을 하지 못할 만큼.

 

선배는 이른바 '선진국'의 대단함이 '적재적소의 기록'에서 나온다고 말해주셨다. 최근 100년간 가장 위대한 인물 몇 명, 중요한 사건 몇 가지. 오랫동안 기억하고 함께 숙지해야 할 일과 사람을 성실하게 기록하는 풍토가 '선진국'과 우리나라가 갈리는 지점이었다.

 

"우리나라가 칭찬에 유독 인색한 탓도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욕하기는 쉽잖아요. 그런데 무언가의 좋은 점을 말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죠. 그래서 그런 것 아닐까요? 저도 뭐가 좋다고 쓰는 게 더 어렵더라고요." 선배의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부족함을 애써 희석시키기 위해 꺼낸 말이긴 했지만, 내용만은 진심이었다.

 

길었지만 쓸데없는 앞머리는 아니었다, 고 생각한다. 이승한 님의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는 내게 제때, 기억해야 할 만한 것을, 성실하게 담고 있는 책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표지에서도, 머리말에서도 저자는 자신이 위로에 영 서툰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써 온 사람으로서 이 책은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했던 자신의 가난한 시도들이 모였다고도 했다. 300쪽이 조금 못 되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저자가 얼마나 자기자신의 '공감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수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한 인물 혹은 사건을 매번 이 정도로 깊이 있게 바라보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타인에게 대체로 무신경한 여느 사람들로서는 끝내 찾아낼 수 없거나 보고도 깨닫지 못했던 숨은 1cm가 모든 글에 빠짐 없이 등장한다.

 

엽기 콘셉트와 개그 이미지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닌 밴드 노라조가 이미 '제대로 된 곡'을 발표했었다는 것과 윤상은 단순히 아이돌 누구의 프로듀서만으로 호명되기 아까울 정도로 '소리 깎는 장인'이라는 것을 짚는다. 아직 대중에게 '덜' 알려진 이민지에게는 가능성 가득한 말간 얼굴과 박미선에게 부드러운 교통정리와 훅 들어오는 재치라는 무기를 발견한다.

 

오랜 시간 섬세한 눈으로 바라보지 못했다면 이야기되지 못했을 것들. 마감에 쫓겨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데 짧은 시간만 투자했을 뿐이라면, 더더욱 감탄하게 된다. 덜 드러나 있었던 진면목을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에.

 

인물이 걸어온 핵심적인 발자취는 놓치지 않고, 참신한 시각으로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낯설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간편하고 게으른 '꼬리표 붙이기' 식 글이 넘쳐나는 와중에, 독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큼의 설득력과 스스로 가꾼 독창적 관점 두 가지를 모두 갖춘 글은 퍽 반갑다.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에는 애정 어린 시선만 있지는 않다. 부조리와 부당한 차별에는 예리한 문제의식을 던진다. 사람다운 사람으로서의 감수성의 의미를 알게 된 지 이제 10년밖에 되지 않아, 아직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생각과 언행을 보이는 나는 이 책이 어떤 길잡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흔히 빠지게 되는 착각에서 구해주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보여주는.

 

김유정의 짝다리에 쏟아진 과도한 비난을 지적한 '불편하디? 젊은 여자라서?', 오로지 피해자성만을 강조해 온 교육과 그로 인한 사회 분위기 탓에 애써 피하고 있는 한국(인)의 인종차별을 꼬집은 '언제까지 무릎만 칠 건가', 혐오자들이 동원하는 전략의 '비논리'를 질타하는 '어차피 너도 나와 다를 바 없잖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해 줄 '나'에 도취돼 멋대로 무결함을 판단하는 행태를 비판한 '기대만큼 아파 보이지 않아 실망하셨나요'에서는 약이 되는 쓴소리를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조명되지 못한 '여성'들에 대한 글이 원고의 절반을 차지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든 없든, 저자의 글을 읽고 나면 미처 보지 못했던 그들의 얼굴이 보였다.

 

'~주의자'로서의 신념보다 간절함을 원동력으로 삼은 배역을 맡아온 염정아, 스스로의 기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거침없이 그건 '잘한 것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매서운 프로 이소라, 모두가 고개 숙이라 하는 상황에서도 정면을 응시하고 제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김부선까지.

 

TV드라마, 예능, 영화, 대중음악. 한 가지만으로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방대한 분야를 넘나드는 폭넓은 문화적 배경과 취향에는 또 한 번 혀를 내두르게 된다.

 

아무리 반짝이는 것이라도 누군가의 눈에 들지 않으면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보이기도 전에 묻히고 만다. 저자는 특유의 밝은 눈으로, 누군가가 꼭 알아줬으면 하는 나아가 본인조차도 모르고 지나쳤을 그만의 어떤 '매력'과 '의미'를 부지런히 찾아냈다. 그 기록의 총체가 바로 이 책이다.

 

'한겨레'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로 이미 본 원고가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다시 맞닥뜨릴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아주 조금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빛바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저 '촘촘히 엮인 문장이 빚어낸 단단한 글'만을 느꼈을 뿐이다.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직업을 스스로 택해 5년을 넘겼음에도 감이 안 되는데 설치는 게 아닌가 하는 괴로움에 시달리는 나는, 이 책에 나온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 온 사람들의 묵묵함'이 특히 더 마음에 들어왔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아마도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라는 제목이 아닐까.

 

저마다의 가치를 지닌 사람과 작품을 둘러보게 만들고는, 결국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신기하고 고마운 위로. 나는 나만의 속도가 있기에 그간 걸어온 궤도를 폄하하거나 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마 앞으로도 감기처럼 찾아올 불안함과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내진 못하겠지만, 이제는 왠지 조금 덜 흔들리고 덜 주눅 들어도 괜찮을 것만 같다.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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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지 않은 남자가 혼자 살겠다고 부모님 집을 나오면 독립적인 성인이라고 존중을 받죠. 반면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부모님 집을 나오면 결혼을 포기했거나, 결혼시장에 진입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을 받아요."
_ 81쪽

 

많은 한국인들이 주택청약예금은 만인이 꿈꾸는 내 집 장만의 미래를 실현할 수 있는 공정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이는 임대주택은 과도기적인 주거형태라는 신념을 강화한다. 하지만 내 연구참여자들을 비롯한 노동빈곤층에게 임대주택은 장기적으로 또는 영구적으로 유일한 선택지이다. 노동빈곤층도 일정 기간 이상 보유한 주택청약예금이 있으면 아파트 구입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싱글가구는 청약순위가 가장 낮고, 목돈이 없다보니 입찰 가격에서 아파트 가격에 덧붙는 프리미엄을 두고 경쟁을 할 수가 없다. 이런 구조에서 상당한 예금을 갖지 못한 사람은 독립적인 생활공간을 임대할 길이 전혀 없다.
_ 93쪽

 

"글쎄요. 정말 절약해서 큰돈을 모은 20~30대 여성들도 있어요. 근데 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난 돈이 있으면 그냥 써버리거든요. 경제관념이 없어요.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큰 자부심을 느끼긴 하는데 큰돈이 필요한 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구걸을 해야 하는 게 정말 싫어요."
_ 104쪽

 

자본주의 문명이 우세한 국가의 노동계급은 이상한 망상을 품고 있다. 이 망상은 사회적, 개인적 고난을 일으키면서 200년이나 슬픈 인류를 고문해왔다. 이 망상은 바로 한 개인과 그 자손들의 생명력을 소진시킬 정도로 퍼내는 노동에 대한 사랑, 노동에 대한 맹렬한 열정이다. 성직자, 경제학자, 윤리학자들은 이 같은 정신적 일탈에 반대하기는커녕 노동에 신성한 후광을 입혔다. 맹목적이고 유한한 인간들은 신보다 더 지혜롭기를 원했고, 나약하고 경멸받아 마땅한 인간들은 신이 저주했던 것을 주제넘게 복원시키고자 했다. 나는 기독교도도, 경제학자도, 윤리학자도 아니지만, 이들의 판단에 불복해 신에게 탄원한다. 이들의 종교적, 경제적, 혹은 자유사상 윤리의 설교들로부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끔찍한 결과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_ 폴 라파르크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여성단체들이 아이 엄마와 기혼 직장여성들의 고통을 설명하면서 사람들에게 일종의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기혼 여성의 모성과 육아 문제를 여성 문제의 대표처럼 다루는 건 불편해요. 그들이 힘든 상황에 있는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건 그들만이 아니에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건 그들의 선택이에요. 내가 여성노동 문제에 관심 있다고 말하면 기혼 여성노동자를 위한 육아 문제를 연구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질렸어요."
_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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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가기 - 비혼여성, 임대주택, 민주화 이후의 정동
송제숙 지음, 황성원 옮김 / 동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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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한 번 빌렸다가 다 못 읽고 반납했나, 아니면 그냥 슥 훑고만 왔다. 드디어 자세를 고쳐 앉고 읽는데 학술적 용어가 많아서 읽는 도중 꽤 버퍼링이 걸렸다. '정동'이나 '레짐' 같은 용어가 나올 때마다 작아졌다. 딴에는 글을 읽고 글을 쓰는 입장인데도 기본적인 개념에도 취약하다니,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동시에 연구자들의 용어는 이늘 이렇게 어느 정도의 장벽이 있는 채로 대중에게 전달되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연구자들만 보라고 만든 책은 아니었을 테니, 그건 저자나 번역자나 출판사에서 신경 썼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혼자 살아가기]는 30대 초반~30대 후반의 비혼 여성 16명을 심층 인터뷰한 내용과 저자의 연구 내용이 어우러진 책이다. 역시나 심층 인터뷰가 재미있었다. 일부 인터뷰이가 하는 말은, 마치 나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처럼 생생해서 정신이 퍼뜩 드는 기분까지 들었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하면서 비싼 전세금을 마련할 만큼의 생활수준에 다다르지 못해 허덕이는, 그러면서 진보적(책 속에서는 '좌파적'이라는 말로 나왔다)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

 

학생운동도, 노조운동도 하지 않았다. 대학 저학년일 때 집회 참가가 처음이었고 첫 직장에서 사회운동에 대해 조금 감을 잡은 내가, 감히 '좌파'니 '진보'니 자처할 순 없겠지만, 주거 환경이나 생활 태도가 유사해서 많이 공감하며 읽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이제 막 30대에 들어선 비교적 젊은 축이라는 것이고(100세 시대에 솔직히 40대도 젊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적어도 현재 하는 일이 불안정 노동은 아니라는 것 두 가지다.

 

더 높은 수준의 감정 노동을 수반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임금 후려치기를 당하고, 여성 혼자 '독립'해서 나가 산다는 것에 대한 가족과 사회의 편견과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사실 희망은 찾기 힘들었다. 말 그대로 현실을 담담히 읊는 느낌이었달까.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여성운동 의제에서 '비혼 여성'은 여전히 꼴찌로 밀려나 있다는 것이었다. 기혼 여성의 출산, 육아, 이후 경력단절 문제가 그나마 사회적으로 꾸준히 이야기되는 '주류 이슈'라면, 비혼 여성의 삶은 그만큼 시급하고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과,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치지 않고 홀로 되는 것 모두 '선택'의 문제인데도 평등한 위치에서 다뤄지지 않는 데서 오는 답답함을 느꼈다.

 

앞으로도 도시 빈민이자 비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일 가능성이 높아서 그런지 나도 비혼 여성에 대한 진전된 정책이 나왔으면 하고 바랐다. 공동체 같은 거 필요없으니 단 10평이라도 합리적인 가격에 마련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 여자 혼자 사는 것이 약점이 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 1인 세대가 늘어가고 특히 비혼 여성이 늘어가는 추세가 있으니, 대출 제도에서 불이익을 입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기대했던 것만큼 흥미로운 책은 아니었으나, 오랜만에 사회과학서를 완독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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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A 1~3 세트 - 전3권 - 너와 나, 우리들의 성장 드라마
허5파6 지음 / 비아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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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잠시 일을 쉴 때 웹툰을 공부하듯, 밀린 숙제하듯 본 적이 있었다. 여기서 '밀린 숙제하듯'은 그만큼 단기간에 많은 작품을 접했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지, 숙제할 때 느끼는 그 '부담감'을 뜻하는 건 아니다. 여튼, 재미난 웹툰이 많아 보여서 여기저기서 추천을 받았었다.

 

[여중생A]는 추천 받았던 작품 중 하나다. 워낙 유명해서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한 친구는 아예 이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라고 권할 정도였다. 다소 우울한 내용이라고 하여 시작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일단 두었다.

 

그러고 나서 어제인가, 트위터에서 [여중생A]의 연재가 끝났다는 소식을 보았다. 오늘은 현충일. 앉아서 웹툰 하나 정도는 정독할 수 있을 듯하여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우울함의 수위가 끔찍하게 높지는 않네, 하고 생각했는데 주인공 장미래가 세상을 등지기로 마음먹고 나서 우연히 새로운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하루만 사는 날을 더하는 에피소드를 보고 눈물이 났다.

 

입력이 적어서 요새는 웬만하면 무엇을 보고도 잘 울지 않는데, 아까는 정말 뭐라도 잃은 사람처럼 서러운 감정에 휩싸였었다. 미래만큼 위태롭진 않았어도, 녹록지 않은 학창시절을 보내왔던지라 알게 모르게 마음이 깊게 쓰였던 것 같다.

 

미래는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새벽에 일 나가서 돈을 버는 어머니 사이에 난 중학생이다. 좀처럼 '평화'란 없는 가정의 무게를 벗어나기 위해 택한 것은 게임. 많은 시간을 게임에 할애하다 보니 높은 레벨의 캐릭터도 갖게 되었고, 학교생활보다 게임에서의 생활이 훨씬 더 익숙하고 편하다.

 

주변에 친구가 없게 된 건, 미래의 단짝이었던 친구가 미래를 돕겠다며 돈을 모았고 그걸 공개적인 자리에서 전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늘 조용하고 움츠러들어 있는 것 같아도, 필요할 때 '한방'이 있는 캐릭터라 그런가 그걸 버려서 이상한 애로 낙인이 찍힌 것이다.

 

남들이 보면 '뭐 저런 것까지 신경쓰냐' 싶은 것들을 미래는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우습게 보이지 않고 나대는 것처럼 안 보일지 머리를 굴리는 것이나, 흔적이 남지 않게 우느라 애쓰는 것 같은.

 

조용히 묻혀 지내고 싶었던 미래는 중3이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여론몰이하기 좋아하는 장노란의 눈에 띄어 웃음거리가 되고,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이백합에게는 글쓰기의 경쟁상대로 인식돼 견제당한다. 성게 머리를 한 이태양에게는 마음을 뺏긴다.

 

늘 외로운 자신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 주는 도서관에 데려오고, 취향에 맞는 영화를 같이 보면서 미래는 이태양에게 설렘을 느끼지만 이태양은 이백합에게 공개 고백을 하고 사귀게 된다.

 

술 마시고 때리는 아빠는 변치 않고, 팍팍한 날들을 지탱하게 해 주는 이태양은 알고 보니 다른 여자애를 좋아하고 있었으며, 게임을 하던 가상공간에서도 난처하게 된 미래.

 

미래의 이야기는 자꾸만 내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내가 별다른 잘못을 하지 않아도 단지 누군가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는 이유로 은근히 따돌려질 수 있다는 것, 집단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으려면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것, 그래서 점점 더 마음을 열기도 친구를 사귀기도 어려워진다는 것. 모두 내 이야기 같았다.

 

드러내놓고, 혹은 뒤에서 나를 비웃거나 우스개로 만드는 아이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올 한 해를 같이 보낼 단짝을 찾아헤매는 절박한 마음. 애매하게 잘하는 성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게 되는 관심. 종종 있었던 아빠의 폭력. 그앞에서 손쓰지 못하고 묵묵히 돈을 벌었던 엄마. 미래처럼 문학을 읽지는 않았으나 책 속으로 도피했던 것도 같았다.

 

중학교 1학년 때, 고등학교 1학년 때가 너무 힘들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어쩌다 반장선거에서 한 표가 나와서 내가 찍은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장 때문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다행히 2학기 때에는 반장이 되었고, 학교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고1 때는 소위 프리라이더와 같은 조여서 그걸 다른 친구들에게 고민상담한답시고 얘기해서 졸지에 수행평가 점수 몇 점에 목숨거는 비겁한 애가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학여행이 잡혀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많이 고민했다. 미래는 가지 않았지만 나는 그럴 방법도 없었다. 별일은 없었던 것 같다.

 

내 뜻과 상관없이 한 공간에서 같은 무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환경'은 때로 압박이 되어 돌아왔다. 혼자가 된다는 게 너무나 표났기 때문에 늘 내 옆이 비지 않기를 바라며 전전긍긍했다. 딱히 주목받고 싶지도 않았다. 원래 그런 성격도 아니고.

 

대학교 1학년 때도 조금 버겁긴 했지만, 그때는 '혼자'가 웃음거리도 부끄러움도 아니었고 많은 부분에서 '혼자'여도 괜찮은 상황이 만들어졌기에 중고등학교 때보다 편했다. 신경쓸 것도 적었고.

 

소외당하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경험을 했던 사람은 알 것이다. 그 경험이 사람을 얼마나 쪼그라들게 만드는지. 얼마나 세세한 것까지 따지고 고려하게 만드는지. 그래서 나는 과거의 내 이야기를 보는 것처럼 미래에 잔뜩 이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아 요새는 진짜 배부른 소리하면서 사는구나' 하고 느꼈다. 그랬지, 친구 하나가 아쉬웠고 어떻게 '관계 정립'을 해 나가야 하는지 어려워하면서 살았지, 하고. 지금도 낯선 사람들과 만나고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지내는 것을 어려워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많이 사회화가 된 것 같다. 적어도 지금은 '수학여행 때 누구랑 짝하지?' 하는 걱정은 하지 않으니까. '내가 꼭 누군가와 한 세트'여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나게 됐으니까.

 

아직 끝을 보진 못했지만,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거나 아무런 희망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로 작품이 마무리되지 않길 바란다. 살면서 대단히 크고 충만한 행운과 행복이 쏟아지지는 않지만, '아, 이런 맛에 사람들이 생을 유지하는 건가' 싶을 정도의 작은 기쁨들은 종종 찾아오기 때문이다. 미래도 그걸 느껴보길 바란다. '존재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생각하는 최상의 상태를 '나 방금 되게 정상 같았어' 아닌 말로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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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6일에 가장 많은 분량을 읽고는 묵혀 두었다. 조금만 더 보면 다 읽는 건데.

 

 

19쪽

 

습관적인 행동은 우리를 둔하게 만든다. 말 그대로 틀에 박힌 행동에 얽매이게 된다. 정신학자들은 이를 '변화 기피증' 또는 '반복학습에 의한 강요'라고 말한다.

 

 

31쪽

 

괴테는 "최고의 마법은 유쾌한 기분에 있다"라고 말했고, 디킨스는 "이 세상에서 웃음이나 유쾌한 기분만큼 전염성이 강한 것은 없다"라고 했으며, 칸트는 "비루한 인생을 견디는 데 힘이 되는 세 가지가 있다. 희망과 잠, 그리고 웃음이다"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사무실은 예외인 것 같다. 늘 웃고 있는 사람에게는 '뭐가 저리 좋다고…' 하는 의혹이 뒤따른다. 간부들은 이런 직원들에 대해 주의가 산만하거나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배부른 자는 더 이상 사냥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 문화는 엄숙할 수밖에 없다. 늘 눈치를 보고 침묵이 감돌기 마련이다. 객쩍은 농담이나 사심 없는 칭찬은 찾기 힘들다.

 

 

33쪽

 

쾌활함은 일종의 바이러스 효과가 있다. 좋은 기분은 주변 사람들에게 매우 빨리 전염된다. 나쁜 기분보다 몇 배 더 빨리 말이다.  

 

 

45쪽

 

에드워드의 법칙 : 어떤 일에 투자하는 비용은 처리하는 데 남은 시간에 비례해 상승한다는 법칙이다. 마감시간에 쫓길수록 일처리가 힘들어지고 소모되는 에너지도 더 많이 든다.

 

역사학자 토마스 칼라일은 "우리의 핵심 과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모호한 일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놓여 있는 분명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51쪽

 

'인지 부조화', '양심의 가책' : 행동 변화를 위한 심리적 트릭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사항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자신의 메시지(자신의 원칙, 자신의 목표)가 중요하고 또 옳은 것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어야 한다. 둘째, 자신들의 위선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런 트릭은 무의미해진다.

 

 

61쪽

 

"어디선가 본 듯한 컨셉이에요", "무척 좋은 아이디어인데 실현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이런 말들에는 모두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전에, 아예 점화조차 안 되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87쪽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러하다. 최고의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책상과 떨어진 곳에서 탄생한다. 샤워를 하거나, 조깅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아니면 화장실에서 말이다. 스위스의 세인트가렌대학에서 공학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기발한 착상을 하게 된 장소 중 연구실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응답자의 76%가 휴가지나 산책로를 돌아다니는 중에, 혹은 양치질 중에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고 답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 창의적이 되려면 심리적인 긴장 상태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압박과 단조로움, 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동일한 공간은 영감에 독이 될 뿐이다. 그래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예술가들은 종종 자연으로 떠나거나 낯선 여행지를 방랑한다. 그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훌쩍 떠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93쪽

 

몽상가의 임무는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이었다. 어떤 현실적 제약도 받지 않은 채 말이다. 몽상가의 임무가 끝나면 현실주의자가 등장해 몽상가의 상상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 점검한다. '상상속의 이미지를 현실화하려면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가? 비용은 얼마가 드는가? 현실화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비판가가 등장한다. 비판가는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것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인지를 냉정하게 분석한다. 이러한 과정 전체를 몽상가가 감동하고, 현실주의자가 확신하고, 비판가가 만족할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115쪽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지방노동법원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최소한의 신체적 거리를 유지하지 않는 자, 상대방의 신체 중 일부를 집요하고 불필요하게 만지거나 접촉한 자는 성추행을 한 것으로 간주한다"라는 판결을 내렸다(3 Sa 163/03). 이러한 판결로 고소된 자는 영구적인 해고를 당했다.

 

 

119쪽

 

회사생활은 시트콤과 비슷하다. 황당한 일, 어이없는 일, 민망해서 죽을 것 같은 일들이 날마다 반복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의 빌미는 대부분 우리 스스로 제공한다. 예를 들어 '사생활 떠벌리기'가 그렇다. 순진한 신입사원과 눈치 없는 외향형 인간들은 더 웃긴 캐릭터를 연기한다. 이들은 사무실에서 너무 많은 사생활을 공개한다. 이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소문이 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소문에 대한 평가다. 당신이 소문 속에서 어떠한 역할(영웅, 희생자, 멍청이)를 맡았는지는 상관없다.

 

 

125쪽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존재한다. 뭐든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가.치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남의 부탁을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줏대 없는 사람으로 불리게 된다. 오히려 제몫만 챙기는 이기적인 인간들보다 존중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일어난다.

 

 

139쪽

 

하루 일과 중 절반이 지난 뒤 가능한 오래 휴식을 취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업무능력이 몇 배 높아진다는 것이다.

 

 

154쪽

 

지구상 다른 곳에서는 낮잠이 당연한 일인 곳도 있다. 일본에는 이네무리, 스페인에서는 시에스타라고 하는 낮잠 전통이 있다. 중국에서도 헌법 제43조에 의거해, 직장에서 때에 따라 취침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런 이야기를 귓전으로 흘려듣고 있다.

 

 

193쪽

 

스탠포드대학의 데보라 그루엔팔트 교수는 이러한 주제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연구를 실시했다. 그루엔펠드는 인간에게 영향력이 주어지면 세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첫재,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일에 더 많이 집착하게 된다. 둘째, 아랫사람의 욕구에 대해 신경을 덜 쓰게 된다. 셋째,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규정을 준수하는 일이 점점 더 줄어든다.

 

 

212쪽

 

한 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인식하고 이를 대화의 대상으로 이끌어내는 사람이 더 성공적으로 협상할 수 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협상의 본질을 아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술적인 측면에서는, 이런 사람이 상대방보다 먼저 그의 문제를 받아들이고 해결해 줄 수 있으므로 자신의 진짜 요구사항을 나중에 관철시킬 수 있다.

 

 

222쪽~224쪽

 

연봉 올리는 법

1. 성과로 증명하라

2. 먼저 여우같이 굴어라

3. 선을 지켜라

4. 분명한 목표를 확실하게 표현하라

5. 상대의 반박을 예측하라

6. 다른 동료를 비하하지 말라

7.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라

 

특별 보너스를 위한 전제조건

1. 분명한 목표를 세워라

2. 현실성 있는 목표를 세워라

3. 대안을 조사하라

 

 

229쪽

 

만약 당신이 앞으로 좀 더 자주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어야겠다고 생각된다면, 아래의 기본 원칙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 스스로를 비하하지 마라 : "어쩔 수 없어", "역시 내겐 무리야", "나 같은 건…" 이런 자기비하는 자격지심만을 키울 뿐이다. 내면의 대화는 우리의 행동과 감정에 95%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나쁜 생각은 즉각적으로 때려잡아 머릿속에서 지우는 편이 좋다. "조금 더 해보자", "이제부터는 잘되는 일만 남았어" 긍정적인 문장을 말해보도록 하라.

 

- 스스로에게 솔직해져라 : 자신의 약점과 실패를 솔직하게 분석하라. 그래야만 앞으로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지 깨달을 수 있다. 개선할 점 역시 구체적인 문장으로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좋다.

 

- 저울질하라 :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기로 했다면 철저히 그렇게 하라. 자신에게 중요한 결정의 장단점을 논의하고, 이를 신중하게 저울질해보라. 중요한 것은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결정을 내린 후, 그 결정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에 놓인 장애물을 키우게 될 뿐이다.

 

 

233쪽

 

그렇다면 도대체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해야만 하는 것일까? 정기적인 휴식 외에 최선의 방법은 하나다. 바로 '몸을 움직일 것'. 스트레스는 우리 몸에서 최고의 에너지를 끌어낸 후 알람의 상황으로 몰아넣고, 우리의 신경이 후퇴 혹은 공격의 원천적인 반응을 하도록 프로그래밍한다. 그렇게 심각한 흥분 레벨은 사무실과 모니터 앞에서는 간단히 진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간 축적된 스트레스를 풀려면 우리 몸이 정해놓은 프로그램에 따라 도주 혹은 공격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이 좋다. 엄청난 스트레스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일단 책상 앞을 떠나라. 계단 몇 개를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거나 건물 주변을 한 바퀴 산책하는 것이 좋다. 반대로 고된 하루를 마친 후에는 가벼운 지구력 운동을 하는 것이 몸의 부담을 더는 최고의 방법이다. 20분 정도의 활기찬 산책은 분노를 가라앉혀주고, 호르몬 수치를 정상으로 돌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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