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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다 읽은 날짜 : 4월 28일 오후 4시 경
밤은 책이다. 얼핏 들으면 이해되지 않는 말이다. 솔직히 다 읽고 나서도 밤이 책인지 책이 밤인지 잘 모르겠다. 비루한 깜냥으로 속의미를 파고든다면, 밤은 책읽기에 적당한 때이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렇다. 밤은 책읽기와 잘 어울리는 시간이다. 책을 읽겠다는 마음만 있다면야, 밤이든 낮이든 무어 대수겠느냐 하겠지만 분명 다르다. 특히 잠들기 전 늦은 밤이나 새벽녘에 읽는 책맛은, 시험 기간 나를 달래주는 초콜릿마냥 달콤하다. 어서 눈감고 잠드는 일이 시급한데도, 굳이 책장을 넘기는 것은 실은 허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너시간 컴퓨터 앞에서 부질없이 시간을 보냈는데도, 침대에서 책 몇 쪽 읽고 하루를 마무리하면 몹시 뿌듯하다. 하루의 끝을 책과 함께 했다는 보람에.
블로그에 '책을 말하는 책'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든 것은 너무나 뒤늦은 일이었다. 원래도 책에 대한 책을 많이 봤고, 웬만하면 애정이 식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이 책 리뷰가 처음으로 올라가겠지만, 그동안 숱하게 거쳐온 '책을 말하는 책'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빌리는 책은 적어도 평타는 친다,는 나의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이동진 기자가 쓴 『밤은 책이다』는 좋은 책이었다. 예전에 이병률씨가 쓴 『끌림』을 읽을 적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만족도 자체는 『끌림』이 더 높지만, 문투에서 배어나오는 분위기가 흡사했다.
라디오를 안 들은지 오래 되어서인지, 이동진 기자가 라디오 프로를 맡았었는지도 몰랐다. '이동진의 꿈꾸는 다락방'에 있던 '밤은 말한다' 코너의 이야기들을 엮어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었다. 그러고 보면 밤, 라디오, 책은 서로 참 잘 어울린다. 이동진 기자가 꽤 유명한 영화 기자이긴 하지만, 라디오 프로까지 진행할 줄은 몰랐는데- 아마도 성시경 방송 같은 느낌이었을까? '-습니다'로 끝나는 글은 옆에서 누군가 읽어주는 것처럼 들렸다. 이름은 참 많이 들었는데 돌아보니 목소리 한 번 듣지 못했다. 아무튼 조근조근 책 이야기를 꺼내는 이 사람의 글은 만만치 않다. 부드러운 와중에 핵심을 찌르기도 하고, 에둘러 말하는 데도 용하다. 지독한 책 애호가라 숱하게 책을 산다는 그가 읽어내린 책들이, 하나같이 흥미로워 보이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랄까. 김혜리 기자가 쓴 『영화야 미안해』를 읽었을 때도, 그녀가 쓴 글 때문에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피어올랐었다. 괜히 글 쓰는 자(=기자)들이 아니다.
제목을 알고 있고 들어본 책이면 마치 내가 그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는 착각은, 스물 다섯을 먹은 지금도 고쳐지지 않는다. 고작 어디서 한 번 마주쳤을 뿐이면서 '오, 이동진 기자와 내 책 취향이 비슷하군' 하며 섣불리 기뻐했다. 읽다 만『유혹하는 글쓰기』나 반납 기한 때문에 한 꼭지 읽고 돌려준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등 낯익은 책이 나오자 물 만난 고기 같은 심정이 됐다. 많은 책을 사 들이고, (자기는 아니라지만) 읽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그는 읽는 책 스펙트럼도 상당히 넓은 듯했다. 지금까지 읽은 과학책을 다 합쳐봐야 열 손가락 안에서 해결되는 주제에, 이따금 과학책 소개가 나올 때 무척 반가웠다.
공감하는 말, 마음 속이든 머릿 속이든 확 와서 박히는 구절이 있을 때 늘 그러하듯, 책 끄트머리를 접었다. 그 접힌 페이지가 아마 50쪽 정도는 될 것 같다. 책을 꽤 오래 읽어왔는데도 이 부분은 여전히 해결이 안 난다. 결국 내 손으로 직접 책을 사야만, 안심하며 책장을 접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는, 다음 사람의 불편한 심기를 가라앉히도록 그 접었던 부분을 펴는 것뿐이다.
사족이 너무 길어 지겨웠나? 이제 이동진 기자와 나의 공통점을 말할 때가 된 것 같다. 그와 나는 야행성 인간이며, 밤을 예찬하고, 책에 대한 애정과 약간의 허영심을 가지고 있다. 훗날 생기게 될 공통점이라면 '글로 밥벌이를 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나도 1등 신문사의 넓은 아량으로 필기시험도 보고 돌아왔다. 별 것 아니겠지만 조선일보 시험을 쳤다는 것도 우리 둘의 공통점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