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made in USA) 는 뭣도 좋다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 오래전 이야기도 아니다.
학용품이니, 식료품, 약, 생활 잡화, 의류 등 거의 모든 상품에 대해 국산이냐 외제냐를 따졌는데 이 외제라는 것의 대부분이 미제였으니까.
처음 미국엘 가본 것은 스물 네살 때였는데,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일반화 되기 전이어서, 떠나기 전에 기대도 좀 되었더랬다. 먼저 다녀 온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뭐든지 크고 넓고, 없는게 없고, 학교 시설도 좋고, 처음보는 사람끼리도 웃으며 인사하는 그런 곳이란 말인가. 교복 같은 것도 없고 (나는야 교복 세대 ^^), 부모나 선생님과도 친구처럼 말할 수 있는 분위기, 맘 먹고 노력만 하면 그 댓가만큼 누릴 수 있는 사회? 방학 동안 미국에 다녀온 우리 과 친구 중 하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고까지 했었다 (그 친구는 결국 교포와 결혼해서 지금 미국에 산다).
처음 가보고도 그랬고, 이후에 몇 차례 더 방문 해보고, 몇 년 살아도 본 나의 소감은,
한번도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너무 크고 넓은 것이 생리에 안 맞았고, 파티를 즐기는 그곳 젊은 세대의 분위기도 잘 맞지 않았으며, 그 풍요롭다는 나라에도 엄연히 못사는 사람이 있었다. 지나치게 소비적인 성향도 좀 이상했고, 식구는 세 식구이면서 한번 쇼핑할 때 마다 뭐든지 벌크로 사다가 쌓아놓는 습관도 이상했다. 돈을 얼마나 버느냐를 너무나 공개적으로 밝히는 분위기도 껄끄러웠다. 얼마짜리 옷, 얼마짜리 차, 얼마짜리 집...이라는 말이 사람들 대화 속에 너무나 자주, 아무렇지도 않게 섞여 있었다.
도대체 내 친구는 무엇을 보고 여기서 살고 싶다는거지? 의아했었다. 도대체 누가 비정상이야. 소심한 나는 당연 나의 폐쇄적이고 비사회적인 성격 탓을 해댔었다.
어제 도서관에서 아이 기다리면서 읽은 책,
한 혜영 작 '뉴욕으로 가는 기차'.
어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미국으로 이민간 가족의 이야기이다. 새삼스러운 내용은 아니지만, 공무원 생활을 접고 세탁소일에 전념하는 엄마, 아빠, 그리고 부모 없는 집에 남아 방황하는 어린 두 형제의 이야기이다. 읽는 동안 마음이 참 착잡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이 민진 작,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2 권 합쳐 1,000 여쪽에 이르는 분량이다. 1권 마치고 2권 읽고 있는데, 일곱살에 가족 이민을 간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란다. 이전에 읽은 이 창래의 'Native speaker'나 ' A gesture life' 만큼 무겁거나 진지하진 않다. 재미도 그냥 그렇고, 아무튼 끝까지 가보려고 읽고 있다.
아무리 언어가 유창하고, 한국에 대한 기억조차 없는 세대라 할지라도, 그 사회에 완전 동화가 되기에 부족한, 극복 못 할 무언가는 여전히 있다는 얘기.
이제 '미제'라고 하는 것들 대부분은 미제가 아닌 중국제. 마트에 가서 장을 볼때 두부 한 모 사면서도, 밀가루 한 팩 사면서도 포장 여기저기를 살핀다. 국산이냐 수입산이냐. '국산'을 사야하기때문에.
나한테는 처음부터 없었던 American dream.
나의 폐쇄성, 소심함, 비사회성 탓을 지금도 해야할까.
어제 오늘, 책을 읽으며 해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