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플롯 짜는 노파
엘리 그리피스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옆의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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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엘리 그리피스의 본명은 도메니카 데 로사. 1963년 영국 런던 태생으로, 범죄 소설을 발표하면서 엘리 그리피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이 책 바로 전에 읽은 <낯선 자의 일기>와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이 책 역시 범죄 소설이고, 범죄 소설이라고는 하나 그리 무겁고 잔인하지 않으면서 긴장과 재미를 주는 작품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주인공은 90세 노인 페기 스미스. 하지만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바로 이 노인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페기 스미스는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는 90세 노인이긴 하지만 단순히 요양원에서 늙어가는 노인이 아니라 사람들을 관찰하기 좋아하고 범죄 소설을 열심히 읽는 취미가 있다. 특히 살인 플롯을 구상하여 기성 추리소설가들에게 살인 플롯을 제공함으로써 작가들의 책 앞 감사의 글에 자주 이름이 언급되기도 하는 그런 노인이었는데, 노령이라는 것을 제외하곤 특별히 건강에 위험한 징후도 없던 그녀가 어느 날 자기 방 의자에 앉아 죽은 채 발견된다. 이것이 이 소설의 시작이다. 페기 스미스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것은 그녀를 돌보던 간병인 나탈카이다. 죽음의 원인은 표면적으로는 협심증에 의한 자연사이긴 하지만 사후에 그녀의 방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몇 가지 단서들을 보고 나탈카는 단순 자연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페기 스미스와 친분이 있던 몇몇 주변 인물들의 도움을 요청하며 나탈카는 페기 스미스의 죽음을 파고들고자 한다. 이후 페기 스미스의 도움을 받아 살인 플롯을 작품 속에 담았던 다른 작가가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페기 스미스의 죽음과 연관성이 있음이 드러나자, 과거 페기 스미스의 행적을 따라가 보는 수사가 진행된다.

살인 플롯을 작가들에게 제공해 왔다는 노인 페기 스미스란 인물도 흥미롭지만, 이 사건을 헤쳐 나가는 인물도 흥미롭다. 사건 담당 경찰은 <낯선 자의 일기>에서 담당 형사로 등장했던 하빈더 형사가 여기서도 등장한다. 그녀 혼자 임무를 수행하는 대신 여기서는 아마추어 3총사가 활약하는데, 이들의 이력과 성격도 특이하다. 나탈카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이민자로서 죽은 페기 스미스의 간병인이었고, 페기 스미스의 요양원 이웃이자 평생 홀로 살아온 노인 에드윈, 수도사로 살아오다가 나와서 카페를 운영하는 베네딕트. 나이, , 정체성 모두 따로따로인 이 세 사람과 형사 하빈더의 경험과 장점이 어우러져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을 보는 재미, 숨겨져 있던 페기 스미스의 과거 이력이 밝혀져 가며 사건에 실마리가 풀려가는 재미가 이 소설의 매력이다. 범죄 소설이라고만 보기엔 아기자기하고 유쾌하다.

전문 작가도 아닌 한 노인에게서 기성 작가들이 살인 실행의 아이디어를 도움받는다는 설정, 그 노인의 죽음에 이 일이 관련된다는 점이 이 소설을 색다르게 만들었다.

원제는 The Postscript Murders. 그대로 직역하면 추신 살인들’, 또는 추신으로 이어지는 살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편지나 글의 마지막에 덧붙여진 말 (추신)이 살인을 불러온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 노인이 죽은 방에서 메모가 적힌 쪽지가 발견되기도 하였고, 노인이 살인 플롯을 제공한 작가들의 책에는 노인의 이름이 언급되며 감사의 뜻이 적히기도 했다. postscript를 어떤 기록의 이후라고 해석한다면 제목 postscript murders어떤 기록이나 출판물이 나온 후 일어난 죽음이라고, 확장된 의미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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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1-13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어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hnine 2026-01-13 20:53   좋아요 0 | URL
재밌습니다. 저자의 다른 책으로 13권짜리, 5권 짜리, 동일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범죄소설 시리즈가 있더라고요. 기회가 되면 그것도 읽어보고 싶어요.
 
낯선 자의 일기
엘리 그리피스 지음, 박현주 옮김 / 나무옆의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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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엘리 그리피스의 2018년 작 범죄소설이다.

40대 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클레어 캐시디는 이혼 하고 딸,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으며, 영어 교사이면서 홀랜드라는 작가의 전기를 쓰는 작업도 하고 있다. 홀랜드는 빅토리아 시대 살았던 고딕 문학 작가이고 낯선 사람이라는 단편 공포 소설로 잘 알려져 있으며 클레어 캐시디가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 학교의 별관은 과거 홀랜드라 살았던 집이기도 하다는 인연을 갖고 있다.

어느 날 클레어의 동료 교사이며 절친이기도 한 엘라가 죽은 채로 발견되는데 엘라의 시신 옆에는 클레어가 전기를 쓰고 있는 작가 홀랜드의 낯선 사람의 한 구절이 적힌 쪽지가 떨어져 있다. “지옥은 비었다.”라는. 이어서 클레어가 쓰고 있는 일기장에 누군가 안녕, 클레어. 당신은 나를 모르죠.”라는 문장을 적어 놓은 것을 발견한다.

담당 형사는 하빈더. 30대 여성이다. 엘라는 누군가에게 살해되었고 클레어의 일기장에 메모를 남긴 사람과 동일범일 것이라고 보고 수사를 한다.

클레어의 십 대 딸 조지아는 문예 창작 수업을 받아 가며 엄마 몰래 자신만의 추리소설을 써가며 엄마 클레어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함께 풀어가고자 한다. 형사 하빈더는 클레어의 일기장에 메모를 남긴 범인이라면 클레어 주위 인물 들중 하나일 것이라고 보고 클레어와 살해된 엘라가 재직했던 학교의 관련 인물들은 물론, 딸 조지아와 그 친구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나간다. 그러던 중에 제2의 피해자가 나타나고 그 역시 클레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교사이다.

이 소설은 클레어, 하빈더 (형사), 조지아 () 이렇게 세 사람이 돌아가며 화자가 되어 구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세 사람은 각각 40, 30, 10대 모두 여자. 사건이 일어난 배경은 현대이지만 홀랜드라는 작가가 관련된 시대는 빅토리아 시대이고 그가 남겼다는 낯선 사람이라는 단편도 함께 실려 있을 뿐 아니라, 범인이 현장에 남긴 문구들도 홀랜드의 작품이나 셰익스피어의 작품, 윌키 콜린스의 흰옷을 입은 여인등에서 인용함으로써, 이 소설 전체에 현대와 고딕의 분위기를 넘나드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긴장감을 더해준다.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500여 쪽의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범인이 누구일지 짐작하기 어렵다.

작가 엘라 그리피스는 1963년생. 영국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고 도서관, 잡지사, 출판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이미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였고 그 중엔 백만 부 이상 판매된 시리즈도 있을 뿐 아니라 이 소설 낯선 자의 일기는 그녀에게 2020년 에드거 상 최우수 장편소설 상을 안기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범죄소설로 포스트스크립트 머더 (우리말 제목은 살인 플롯 짜는 노파’)‘가 있고 이 책을 다 읽자마자 연이어 읽고 있는 중이다.

오랜만의 범죄 추리소설 읽는 재미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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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2-31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의 딸을 연상시키는 일종의 역사추리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넘 재미있어 보이는데 눈이 나으면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hnine 2025-12-31 13:33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아직도 눈이 불편하시군요. 시간의 딸은 제가 아직 안읽어봤는데 이 책 낯선자의 일기가 그에 미치는지 모르겠어요. 둘다 영국 여성 작가이고 추리, 범죄 소설을 주로 쓴 작가네요.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카스피 2026-01-01 14:09   좋아요 0 | URL
시간의 딸은 역사 추리소설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고 합디다.시간되시면 일독을 추천드립니다.
hnine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nine 2026-01-01 18:43   좋아요 0 | URL
안읽을수 없겠습니다.
카프리님, 눈 어서 회복하셨으면 좋겠고, 새해에도 자주 드나드는 서재 친구였으면 좋겠습니다. ^^
복 많이 받으세요.

페크pek0501 2026-01-01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겠는데요. 제가 범죄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은 적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걸 공부하면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릴 때 인간의 특성이 나올 것 같거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hnine 2026-01-01 18:47   좋아요 0 | URL
글쓰는 것 좋아하는 분들이 인간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관련 분야에 대한 관심도 큰 것 같아요.
범죄심리학도 그런 차원이시지요?
극단적인 상황에서 본성이 나오는 것 같다는 말씀에 동의해요. 그러기 전에는 우리 자신도 어쩌면 그것을 모르고 살아올지도 모르겠고요.
페크님, 새해에도 꿈에 한발짝 다가가는 해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락방 2026-01-0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재미있을 것 같아요. 담아갑니다. 후훗.

hnine 2026-01-01 18:48   좋아요 0 | URL
페이지가 쑥쑥 넘어갑니다. 읽어보세요. ^^

루피닷 2026-01-01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hnine 2026-01-03 05:33   좋아요 0 | URL
네, 지난 해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아서 올해는 저도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하려고 해요.
루피닷님도 건강하세요. 좋은 글 종종 올려주시고요.
 
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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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을, 같은 사람이 읽는데 이렇게 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을까.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만 이 책은 나에게 또 한번 그런 예가 되어 주었다. 스물 몇살,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끝까지 다 읽기는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명성만큼의 감흥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삼십 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 책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몇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 몰입하여 읽고 있었다. 


인생이라는 것은 내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는 하나의 실험이다. 선배들이 인생을 살았다고 해서 그것이 나한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내가 귀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면, 나는 인생 선배들이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16쪽)



자기가 한 일로 얻은 평판, 즉 자기에 대한 자신의 평가에 얽매여 있는 노예이자 포로일 뿐이다. 세간의 평판은 우리 자신의 사사로운 평가에 비하면 나약한 폭군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 아니 결정한다기보다 암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소위 체념이라는 것은 고착된 절망에 불과하다. 우리는 절망의 도시를 떠나 절망의 시골로 들어가서 밍크와 사향쥐의 용기*에서 위안을 찾아야 한다. 진부하지만 무의식적인 절망은 인류의 경기와 오락이라고 불리는 것 밑에도 숨어 있다. 거기에 놀이는 전혀 없다. 놀이는 노동 뒤에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망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지혜의 한 특징이다. 


*밍크와 사향쥐는 덫에 걸리면 다리를 제 입으로 물어뜯어서라도 벗어난다고 한다. (책 속의 주석) (14쪽)


절망이 고착하여 체념이 되고 운명으로까지 받아들이면서 그 절망은 어디에 근거하는지 우리는 제대로 보고 있는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알게 된 본성에 근거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한 어떤 일로 얻은 세간의 평판에 의해서인지. 밍크와 사향쥐 조차도 위기의 순간에서 벗어나고자 다리를 입으로 물어뜯는 방법을 써가며 최선을 다하는데 우리는 절망에 절망을 더하여 고착화시킨 삶을 택하고 있지는 않는가. 

무의식적인 절망이 팽배한 그 절망의 도시를 떠나 시골로 들어가, 인간이 아닌 자연에서 발견하는 것이 있고, 절망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지혜라고 했다. 숲속의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을 하기 위해 인간은 지혜를 발휘하여야 한다. 인간의 지혜란 동물의 본능일 뿐이다.


거짓투성이의 인간 사회여

세속적 위대함을 좇느라

천상의 온갖 안락이 허공에 흩어지는구나.

(46쪽, 조지 채프먼, 시인)


날마다 아침은 나에게 자연과 같이 소박하고 순결하게 살라고 권했다. 나는 그리스인들처럼 진지하게 새벽의 여신을 숭배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호수에서 목욕을 했는데, 그것은 하나의 종교 의식이었고, 내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기도 했다. 

하루 중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시간인 아침은 각성의 시간이다. 

우리 자신의 타고난 천성 덕분에 잠을 깨는 게 아니라 하인이 기계적으로 흔들어주기 때문에 잠을 깬다면, 공장의 종소리 대신 천상의 음악이 보내오는 파동과 대기를 가득 채운 향기와 함께 우리가 새로 얻은 힘과 내면의 열망에 의해 깨어나 전날보다 더 고결한 삶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그런 날을 과연 하루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날에 대해서는 별로 기대할 게 없다. 

하루하루는 어제 내가 더럽힌 시간보다 더 이르고 더 신성하고 더 찬란하게 빛나는 새벽의 한 시간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삶에 절망하여 어두운 내리막길을 따라가고 있는 사람이다. (130쪽)


아침의 몇시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아침에 눈을 뜨면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너무나 고마운 사람으로서, 한번만 읽을 수 없는 구절이었다.

이쯤 읽었을 때 잠시 쉬면서 저자 소개를 다시 읽어보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고, 이 책의 제목 '월든'은 콩코드의 숲 속에 있는 호수들 중 하나이며 소로가 손수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2일을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4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잠시 떠났던 때를 제외하고는 소로는 거의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 열여섯 살에 장학금을 받고 하버드대학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엔 콩코드로 돌아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학교 방침에 불응하여 3주 만에 그만 두었다. 다음 해에 사설 학교를 차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형과 함께 자신의 교육 이념에 따른 학교 운영에 집중하였으나 형이 병에 걸리는 바람에 2년 만에 학교를 문닫을 수 밖에 없었다. 소로는 랠프 월도 에머슨과 친분을 가지며 초월주의* 문학의 일원이기도 했고 초월주의 문학 기관지를 편집하는 일에 종사하였다. 

(*초월주의, transcendentalism: 실재를 인식함에 있어서 객관적 경험보다 시적, 직관적 통찰력을 중시하는 태도)

28세 되던 해에 소로는 에머슨의 동의를 얻어 에머슨이 구입해놓은 월든 호수 주변의 땅에 손수 집을 짓고 숲속에서의 독거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이 곳에 머물면서 그는 <월든>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에만 직면해도 인생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고, 죽을 때 내가 인생을 헛산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매우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체념하고 싶지도 않았다. (132쪽)


그는 이 책에서 한번도 외롭다고 하지 않는다.


내 집에는 많은 친구가 있다. 특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아침에는 더욱 그렇다. 월든 호숫가에 살면서 떠들썩하게 웃어대는 물새나 월든 호수 자체가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저 외로운 호수가 도대체 어떤 친구를 갖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호수는 그 파란 물속에 푸른 악마가 아니라 푸른 천사들을 갖고 있다. 태양도 혼자다.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태양이 둘로 보일 때도 있지만, 하나는 가짜다. 하느님도 혼자다. 하지만 악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악마는 많은 패거리를 거느린 군단이다. 목초지의 현삼이나 민들레, 콩잎, 괭이밥, 등에, 호박벌이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209쪽)


혼자일 망정 외롭지 않을 수 있다.

그는 숲속 오두막에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고 살지 않았다. 날마다 또는 하루 걸러 마을로 걸어가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적당량만' 받아들이면 나뭇잎의 흔들리는 소리나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처럼 나름대로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는 말 (253쪽) 에서, 적당량만 받아들임이 곧 소로 다움일 것이다. 관심을 넘은 간섭, 선을 넘는 관여를 피할 수 있을 때 기분이 상쾌한 소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 전반에 숲 속 독거 생활에 대한 자기 소신과 자연에 대한 관찰이 잘 어우러져 있다. 일반적으로 처음 이 책을 대할때 지루하게 느껴질 부분이라면 아마 자연에 대한 묘사가 이어지는 곳이 아닐까 싶은데, 이번에 읽을 때에는 새나 식물, 여우, 마멋 ,오리등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 집단으로 뭉뚱그려 읽히는 대신, 인간과 동등한 하나의 개체, 하나의 대상으로 인식이 되다보니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너무나 빠르게 변해가는 인간 사회, 소신보다 남의 이목과 남의 기준에 휘둘리기 쉬운 사회에 나도 어지간히 물려 있나보다 생각했다. 본성과 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존이라는 순수한 목적에 따라 포기하지 않는 생을 이어가는 것은 인간 외의 모든 자연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소로는 자연을 관찰하고 느낀 점들을 얼마나 시적이고 아름답게 묘사했는지 모른다.


언젠가 나는 우연히도 무지개의 한쪽 끝부분에 서본 적이 있다. 무지개는 아래쪽 대기층을 가득 채워 주위의 풀과 나뭇잎을 물들였고, 나는 마치 착색된 수정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처럼 눈이 부셨다. 세상을 무지갯빛 호수였고, 나는 잠깐이나마 그 호수에서 돌고래처럼 살았다. 그것이 좀 더 오래 지속되었다면 내 일과 삶까지도 무지갯빛으로 물들었을지 모른다. (309쪽)


곧 이어 내가 이 책에서 최고라고 꼽은 대목이 나온다. 


날마다 멀리까지 낚시와 사냥을 나가거라. 점점 더 널리 돌아다녀라. 많은 시냇가와 난롯가에서 불안해하지 말고 편히 쉬어라. 젊은 날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새벽이 오기 전에 근심걱정에서 깨어나 모험을 찾아 떠나라. 낮에는 날마다 다른 호숫가에 있도록 하라. 그리고 밤에는 어디에 있든 집처럼 편안하게 지내도록 하라. 이곳보다 넓은 평야는 없고, 여기서 즐길 수 있는 놀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이 사초나 고사리처럼 너의 본성에 따라 마음껏 자라도록 하라. 천둥이 울리면 울리게 내버려둬라. 그것이 농부의 수확을 망치겠다고 한들 어쩌겠느냐? 그것은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수레와 헛간으로 달아날 때 너는 구름 아래로 피하라.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을 너의 직업으로 삼지 말고 도락으로 삼아라. 대지를 즐기되 소유하지 마라. 모험심과 신념이 모자라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금 있는 곳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무언가를 사고팔면서 농노처럼 삶을 헛되이 보내고 있는 것이다. (316쪽)


낚시, 사냥, 천둥, 도락 등의 말을 단어 뜻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마음에 담는다. 이 책의 주제가 잘 요약하여 드러난 부분이라고 내 맘대로 받아들인다.

소로는 세속을 피해 숲속으로 들어가 은자의 생활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소로 자신이 생각하는 삶다운 삶을 선택하여 실행에 옮긴 용기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기준과 가치보다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것이 소로가 생각하는 삶이고 자유였다.


나는 언덕으로 에워싸인 풀밭에 서 있는 것처럼 이 눈 덮인 평원에 서서 우선 30센티미터 높이의 적설을 뚫은 다음 다시 30센티미터 두께의 얼음을 뚫어 내 발밑에 창문을 낸다. 그런 다음 물을 마시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아 물고기들의 조용한 거실을 내려다본다. 호수 속은 마치 젖빛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듯한 부드러운 햇살로 가득 차 있고, 바닥에는 여름처럼 반짝이는 모래가 깔려 있다. 이곳도 해질녘의 호박색 하늘처럼 잔잔한 평온함이 지배하고 있어서, 호수 주민들의 차분하고 한결같은 기질과도 잘 어울린다. 천국은 우리의 머리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우리의 발밑에도 있는 것이다. (438쪽)


이렇게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을 쓴 소로는 온순하고 순응적인 사람이었을까?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학 졸업후 처음 갖게 된 초등교사 자리를 강압적인 학교 분위기가 마음에 안들어 3주 만에 박차고 나왔으며 월든 호숫가에서 지내는 동안 정부에 반항하여 투옥이 된 적도 있다. 노예제도를 허용했던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책 내용중에도 나오고 '시민 불복종'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한 바도 있는, 사회적 관심과 양심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많은 저서를 남기지도 않았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책으로 출간된 것은 이 책을 포함하여 두권에 불과하고 그 밖에 여기 저기 발표한 글과 평생동안 계속 써온 일기가 그가 죽은 후 뒤늦게 출간되었다고 한다.


소로의 월든은 자연과 함께 산 그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주요 목적은 무엇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단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산 기록이다. 

더 늦기 전에, 더 나이들기 전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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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6-01-01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6쪽) 각자의 인생과 스토리가 있을 뿐이니 사실 남의 삶을 보고 배울 것도 없는 셈이죠. 천 명이 있다면 천 개의 사랑이 있듯이.
132쪽) 그야말로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사는 거네요. 데미안의 구절처럼.-˝나는 오직 내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삶을 살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리 어려웠을까?˝- 제가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저도 월든, 리뷰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ㅋㅋ^^

hnine 2026-01-01 18:55   좋아요 0 | URL
아, 페크님 리뷰 읽어보러 가야겠어요.
‘좋은 책이기는 한데 지루하다‘ 라고 누가 그랬어?!!‘ 그러고보니 저도 예전에 조금 읽다가 그래서 관뒀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엔 너무 너무 좋았어요. 도서관에서 빌려온게 아니라면 밑줄을 여기 저기 그었을거예요.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따라 하는게 더 쉬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을 깊게 하기 싫어서, 또 용기와 자신감의 결여도 이유인 것 같고요.
 
숲속의 자본주의자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고 완전한 삶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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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남의 말이나 글의 의미를 따지며 곰곰히 생각하는 만큼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나의 어떤 결정을 내가 내리고 있나, 아니면 주위에 의해 결정지어지는가.

이 책은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숲속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물질적 가치에서 벗어난 생활을 칭송하는 책도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든가, 저런 사고 방식이 부럽다고 생각할게 아니라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받아들이고 나에게 솔직해질 수 있으면 좋겠고, 작가도 아마 그런 의도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와 저자의 남편 모두 한국에서 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저자 먼저 직장을 그만 두고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주를 하였고 곧 이어 남편도 직장을 그만 두고 미국 생활에 합류를 하였다. 한국에 있는 집을 팔았고, 그 돈으로 미국에서 땅을 구입, 집을 짓고 산다. 미국으로 이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로 가는 대신 이 분의 경우 도시가 아니라는 것뿐, 특별할 것은 없다. 한국에서 직장을 그만 두고 왔으므로 생계수단이 있어야 했고, 저자가 시도한 것은 가지고 있는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었다.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한다. 당연한 일이다. 기자로 일하던 사람들이었으니 글을 써서 투고도 하고 책도 쓰면서 아이 둘을 키우며 살고 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누구나 알만한 신문사 기자로 일하다가 도시를 벗어난 생활을 하게 된지라 적응이 필요했고 그러는 과정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진게 많은 것이 부자인 것은 맞지만,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난한 지 부자인지 잘 모르겠다. 실제로 소득은 극히 적다. 그러나 그 돈으로 사는 데 어려움도 아쉬움도 없다. 돈으로 온갖 시도를 해보았다. 한동안은 '소확행'과 같은 사소한 사치가 좋아 보일 때도 있었고,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여 돈을 모으는 무한도전에 몰두한 적도 있는데, 이제는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돈을 아끼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돈이 아껴야 할 그런 소중한 대상인가 싶어진다. (129쪽)


돈이 아껴야 할 그런 소중한 대상인가 싶어진다는 말이 새롭게 들린다. 저자는, 전반적인 소비를 최소화해서 무소유에 가까운 삶을 목표로 하지 않았고 좋게 보지도 않는다. 돈을 쓰며서 또는 쓰지 않고 아끼면서 얻는 것은 행복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문제는 돈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필요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안에서 풍요자유를 구할 수 있다. 2달러짜리 물이 지금 이 순간 필요한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통해서 누리고 싶은 기분은 정확하게 무엇인가? (131쪽)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필요한 일이고 인간의 자연적인 욕구이기도 하다. 다만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대개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 규정되어 나는 정작 원하지도 않는데 그것을 가지기 위해 현재의 여러 가지를 희생하며 살고 있는 것이라면.


돈으로부터의 자유는 돈을 끝없이 가져서 나의 인간다운 특성으로부터 달아나 완벽한 권력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아예 버려서 내가 인간으로서 소비하며 느끼는 즐거움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돈을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다른 가치로 무한히 전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집 또한 부동산 가치 자체가 아니라 안전한 공간에서의 휴식,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과 같은 가치로 누리는 것처럼 말이다. (148쪽)


소비로 자신을 채우고 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저자는 그것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 자기 삶의 철학을 얘기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건 자존감이 아니라 적극적인 탐구 끝에 얻은 나에 대한 이해다. 언제, 어떤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지, 무엇이 나를 채워주는지, 어떤 거리감이 좋은지, 나를 아는 만큼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쫓아다니지 않을 수 있다. 시골에 오지 않아도 궁금해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이다. (257)


우리 사회는 획일화된 패턴의 삶에서 조금 벗어나 사는 것 같은 사람을 가만 두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이 많이 읽힌 것은 아닌가 생각하면 아이러니 하기도 하지만, 이제 사회로부터의 그런 기준, 시선, 잣대로 인해 잊고 무시하고 살았을지 모를 나 자신을 들여다봐야 할 때이다. 그러한 사고,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우리는 도시에 살든, 숲속에 살든, 진정 나로 살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신이 있다면 인간을 놀리는 걸까? 인간이 간절히 원할 때는 들어주지 않다가, 막상 그런 변화가 필요 없어지면, 변화가 찾아오는 게 얄궃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원인은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그만뒀다. 대신 나의 주인이 됐다. 지금을 나의 행동, 나의 책임,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불행이나 잘못의 원인과 책임을 나에게 돌리지 않고, 그 상황을 내 일부로 인정했다. 내 힘으로 잘못과 불행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내 것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그 상황의 중심에 선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보다 더 상위의 강력한 힘은 변화가 필요 없는 맥락와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 정도의 힘이 생기면, 변화가 드디어 저절로 찾아온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변화가 아니라 변화가 필요 없는 맥락에 모든 것이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102쪽)



저자가 책에서 자주 언급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뒤이어 읽고 있다. 오래 전에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몇 페이지 읽고 바로 접어두었던 책이 지금은 마음에 쏙쏙 들어오는 것은 그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일까, 내가 그때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현명한 사람, 존경할 만한 사람, 성공한 사람. 그들 조차도 무수한 가능성 중 단 하나의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보지 않은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그들은 할 말이 있을 수가 없다. 인생과 성공과 완벽에 대한 기준을 버리는 것이다. 인생은 그저 사는 것이지, '잘'살아야 하는 숙제가 아니다. 아무도 '잘' 살 수가 없다.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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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18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책 <도시인의 월든>도 읽어보면 소로의 <월든>에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더군요.

hnine 2025-12-19 05:08   좋아요 0 | URL
이 책중에 인용도 자주 되어 있듯이 이 작가가 소로의 월든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서 저도 지금 읽고 있는데, <도시인의 월든>도 읽으면 더 잘 이해가 되겠군요.
좋은 책을 한권 읽고 나면 이어서 읽고 싶은 책이 연달아 생겨서 숙제 같기도 하지만 즐겁습니다.
 
독일어 시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
지그프리트 렌츠 지음, 정서웅 옮김 / 민음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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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를 모델로 한 소설 하면 서머싯 모옴의 <달과 6펜스>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검색해보니 그 외에도 몇 작품이 있지만 내가 읽은 것은 <달과 6펜스>가 유일하고 이제 한권 추가되었다.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 에밀 놀데를 모델로 한 바로 이 소설 <독일어 시간>이다.
그걸 알고 집어든 책이고, 내용이 난해하거나, 지루하지도 않은데 왜 그리 읽는데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결국 끝냈다.
1, 2권으로 되어 있는데 알라딘에서 리뷰 올릴땐 리뷰 한편당 두 권 선택이 안되니 1권만 읽은 것 처럼 올라가지만 아시는 분들은 아실 것.
화자가 되는 것은 '지기'라는 이름의 아이. 의도적인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의 저자와 이름이 같다.
소년 감화원의 독일어 작문 시간에 백지로 제출한 벌로 혼자 독방에 감금되어 있어야 하는 소년 '지기 예프젠'. 그가 작문 노트를 백지로 제출한 이유는 '의무의 기쁨'이라는 제목에 합당한 추억들을 불러들이느라 시간이 가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년 '지기'가 떠올린 추억은 어떤 추억일까? 그 추억이 결국 이 소설의 내용 전체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 경찰서에서 근무하던 아버지기 맡은 임무는 외딴 집에 고립되어 있는 화가 난센의 거동을 살피는 일이었다. 지기는 이웃 화가 난센의 작업에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는 동시에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데만 열의를 보이는 아버지를 지켜본다. 여기서 화가는 짐작하다시피 소설의 모델이 된 에밀 놀데이다. 아버지라는 인물이 맹목적인 복종심으로 관철된 의무감으로 사는 사람을 나타낸다면 화가 난센은 역시 독일인이지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체제에 반항할 줄 아는 자를 나타낸다. 서로 대립되는 입장이지만 둘 다 당시 독일인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소년 지기는 둘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목격하는 자이다.
화가는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하는 소년에게 그림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림을 보는 법을 가르친다.


본다는 것은 뚫고 들어가 증대시키는 거야. 또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이기도 하지. 너다워지기 위해서는 항시, 사물을 바라볼 때마다, 너 자신을 찾아내야 해. 발견되는 것은 사실화되는 거야. 
사물을 바라본다는 것은 너 자신도 동시에 바라보는 거야. 네 시선이 다시 네게로 되돌아오는거지. (131쪽)

11살 소년이 알아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느꼈을 것이다.
창작 금지의 감시라는 아버지의 의무에 대해 소년 지기는 화가의 그림이 압수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화가의 그림을 몰래 빼돌려 자기만 아는 장소에 보관하게 되는데, 이것이 나중엔 화가의 그림을 훔친 것으로 되어 소년원에 송치되고, 그의 의도를 분석하기 위해 소년원 원장과 심리학자로부터 심문을 받게 된다. 
네가 왜 여기 있는지 아느냐는 질문에 지기는 대답한다.


'그림들을, 제 아버지가 찾아다니는 그림들을 안전한 곳에 옮겨놓은 것 때문이지요. 그것뿐입니다.'


환각적 방어반응이니, 전향적 공격성이니, 생소한 용어로 그의 행위를 설명하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심판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이곳에 보낸 겁니다. 소년들을 말예요. 옳지 않은 양심들을 배에 실어 이곳에 날라놓는 것입니다. 그래야 즐거운 마음으로 아침밥을 먹고 밤에는 그로그주를 홀짝거릴 수 있겠지요.'


소년 지기를 통해서 작가는 독일인의 마지막 양심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독일인에게도 그런 양심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음을.
1926년에 독일에서 태어나 17세때 해군으로 징집되어 참전, 탈영하였다가 연합군의 포로가 되기도 했던 작가는 후에 대학에서 영문학, 철학을 공부하고 기자 생활을 거쳐 창작 활동에 전념한다. 42세때 발표한 <독일어 시간>은 출간되자 마자 독일에서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발판이 되어 1999년엔 괴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4년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그프리트 렌츠의 <독일어 시간>은 소년의 눈을 통해 나치 시대를 본다는 점에서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과도 비교되는데 양철북의 경우 좀더 풍자, 환상적이라면 지그프리트 렌츠의 독일어 시간은 인간의 도덕적 양심을 핵심 주제로 다루고 있다. 실제로 지그프리트 렌츠와 귄터 그라스 둘다 문학 그룹 47의 멤버로서 전후 독일의 도덕 재건과 문학적 현실참여를 목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어느 해설을 봐도 흠잡을데 없이 완벽해보이는 이 작품을 읽는 속도가 기대만큼 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앞뒤로 너무 완벽하게 짜맞춘 듯하다는 감을 일찌감치 잡아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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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11-09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달과 6펜스를 읽었는데 이 책도 재밌을 것 같네요.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그림을 보는 법을 설명하는 문장이 인상적이네요. 좋은 정보를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hnine 2025-11-09 14:36   좋아요 1 | URL
저는 <달과 6펜스>가 더 재미있었어요. 이 책도 문장력도 훌륭하고 인물로 대변되는 상징도 뚜렷하고, 작가의 취지도 분명한데, 그게 거의 예외없이 끝까지 완벽하게,너무나 드러나게 분명하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매력이 좀 떨어졌다고 해야할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달과 6펜스>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한번 읽어보셔요.

yamoo 2025-11-2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이게 에밀 놀데가 모델이었다구요?!
헐~~ 놀데 그림은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독일어 시간 모델 화가가 에밀 놀데였다니, 읽었어도 저는 왜 몰랐을까욤??

hnine 2025-11-21 15:19   좋아요 0 | URL
읽으셨어요? 하긴 여기선 에밀 놀데를 롤모델로 한 인물보다는 그 사람을 지켜보는 아이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니까요.
에밀 놀데 그림은 안 좋아하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