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밤은 치열한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부드러운 동화가 시작되는 시간일 거예요. 괘종시계가 열두 번을 치고 나면 저마다의 가슴속에 숨어 있던 소년과 소녀가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밤에 쓴 편지를 낮에 부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낮의 어른은 밤의 아이를 부끄러워하니까요. 하지만 밤의 아이 역시 낮의 어른을 동경하지는 않을 겁니다.-18쪽
그러니까 아무리 숭고한 지향이라고 해도, 그리고 겉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수긍하는 듯한 목표라고 해도, 사실 그것은 확률적으로 일부분만 공유되는 가치일지도 모릅니다. 각자 내리는 정의나 부여하는 의미가 서로 다를 때, 그 경계선상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같은 것들을 보고 같은 것들을 듣는다 해도, 사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세상에서 살기에,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접선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타인들이고 일종의 섬인지도 모릅니다. -36~37쪽
타인에게 어떤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 때, 내게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남모르게 안도를 느끼고, 그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내게 일어나지 않은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우월감을 느낀다고 할까요. (중략) 오늘날에 이르러 샤덴프로이데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 인사들, 특히 연예인들을 향해 발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략) 상대가 연예인이라면 그의 불행을 은근히 즐기는 나의 속마음을 들킬 확률이 매우 낮고,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이 아닌 만큼 죄책감도 덜할 것이며, 겉으로는 굉장히 화려해 보이는 직업이니만큼 나쁜 일을 겪은 뒤의 낙폭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므로 지켜보는 자의 쾌감 역시 클 테니까요. 어찌 보면, 샤덴프로이데만큼 소름끼치는 인간의 감정도 드물 것 같네요.-46쪽
결국 가장 진부하고 가장 상투적인 표현도 그것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가장 신선하고 가장 효과적인 표현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넌더리가 나도록 지겨워진 일도, 닳고 닳은 행동과 뻔한 습관으로만 간신히 이어지고 있는 사랑도, 그 시작은 두근거림이었겠지요.-53쪽
사랑은 내 안에 있거나 상대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의 좁혀지기도 하고 넓혀지기도 하는 공간에 불안정하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그 조그맣고 불안정한 공간과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열정이 아니라 노력이고, 본능이 아니라 본능을 넘어선 태도입니다. 관계에 대한 모든 것은 배워야만 하고 갈고닦아야만 하지요. 그건 사랑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56쪽
그러니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감사와 사랑의 말이 있다면, 가능한 한 매순간 하고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우리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끝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게 끝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존재니까요.-60쪽
그래서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을 했던 것이겠지요. "원칙은 큰 일들에나 적용할 것. 작은 일들에는 연민만으로도 충분하다."-78쪽
추억을 잡아당기는 기억의 문고리들은 그렇게 곳곳에 숨어 있다가 불쑥불쑥 틈입합니다. 오래 함께한 연인들이 헤어지기 어려운 이유는 두 사람이 긴 시간 속을 통과하면서 만들어놓은 문고리나 매듭들이 많기 때문입니다.-120쪽
그러나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살피고 거기에 먼저 낙인을 찍어버리는 일을 가장 급하게 처리하는 상황 속에서는 진지한 논의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집니다. 그 사람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그러게 말할 자격을 엄밀히 따지고 들기 시작하면, 특정 주제에 대해서 말해도 되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126쪽
때로는 경험 자체가 판단에 장애가 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의 자격을 따지기 시작하는 순간, 종종 폭력은 시작됩니다.-127쪽
삶 전체와 그 삶을 구성하는 나날들의 관계는 말하자면 프랙털과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삶의 하루하루는 그 자체로 삶 전체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까요. (중략) 미래는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고, 목표라는 것은 변할 수도 있으며, 결국 하루하루가 없는 삶 전체란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요.-135쪽
책은 그 자신만의 우주를 펼쳐내며 독자를 끌어들이지만, 읽는 사람도 책에 구현된 세계에 수동적으로 끌려가지만은 않습니다. 독자 역시 책의 세계를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으로 감싸 안는다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독자는 자신만의 분위기와 자신만의 리듬으로 책의 세계에 눈을 반짝이며 닻을 내리는 것이지요. 게다가 책을 읽을 때 인간은 오롯이 혼자이지만, 그 순간 그를 사로잡는 것은 누군가와의 교감입니다. 책이란 결국 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가장 내밀하게 이어지는 통로니까요.-151~152쪽
삶을 여행에 종종 비유하는 이유 중 하나는 모두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일 겁니다. 여행이라는 경험은 특정 장소에 가서 겪게 되는 일뿐만 아니라, 그곳에 가거나 그곳에서 돌아오는 이동의 과정까지 모두 포함하는 거니까요.-188쪽
하지만 밤이 그저 빛을 결여한, 메마른 잉여와 볼모의 시간에 불과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적 자아가 서서히 퇴장하면서 개인적 자아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때는 해가 저물고 거리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순간이니까요.-236쪽
짜장면이 '당기는' 것은 '땡긴다'고 말해야 그 절절한 식욕이 제대로 전해질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 말이에요.-252쪽
누구나 한두 번은 친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업인은 자신이 하는 작업이 무엇이든,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반복되는 일을 정성들여 해내야 하지 않을까요. 작은 물건 하나를 사고파는 일도 그런데, 하물며 생명이나 사람 자체를 다루는 일들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누군가의 흔한 권태가 다른 사람에게 깊은 상처가 된다면, 그게 죄가 아니라고 어떻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268쪽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앞으로 어떤 즐거움과 고통이 숨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적어도 질질 끌려가듯 떠밀려 살지 않을 수 있겠지요. 어쨌든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1인분의 삶을, 마지막 순간까지 흘리지 말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니까요.-314쪽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더 싼 제품, 좀더 맛있는 식품을 고르는 것 외에 이제 소비자들은 이제 그 제품이 어떤 경로로 생산되고 유통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고려해야 할 겁니다. 누군가의 눈물이 뒷맛으로 남는 음식을 입에 넣으면서, 마냥 즐거워할 수는 없으니까요.-318쪽
다독 다작 다상량. 무조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게 최고입니다. (중략) 결국 모든 능력은 타고난 재능의 문제를 제외하고 말한다면 거기에 들인 시간과 노력의 축적량이 만들어내는 것일 겁니다. 하긴, 글쓰기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요.-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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