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편을 마치고 천국편을 읽고 있다.
연옥부터는 지옥과 분위기도 많이 다르다.
벌의 종류와 벌 받고 있는 고통스런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져있던 지옥편에 비해 연옥과 천국은 훨씬 부드럽고 설명적이라고 해야할까.
지옥에서는 죄인들이 주로 등장한 반면 연옥에서는 시인, 음악가, 조각가 등의 예술가들이 많이 등장한다.
지옥을 둘러보는데 만 하루를 보낸 단테가 연옥에서는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사흘 낮 사흘 밤을 보내는 것도 다른 점이다.
연옥 입구에서 단테는 이마에 일곱개의 P자를 새기고 출발, 일곱 둘레로 이루어진 연옥을 차례로 둘러보며 P자를 하나씩 지워나간다. 여기서 P는 '죄'를 뜻하는 'peccatto'의 첫 자이다.
연옥의 일곱 둘레는 맨 아래부터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색욕의 둘레이고 맨 윗층은 지상낙원으로 되어 있다. 즉 죄를 다 씻은 영혼이 도달하는 곳이다. 지상낙원에서 단테는 그리폰을 만나고 (그리폰은 그리스도를 상징), 하늘에서 수레를 타고 내려온 베아트리체를 만나게 된다. 이제부터 천국으로의 길잡이는 베르길리우스가 아닌 베아트리체가 된다.
뒤의 천국편에서도 단테가 머무른 시간은 만 하루. 연옥에서만 사흘을 머물렀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죄를 깨닫고 반성하여 구원의 기회를 부여하는 곳이 연옥인 것을 생각해보면, 영혼이 영구히 속할 곳이 이미 정해진 지옥이나 천국과는 다른 것이 이해가 된다.
연옥의 모습을 요약해서 설명해주는 곳이 연옥편 제4곡중에 나온다.
그러자 그분은 말하셨다. "이 산은,
아래의 시작 부분은 아주 험하지만
위로 오를수록 덜 험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위로 오르기가 한결 가벼워져
마치 배를 타고 물결을 따라가듯이
이 산이 아주 기분 좋게 느껴질때면,
너는 이 길의 끝에 도달할 것이고
그곳에 고달픔의 휴식이 기다리니,
더 말하지 않겠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연옥편에는 단테의 환상이나 꿈이 자주 등장하는데, 분노의 셋째 둘레에 올라서서는 분노와 반대로 온화함과 자비에 관한 환상을 본다.
"오, 페이시스트라토스여, 우리 딸을
껴안은 저 대담한 팔을 처벌하시오."
그러자 왕은 너그럽고도 온화하게
평온한 얼굴로 대답하는 듯하였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처벌한다면,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제18곡에는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자유의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밀랍이 아무리 좋아도
모든 봉인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여기서 나는 단지 이성이
보는 것만 너에게 말해 줄 수 있고, 그 너머는
신앙의 작용이니 베아트리체를 기다려라.
'이성'으로 설명이 안되는 것은 '신앙'의 몫이라는 뜻일 것이고, 신앙의 몫은 베르길리우스가 아닌 베아트리체가 해줄 것임을 예시한다.
너희들 안에서 붙타는 모든
사랑이 비록 필연으로 발생하더라도
너희에게는 그것을 억제할 능력이 있다.
그런 고귀함을 가리켜 베아트리체는
자유 의지라 부르니, 만약 그것에 대해
너에게 말하거든 마음 속에 잘 간직하라.
꿈에 그리던 베아트리체가 나타나는 장면이 연옥편의 끝부분 30곡에 나온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고 단테의 느낌은 어떠했을까?
다시 떨어지는 꽃들의 구름 속에서
하얀 베일에 올리브 가지를 두르고
초록색 웃옷 아래에 생생한 불꽃색의
옷을 입은 여인이 내 앞에 나타났다.
미처 눈으로 알아보기도 전에
그녀에게서 나오는 신비로운 힘으로
오래된 사랑의 거대한 능력을 느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벗어나기도 전에
이미 나를 꿰뚫었던 그 강렬한 힘이
나의 눈을 뒤흔들자마자, 곧바로 나는
마치 어린애가 무섭거나 슬플 때면
자기 엄마에게 달려가는 것처럼
믿음직한 왼쪽으로 내 몸을 돌렸고,
신곡을 처음 읽던 날, 지옥편 제1곡 첫 페이지와 지옥의 문에 써있던 글귀 다음으로 심쿵하는 대목을 오늘 '천국편'을 읽으면서 만났다. 과녁을 향하는 화살의 비유 부분인데, 이것은 천국편을 마저 다 읽고 쓰기로 하자.
천국편의 도입부부터 단테는 경고한다.
하늘나라에서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가능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