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무엇을 하는가 - 아직 끝나지 않은 이론
브라이언 이노.베테 아드리안스 지음, 김희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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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는 대학 입학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보다 훨씬 먼저, 초등학교 5학년때 왔다. 초등학교 5학년때 예능계 학생들을 위한 예원 학교 시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단순히 취미로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우리 반 친구 하나가 예원 학교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말을 듣고 나도 준비해서 도전해보고 싶어져서 엄마에게 말씀드렸더니 엄마께서 하시는 말씀, '취미로만 하거라.' 그 말씀에 바로 주저앉음. 그러고도 마음 속엔 남는 미련을 지우기 위해 나 자신을 설득시킨답시고 스스로 한 생각은, '피아노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일이나 할 뿐,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하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면 되지.' 였다. 

음악을 비롯한 예술은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일은 아니며, 여유가 있을 때 즐기기 위한 것이다, (것이어야 한다 ) 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 (억지로) 한 것 같다. 

돌아보니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여유있을때나 하는 잉여 활동으로 생각했던 음악을 떠나서 보낸 시간은 없었던 듯 하다. 지금까지 계속 듣고, 치고, 배우고, 여유 있을때가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외롭고 힘들고 팍팍하던 시기를 보낼때 더욱 가까이 하고 그 시기를 넘겼던 것 같다.

과연 예술은 인간에게 무엇일까. 있으면 좋고 없어도 먹고 사는데 큰 지장없는, 잉여 행위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가?

물론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물어보면 대신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예술은 인간이 삶을 '견디게' 해 준다고. 의식주에 직접 기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는 삶. 포기하고 싶고 그 자리에 멈추고만 싶을 때, 계속 go on 할 수 있도록 위안을 주고 감동을 주고 보이지 않는 힘을 주는 것이 예술이 있어야 하는 이유라고. 

순전히 내 생각이다.









이 책 제목이 <예술이란 무엇인가> 만 되었어도 읽을 생각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What is the art  (예술의 본질) 가 아니고 What art does 즉 예술이 무엇을 하는가, '예술의 기능'에 대한 것이다. 뭔가 더 읽기 쉬운 것 같았다. 


"우리에게, 삶에게, 세계에게, 예술의 쓸모란 무엇인가"


이 책의 두명의 공동 저자중 한 사람인 Brian Eno는 영국 태생의 유명한 음악인으로 ambient music* 이라는 이름의 음악 장르를 체계적으로 정립한 사람이다. 스스로 음악가이기도 하지만 콜드 플레이, U2, 데이비드 보위 등 유명 가수들의 노래 프로듀서로도 활동하였다. 원래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 

(*ambient music: 공간의 분위기 (atmosphere)를 만드는 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하는 음악. 멜로디나 리듬을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 소리의 질감과 공간감을 통해 듣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둔다.)


그는 예술이라는 행위에 대해서 뭐라고 했는가. 예술이 왜 필요하다고 했는가.


1, 예술은 감정이 생겨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예술의 본질은 감정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감정을 갖는다는 것. 감정 없는 상태로 생명의 상태만 유지하는 특수한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살아있는 동안은 끊임없이 감정이 생겨난다. 


감정은 생각이나 표현보다 먼저생겨난다. 

감정은 속도가 더 빠르다. 재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낯선 상황에 처했을떄 우리는 주로 속도가 바른 감정에 의존해서 해결책을 찾는다.

감정은 모호하고 규정하기 힘들며 측정하기는 아예 불가능하고 계속 변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감정에 기초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는 방법들이 존재하긴 하고 추론과 데이터에 기초한 결정들이다. 보통 그걸 ㄴ것들을 모아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그런 식으로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상황, 우리의 두려움, 우리의 욕망, 우리의 가치관 등이 모두 한데 엉켜있다. 그래서 우리는 직감, 추측, 본능에 의존해야 한다. (29~33쪽)


예술은 사람의 그런 감정을 풀어놓는 장이고, 예술가들은 감정을 파는 상인들이다. 예술 작품은 감정을 촉발하도록 만들어졌다.


2. 예술은 탈출이 가능하다.

한 번 사는 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다 해 볼 수는 없고 시간이 허락한다 해도 결과가 두려워 직접 경험해보기 망설여지는 것들도 있는 법인데, 예술은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3. 예술의 사회적 기능

예술은 단순한 개인의 표현이 아니다. 같은 감정을 공유하게 만듦으로써 사회적 접착제 역할을 한다. 

에술은 우리가 꿈을 나누는 곳이다.  예술은 공동체를 완성한다.


4.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든다. 

상상을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위대한 기술. 예술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상상력을 발휘해서 우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생각해 내고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시험해볼 수 있다. 현실 도피가 아닌 미래에 대한 실험이다. 

어떤 문제에 닥쳤을때 솔루션만 찾으려 하지 말고 상상을 해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미래로 향하는 여정으로 이끌 수 있다. 


저자는 또한 예술은 어떤 특정인만의 영역이 아니며 우리 모두의 생활 속에서 예술 행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예술은 보편적인 인간 활동이라는 것이다.




생명 유지를 위해 해야하는 일들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일들 외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수천 가지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옷에 수를 놓고, 음식에 장식을 하고, 시를 읽고, 악기를 연주하며 몸에 장식을 한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흥얼거리고, 글을 쓴다. 왜? 이런 활동을 하면서 얻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즐겁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 외에도 우리는 이런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래서 예술은 먹고 사는 일과 상관 없는 활동이어야 한다. 

양정무 교수의 책 <미술 이야기 1> 에 보면 원시인들은 동굴에 벽화를 그리고, 토기를 만들면서 빗살 무늬를 새겨 넣었을까 하는 내용이 나온다, 토기에 그려진 무늬는 토기의 본래 기능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미술은 삶의 부속이 나 장식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하지만 미술은 두 발로 걷고 사냥을 하고 도구를 만드는 것 만큼이나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우리가 타고난 생존 본능이라고 했다. 






"예술은 

인간이 감정을 탐험하고

공동체를 만들고

미래를 상상하도록 

돕는 기술이다."



예술이 밥 먹여 주나? 

예술이 밥이 될 수는 없지만, 밥을 먹는 수십 가지 방법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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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Certainty (Paperback)
Wittgenstein, Ludwig / HarperCollins / 197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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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이지만 다른 어떤 철학자보다 비트겐슈타인에게 관심이 가게 된 것은 그의 유명한 문장들을 알게 되면서 부터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는 사물들의 집합이 아니라 사실들의 총체이다.", "철학의 목적은 언어에 의해 생긴 혼란을 푸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작정하고 읽어본 적이 없다가 우연히 이 책 On certainty>가 내 손에 들어왔다.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이 죽기 전 마지막 18달 동안 쓴 메모들을 사후에 엮어 1969년에 출간한 책으로서, 한쪽 페이지엔 독일어 원본, 바로 옆 페이지엔 영어 번역본으로 구성되어 있고, 영어 문장 자체는 해석이 어려운 정도가 아니고 짧은 메모 형식이기 때문에 부담이 적어 보여 겁도 없이 덤벼들게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영국의 분석 철학자 G. E. Moore의 "나는 여기 있는 것이 내 손이라는 것을 안다. " 라는 명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게 되면서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안다고 했을때 정말 우리가 그것을 아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의심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일까?


이 세상엔 증명이 필요 없이 받아들여지는 사실이 있고 이것은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지식 (knowledge)'과는 구별하여 '확실성 (certainty)' 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보았다. 

이 책 <On certainty>는 우리가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지식의 토대가 되는가를 탐구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구성이 메모 형식으로 되어 있고 각 메모마다 1번부터 676번까지 번호가 붙어 있다. 


책을 다 보긴 했으니 리뷰라고 올리고 있긴 하지만 이런 책은 읽는 책이 아니라 공부하는 책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냥 영어 문장 읽어서 페이지 넘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해를 위해 youtube에 올라와 있는 자료 영상들을 참고하기도 했고, chatGPT의 설명도 들어가며 이해하려고 했다. 그래서 이 리뷰는 다른 책의 리뷰와 달리 책을 읽으면서 필기해놓은 노트를 다시 정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노트를 나도 노트한 셈이다.

노트란 것이 주로 개념 정리 위주가 되었는데, 여기에 나오는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의미에 더해서 철학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들이 많아서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였기 때문이다.


다음의 번호는 책 속에 표시된 번호이다.


51. proposition (명제): 참 또는 거짓이 될수 있는 내용.

    문장 (sentence)이 언어적 표현이라면 명제 (proposition)는 그 표현이 전달하는 의미나 내용을 말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명제를 가리켜 세계의 사실을 그림처럼 묘사하는 것으로 보았다 (picture of a fact)


   language game (언어 게임): 말의 의미는 그 말이 사용되는 방식 속에서 결정된다. 

   단어자체에 고정된 의미가 있는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규칙에 따라 사용되는가가 의미를 만든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다양한 언어 사용 방식을 언어 게임이라고 불렀다.

   과학의 언어, 종교의 언어, 일상의 언어를 모두 같은 규칙으로 해석하려하면 철학적 혼란이 생긴다.

    "말의 의미는 그 사용 (use)에 있다."


92. simplicity (단순성) vs symmetry (대칭성)

   simplicity (단순성): 설명의 경제성

   -설명에 필요한 가정이 적다

   -복잡한 현상을 적은 원리로 설명한다

   symmetry (대칭성): 세계의 구조가 질서와 통일성을 가진다는 직관

   -어떤 변환을 해도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

   -형태나 법칙이 균형을 이룬다. 

   예) 원은 회전해도 모습이 같다.

       물리 법칙은 보통 '오늘'이나 '내일'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 아름다운 이론은 단순하고 대칭적이다.

       simplicity=적은 원리로 많은 것을 설명하는 것

       symmetry=변화 속에서도 유지되는 질서와 불변성


96. Fluid proposition (유동적 명제)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의 믿음과 명제를 두 종류로 나누어 생각했다.

   1) 흐르는 물 같은 명제들 (Fluid propositions, 유동적 명제)

   2) 강바닥 같은 명제들 (River-bed propositions, 고정된 명제) 

   대부분의 명제는 물처럼 흐른다. 그러나 어떤 명제들은 우리의 사고 전체를 떠받치는 바닥 역할을 한다.

   Fluid proposition은 고정된 진리가 아니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 의미나 진위가 달라질 수 있는 명제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예) 이 음식은 맛있다/ 그는 부자다/ 오늘은 춥다

   Fluid proposition을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단순히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문장이라기 보다 증거에 의해 비교적 쉽게 수정되는 경험적 명제라는 뜻에 가깝다. 


"왜 어떤 명제들은 증명도 하지 않으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가?"


 -비트겐슈타인은 이것을 지식 (knowledge)이라기 보다 확실성 (certainty)의 문제로 보았다. 

 그래서 <On certainty>의 핵심 질문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의심과 증명이 가능하려면 의심하지 않는 어떤 배경이 먼저 있어야 하니 않는가?" 라는 것이다.


110. presupposition: 전제 또는 암묵적 전제

  어떤 문장이나 발언이 성립하기 위해 이미 참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내용

  -proposition: 명제

  -presupposition: 전제

  -implication: 함축, 귀결


  ground: 바탕, 배경 토대

  논증으로 증명된 근거라기보다 실천과 삶의 배경

  확실성의 토대/언어 게임의 바탕/ 의심이 멈추는 자리


  이것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을 남겼다.

 'Giving grounds, however, justifying the evidence comes to an end.'

 (근거를 대고 정당화를 하는 과정은 언젠가 끝에 이른다.) --> 204번 메모 


116. stand fast

 일상 영어에서는 '자리를 지키다, 물러서지 않다' 라는 뜻.

 비트겐슈타인의 <On certainty> 에서는 '확고하게 유지하다,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다' 라는 뜻

 Instead of " I know~" --> "It stands fast for me that~"


136. enumerate 나열하다

 -list: 단순히 나열하다

 -enumerate: 체계적으로 하나씩 열거하다

 -itemize: 항목별로 자세히 적다.


189. At some point, one has to pass from explanation to mere description.

   (어느 시점에 이르면 설명에서 단순한 기술로 넘어가야 한다.)

  전통 철학은 흔히 "왜?"를 끊임없이 묻는다.

  - 언어는 왜 의미를 갖는가? 우리는 왜 규칙을 따르는가? 이름은 왜 대상을 가리키는가?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질문들이 종종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고 보았다. 어떤 단계에 이르면 더 깊은 원인이나 본 질을 찾으려 하지 말고,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있는 그대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의 임무는 숨겨진 메커니즘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눈앞에 있는 언어 사용의 모습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

 위의 말은 "언젠가는 '왜 그런가'를 묻는 일을 그만두고,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나 역시 철학은 끊임없이 "왜 그런가?"를 묻고, 숨겨진 메커니즘을 찾아가는 학문이라고 생각했었다.)


272. I know. = I am familiar with it as a certainty.


355. I know it's a chair. 의자의 이름과 기능을 알고 있을 때

     I believe it's a chair. 의자라고 알고 있지만 의자가 맞는지 검증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400. fight windmills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유래. 실체없는 적과 싸우다, 헛된 농쟁을 벌이다, 본질이 아닌 것과 씨름하다 


402. Empirical proposition (실험명제), logical proposition (논리명제), hinge proposition (힌지명제)

 -실험 명제: 경험을 통해 참, 거짓을 확인할 수 있는 명제

 -논리 명제: 경험과 무관하게 논리적 형식만으로 참이 결정되는 명제

 -힌지 명제: 겉으로는 실험명제처럼 보이나, 의심, 검증 없이 사용하는 명제. 증거를 요구하기 보다 증거 사용의 배경이 되는 명제.

 예) 지구는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나는 두 손을 가지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명제들은 순수한 논리 명제도 아니고 평범한 실험 명제도 아닌, 힌지 명제로 보았다. <On certainty>의 핵심중 하나는 이 세번째 영역을 탐구하는 것.


424. surmise (충분한 증거 없이) 추측하다.


433. I know~ 라고 말할 때는 그것에 대한 의심이 전혀 없어야 한다.


450. A doubt that doubted everything would not be a doubt.

   (모든 걸 다 의심하는 의심이라면 그건 의심이 아닐 것이다.)


452. doubt (의심) 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은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합리적인 의심과 비합리적인 의심 사이엔 확실한 경계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477. ostensive: 가리켜보임으로써 의미를 알려주는 것.

     ostensive definition: 지시적 정의

     예) 아이가 "사과가 뭐야?" 라고 물었을 때, 실제 사과를 가리키며 "이게 사과야." 라고 알려주는 것


484. I know ~ 를 쓰는 올바른 방법은 어떨게 아는지를 언급하는 것이다. (how I know~)

   예) 1. I know he was at home yesterday; I spoke to him.

       2. 시력이 안좋은 사람이 저기 보이는게 나무인지 물어봤을때. I know it is a tree; I can see it clearly and am familiar with it.


495. scold: 화를 내며 꾸짖다.

     rebuke: 공식적. 강하게 질책하다.

     admonish: 상대를 바로 잡기 위해 점잖지만 진지하게 타이르다.


534. pleonasm: 의미상 불필요한 중복 표현. 군더더기 표현


625. A doubt without an end is not even a doubt.

    (끝이 나지않는 의심은 의심이라고 조차 할 수 없다.)

    의심이란 원래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끝날 수 있어야 한다. 

    의심하려면 무엇이 의심을 해소해줄것인지도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의심이 아니라 단순한 끝없는 회의나 말장난이 된다.



훨씬 더 많은 메모를 하며 읽었으나 그중 간추려서 올려보았다.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매우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고 처음엔 철학이 아닌 공학을 공부하였다. 

공학을 공부하던 중 수학의 기초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철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케임브리지에서 버트란드 러셀을 찾아가 철학을 공부하였고 러셀로부터 천재라고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기도 했고 잠시 철학을 떠나있는 동안 초등학교 교사, 정원사 보조, 수도원 생활 등을 경험하기도 했으며 다시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철학으로 복위하여 언어의 의미에 대해 연구하였고, 언어 게임 개념을 제시하였다.

그러면서 철학은 이론 구축이 아니라 언어의 혼란을 해소하는 작업으로 보았다.

1951년 케임브리지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얼마나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세상의 존재를 알게 된 느낌이다.

두껍지 않은 책이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원서라고 해도 해석 자체는 어렵지 않은 책이다. 이 책의 번역본이 나와있는지 조차 찾아보지 않았다. 번역본이라고 해서 더 쉬울 것 같지 않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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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6-26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걸 원서로 읽으신 엣지나인님!! 철학전공자들도 힘들어하는 비트겐슈타인 원서들입니다..^^;;
엔날에 전 번역본으로 읽었는데도 첨엔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부분이 많았는데...
핵심 질문...적어 주신 ˝의심과 증명이 가능하려면 의심하지 않는 어떤 배경이 먼저 있어야 하니 않는가?˝를 보니 읽었던 내용이 좀 기억이 납니다. 고생끝에 낙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요..ㅎㅎ

hnine 2026-06-27 07:47   좋아요 0 | URL
원서나 번역서나 어렵긴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 그냥 읽어버렸습니다.
이런 책은 ‘읽는다‘는 것보다,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해야할 것 같아요. 많은 과학 전문서들 역시 대중을 상대로 제목도 대중적으로 붙여서 나오지만 실제 내용은 그냥 ‘읽어넘어갈수있는‘ 정도가 아니듯이, 저 같은 사람이 철학서를 대할때도 그럴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답니다.
철학은 왜냐고 따지고 이해하려는 학문일 것이라고 생각해오고 있었는데,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저를 끌어들이고 말았습니다 ^^
yamoo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무조건 의심, 따지고 들기, 이것이 합리적인 의심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것도 그렇고요.
이미 옛날에 읽으셨다는 책을 기억속에서 소환해드리는데 일조를 해서 다행입니다.
더위에 건강하게, 전시회 준비 잘 해나가시리라 믿습니다.

Jeremy 2026-06-29 0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한국어로 해석까지 해가면서
철학서적 읽는 건 굉장히 Impressive 합니다.
저는 이런 책들은 한국어로 생각하는 게 더 힘들어서.

제가 철학관련 서적 읽을 때 참고하는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s://plato.stanford.edu/entries/wittgenstein/

아니면,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s://iep.utm.edu/wittgens/

아들이 Under Double Majors: Economics & Philosophy 했는데.

‘어차피 궁극적으로 Lawyer 되려고 진로를 정했으면
아예 Practical Use 와는 백만광년 떨어진 Philosophy 에 초집중해서
온갖 Humanity 과목들과 고전을 파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난 이민자라서 이런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냥 Biomedical 쪽으로 갔지만
넌 이런 Luxurious Option을 선택할 수 있쟎아?‘

약간은 질투?와 선망이 깃든 조언을 했지만
결국 제 뜻대로 전공을 정한 아들이
최근에 엄마 말대로 대학교 다닐 때 실컷 이 쪽 공부와
책을 읽을 걸 그랬다고 자주 말합니다.

hnine 2026-06-29 07:12   좋아요 0 | URL
Jeremy님, 올려주신 두 사이트 들어가봤어요. 매우 유용한 참고서가 될 것 같아요. 비트겐슈타인의 개인적인 생애에 대한 것은 이 두곳 검색해보면서 자세히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저 이 책 사실 아들 덕분에 읽게 되었어요. 방학이라고 집에 온 아들 여행가방 속에 있던 책 중 하나인데, 아들 말로는 제가 비트겐슈타인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샀다나요? 저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그러니 어찌 안 읽어볼 수 있겠어요. 제 아들도 전공이 이쪽은 아닌데 지난 학기 철학 수업을 신청해서 들었는데 그러면서 관심이 생긴 모양이어요.
Jeremy님이 아드님에게 해주셨다는 조언 정말 공감하는데요. 갈수록 인문학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시대에, 오히려 집중해서 공부해보는 것, 아무나 못하는 Luxurious choice 가 될 수 있다는 것이요.
질투가 섞인 조언이었다니, 만약 다시 선택을 하셨다면 다른 분야를 전공으로 택하셨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99% 다른 전공을 선택했을겁니다.

건강이 좋아지셔서 한국 방문하실때 더욱 더 좋은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자책] 이기적인 뇌 - 뇌는 왜 다이어트를 거부하고 몸과 싸우는가
아힘 페터스 지음, 전대호 옮김 / 에코리브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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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왜 다이어트를 거부하고 몸과 싸우는가'

제목만 달랑 있는 것보다 책 앞의 이 문장이 이 책에 대한 관심사를 높이는데 기여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원저는 독일어로 쓰였지만 영어로 해석한 제목은 그대로 The Selfish Brain 이다. 

수년 전에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제목의 책에서도 그랬지만 우리 몸에서 이타적으로 작용하는 시스템이란 없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도록 작동하는 예는 있을지 몰라도 (세포사멸과 같은) 이것조차 정상적인 세포들을 살려 그 해를 제한시키기 위해서 작동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과정이다. 이기적이라는 말은 그만큼 최우선으로 유지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뜻.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이기적이라는 말과는 좀 구별해서 이해해야한다.


현대에 이르러 우리는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배가 부르면 그만 먹는 자연스런 몸의 요구를 따르기 보다, 배가 불러도 먹기도 하고, 배가 고파도 참고 안먹기도 하며, 18시간 절식, 하루 단식, 등등 체중 감량의 목표를 위해 먹는 시간과 양을 조절하기도 한다. 그것은 과연 성공적인가? 단기적으로 말고 '장기적'으로.

사람들의 이런 욕구에 맞춰 제로 칼로리 음료와 음식이 상품화 되어 나오기도 했고, 소비자는 0 kcal 로 표시된 음식을 사먹으면서 안심하기도 하지만 칼로리를 가지는 설탕이 들어가지 않았다는데 여전히 단맛을 느끼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지, 그것들은 대체 우리 몸에서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알고 먹거나 마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다 먼저 <초가공 식품> 이라는 책을 읽고서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고, 그보다 먼저 나온 <이기적인 뇌>라는 책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장기적으로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여도 그 상태가 평생 유지되기가 어려운 이유, 제로 칼로리 음료를 먹어도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이기적인 뇌>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뇌는 자신의 에너지 공급을 최우선으로 확보한다"

는 것인데, 몸이 뇌를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뇌가 자기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우선적으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이기적인 뇌 이론 (Selfish brain theory)'이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 몸이 전체적으로 에너지원 결핍 상태가 되면 뇌는 지방과 근육 조직의 에너지도 동원하고, 심지어 식욕을 증가시켜 더 많은 에너지를 확보하려 한다. 다른 장기보다 먼저 자기 몫을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비만을 단순히 '의지 부족'으로 설명하지 않고 '뇌가 만성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상태'로 이해하려고 했다. 정상적인 상태의 에너지원이 공급되자 않은 상태에서 가짜 에너지원, 즉 제로 칼로리 음료나 음식이 들어오면 몸에 들어오는 열량 자체는 낮출수 있을지 몰라도 뇌는 원하는 에너지원을 공급받지 못했기 때문에 에너지를 얻어내고자 하는 사인을 몸에 계속 보내게 되고, 우리는 배는 불러도 계속 음식, 특히 단것이 당기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의지가 약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뇌의 보상회로가 강하게 활성화되어 다른 회로를 압도하게 되는 것이다.


몸이 뇌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몸을 지배한다.


이것과 관련하여 이 책에서 가장 빈번히 인용하고 있는 용어는 바로 '뇌-당김'이라는 용어일 것이다.

뇌-당김 (Brain Pull)

: 뇌가 몸으로부터 필요한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끌어오는 능력

저자가 보는 에너지의 흐름은 

환경 --> 몸 --> 뇌

뇌가 최종 소비자이다. 뇌세포의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뇌가 혈액과 몸의 에너지 저장고로부터 포도당을 더 공급받도록 신호를 보내는 데 이 과정을 Brain Pull, 우리말로 뇌-당김 이라고 부른 것이다.


뇌-당김이 약하거나 과부하를 받는 사람들은 간식 거리로 단 음식을 선호한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만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은 차츰 단 음식을 확실히 선호하게끔 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뇌의 전략이다. 당을 많이 함유한 음식이 몸의 에너지 수요를 가장 빨리 충족시킨다는 사실을 잘 아는 뇌가 그런 전략을 채택하는 것이다. 뇌로 공급되는 포도당이 극단적으로 부족하면 당에 대한 갈망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 당장 당을 섭취하려는 욕구가 발작적으로 강렬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당뇨병 환자들은 인슐린을 너무 많이 주입해 혈당 수치가 극적으로 낮아졌을 때 이런 갈망을 체험한다. (98쪽)


남들보다 많이 먹는다면 그것을 우리가 쾌락에 탐닉하거나 게으르거나 의지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우리 뇌의 에너지 수요를 평범한 식습관으로는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145쪽)


살빼기 노력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코르티솔이 인체에 일으키는 피해는 더 많이 쌓인다. 뇌는 점점 더 음식 찾기에 몰두하고 다른 일은 거의 하지 못한다. (184쪽)


뇌-당김이 약해져 있을 때 우리는 당을 많이 함유한 음식에 대한 욕구를 느끼게 된다. 스트레스 시스템을 안정적인 휴지 상태로 복귀시키고 다시 정상적인 기분을 되찾기 위해, 즉 뇌-당김 강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만성적 스트레스를 초래하는 일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체중 조절 자체가 과도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스트레스를 좀 줄일 수 있는 범위로 새로운 중립 체중을 정하는 것이 그 예이다. 


뇌-당김 강화: 몸이 더 가벼운 새 중립 체중을 발견하는 것 (204쪽)


또 한가지, 인공 감미료에 대해서이다. 인공 감미료로 인해 우리 몸에 거짓 메시지를 입력하는 일을 계속함으로써 뇌로 하여금 혼란을 가중시키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뇌는 이 불확실한 상황 (단것이 들어왔는데 정작 뇌에는 포도당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영양 위기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거듭 속고 나면 뇌는 위기 경보를 발령하고 그것은 "더 많은 영양분이 필요해!" 라는 신호가 되는 것이다. 

위조 에너지 (제로 칼로리), 인공 감미료 (제로 슈가)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상술에 놀아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상술에 속아넘어가고 그래도 빠지지 않는 체중을 위고비나 마운자로등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우리 몸은 망가져가면서 관련 회사들과 제약 회사들의 이윤을 챙겨주고 있다. 

책의 뒤로 가면 특히 어린 시절 가공 식품 의존도가 높을 경우 그것이 어떻게 평생 식습관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조사 결과와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방안 등을 제시해놓았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자기 자신에 맞게, 또한 몸이 보내는 신호에 맞게 살면서 (또한 먹으면서) 이 조화를 깨는 모든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는 것 (352쪽)


최소한 제로 칼로리 음료를 달고 사는 아들. 몸에 안 좋으니 마시지 말라는 말로는 전혀 효과 없는 아들 녀석에게 왜 안좋은지 설명해줄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 제시용으로도 읽기 잘한 책이다. 

오랜 시간 소요되는 장거리 여행중 기내에서 읽을 목적으로 전자책으로 구입했는데, 오고 가는 동안 다 읽을 수 있었다. 먼저 읽은 초가공 식품 책 보다 더 읽기에 수월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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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6-06-2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을 쓸 때보다 머리를 쓸 때에
‘밥‘이 더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몸을 가볍게 하고 싶으면
언제나 머리부터 가볍게 하면서
근심걱정이나 두려움 같은 결을
머리에서 치워야 한다고 느껴요.

hnine 2026-06-27 22:30   좋아요 0 | URL
몸을 쓸때보다 머리를 쓸때 탄수화물이 더 요구된다는 말씀 맞아요.
몸 가볍게 하기는 방법을 알아도 힘든데 머리 가볍게 하는 건 방법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근심걱정이나 두려움 같은 결을 머리에서 치우는 방법이요.

Jeremy 2026-06-29 0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우리의 뇌는 Highly Selective;
Blood-brain barrier (BBB) 는 탄수화물에서 나온 Glucose 를 가장 사랑하니까요.
물론 Glucose 는 Highly hydrophilic molecule 이라서
specialized carrier proteins, GLUTs (Glucose Transporters)한테 업혀 가야만 하지만.

책 읽으며 밥 많이 먹는 건 물론 간식과 주전부리도 입에 달고 사는 저의 Excuse.



hnine 2026-06-29 07:18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요즘 glusose를 포함한 탄수화물을 너무 죄악시 하는 것 같아서 불만입니다.
다른 영양소 다 필요 없다, 우리 몸에 가장 중요한 기관 뇌는 오로지 glucose만을 받아들인다. 이게 탄수화물 러버인 저의 excuse 랍니다.
BBB,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
 
Olive Kitteridge (Paperback) - NYT 선정 "100 Best Books of the 21st Century"
Strout, Elizabeth 지음 / Random House Inc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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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아노 선생님은 30대 초반. 나이로는 나보다 한참 젊다.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중 무겁고 진지한 곡을 칠때 그런다. 살면서 어둡고 힘들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치면 좋은데 자기는 아직 그 정도로 힘든 일을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올리브 키터리지 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고 했다. 인생의 밝고 즐거운 면 보다는 허망하고 쓸쓸하고 피할 수 없는 진실을, 겪은 듯 보여주는 책이라고. 선생님은 제목을 받아적었다.

그러고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나는 두번씩 읽은 책이고 피아노 선생님을 비롯해서 몇몇 친구들에게 권하기도 한 책인데, 과연 누구에게나 권할만 한 책이었는가.

이 책의 문학성이나 가치를 폄하해서가 아니다. 인간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보다,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관계가 어느 날 이해 못할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책, 사건보다는 내면, 쓸쓸함, 외로움, 분노, 체념으로 가득 찬 책. 다정한 면은 그저 간간히 표현되는 정도. 과장이 없어 더욱 몰입하게 되고 절절하게 느껴지는 책. 사람 사는게 이렇다고, 이런 진실을 꼭 책까지 읽으면서 알아야 할까. 읽어보라고 권할만 한가. 누구에게는 상처를 더 키우는 일은 아닐까.

안그래도 사는 건 만만치 않다. 몸으로 느낀다. 그래서 그걸 확인시켜 주는 어떤 것 보다 오히려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글의 필요성을 느낄 때가 많은데 말이다. 

저자에게 묻고 싶던 차에 이 책의 뒤에 보니 부록으로 출판사 독자 모임과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가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미국 메인주의 크로스비 마을의 도넛 가게에서 가상으로 만나 나누는 좌담의 글이 실려 있어서 흥미있게 읽었다. 서로 묻고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에게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중 어떠 인물이 가장 쓰기 쉬웠냐는 물음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바로 대답한다. 올리브 키터리지였다고. 그녀의 행보를 따라가는 과정에 확신이 있었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저자는 분명히 이 책을 쓰면서 올리브라는 인물에 대해 확실한 그림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저자가 올리브의 입장에서만 쓰지 않았음을 알수 있다는 것이다. 헨리와 드니즈의 관계를 읽으면서는 ('Pharmacy') 올리브를 생각하면 안타까우면서도 헨리 마음의 움직임과 드니즈의 순수함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건 'Starving'에서 하몬과 데이지를 볼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올리브라는 인물의 성격에 대해 적응이 되어있는 상태였음에도 아들 크리스토퍼가 지금까지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에 대해 무서울정도로 침착하게, 두려움없이, 거의 고발하는 수준으로 쏟아낼때 ('Security') 놀라는 올리브도 눈 앞에 보는 듯 했지만 동시에 그동안 크리스토퍼가 어릴 때부터 엄마로부터 받고 싶었으나 받지 못했던 것들이 얼마나 절실했던가 이해가 되어 가슴 아팠다. 

제일 우울하고 어두웠던 느낌을 받은 것은 'Tulip'. 인물 이해가 좀 어려웠던 것은 'Criminal'의 레베카. 

슬픔은 개인적이지만 삶은 개인의 비극을 배려하지 않고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준 'Incoming tide'의 케빈이 마지막에 패티를 구해내는 대목은 잊을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읽는 내내 절망과 회의를 주기만 한 것은 아닌가보다. 마지막 단편 'River'에서 70이 넘은 올리브가 아직은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한 것 처럼.


이 책을 통해 냉기 뿐 아니라 온기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안전하게 읽어보라고 권할 것이다. 나는 아마도 냉기를 좀 더 많이 느꼈는지도 모르고, 책을 책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너무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나이에도.

이 책의 저자에게 감탄한다. 그래서 이 책을 누구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기 전에 이젠 한번 더 생각할  것 같다. 읽는게 득이 될 사람인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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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5-25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생각입니다. 그러니깐, 이 책의 서늘한 문장들을 감당할만한 사람인가. 이런 경험이 없었는데, 이런 경험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이리 예민해져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요.
그래서, 저도 이 책이 참 좋았고, 한편으로는 좀 불편하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오늘 올려주신 글, 너무 좋아서 꼼꼼하게 잘 읽고 갑니다. 좋은 날 되세요^^

hnine 2026-06-04 09:46   좋아요 3 | URL
단발머리님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신 분이 계시다니 더욱 반갑구요.
위에 말한 저의 피아노 선생님처럼, 아직 삶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이런 책이 간접 경험도 되고 삶에 대한 시선을 멀리 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저처럼 웬만큼 연식이 있는 사람 (^^)에게는, 안그래도 고달프고 회의가 늘어가는 인생의 시점에서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고, 고개는 자꾸 아래로 수그러지게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저처럼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심각하게 보는건 아닐테고, 이런 책 쯤 읽어도 끄떡없이 자기가 살던대로 꿋꿋이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제가 또 너무 갔나요? ^^
분위기 전환겸, 지금 아주 다른 분위기의 책을 읽고 있어요. ‘나는 자유‘라는 제목의, 갈매기의 꿈을 쓴 작가 의 에세이인데, 분위기 전환이 되고 있네요.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벌써 더워 허덕거리고 있어요.

han22598 2026-06-04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리자베스 저는 좋아해요. 삶을 필터없이 바라보고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다정함을 잃지 않은 사람을 좋아해요.
무지성적 또는 감성적으로만 상황을 판단하면서 그것이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대충 넘어가는 게 더 불편해요.
삶이 그렇지 않을까요?

hnine 2026-06-05 01:29   좋아요 0 | URL
제가 올리브 키터리지를 처음 읽은게 2019년인데 이번에 읽을 땐 그때 쓴 저의 리뷰조차 다시 읽어보지 않고 그야말로 처음 읽는 기분으로 다시 읽었는데요. 느낌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싶었어요. 작품은 그대로 그 작품인데, 7년 동안 제가 달라졌다는 뜻이겠지요. 각 단편을 읽을 때마다 단편 속 주인공이 바로 저 자신인듯.
이렇게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인가 궁금해지더라고요. 작가는 여러 가지 직, 간접 경험을 거쳐 아주 냉철하게 삶을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저는 아직도 삶에 휘둘리는 사람인가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또 7년이 지나 다시 읽으면 그때는 어떤 느낌일지. 아무래도 살아있는 동안 최소한 한번은 더 읽을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차라리 위로와 위안이 필요한 책을 읽는 것이 신상에 좋지 않을까, 제가 쓰긴 했지만 이건 아주 sarcastic한 심사이고요, 저도 무조건적 긍정적이고 따뜻함을 의도한 책들 별로 좋아하지 않고 끌리지도 않아요.
이책은 정말, 단순히 한권의 좋은 책으로만 말하기 어려운 책이어요. 그보다 더 특별한 느낌을 쓰고 싶었는데 이상한 리뷰가 된듯 하네요. ^^
 
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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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름을 잘 기억못하는 편은 아닌데 일본 이름은 여전히 낯설다. 더구나 일본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 아니다보니 그나마 몇 권 읽었던 소설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와 미야모토 테루를 구별못하고 고른 책이 이 책 <환상의 빛>이다.

미야모토 테루. 1947년 일본 고베 출신으로 올해 79세,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중 한 사람이다. 서정시가 사라진 시대에 서정성이 두드러진 소설을 주로 써왔으며 <환상의 빛>은 1977년 그가 소설가로 데뷔하던 해에 발표한 소설이다.

"어제, 저는 서른두 살이 되었습니다." 주인공 여성 유미코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첫 페이지부터 확 빠져들 정도로 문장이 조용하면서도 매력있었다.

이렇게 이층 창가에 앉아 따스한 봄볕을 쬐면서 잔잔한 바다와 일하러 나가는 그 사람 차가 꼬불꼬불 구부러진 해안도로를 콩알만 하게 멀어져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몸이 다시 꽃봉오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삐걱삐걱 오그라드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말하는 대로 눈 앞에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것 같았다.

바닷가 마을로 시집온 유미코는 올해 32살. 칠년 전에 남편이 아무 이유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고 결국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유미코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하여 새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죽은 전남편의 환상을 보며 계속해서 한 가지 질문에 사로잡혀 사는데, "왜 그는 그날 떠났을까?" 하는 것이다.

하늘색 와이셔츠 위에 회색 블레이저 코트를 입고 약간 등을 구부린 특유의 모습으로 혼자 묵묵히 이슥한 밤의 선로 위를 걷고 있는 당신의 뒤를 좇으면서 저는 열심히 그 마음속을 알려고 기를 썼습니다. (23)

작품은 사건의 원인을 설명하지 않는 대신 남겨진 사람이 느끼는 이해할 수 없는 상실과 질문을 따라간다. 남편이 왜 죽었는지를 밝혀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끝내 알수 없는 이유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혼을 빼가는 병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깊은 곳에 있는 중요한 혼을 빼앗아가는 병을, 사람은 자신 안에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 절실하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 , 보세요. 또 빛나기 시작합니다. 바람과 해님이 섞이며 갑자기 저렇게 바다 한쪽이 빛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쩌면 당신도 그날 밤 레일 저편에서 저것과 비슷한 빛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82)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유미코는 바다 한쪽이 빛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그 심상치 않은 기운이 누군가의 마음을, 혼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두번째 단편 <밤 벚꽃>에서도 비슷한 정서가 느껴진다.

주인공 아야코는 남편 유조의 외도로 이혼했고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일년 전 아들 슈이치마저 교통사고로 잃는다. 벚꽃이 한창이던 봄 날, 어떤 신혼 부부가  찾아와 아야코의 집 2층 방에서 하루만 자고 갈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해온다. 어떡해야 할지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가 마지못해 허락을 한 아야코는 그날 밤 활짝 핀 벚꽃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드는데, 이 순간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정서가 있고 그 속에서라면 자기가 아닌 무엇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감상에 빠진다.

이 단편 역시 특별한 줄거리가 있다기 보다 서정적인 감정의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


세번째 단편 <박쥐>에서 주인공 남자는 오래전 고등학교때 친구였던 란도의 소식을 듣는데, 란도가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야쿠자 조직에 들어갔다가 죽었다는 소식이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란도가 퇴학당하게 된 사건에 관련이 있던 주인공은 자신과 다른 부류의 인간이라고 여겼던 친구 란도의 그 당시 상황과 자기의 현재 상황이 시간차가 있을 뿐 묘하게 닮아 있음을 발견 한다. 


마지막 작품 <침대차>에서는 주인공 남자가 출장을 가느라 타게 된 침대차에서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나게 되고 그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것을 계기로 어린 시절의 잊을 수 없는 한 사건을 떠올린다. 


이 책에 실린 네 작품은 공통적으로 상실, 외로움, 불안을 그리고 있다. 확실한 사건이나 기억 대신, 모호하고 뚜렷하지 않은 기억을 얘기한다. 줄거리보다는 분위기이며 해결되지 않는 물음이다.

이중 <환상의 빛>은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영화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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