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들어 지금까지 아이 데리고 다니며 본 영화가 꽤 된다.
내 취향과 별 상관없고, 아홉살 아이 관람가 영화인가 여부만 상관 있다. 

 

 <코렐라인> 나도 재미있게 보았다.

 

 <킹콩을 들다> 끝날 무렵, 눈물을 찔끔거리며 봤다. 나 아니고 아이가.

 

 <링스 어드벤쳐> 엄마인 나는 거의 집중 안하고 본 영화.

 

 <요시노이발관>

 

 <해리 포터 : 혼혈 왕자>

  

<도라에몽 : 공룡대탐험>  아이는 재미있어 했지만, 엄마인 나는 
                                                                       그저 동반자 역할에 충실했음.

            

 

 앞으로도 아이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영화들이 줄줄이 있다.  

 

   

 

  

<국가대표> 이 영화는 아직 등급판정 전.  

 

내 취향의 영화들은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아이 데리고 영화관 가는 '기분'을 더 즐긴 편이였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게 본 영화들도 있다. 내가 보고 싶었지만 놓친 영화들은, 뭐 언젠가 비디오를 통해서든지, 기회가 있겠지.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09-07-20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렐라인, 예전에 님의 페이퍼 보고 아이랑 보러 갔다지요.^^

hnine 2009-07-20 18:11   좋아요 0 | URL
예, 보고 오셨다는 글 읽었어요. 그런데 워낙 평소에도 영화를 많이 보시니 코렐라인처럼 아이들 취향의 영화는 그닥 재미가 없으셨을 것 같아요. 저는 평소에도 워낙 아이들 취향 영화를 많이 보기 때문에 이 정도 되어도 재미있다고 보는데요 ^^

무스탕 2009-07-2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어제 링스 어드벤쳐 봤어요. 그래도 재미있게 봤어요 ^^
이제 업을 노리고 있답니다. 정성이는 :)

hnine 2009-07-20 12:38   좋아요 0 | URL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제작한 영화, 맞지요? 그래서 영화 중의 지명도 스페인어가 많았고요.
'업'은 저도 기대하고 있답니다. 풍선 타고 올라가는 포스터가 너무 유쾌해 보이지 않던가요? ^^

울보 2009-07-20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류도 업을 보여달라고 하던데,,
그런데 코난도 나오나요 몰랐어요,
코난도 보러가야겠어요,,

hnine 2009-07-20 17:24   좋아요 0 | URL
초등학생 방학에 맞춰 개봉하는 영화들이 꽤 있더라구요. 코난과 업, 모두 7월 30일에 개봉한다고 알고 있는데 정확한 건 모르겠네요.

하양물감 2009-07-21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이가 도라에몽 보러가자고 난리인데....

아직 극장에서 영화는 한번도 본적 없는 아이라, 이번 기회에 데려가볼까 생각중이에요.

hnine 2009-07-21 18:20   좋아요 0 | URL
한솔이가 벌써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서 요구할 줄도 아는군요. 데리고 가서 보여 주세요. 제 생각엔 좋아할 것 같은데요. 도라에몽도 귀엽고, 공룡들도 많이 출연하거든요. 한솔이, 공룡 좋아하지요? ^^

세실 2009-07-21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본 영화가 하나도 없다는 ㅎㅎ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애니메이션 못 보겠어요. 마음도 늙었나벼..ㅠㅠ

hnine 2009-07-21 18:20   좋아요 0 | URL
세실님, 나이는 제가 더 들었을텐데...ㅋㅋ

세실 2009-07-21 19:46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가시장미 2009-07-21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젠가는 현호 손 잡고 영화보러 갈 수 있겠죠? -_ㅠ 넘흐 넘흐 부럽습니다. 저도 <해리포터>랑 <킹콩을 들다> 보고 싶은데, 극장을 갈 수가 없네요. 윽!

hnine 2009-07-21 18:25   좋아요 0 | URL
부러워하는 마음이 지금 저에게도 생생이 느껴질만큼, 시간은 금방이랍니다. 지금도 제가 보고 싶은 영화보다는 아이 위주로 보고 있지만, 이렇게 옆에서 뭐 해달라고 조르지도 않을만큼 아이가 쑥 커버리면, 그것 또한 허전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마인드 컨트롤 하는 시간만 해도 하루에 얼마나 되는지..흑흑
 

성운이는 결코 말이 많은 타입이 아니다. 나도 별로 말이 많지 않은 편이지만 함께 있을라치면 할 수 없이 내가 무슨 말인가를 먼저 꺼내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때가 많다.  
마침 지난 번에 성운이가 말한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막 다 읽고 난 후였기에 오늘은 그 책 이야기를 꺼냈다.
"난 한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아마 성운이도 같은 마음이겠지 생각하며 말이다. 그러니까 내게도 읽어보라고 한 것 아닐까.
그런데 의외로 성운이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응, 한스에게 지워진 짐이 너무 무거웠고, 그리고 무엇보다 외로웠던게 아닐까. 한스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잖아. 내가 한스의 친구였다면 한스의 마음을 알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성운이는 더 이상 말이 없고, 그냥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성운이에게서 처음 보는 눈빛이었다. 슬퍼보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따뜻해보이기도 하면서, 안심의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는 그런 복잡한 표정이었으니까.

성운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쉼없이 재잘재잘, 말이 끊어질 새라 이어지며 온갖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과는 다르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가끔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잘 모르겠다. 언제나 반듯하고 성실하고 똑똑한 성운이, 늘 어른들로부터 칭찬만 받는 성운이, 그 애와 함께 있으면 나도 그 애와 비슷한 수준이 되는 것 같은 기분에서일까? 아니,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고, 어딘가 나와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너도 그렇니? 나도 그래!' 라고 손뼉을 치며 호들갑을 떠는 그런 일치감이 아니라, 서서히 스며드는 물처럼, 성운이와 함께 얘기하고 있노라면 내 마음 한 구석이 서서히 차오르는 듯한 그런 느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들킬새라 성운이는 물론이고 식구들에게도, 성운이와 나는 그저 아빠로부터 영어를 함께 배우고 있을 뿐이고 성운이는 공부가 끝나면 우리 집을 떠날 것임을 잊지 않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려고 하고 있다.
공부가 끝나면 우리 집을 떠난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영원히 우리 나라를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아, 그게 사실이라는 것이 점점 나를 불안하고 서운하게 하고 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09-07-15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레바퀴 아래서를 못 읽었지만 성운이의 표정은 그려질 듯 해요. 아, 오늘은 분량이 너무 짧습니다..ㅜ.ㅜ

hnine 2009-07-15 13:42   좋아요 0 | URL
시간 있으실때 '수레바퀴 아래서'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제목에서부터 상징되는 것도 있고요.

비로그인 2009-07-16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는데 저는 기억이 잘 안나네요. 나인님. 아마 15년 쯤 되어서인것 같기도하고.. 그땐 잘 모르고 읽어서이기도 한것 같아요.

한스가 외롭고 힘들었다는 글쓰신 것을 읽으면서 예전에 가르치던 아이가 생각이 나요. 고 1 이었는데 <입시지옥의 폐혜를 온몸으로 겪고 있었거든요>정신적인 상담이 반드시 필요한 상태라 그 어머니께 과외와 상담을 병행하라고 말씀드렸었거든요. 저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겠는데 그 어머니가 ,심리 상담이라는 말에 >결국은 과외를 안하겠다고 하셔서 그렇게 그만두고는 엇그제 우연히 거리에서 만났어요.

저는 아이가 걱정되어.. "아이 잘지내나요? 어머님?" 걱정되어서 물었더니 이 어머니는 성적이 그나마 한 등급 올랐다고.. 선생님하고 배운게 그나마 남아있더라고.. 아이 성적걱정만 하시는거예요.

진심으로 그 어머니가 불쌍해보였어요. 우린 ..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요? 나인님.

책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뜬금없는 답글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씁쓸했던 기억이예요. 나인님.
겨운이와 새운이의 이야기에 언젠가 이런 아이들의 아픔도 넣어주셨으면 .. 바래보아도 될지모르겠어요. 작가는 나인님이신데요..
좋은하루되세요..나인님. ^^

hnine 2009-07-16 10:14   좋아요 0 | URL
현대인들님, 그런 경험이 있으시군요. 우리 사회에서 그런 학생들이 한둘이 아닐거예요. 사실 이 부분에서는 제가 실제 알고 있던 어떤 아이의 이야기가 들어갈 것 같아요. 언젠가는 이런 형식으로라도 어디에 쏟아내고 싶던 얘기여서요. 수레바퀴 아래서, 지금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언제나 도움이 되어주시네요. 감사드려요 ^^

가시장미 2009-07-21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글 계속 봤는데요... 소설이죠? 연재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다음 스토리가 기대 됩니다. :) 8편까지 읽으면서, 아이들의 심리가 잘 드러나서인지 한 편의 동화를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hnine 2009-07-21 18:29   좋아요 0 | URL
에궁, 창피해라. 비공개로 써보기도 했는데, 이상한게, 비공개로 하니까 더 잘 안쓰게 되더라구요. 웃기죠? ㅋㅋ
 

아빠께서 워낙 재미있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가르치시기 때문일까,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나란히 앉아 배우는 재미일까. 요즘 영어 공부하는 시간은 하루 중 그 어느 시간보다 재미있는 시간이 되고 있다. 오늘은 음식과 관련된 단어와 표현들을 공부하던 중이었는데 'mushroom' 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성운이 mushroom 이 뭔지 아니?"
아빠께서는 일단 성운이를 향해 물으셨다.
성운이는 잘 모르겠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기만 했다.
'아, 난 알 것 같은데.' 생각하는 순간 아빠께서 이번엔 내게 물으셨다.
"겨운인 혹시 알아?" 
나는 성운이가 모르고 있다는 것에 약간 자만심을 가지며 대답했다.
"방향제요!"
그때 아빠의 그 어이없어 하시는 모습이란.
"방향제?"
'앗, 아닌가?'  분명히 우리집 욕실에 있는 방향제에는 'mushroom' 이라고 써있는데, 이상하다.
 아빠께서는 mushroom은  버섯이라는 뜻이라고 알려주시며, 어떻게 방향제라는 대답이 나왔냐고 의아해 하셨다. 그러고보니 욕실의 방향제 용기가 버섯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버섯 기둥에 해당하는 부분에 방향성분의 액체가 들어 있는. 그러니까 그 방향제 상품의 이름이 mushroom이었던 것을, 매일 욕실을 드나들며 나는 mushroom이 방향제를 뜻하는 말인 줄 알았던 것이다. 나중에 공부가 끝나고 성운이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었더니, 별로 소리내어 웃는 일이 없는 성운이에게서 박장대소가 쏟아져 나왔다. 내가 무색해질 정도로.
"겨운이 너 참 재미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잘 웃기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에, 뜻밖에 성운이가 이렇게 크게 웃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나도 기분이 좋았다.
가끔 우리는 내가 즐겨듣는 팝송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성운이는 클래식만 듣는다더라고 예전에 아빠로부터 전해들은 말과 달리 팝송에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필 콜린즈 좋아하니?"
공부를 마친 후 내 책상 옆에 와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성운이가 어느 날 물었다.
"필 콜린즈? 왜 갑자기?"
아마 어제 라디오를 들으며 끄적거렸나보다. 펼쳐져 있는 내 연습장 한 귀퉁이에 필 콜린즈라고 흘려 적어 놓은 것을 성운이가 가리켰다.
"어제 라디오에서 필 콜린즈 신곡이 나왔다고 하길래. 제목이 뭐더라"
"솔로 앨범이니?" 성운이가 물었다.
"당연하지. 필 콜린즈가 원래 솔로 가수잖아." 그것도 모르냐는 투로 내가 대답했다.
"아냐, 원래 그룹 출신이야. 제네시스라는." 나는 처음 듣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이래봐도 팝송은 내가 너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속으로 뻐기고 있던 나는, 네가 뭘 착각하고 있는 거라고 끝까지 우겼다. 그런데 성운이는 같이 우기지도 않는다.
"나중에 한번 알아봐." 그러면서 그냥 웃고 마는 것이다.
성운이가 방에서 나간 후 바로 가지고 있던 팝가수 인명 사전을 뒤적거렸다. 지난 달 월간 팝송 부록으로 받은 것인데 그리 자세하진 않지만 웬만한 팝스타들은 다 나와 있다.
그런데 아, 성운이가 맞았다. '그룹 제네시스 출신의 필 콜린즈'.
도대체 성운이는 모르는게 뭐람. 잘 모르면서 맞다고 우겨댄 나의 모습과, 제대로 알고 있으면서도 우기지 않고 웃어 넘기던 성운이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창피하기도 하고, 성운이라는 아이에게 더욱 호감이 가기도 하는, 이상스런 감정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성운이가 얼마나 더 우리 집에 머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으로 떠나고 나면 그 빈자리가 참 크겠구나 나는 벌써부터 그 걱정을 조금씩 하고 있는 중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09-07-11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이야기의 배경은 몇 년도일까요? 요새 아이들도 팝송을 들을까 생각했어요.
성운이는 그저 엄친아가 아니라 성품도 차분하고 예의가 바른 듯해요.
여자 아이들이 많이 좋아하겠어요.^^

hnine 2009-07-11 21:15   좋아요 0 | URL
무릎팍도사에 나온 배철수의 고민이 바로 요즘 청소년들이 팝송을 안 듣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중학교 다닐 때, 그러니까 1980년대 초만해도 팝송을 참 많이 들었거든요.
성운이는 엄친아 맞는데 나중에 <착한 아이의 비극>을 겪게 되어요. 제가 엄친아를 별로 바람직하게 안 보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성운이가 당분간 우리집에 와서 지내기로 했단다. 이모의 자랑스런 아들 성운이는 나와 동갑내기, 공부도 잘하고 예의도 바르고,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긴, 성운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나무랄데 없는 아이였다. 이모 가족은 몇달 후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갈 예정이다. 다른 가족들도 그랬겠지만 특히 이모 가족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성운이는 아직 영어 회화 능력이 부족하여 영어 선생님인 우리 아빠에게 단기간 집중적으로 영어 특별 교육을 받기 위해 우리 집에서 당분간 지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게 누구였든 늘 또래 말상대가 그리웠던 나는 내색은 안했지만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일요일 오전, 이모와 함께 짐가방을 들고 성운이가 왔다. 현관을 들어오면서 깍듯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성운이는 내 또래라고는 하나 어딘지 모르게 아이같지 않은 아이같았다. 나와 새운이에게는 짧게 "잘 있었니?" 인사를 하고는 곧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어디에 계신지를 물었다. 거하게 점심 상이 차려지고, 일하시는 아주머니에게도 " 잘 먹겠습니다." 라는 인사를 잊지 않더니 밥을 한톨도 남기지 않고 싹싹 비우는 성운이는 그저 어른들 마음에 쏙 드는 그 자체였다.  
성운이를 남겨 두고 이모께서는 댁으로 돌아가시고, 특별히 할일이 없는 주말 오후, 아빠의 첫 영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이와 학년이 같다는 이유로 성운이와 아빠의 영어 공부에 나도 특별히 함께 할 수 있도록 허락이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참석자로서 있을 뿐이고 아빠의 수업은 어디까지나 성운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아빠께서는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 교과서가 아닌, 회화 책을 준비하셔서 상황에 따라 이루어지는 대화를 중심으로 가르쳐 주셨다. 교과서 영어보다 훨씬 재미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성운이와 과일을 먹으며 물었다.
"너,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다면서?"
"응."
"무슨 책 읽어?"
"난 고전이 좋아. 세익스피어의 비극, 그리스 신화, 오딧세이는 여러 번 읽었고, 지와 사랑, 데미안, 아,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수레바퀴 아래서'인데, 혹시 읽었니?"
읽다니, 지금 성운이가 말한 것들 중에 내가 읽은 것은 단 한 권도 없었다.
"제목은 들어봤어. 아직 읽지는 못했고." 
아직 읽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들을, 여러 번 읽었다는 성운이는 도대체 어떤 아이일까.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새운이가 묻는다.
"언니, 성운이 오빠랑 영어 공부 재미있어? 성운이 오빠 영어 잘 해?"
"뭐, 나야 들러리지 뭐. 영어 발음이 아주 나쁘진 않더라."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지만, 웬지 다음 영어 공부 시간이 기다려지고 있는 것은 왜일까? 건넌방에 짐을 풀어놓은 성운이도 지금 자려고 누웠을까? 아무리 남자 아이라지만 가족과 떨어져서 집생각이 나지는 않을까?  나는 잠이 오기는 커녕 눈이 더 말똥말똥해지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09-07-08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친아 성운이군요!^^

hnine 2009-07-08 12:03   좋아요 0 | URL
딱 어울리는 단어인데, 겨운이 싯점에서 쓰느라 사용하지 않았지요 ^^
 

- 겨운이의 일기 - 

 우리 반에 수업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중 가장 특이하신 분으로 치자면 아마 도덕 선생님이 아닐까. 20대 후반 정도 되셨얼 것 같은 여자 선생님이신데, 특이한 숙제를 종종 내주셔서 별 특징없고 지루할 수 있는 도덕이라는 과목을, 가끔씩 특별한 과목으로 느껴지게 하는 재주가 있으신 것 같다.
가령 '자립 경제'에 관한 단원을 배울 때 내주신 숙제는 이것이었다.
<자립 경제를 나타내는 광고 사진을 한 장 이상 가져 오기>
그러면서 미리 예로 보여주신 자료는, 아직 기저귀를 하고 있는 어린 아기가 손에는 권투 글러브를 끼고 링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 잡지에서 뜯어낸 분유 광고 사진이었다. 그러니까 '자립 경제'라는 단어에 대한 어떤 선입견을 떠나, 전혀 관련 없는 엉뚱한 사진일지라도 그 의미를 스스로 붙일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또는 정해주신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는 숙제도 자주 내주시는데,  그 책들이라는게 모두 교과서와 상관 없는 책들이었고, 과연 중학생들에게는 이 책들이 어떤 느낌으로 읽혀질지가 궁금하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숙제로 내주셨던 책은 <갈매기의 꿈>, <어린 왕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데 <갈매기의 꿈>은 웬지 지금까지 읽어오던 책들 처럼 재미있는 스토리로서 읽는 책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어린 왕자>는 무슨 얘기를 하는지 금방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만이 매우 감동적이어서 독후감 쓰는데 다른 두 권의 책보다 수월했었다.

오늘 도덕 시간. 수업에 들어오신 선생님께서는 지난 시간에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는지만 확인하시더니, 느닷없이 이번 시간에는 장래 희망에 대한 작문을 해보라고 하셨다.
'장래 희망? 그거야 어렵지 않지.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것이잖아.' 하고 생각했던 나는 막상 노트를 펴고 쓰려고 하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장래 희망이라면 학년 초에 나눠 주는 학생카드에 적어내야 했던 많은 빈 칸 중의 한 항목이어서, 작문이 아니라 간단히 단어 몇 가지만 적어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글을 쓰라니.
막막해하고 있자니, 이젠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언뜻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난 이제 중학생인데. 아직 뚜렷한 장래 목표가 없구나. 이런.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각오만 다지고 있었지 정작 무엇이 되기 위해 공부한다는 계획이 안 서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일까. 집에 가서 엄마 아빠께 여쭤봐야 할까? 그럼 엄마 아빠는 뭐가 되라고 하실까?
노트를 앞에 두고 겨우 몇줄 끄적거리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수업 시간이 다 지나버렸다. 선생님께서는 다음 시간까지 다 써서 내라고 하셨다. 이제는 숙제가 된 것이다. 도덕 숙제이자, 어쩌면 나의 미래를 위한 숙제 아닐까 생각하니 부담이 갔다.
집에 돌아온 후, 대학의 여러 학과 소개가 되어 있는 책자를 아빠의 책들 중에서 발견하고는 나의 장래 희망과 관련지어 하나 하나 훑어 보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 마음, 그리고 사람들 일에 관심이 많으니 심리학과나 교육학과가 어떨까? 그 많은 학과들중 이 두개의 과에 가장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장래에 어떤 직업을 희망하는지를 결정하는 것보다 차라리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할까 생각하니 덜 막연한 것 같았다.
저녁때  퇴근하신 엄마께 여쭤 보았다.
"엄마, 대학에서 교육학과와 심리학과 중에 어디가 더 좋을까요?"
"교육학과나 심리학과 나와서 뭐하려고? 졸업하고 뚜렷한 직업이 보장되는 학과가 좋지 그래, 교육학과, 심리학과가 뭐니?" 
엄마의 한마디 말씀에 나의 생각은 모두 백지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서 곧 드는 생각,
'그럼 엄마는 내가 어떤 학과를 가기를 바라시는 것일까? 엄마 맘에 드는 학과는 무슨 과일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상미 2009-07-31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 딸 < 엄마는 내가 뭐가 되었으면 좋겠어?> 하고 묻는데,
제일 좋아하고 오래 하고 싶어할게 뭘까 그랬어.
다 하고 싶어서 고민이라니...
한 녀석은 하고 싶은게 많아서 그 녀석이 고민이고...
다른 녀석은 딱히 하고 싶은게 없어해서, 내가 고민이고,

hnine 2009-07-31 10:20   좋아요 0 | URL
역시 첫째군. 엄마한테 내가 뭐가 되었으면 좋겠냐고 묻는걸 보니. 둘째는 좀처럼 이런 질문 안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