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
이진송 지음, 윤의진 그림 / 프런티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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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 쓰는 문체와 표현이 초반에는 조금 거슬렸으나 하려는 말에 동의했기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이왕 책으로 펴내는 것이니만큼 더 깔끔하고 정갈한 문장을 썼으면 좋았을 것 같다. 꼭지 하나당 문화 콘텐츠 한 개씩 거론하는데 생각보다 그 콘텐츠 이야기는 길지 않다. 전반적으로 글이 직설적이고 시원한 편이다. 이미 각성한 페미니스트나, 각성을 앞둔 페미니스트일 때 가장 술술 읽히겠지만, 찝찝한 걸 두고 왜 찝찝한지 자기 언어로 아직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완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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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이 해피엔딩 -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김연수.김중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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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감상

 

1. 김연수와 김중혁의 책이라니,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절친한 친구라는 걸 모르고 왜 두 소설가가 만나서 책까지 썼지? 싶었다. 나중에 둘이 친구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기대했던 조합이 아니라 그런가 그냥 생소한 묶음이라고만 생각했다.

 

2. 김연수의 글은 당시 상황에 대해 좀 더 지적하고 질책하는 편이었고, 김중혁의 글은 보다 가볍고 유쾌했다.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지 않아 좋았다. 무려 40대 아저씨의 글인데 이렇게 경쾌할 수가! 역시 글에는 그 사람의 특성이 묻어난다. 김중혁의 소설을 좋아했던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였다. 번뜩이는 감각과 기발함,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가는 와중에도 잃지 않는 위트,랄까. 구어체로 술술 쓴 글이 많아서인가 더 쉽게 잘 읽혔다. 그렇다고 해서 김연수의 글이 어렵게 읽혔다는 말은 아니다. 김연수의 소설도 유명작이 많았는데 빨리 읽어봐야지.

 

3. <씨네21>에 실린 글을 모아둔 책인데, 사실 영화보다는 두 사람의 '개인의 취향'에 대해 더 속속들이 알게 된 기분이다. 물론 보고 싶어지는 영화도 있었다. 불행하게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이건 작가들의 글이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단지 내 기억력이 너무 짧아서다.

 

4. 무엇보다 제목이 매우 맘에 드는 책이었다. <대책 없이 해피엔딩>이라니!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생 평탄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도 맞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그래서 나는 김중혁의 <뭐라도 되겠지>라는 책 제목을 발견했을 때 무릎을 탁 쳤다. 내 인생의 모토는 저거다, 라고. 어느새 아무 색깔도 없이 회색빛이 된 것 같은 일상을 총천연색으로 물들이고 싶다는 맘이 들어서 뽑아든 책이다. 왠지 휴식을 줄 수 있는 책인가 싶어서. 다행히도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지막에 와서 늑장을 부려 그렇지, 앉은자리에서도 다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유쾌하다. 글 쓰는 사람들이 쓴 글이라(뭔가 말이 이상하다) 이야기가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흐른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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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의점에 탐닉한다 작은 탐닉 시리즈 17
채다인 지음 / 갤리온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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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읽은 날짜 : 7월 5일 목요일 오늘!

 

 

 

 오늘 읽은 책 독후감을 '오늘' 써 보기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부담갖지 않아도 되는 책이라 만화책 보듯 책장을 넘겨서일까. 앉은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손에 꼭 맞는 적당한 크기와 가벼운 무게만으로 이 책을 금세 다 읽을 거라 예상했다. 블로그에 한 번도 들어가보지 않은 나 같은 일반인도 알 정도로 유명한, 편의점 리뷰를 쓰는 이의 책이어서 호기심이 생긴 것도 한 이유였다. 편의점 리뷰가 기발하긴 하지만 이렇게 출판될 정도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어떤 내용일지 기대가 됐다.

 

 

 생동감 넘치는 컬러 페이지들

 

 밋밋한 흰색, 또는 미색 바탕에 글자는 검은색, 엷은 파랑색, 회색, 고동색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책들만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해질 정도로 컬러 페이지로 그득한 책을 보니 반가웠다. 흑백 TV를 보다 컬러 TV를 보게 된 느낌? 확실히 보여줄 게 많은 책들은 잉크를 아끼면 안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잘 드러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루에 1~2번은 가는 낯익은 장소여도, 이미 숱하게 봐서 눈에 익은 군것질거리여도 사진으로 보면 느낌이 색다른 법! 이 책에서 처음 보는 해외 편의점 사진들은 컬러여서 더 고마웠다.

 

 편의점 음식을 받아들이는 두 가지 자세

 

 사실 편의점 리뷰를 쓴다는 것이 썩 유쾌한 건 아닐 수도 있다. 그만큼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고 있다는 의미니까. 나도 편의점 삼각김밥과 라면을 꽤나 먹어봤는데 딱히 낭만적인 추억은 기억나지 않는다. 때때로 특정 음식이 몹시 먹고 싶어서 자진해서 발걸음한 적도 있지만 식사 목적으로 편의점에 들를 때에는 거의 다 이유가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비자발적인 이유들(음식에 한정). 시간이 부족하거나, 제대로 밥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멀리 나가기 귀찮아서 등등. 편의점 리뷰를 '자발적'으로 하고 블로그까지 꾸리는 저자가 느끼는 편의점과 내가 연상하는 편의점의 이미지는 확연히 다를 것 같다. 또, 아주 입맛에 맞는 음식을 발견하지도 못해서 못마땅할 적도 많았다. 시험 기간에 열려 있는 곳이 없어 컵라면으로 배를 채웠는데 소화가 잘 안 됐었고, 삼각김밥 밥알이 제대로 익지 않은 느낌을 받은 적도 있으며, 새로 도전한 메뉴가 별로여서 기분을 망친 적도 있다.

 

 필자는 친절하게도 자신이 먹어 본 편의점 음식들을 잘 분류해서 설명한다. 샌드위치, 라면, 삼각김밥, 돈까스부터 시작해서 안주나 레토르트 식품 등 가지수도 다양하다. 전반적인 평가도 호의적이다. 경악한다거나 비추천하는 메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와 반대로 나는 만족스러웠던 걸 찾기가 훨씬 힘들다. 그나마 가장 괜찮은 게 전주비빔과 새우마요고 돈까스나 샌드위치류는 잘 먹지 않는다. 특히 돈까스의 경우 흔히 말하는 '싼 맛'이 날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아예 도전도 안 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의 편의점 맛 탐험기가 거슬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편의점 음식에만 유독 예민한 내가 맛보지 않은 여러 음식들을 프리뷰해주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문제는 책이 쓰여질 당시에 있었던 음식들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데 있다. 일본식 라면이나 군고구마, 초밥 같은 걸 정말 국내 편의점에서 팔았다니 믿기지 않는다. 편의점 음식을 두루두루 훑었는데도 그런 것들은 눈에 띄지 않았는데. 왜 편의점 음식은 시간이 흘렀는데 더 종류가 줄어드는 건지 의문이다.

 

 뭘 해도 될 사람

 

 남들은 그냥 넘길 수도 있는 편의점 음식들을 꼬박꼬박 리뷰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성실함을 요하는 일이다. 나도 블로그를 해 봐서 아는데(ㅋㅋ) 같잖아 보이는 포스팅도 알고 보면 상당한 정성과 고민이 들어가게 된다. 사진도 찍고 기억을 더듬어 맛도 기억해내서 묘사하고, 심지어 '꾸준히' 하다니 뭘 해도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마지막 페이지를 보니 특기를 살려 세븐일레븐에 입사했단다! 집중과 몰입으로 자신의 블로그를 활자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여겼는데 일자리까지 구했다! 역시 좋아서 하는 일의 힘은 이렇게도 크고 세다. 갑자기 서형욱 해설위원이 생각났다. 해외 축구를 보는 걸 좋아해서 PC통신 시절 관련 자료를 열심히 퍼나르고 번역도 하고 그러면서 경기 보는 눈을 키웠다는 서 위원 또한, 취미로 시작한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된 비슷한 케이스다. 나도 좋아서 하는 일을 쭉~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단 좋아하는 일부터 분명히 알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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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그림, 이승혁.장지숙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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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읽은 날짜 : 2012년 1월 12일 목요일

 

 

 신영복이란 사람을 알게 된 것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읽게 되면서부터였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알아서 읽으려고 읽고 싶은 책 목록에 두기도 했는데, 내가 맡았던 인터뷰이가 추천한 책이라 조금 더 강제성을 띠고 읽게 되었다. 하지만 의무감 있는 책읽기가 으레 '완독하지 못하고 포기'하게 되는 데 반해, 책 내용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고개를 파묻고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오랜 수감생활 중에 남긴 그의 보석 같고 칼날 같은 글들은 뇌리와 가슴에 와 콕콕 박혔다.

 

 50쇄 이상 나올 정도로 꾸준히 사랑받는 이 책뿐 아니라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나 『더불어 숲』도 읽으려고 했는데 막상 읽게 된 다음 책은 『처음처럼』이었다. 다른 말인데 흔들고 쪼개고 돌리고 라랄랄라♬가 자동으로 떠오르는 그 인기 소주의 글씨를 쓴 사람이 바로 신영복이기도 하다. 흥이 있는 떠들썩한 분위기가 떠오르는 소주와는 달리, 본디 신영복이 쓴 처음처럼이라는 짤막한 글은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거칠고 상스러운 단어나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오히려 차분하게 '할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도 참 내공이 깊다는 느낌이 든다.

 

 장르가 서화 에세이니만큼 어느 면을 펼쳐도 곧바로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책을 오물오물 천천히 음미하기보다는, 요즘 들어 시간에 쫓겨 빨리빨리 해치워버리려는 '탐욕스러운 먹성'을 보이는 나는- 어리석게도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이 책을 체할 듯이 삼키고야 말았다. 물론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나오면 나만의 방법으로 표시를 해 두긴 했지만, 그건 따로 설명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일상적인 일일 뿐이었다. 스스로 공격성이나 정복 욕구가 많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편인데, 의외로 책읽기에서만은 예외였다. 예전에도 친구와 담소를 나누다가 '나는 책 한 권을 온전히 읽으면 기분이 좋아. 끝 페이지를 읽으면 이 책을 정복했다는 기분이 들거든.' 이라고 패기 넘치게 말한 적이 있다. 고작 1번 읽었다고 그 책을 정복했다고 생각하는 거나, 책읽기의 목적을 '정복'에 두고 있다는 그 자체나 지금 돌아보면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이 쉽게 바뀌는 게 아니듯, 여전히 그 생각에 조금은 동의한다. 문제는 그래도 꼬박꼬박 책을 읽어오며 스스로의 독법을 익힌 내가, 그저 책을 빨리 읽겠다는 넘치는 의욕 때문에 적합하지 않은 방법으로 책을 소홀히 봤다는 거다.

 

 사실 한 글자도 놓치지는 않았다. 다소 서두르며 읽었지만 독특한 풍의 그림도 하나하나 기억하려고 애썼다. 할 일이 많았는데 책을 보며 도피하려고 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 같다. 불량한 책읽기 습관이 여럿 있는데 그 중 내가 가장 애용하는 게 바로 '도피성 책읽기'다. 하필 그 희생양이 된 것이 『처음처럼』이었던 것.

 

 자꾸만 자기변명의 시간이 되어 리뷰가 산으로 가는 것 같으니 이제 책 이야기를 조금 하겠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도 저자가 서예를 배우는 부분이 나왔는데, 그저 취미라고 하기에는 상당한 실력이었다. 그러면서도 늘 잃지 않는 겸손한 자세.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잘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겸손해 오히려 보기 안 좋다고도 하는데, 신영복의 자세는 전혀 밉지 않게 보였다. 늘 부족함을 느끼며 더 정진하고자 하는 진정성이 느껴져서였을까. 여튼 이 책에서 그의 '글씨'를 보는 재미가 컸다. 서예라고 하면 주로 한자쓰기를 떠올리는 내게 한글 서예도 대단한 매력을 지녔다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흡사 흐르는 물처럼 자유로워 보이는 그의 필치는 때로 시원하기도 했고 다소곳하기도 했으며 단단하기도 부드럽기도 했다. 글자 하나하나에 그 글자를 쓸 때의 마음가짐이 잘 배어든 듯했다.

 

 '~습니다'의 존대어투 책을 워낙 오랜만에 읽어서 동화책을 읽는 일곱 살 어린이가 된 것마냥 어린시절 생각이 났다. 원래부터 반말체를 좋아하는 탓에 처음에는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지만 무리없이 잘 적응해냈다. 내가 알기로 불교 신자가 아닌 걸로 아는데 신영복의 글은 언뜻 아름다운 말을 전하는 부처의 그것을 떠올리게 했다. 맑고 고우면서도 은연중에 오염된 생각을 정화시키게끔 하는 그런 글들. 마음 수련하기에 적합한 느낌이었다. 별 세 개를 준 것은 책 내용이 나빴다기보다, 처음 읽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너무나 훌륭했던 데에 그 원인이 있다.

 

 항상 가득한 긍정의 에너지에 차 있던 수만 번의 '처음'(물론 알라딘 서재를 만들던 며칠 전 그때도 마찬가지로 두근거리는 처음이었다) 그 순간을 잊지도 잃지도 않길 바라며 글을 맺는다. 아, 처음처럼 글도 덧붙인다.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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