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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A 1~3 세트 - 전3권 - 너와 나, 우리들의 성장 드라마
허5파6 지음 / 비아북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작년에 잠시 일을 쉴 때 웹툰을 공부하듯, 밀린 숙제하듯 본 적이 있었다. 여기서 '밀린 숙제하듯'은 그만큼 단기간에 많은 작품을 접했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지, 숙제할 때 느끼는 그 '부담감'을 뜻하는 건 아니다. 여튼, 재미난 웹툰이 많아 보여서 여기저기서 추천을 받았었다.
[여중생A]는 추천 받았던 작품 중 하나다. 워낙 유명해서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한 친구는 아예 이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라고 권할 정도였다. 다소 우울한 내용이라고 하여 시작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일단 두었다.
그러고 나서 어제인가, 트위터에서 [여중생A]의 연재가 끝났다는 소식을 보았다. 오늘은 현충일. 앉아서 웹툰 하나 정도는 정독할 수 있을 듯하여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우울함의 수위가 끔찍하게 높지는 않네, 하고 생각했는데 주인공 장미래가 세상을 등지기로 마음먹고 나서 우연히 새로운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하루만 사는 날을 더하는 에피소드를 보고 눈물이 났다.
입력이 적어서 요새는 웬만하면 무엇을 보고도 잘 울지 않는데, 아까는 정말 뭐라도 잃은 사람처럼 서러운 감정에 휩싸였었다. 미래만큼 위태롭진 않았어도, 녹록지 않은 학창시절을 보내왔던지라 알게 모르게 마음이 깊게 쓰였던 것 같다.
미래는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새벽에 일 나가서 돈을 버는 어머니 사이에 난 중학생이다. 좀처럼 '평화'란 없는 가정의 무게를 벗어나기 위해 택한 것은 게임. 많은 시간을 게임에 할애하다 보니 높은 레벨의 캐릭터도 갖게 되었고, 학교생활보다 게임에서의 생활이 훨씬 더 익숙하고 편하다.
주변에 친구가 없게 된 건, 미래의 단짝이었던 친구가 미래를 돕겠다며 돈을 모았고 그걸 공개적인 자리에서 전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늘 조용하고 움츠러들어 있는 것 같아도, 필요할 때 '한방'이 있는 캐릭터라 그런가 그걸 버려서 이상한 애로 낙인이 찍힌 것이다.
남들이 보면 '뭐 저런 것까지 신경쓰냐' 싶은 것들을 미래는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우습게 보이지 않고 나대는 것처럼 안 보일지 머리를 굴리는 것이나, 흔적이 남지 않게 우느라 애쓰는 것 같은.
조용히 묻혀 지내고 싶었던 미래는 중3이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여론몰이하기 좋아하는 장노란의 눈에 띄어 웃음거리가 되고,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이백합에게는 글쓰기의 경쟁상대로 인식돼 견제당한다. 성게 머리를 한 이태양에게는 마음을 뺏긴다.
늘 외로운 자신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 주는 도서관에 데려오고, 취향에 맞는 영화를 같이 보면서 미래는 이태양에게 설렘을 느끼지만 이태양은 이백합에게 공개 고백을 하고 사귀게 된다.
술 마시고 때리는 아빠는 변치 않고, 팍팍한 날들을 지탱하게 해 주는 이태양은 알고 보니 다른 여자애를 좋아하고 있었으며, 게임을 하던 가상공간에서도 난처하게 된 미래.
미래의 이야기는 자꾸만 내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내가 별다른 잘못을 하지 않아도 단지 누군가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는 이유로 은근히 따돌려질 수 있다는 것, 집단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으려면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것, 그래서 점점 더 마음을 열기도 친구를 사귀기도 어려워진다는 것. 모두 내 이야기 같았다.
드러내놓고, 혹은 뒤에서 나를 비웃거나 우스개로 만드는 아이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올 한 해를 같이 보낼 단짝을 찾아헤매는 절박한 마음. 애매하게 잘하는 성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게 되는 관심. 종종 있었던 아빠의 폭력. 그앞에서 손쓰지 못하고 묵묵히 돈을 벌었던 엄마. 미래처럼 문학을 읽지는 않았으나 책 속으로 도피했던 것도 같았다.
중학교 1학년 때, 고등학교 1학년 때가 너무 힘들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어쩌다 반장선거에서 한 표가 나와서 내가 찍은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장 때문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다행히 2학기 때에는 반장이 되었고, 학교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고1 때는 소위 프리라이더와 같은 조여서 그걸 다른 친구들에게 고민상담한답시고 얘기해서 졸지에 수행평가 점수 몇 점에 목숨거는 비겁한 애가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학여행이 잡혀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많이 고민했다. 미래는 가지 않았지만 나는 그럴 방법도 없었다. 별일은 없었던 것 같다.
내 뜻과 상관없이 한 공간에서 같은 무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환경'은 때로 압박이 되어 돌아왔다. 혼자가 된다는 게 너무나 표났기 때문에 늘 내 옆이 비지 않기를 바라며 전전긍긍했다. 딱히 주목받고 싶지도 않았다. 원래 그런 성격도 아니고.
대학교 1학년 때도 조금 버겁긴 했지만, 그때는 '혼자'가 웃음거리도 부끄러움도 아니었고 많은 부분에서 '혼자'여도 괜찮은 상황이 만들어졌기에 중고등학교 때보다 편했다. 신경쓸 것도 적었고.
소외당하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경험을 했던 사람은 알 것이다. 그 경험이 사람을 얼마나 쪼그라들게 만드는지. 얼마나 세세한 것까지 따지고 고려하게 만드는지. 그래서 나는 과거의 내 이야기를 보는 것처럼 미래에 잔뜩 이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아 요새는 진짜 배부른 소리하면서 사는구나' 하고 느꼈다. 그랬지, 친구 하나가 아쉬웠고 어떻게 '관계 정립'을 해 나가야 하는지 어려워하면서 살았지, 하고. 지금도 낯선 사람들과 만나고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지내는 것을 어려워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많이 사회화가 된 것 같다. 적어도 지금은 '수학여행 때 누구랑 짝하지?' 하는 걱정은 하지 않으니까. '내가 꼭 누군가와 한 세트'여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나게 됐으니까.
아직 끝을 보진 못했지만,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거나 아무런 희망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로 작품이 마무리되지 않길 바란다. 살면서 대단히 크고 충만한 행운과 행복이 쏟아지지는 않지만, '아, 이런 맛에 사람들이 생을 유지하는 건가' 싶을 정도의 작은 기쁨들은 종종 찾아오기 때문이다. 미래도 그걸 느껴보길 바란다. '존재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생각하는 최상의 상태를 '나 방금 되게 정상 같았어' 아닌 말로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