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운이의 일기 - 

 우리 반에 수업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중 가장 특이하신 분으로 치자면 아마 도덕 선생님이 아닐까. 20대 후반 정도 되셨얼 것 같은 여자 선생님이신데, 특이한 숙제를 종종 내주셔서 별 특징없고 지루할 수 있는 도덕이라는 과목을, 가끔씩 특별한 과목으로 느껴지게 하는 재주가 있으신 것 같다.
가령 '자립 경제'에 관한 단원을 배울 때 내주신 숙제는 이것이었다.
<자립 경제를 나타내는 광고 사진을 한 장 이상 가져 오기>
그러면서 미리 예로 보여주신 자료는, 아직 기저귀를 하고 있는 어린 아기가 손에는 권투 글러브를 끼고 링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 잡지에서 뜯어낸 분유 광고 사진이었다. 그러니까 '자립 경제'라는 단어에 대한 어떤 선입견을 떠나, 전혀 관련 없는 엉뚱한 사진일지라도 그 의미를 스스로 붙일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또는 정해주신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는 숙제도 자주 내주시는데,  그 책들이라는게 모두 교과서와 상관 없는 책들이었고, 과연 중학생들에게는 이 책들이 어떤 느낌으로 읽혀질지가 궁금하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숙제로 내주셨던 책은 <갈매기의 꿈>, <어린 왕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데 <갈매기의 꿈>은 웬지 지금까지 읽어오던 책들 처럼 재미있는 스토리로서 읽는 책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어린 왕자>는 무슨 얘기를 하는지 금방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만이 매우 감동적이어서 독후감 쓰는데 다른 두 권의 책보다 수월했었다.

오늘 도덕 시간. 수업에 들어오신 선생님께서는 지난 시간에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는지만 확인하시더니, 느닷없이 이번 시간에는 장래 희망에 대한 작문을 해보라고 하셨다.
'장래 희망? 그거야 어렵지 않지.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것이잖아.' 하고 생각했던 나는 막상 노트를 펴고 쓰려고 하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장래 희망이라면 학년 초에 나눠 주는 학생카드에 적어내야 했던 많은 빈 칸 중의 한 항목이어서, 작문이 아니라 간단히 단어 몇 가지만 적어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글을 쓰라니.
막막해하고 있자니, 이젠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언뜻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난 이제 중학생인데. 아직 뚜렷한 장래 목표가 없구나. 이런.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각오만 다지고 있었지 정작 무엇이 되기 위해 공부한다는 계획이 안 서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일까. 집에 가서 엄마 아빠께 여쭤봐야 할까? 그럼 엄마 아빠는 뭐가 되라고 하실까?
노트를 앞에 두고 겨우 몇줄 끄적거리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수업 시간이 다 지나버렸다. 선생님께서는 다음 시간까지 다 써서 내라고 하셨다. 이제는 숙제가 된 것이다. 도덕 숙제이자, 어쩌면 나의 미래를 위한 숙제 아닐까 생각하니 부담이 갔다.
집에 돌아온 후, 대학의 여러 학과 소개가 되어 있는 책자를 아빠의 책들 중에서 발견하고는 나의 장래 희망과 관련지어 하나 하나 훑어 보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 마음, 그리고 사람들 일에 관심이 많으니 심리학과나 교육학과가 어떨까? 그 많은 학과들중 이 두개의 과에 가장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장래에 어떤 직업을 희망하는지를 결정하는 것보다 차라리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할까 생각하니 덜 막연한 것 같았다.
저녁때  퇴근하신 엄마께 여쭤 보았다.
"엄마, 대학에서 교육학과와 심리학과 중에 어디가 더 좋을까요?"
"교육학과나 심리학과 나와서 뭐하려고? 졸업하고 뚜렷한 직업이 보장되는 학과가 좋지 그래, 교육학과, 심리학과가 뭐니?" 
엄마의 한마디 말씀에 나의 생각은 모두 백지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서 곧 드는 생각,
'그럼 엄마는 내가 어떤 학과를 가기를 바라시는 것일까? 엄마 맘에 드는 학과는 무슨 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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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09-07-31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 딸 < 엄마는 내가 뭐가 되었으면 좋겠어?> 하고 묻는데,
제일 좋아하고 오래 하고 싶어할게 뭘까 그랬어.
다 하고 싶어서 고민이라니...
한 녀석은 하고 싶은게 많아서 그 녀석이 고민이고...
다른 녀석은 딱히 하고 싶은게 없어해서, 내가 고민이고,

hnine 2009-07-31 10:20   좋아요 0 | URL
역시 첫째군. 엄마한테 내가 뭐가 되었으면 좋겠냐고 묻는걸 보니. 둘째는 좀처럼 이런 질문 안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