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살던 고향은... 고향의 봄 (지금은 들어도 눈물 안난다 ^^)

- 우리는 엇갈려간 회전목마 타고...이문세의 회전목마

- 이제는 떠나야만 하는가...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

- 잊어야한다면 잊어야~만 한다면...김광석의 잊어야한다면

- 빠바바~바~바 ...동물원의 혜화동 (이 전주만 나와도 벌써 뭉클~)

....

더 많다.

하지만 여기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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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7-11-16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화동~.
한번도 못들어봤어요~.^^;;;;
동물원 좋아라하는데,,,쩝ㅎㅎ

hnine 2007-11-16 19:38   좋아요 0 | URL
아니, 혜화동 그 명곡을 모르신다니.
동물원의 팬 입장에서 서운하옵나이다 ^^

antitheme 2007-11-17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문세, 동물원의 컨서트가 있다면 꼭 가고 싶네요. 저도 좋아하는 곡들입니다.
김광석의 노래하는 모습은 다시 볼 수가 없어 아쉬워요. 전 그의 너무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좋아한답니다.

hnine 2007-11-17 00:50   좋아요 0 | URL
동물원의 콘서트는 여러 번 갔었지요. 그 중 한 멤버를 특별히 더 좋아하기도 했었고요 ^^ 이 문세 콘서트, 한다면 저도 꼭 가고 싶어요.
사랑이 아니라고 할 만큼 아픈 사랑을 노래한 김 광석도 그립고...
공감해주시니 좋습니다.

미즈행복 2007-11-21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광석 노래는 거의 모두가 다 눈물이 나요.

hnine 2007-11-21 15: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김광석은 목소리 자체가 tear jerker이지요 ^^
 

학교 졸업후 처음 들어간 직장은 여자보다 남자 머릿수가 훨씬 많은 곳이었다. 동료의 대부분도 남자, 선배도 남자, 상사도 남자.
남자들과 원만하게 지내는 것이 직장 생활을 성공적으로 하는데 매우 필요사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그러지를 못했다.
갓 결혼식 올리고 휴가 후 인사다니는 한 행정 여직원에게 남자 직원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말이
"야...이제 xx 씨도 영낙없는 아줌마네, 아줌마야." 그리고는 아예 이름을 두고 "아줌마!" 하고 큰소리로 불러보며 낄낄거렸다. 그 여직원 얼굴이 빨개져서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사실 무슨 대꾸를 하랴.
아줌마라고 불린 본인도 가만히 있는데 이 까칠한 신입여직원이 발끈하여 한다는 소리가,
"이봐요, 여기 계신 남자분들, 아줌마에게서 태어나지 않으신 분 있어요? 그런 식으로 놀릴 대상이 아닌것 같은데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자기들끼리는 잘 안하는 장난을 우리 부서에 단 한명 여자 직원에게는 종종 했다. 어느 날 모두 함께 나가서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데, 사람들이 자꾸 이 여직원을 쳐다보는 것이다. 나를 쳐다보는지, 옆에 가는 다른 사람 쳐다보는 것을 착각하는 것인지, 찜찜한 기분으로 돌아와서는 마침내 알았다.  부서 남자 직원 하나가 그 여직원 등에 중국집 배달 선전 스티커를 붙여 놓은 것. "어디든지 신속 배달" 이라고 쓰여져 있는. 
그 사람도 그 사람이지만, 모두 알고 있으면서 밖으로 점심 먹으러 나갔다 올때까지 아무도 말 안해준 나머지 남자 직원들이 괘씸했다. 가만히 있으면 다음에 또 비슷한 장난을 칠 것이라는 생각에, 스티커를 붙인 그 사람에게 가서 말했다.
"xx씨, 스물 일곱살씩 되신 분이, 장난은 일곱살짜리 장난을 치시는군요."
------------------------------------------------------------------------------------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나라 회사든 연구소든, 필요 이상으로 회의를 자주 하고, 오래 한다.
그 날도 각자 하던 실험, 일단 중지 하고 회의를 한다고 모두 모였는데, 1시간이 넘도록 진척 상황은 없고, 쓸데 없는 주제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거기다가  회의 시작 부터 선임이 계속 피워대는 담배로, 실내 공기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안 되겠다! 까칠 여직원 벌떡 일어나서는 회의실의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열어젖히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함께 있던 다른 직원들이 더 당황. 선임의 눈치를 살핀다. 그 여직원만 빼놓고.

쓰면서 생각하니, 별로 잘 한 짓 같지는 않다. 그 여직원이 조금만 더 지혜로왔다면 더 바람직한 응수를 했을텐데.

(그 여직원? 물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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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7-11-15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여직원은 까칠하기보다 지혜로운 응수를 해야 하죠? 전 그것도 불만이라구요. 까칠까칠, too~

hnine 2007-11-15 11:42   좋아요 0 | URL
하하, 조선인님. 누구의 마음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의사전달을 할수 있다면 그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저처럼 많이 모자란 사람은 아직도 자신 없습니다 ^^

홍수맘 2007-11-15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히려 '왜 저리 대응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회사의 막내 여직원이었는지라 '좀 아니다' 하고 생각되는 부분도 그냥 웃음으로 --- 속은 쓰리면서 --- 그냥 넘겨버렸던 것 같아요.

hnine 2007-11-16 07:30   좋아요 0 | URL
홍수맘님, 저도 처음 며칠은 그랬지요 ^

마노아 2007-11-17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칠 여직원 멋져요! 그래봤음 좋겠어요ㅠ.ㅠ

hnine 2007-11-17 13:11   좋아요 0 | URL
ㅋㅋ 마노아님, 저의 직장내 사교관계가 원만치 못한 이유가 되었는 걸요 ^^

미즈행복 2007-11-2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정말 멋지십니다. 배워야겠어요!!! 아울러 딸에게도 전수하고요!!!

hnine 2007-11-21 15:20   좋아요 0 | URL
요즘은 직장내 여성의 비율도 더 높아지고, 아마 저 정도는 아니리라 생각되어요. 더 많이 개선되어야지요.
 

영국에 있을 때의 일.
미국 뉴욕에서 공부 중이던 친구가 놀러왔다.  언어학 전공이던 그 친구는 여러 가지로 영국 방문에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따로 방학이 없던 나는 그 친구랑 동행하여 여행을 다닐 형편은 못 되었고 그 친구는 학교 기숙사 내 방에서 숙식만 해결하기로 했다.
주말에 인근의 수퍼마켓엘 갔다. 학교에서 별로 멀지 않으므로 우리는 늘 걸어서 다녔다. 이 친구, 가면서 벌써 투덜 투덜..."차 없이 가냐?" 난 그때 차도 없었을 뿐 더러 (영국에 있는 내내 나는 차 없이 지냈다.)있었다 해도 안 가지고 갔을 날씨, 그리고 거리였는데 말이다.

혼자 지내던 내게 먹는 일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 아니었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마는데 그래도 친구가 왔기에 내 딴에는 면을 삶고 소스를 만들어 스파게티를 해주었더니, 무슨 스파게티 맛이 이러냐고 또 투덜투덜...뭐 맛있는 것 파는데 없냐고 한다. 알다시피 영국은 요리라 할만한 요리가 없는 나라.

결국 스코틀란드와 아일랜드엘 간다면서 내가 있는 곳을 떠났다.
그때 나는 그 친구가 너무하다고 생각 안 했었다. 그냥 비 맞은 기분이랄까...
제목을 저렇게 붙여놓고 보니 우습다.

내가 먼저 한국엘 들어오고 그 친구와 한동안 연락이 안 되었는데 지난 해 우연히 그 친구의 이름을 모 대학 웹 페이지에서 발견. 영어교육과 교수님이 되어 있었다. 그 동안 결혼도 했고...
그 때 일을 그 친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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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7-09-01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에선 차가 별로 필요없겠던데요???
전 영국을 여행만 해봤는데 미국과 넘 틀리니까,,,그래도 어디든 차가 있으면 편하긴 하겠지만...ㅎㅎ
영국에서 유학하셨구나~. 어쩐지,,,ㅎㅎ
지금은 그냥 집에 계세요??
어쨌든 반가와요, 더.ㅎㅎ
근데 그 친구 ((((좀 싸,,,가,,,지,,,가 없는 친구 같아요~))))

누에 2007-09-15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로만 들었는데 영국엔 정말 먹을 게 없나봐요^^; 그런데 그 스파게티 얻어먹고 싶어지네요.

hnine 2007-09-16 05:35   좋아요 0 | URL
영국은요, 미식가들에겐 지옥입니다. 전 미식가는 아니지만, 감자튀김과 생선 튀김 (Fish and chips라고 불리는)이 대표 음식이라니. 어떤 음식은 너무 짜서 먹고나서 입술 허물이 벗어진 적도 있어요.
 

말이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가 매우 차분하고 꼼꼼하고 실수 잘 안할거라 오해한다. 나는 그리 차분하지도 않으며, 시작은 꼼꼼하게 출발했다가 곧 대충 마무리 짓는 적이 많으며 (내가 미술을 잘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얼마나 덜렁거리는지 모른다. 그래서인가, 병원도 내과보다는 치과와 (어릴때 사탕을 너무 좋아해서) 외과를 많이 다녔던 것 같다.

스물 몇살, 아직 학교에 있을 때인데 어느 주말 저녁. 친구를 만나서 저녁을 먹으러 지하의 어느 레스토랑으로 내려가던 중 뒤에 오는 친구를 돌아보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 계단에서 넘어졌는데 넘어지면서 왼쪽 무릎이 금속 계단 참에 찍히고 말았다. 찍힌 정도가 좀 심해서 그야말로 속의 뼈가 다 보일정도로 크게 다쳤다. 친구는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고, 나는 손수건으로 피가 흐르는 무릎을 꾹 누른채 걷는 것도 아니고 기는 것도 아닌채 주위를 돌아보았으나 주말이라 인근 병원도 문을 연 곳이 없고, 결국엔 집에 전화하여 부모님께서 데리러 오셔서는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열세바늘을 꿰매고, 그로부터 한달 동안 집에 누워서 꼼짝도 못했다. 지금도 왼쪽 무릎에 선명히 남아있는 흉터.

그보다 이전에 생긴 훈장으로는 오른 쪽 발등이 있다. 중학교 1학년때 동생이랑 말타기 놀이하다가 넘어진다는 것이 집의 큰 어항 (수족관 수준의 어항이었다)의 금속 받침대에 발등이 찍혀 또 뼈가 다 보일 정도로 다쳐서는, 또 열바늘인가를 꿰매고 그날부터 나는 외삼촌 차를 타고 교문까지, 교문에서 교실까지는 업혀서 등교하기를 몇주일 계속했다.

동네 빵집에서 빵 사가지고 나오다가 유리문에 손가락이 끼어 생손톱을 수술로 빼어야했던 일도 있다. 요건 고3때.

나, 하나도 차분하지 않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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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7-09-01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진짜 하나도 안차분하시네요~ㅎㅎㅎ
웃으면 안되는디~.푸훗
지금도 많이 다치시나요?????

전 이마에 흉이 있어요.
님보다 더 어렸을때인 3살쯤 다쳤데요,,,기억에 없어요,
그래서인지 전 너무 몸을 사려요.
늘 조심조심,,,,아주 어렸을때 정신차리게 혼났어서 그런가봐요.ㅋㅋ

hnine 2007-09-01 08:15   좋아요 0 | URL
전 지금도 덤벙대는 성격은 여전해요~ ^ ^

조선인 2007-09-0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코밑에 1센티 정도 되는 흉터가 있고, 왼쪽 눈썹에 흉터가 있고(이건 눈썹문신으로 살짝 가림), 전신에 멍이 떠날 적이 없고(매맞는 아내로 오해받은 적도 있어요, 옆지기가 무지 억울해 했다는. ㅋㅋㅋ)...

hnine 2007-09-01 13:52   좋아요 0 | URL
하하..조선인님은 주로 안면에 훈장이 집중되어있으시군요. ㅋㅋ
전 언제나 이 덤벙대는 성격이 좀 고쳐질지. 꼭 여러가지일을 동시에 하려다가 일을 저지르는 것 같아요.

세실 2007-09-01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hnine님 하마터면 속을뻔 했군요. 다소곳한 처자이신줄....
전 보림이 임신한 뜨거운 봄날, 배꼽티 입고 백숙하던 닭 뒤집다가 뜨거운 물이 배에 튀어서 한일자로 물집 생겨 한동안 병원 다녔습니다.
글구 덩어리 치즈 칼로 자르다가(거의 치는 수준) 다섯바늘 꿰맸고, 도서관에서 이면지 종이 자르다가 칼에 베어 다섯바늘정도 꿰맸습니다. 에휴....

hnine 2007-09-02 11:01   좋아요 0 | URL
어머..세실님, 동지의식을 느끼겠네요. 그런데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는걸요.
말씀대로 저 본의아니게 내숭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답니다. 얌전하지도 않으면서 얌전한 척 했다고 흑 흑...
 

거의 20년 전 이야기이지만 학교 실험실에 있다보면 실험 진행 상황에 따라 아주 늦게까지 학교에 있다가 집에 올때가 있었다. 실험실 안에 있다 보면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불을 끄고 실험실 문을 탕 닫고 돌아서면 컴컴한 복도와 맞서야 했고, 또 컴컴한 교정을 걸어나와야 했다. 나도 모르게 빨라지는 발걸음을 하고 교문까지 도착하면 조그만 쪽문만 열어 놓고는 수위아저씨께서 교문까지도 닫아놓은 상태. 내일은 꼭 같이 늦게 까지 남아 있을 사람을 구해서 같이 있다가 나와야 겠다 생각하며 교문을 벗어나면, 그 요란 법석, 화려한 학교 앞의 상가들도 거의 문을 닫고 썰렁했다.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 시간에 가까스로 맞춰 가다보면 그때까지 문을 닫지 않고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던 매장이 있었으니 거기가 바로  모 아이스크림 체인점.  아직 저렇게 문 안 닫은 곳도 있는데 뭘...하면서 마음이 놓이곤 했다. 그리고 그 아이스크림 가게가 좋아졌다 (이런 말도 안되는 ㅋㅋ...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아이스크림 회사와 나 전혀 상관 없다.).

그런데 언젠가는 집에 오기를 포기하고 실험실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진행상으로는 훨씬 일찍 끝나야 했으나, 하다보면 2시간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과정이 5시간만에 끝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실험을 중간에서 그만 둘수가 없으니 끝날 때까지 있다 보면 끝나는 시간이 새벽 4, 5시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날은 밤을 학교에서 보낼 수 밖에 없는데,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그때는 학교에서 밤을 새려면 건물사용허가서니 뭐니 해서 미리 서류에 사용허가를 받아 놓고, 또 한가지, 함께 있어줄 사람을 구해야했다. 아무래도 컴컴한 건물에 혼자 있는 것은 좀 무서우니까. 그리고 실험을 하다 보면 기기를 사용하기 위해 1층, 2층을 왔다 갔다 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대학 신입생이던 남동생을 불렀다. 11시쯤 담배를 한 보루 사가지고 동생 등장. 웬 담배? 했더니, 건물의 수위 아저씨 드린단다. 남동생은 예전부터 처음 만나는 사람도 5분 안에 친해지는데 탁월했다. 그날 실험을 마치고 이른 아침에 집에 잠깐 가서 씻고 다시 학교로 나왔다.

이후에도 실험실에서 밤을 샌 일이 몇 번 있다. 밤을 새면서 뭔가 할일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병상을 지키며 밤을 새거나, 걱정으로 밤을 새우는 일을 생각하면 정말 그렇다. 지금도 가끔 밤을 새우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실험실에서가 아니라 바로 내 집에서이다. 어떻하다보면 너무 늦게까지 안 자고 있게 되고 그때 잤다가는 새벽 6시 반에 아침을 차려내야 하는데 못 일어날까봐 그냥 그대로 아침을 맞는 것이다.

쓰다보니 위의 그 실험실에서 종종거리고 나올 때가 다시 눈 앞에 그려지면서, 그때가 아련하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져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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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30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험실에서 밤을 새울 때 애인은 없었나요?
은근히 그런 무드를 기대했었어요.

hnine 2007-08-30 21:49   좋아요 0 | URL
애인 비슷한 사람도 없었네요 흑 흑...

라로 2007-08-31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와 지금의 님은 갈 실험실이 없다는게 달라진거 아닐까요????>.<

hnine 2007-08-31 22:30   좋아요 0 | URL
실험실을 등지고 나왔지요 지금은...1년 좀 넘었어요.

가시장미 2007-08-31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조만간.. 밤샘을 해야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염려되네요. 으흑-_ㅠ
그 때와 지금.. 달라지신 점. 궁금하네요. 만약 저라면 '열정'에 대해 생각해 볼 것 같아요.

hnine 2007-08-31 22:32   좋아요 0 | URL
되도록 밤 안새고 할수 있으면 더 좋겠지요, 더 오래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그때와 지금, 홀몸이 아니라는 것(?)이 제일 큰 차이겠지요 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