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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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글을 남기기에 조지 오웰은 마흔 일곱 나이로 너무 일찍 죽었지만 소설 여섯편, 르포 세권에 비해 에세이는 여기 저기 수백편을 발표하여 생전에 두권의 에세이집을 출판하였다. 그렇게 하고도 남은 글이 사후 지금까지 계속 이런 저런 에세이집으로 묶여나오고 있는 중인데 이 책도 그렇게 탄생한 책이라고 볼수 있다. 조지 오웰의 저작집 「The Collected Essays, Journalism, and Letters of George Orwell」1~4권 (Nonpareil Books) 에서, 번역자 이한중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울림이 클 만한 에세이 29편을 골라 번역하여 그중 에세이 한편의 제목인 'Why I write' 를 책 제목으로 삼아 출간한 책이 이 책 '나는 왜 쓰는가'이다. 

스물 아홉편 중에는 '스파이크', '교수형', '코끼리를 쏘다' 같은 비교적 짧은 글도 있지만 '민족주의 비망록', '정치와 영어', '스페인 내전을 돌이켜본다'같은, 거의 소논문을 방불케하는 글도 들어 있다. 글의 길이가 어떻든, 주제가 무엇이든, 일관된 그의 문체, 자기 경험이 바탕이 되는 글이라는 것은 공통이라고 볼수 있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가 된 글 '코끼리를 쏘다'를 먼저 펴서 읽었다. 어느 날 일흔 다되신 노교수님께서 '내가 조지오웰의 <코끼리를 쏘다>를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이십대에 읽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해본다고 하셨던 것이 기억나서이다. Shooting an elephant. 말 그대로 코끼리를 향해 총을 쏜 경험에 대해 쓴 에세이로서 조지 오웰이 식민지 영국 경찰로서 버마에 주둔하던 시절의 경험담이다. 코끼리가 목격되었다는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그는 어떻게 해야할지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보다, 주위를 에워싸고 그의 행동을 주시하는 군중을 의식하면서 내가 어떻게 해야 저들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을까, 내가 어떻게 해야 저들이 나를 얕잡아보지 않을까에 근거하여 행동을 결정하고 코끼리에 총을 쏜다. 그것도 한발의 총으로 죽지 않아 여러발을. 

백인은 원주민 앞에서 두려움을 보여선 안되기에 (39쪽)


<교수형> 역시 버마의 경찰 간부로 있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인데 사형수가 교수대로 진행하던 도중 갑자기 형장으로 개 한마리가 뛰어든다. 사형수에게 달려들어 펄쩍 뛰어오르고 얼굴을 핥으려고 하는 개를 간수들은 형 집행을 위해 제지하여야 했다. 형 집행 전후 개의 행동및 상황묘사만 하였을뿐 작가 자신의 어떤 느낌과 감정을 직접 쓰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왜 이 글을 썼는지 읽는 사람은 알 수 있다.

조지 오웰의 글을 읽다보면 자연히 스페인내전에 대해 알게 된다.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는 원제가 재미있다. Spilling the Spanish Beans. 스페인내전 복습, 총정리용으로 읽기에 좋은 에세이이다. 

인도 아편국 관리였던 아버지때문에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돌이 되기 전에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영국인. 자기 모국인 영국에 대해 그가 얼만큼 객관적이고 얼만큼 주관적인지 우리야 정확히 알수는 없겠지만 <영국, 당신의 영국>은 다른 나라, 여러 주의, 여러 사상 속에서 영국을 들여다보고 쓴 글이다. 

영국에 대한 일반화 중에 거의 모든 평자들이 받아들일 만한 것 몇 가지를 들어보고자 한다.

하나, 영국인들이 예술적인 재능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영국인은 독일인이나 이탈리아인 처럼 음악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회화나 조각은 프랑스에서와는 달리 영국에서 번성해본 적이 없다. 또 하나는 유럽을 기준으로 할 때 영국인들이 별로 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영국인은 추상적인 사고에 공포를 느끼며, 철학이나 체계적인 세계관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91쪽)

시대에 뒤떨어진 자질구레한 모든 것에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태도, 분석을 허용치 않는 철자법 등에서 영국인들이 능률을 얼마나 중시하지 않는지 알수 있으며, 생각 없이 행동하는 능력을 갖고 있고 영국인의 위선은 세계적으로 손꼽힌다고 까지 했다. 여기서도 유럽과 영국을 따로 분류해서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영국이 지리적으로는 유럽에 속해있지만 유럽과 영국은 다르다는 인식은 Brexit이전에 이미 오랜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읽다보면 조지 오웰은 문학가라기 보다 기자, 사회학자, 정치학자 같은 면모가 다분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어 나오는 <민족주의 비망록 (Notes on Nationalism)>에서는 애국주의 (Patriotism)와 민족주의 (Nationalism)의 차이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민족주의에 공통되는 심리적 습성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하여 강박증, 불안정, 사실을 무시하는 태도 등을 들었다. 영국혐오증, 반유대주의, 트로츠키주의를 부정적 민족주의라고 따로 분류함으로써 이들 역시 민족주의의 한 계류로 본 것이 눈에 띈다. 조지 오웰은 한때 여기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니었던가. 더 눈에 들어온 한 문장은 여러 종류의 민족주의가 심지어 서로 상쇄되는 종류들이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할 수도 있다 (203쪽)는 것이었다. 조지 오웰 자신도 비껴갈 수 없을 것이고, 어떤 한 주의로 사람을 분류한다는 것은 임시적이라면 모를까 지속성은 없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에세이는, 비과학자가 과학에 대해 쓴 글로 드물게 공감할 수 있는 글이었는데, 과학이 가진 객관성이 양면성을 가질 수 있음을 다른 누구보다 과학하는 사람 자신이 알아야 하고, 과학은 한 덩어리의 지식에 불과한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개념이라는데 동의한다. 

<행락지 (Pleasure Spots)>라는 에세이는 2021년을 사는 이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인간의 한 사람으로써 얼마나 절실하게 와닿던지.

인간이 물질세계는 탐사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탐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 행락이란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 중 상당수는 의식을 파괴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246쪽)


인간에겐 온기가, 사회가, 여유가, 안락이, 안전이 필요하다. 또 고독도, 창조적인 작업도, 경이감도 필요하다. 그런 걸 알게 되면 인간은, 언제나 어떤 것이 자신을 인간적으로 만드는지 비인간적으로 만드는지의 기준을 적용하여 과학과 산업화의 산물을 선별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고의 행복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 포커를 하고 술을 마시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한꺼번에 하는 데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47쪽)


'정치'는 그의 글 여기저기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중 하나일텐데 <나는 왜 쓰는가>에서 그는 '정치적'이라는 말의 정의를 내리기를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라고 하였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라면서 <동물농장>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 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300쪽)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들어 정치 대 문학에 대한 생각을 쓴 글은 그야말로 한편의 논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세부적, 분석적이며 읽는데 집중을 요했다. 그의 예언자적 기질이 특히 두드러진, 조지 오웰의 대표 에세이 중 하나로 꼽아도 좋을 글이 아닐까 생각된다. 스위프트를 일컫기를 숨겨진 진실 하나를 골라내어 확대하고 비틀어서 볼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고 했는데 그걸 알아본 조지 오웰 역시 그런 능력자가 아니었을까.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라는 글에서는 셰익스피어를 읽는 내내 반감과 따분함을 불러일으켰다는 톨스토이의 셰익스피어 공격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톨스토이는 리어왕을 예시로 셰익스피어의 저급하고 비도덕적인 면을 지적하며, 위대한 예술 작품이 되기 위해선 인류의 삶에 중요한 주제를 다루어야 하고, 저자 자신이 진정으로 느끼는 바를 표현해야 하며 바라는 효과를 낼 만한 기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셰익스피어는 세계관이 저급하고, 솜씨가 깔끔하지 못하며 한순간도 진지할 줄을 모르니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하였다. 이런 톨스토이 글에 대해 조지 오웰은 동조 혹은 반발이라기 보다, 그런 평가를 내리게 된 톨스토이의 인생, 인생관, 문학에 대해 톨스토이가 셰익스피어를 뜯어본 이상으로 파고 들어가서 톨스토이는 왜 맥베스가 아닌 리어왕을 들어서 셰익스피어를 평하려고 했는가에 이르기까지 추정을 하고 있는데, 조지 오웰이 어느 주제에 대해 글을 쓸때 어떤 정도의 지식과 사고를 갖추고 쓰는지 읽으면서 오싹하기까지 했다. 

어린 시절의 얘기를 쓴 <정말, 정말 좋았지> 제목은 반어적인 제목이다. 어릴 때 자기는 약하고 못생기고 겁 많고 냄새나고 그럴싸한 데라곤 없는 존재였지만 그럴지라도 살고 싶으며 나름대로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으며 그것은 다름 아닌 '생존본능'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내가 근년에는 기발하게 쓰기보다는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했다는 점만 밝히기로 하자. (299쪽)

기발하게 쓰기보다는 정확하게.

밑줄을 그렇게 많이 치며 읽었는데, 남는 문장이 어디 이것 뿐이겠는가만은,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다. 기발하게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느끼고 생각한 바를 정확하게 쓰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각 페이지에 실린 주석, 책 뒤의 작가 연보, 역자 후기까지 빠짐없이 읽은 것은 나로서는 예외적인 일인데, 읽어서 확실히 도움이 되도록 번역자가 기울인 성실성이 느껴졌고 실제로 읽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1984>가 시작이었다. <1984>를 읽지 않았더라면 <동물농장>을 읽지 않았을것이고, <동물농장>을 읽고 나니 집에 있는 그의 다른 책 <카탈로니아 찬가>까지 읽게 되었고, 여기까지 오니 작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소설이 아닌 그의 에세이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왜 쓰는가>를 읽게되었다.

간결하고 분석적이고 예리한 문장에 더해서 그에게서만 발견되는 어떤 예언자적 기질은 조지 오웰 글의 매력일 것이다. 그런 매력에 확실하게 끌려가고 있는 중, 이제 그의 또다른 작품 「위건부두로 가는 길」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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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16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에겐 온기가, 사회가, 여유가, 안락이, 안전이 필요하다. 또 고독도, 창조적인 작업도, 경이감도 필요하다. 그런 걸 알게 되면 인간은, 언제나 어떤 것이 자신을 인간적으로 만드는지 비인간적으로 만드는지의 기준을 적용하여 과학과 산업화의 산물을 선별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고의 행복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 포커를 하고 술을 마시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한꺼번에 하는 데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문장 마다 통찰력이 번뜻이네요.
오웰 디에센셜 장바구니에 넣어요.
에이치 나인 리뷰도 오웰 처럼 ‘간결하고 분석적이고 예리한 리뷰‘

hnine 2021-02-17 12:54   좋아요 1 | URL
디에센셜 조지 오웰 알라딘엔 품절이던데, 그야말로 에센셜이라 할 만한 작품 구성이네요.
수백편의 에세이를 다 읽을 수는 없겠지만 소설이나 르포는 몇편 안되니 다 찾아읽어볼만 한것 같아서 지금 위건부두로 가는 길 읽기 시작했어요.
어릴 때 명문 학교 진학을 위한 예비스쿨에서의 혹독한 경험 이후로 너무 일찍 계급과 가난과 차별에 눈이 떳을까요. 대학 교육도 받지 않았고 대신 버마로, 스페인으로,모로코로, 영국의 변두리 지역으로 돌아다니며 체험한 바를 글로 끊임없이 써냈지요. 말도 글도,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란 참 부러운 능력이예요.
저의 리뷰는 감히 근접도 못하지만 노력은 하고자합니다. 그렇게 용기 북돋아주시니 감사합니다~

scott 2021-02-17 13:23   좋아요 0 | URL
교보+민음사 합작 한정판 출간이라서 알라딘에서는 팔지 않아요.
수록된 작품들이
1984

교수형

코끼리를 쏘다

사회주의자는 행복할 수 있는가?

문학을 지키는 예방책

정치와 영어

나는 왜 쓰는가

작가와 리바이어던
이렇게 수록되었는데 몇개는 새로 번역하고 소설+에세이 묶음 시리즈 1권이 조지 오웰 ^.^

hnine 2021-02-17 14:1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수록된 작품들을 보니 에세이 중에선 ‘사회주의자는 행복할 수 있는가?‘는 위의책 <나는 왜 쓰는가>에 포함되어있지 않은 작품이네요.

바람돌이 2021-02-17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조지오웰의 책들 리뷰가 많이 올라오는데 다들 참 좋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네요. 집에 있는 책부터 봐야하겠어요. 집에 있는 책은 1984 ^^

hnine 2021-02-17 13:03   좋아요 1 | URL
저도 1984로 시작했어요. 그 전엔 별로 관심없던 작가였고 심지어 미국 작가인줄로 알고 있었답니다.
아이 학교에서 필독서 리스트에 있었던가 그랬는데 아이가 제대로 안읽는 것 같기에 제가 한번 읽어보자고 읽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기대보다 훨씬 좋은거예요. 두께도 꽤 되는데 말이죠.
동물농장 읽기 까지 시간이 걸린 이유는 제가 동물들이 등장하는 얘기에 별로 끌리지 않아서인데 (동물은 좋은데 동물을 의인화한 얘기들은 이상하게 재미가 없더라고요), 두께가 얇아서인지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게 후딱 읽혔고 1984 만큼 깊은 인상을 받고서 조지 오웰에 대한 관심이 급등했어요.
호불호가 갈릴수 있는 작가이지만, 이 사람의 소설이나 에세이는 꼭 한번 읽어볼만하다고 생각해요.
바람돌이님께도 추천드립니다.
 
기꺼이 오늘을 살다 -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나를 지켜내는 심리학
가토 다이조 지음, 이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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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를 모르니 원제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영어로 되어 있는 제목에 "40 HINTO"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을 보니 40 hint 라는 말이 원제에 포함되나본데 실제 이 책은 40가지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 아래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나를 지켜내는 심리학'이라는 설명으로 이 책 내용은 충분히 짐작이 될 것이다. 

저자 가토 다이조는 1938년 도쿄 태생으로 도쿄대학을 졸업했으며 현재 와세다대학 심리학과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심리, 정신건강 관련 저서를 여러 권 낸바 있다. 

삶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 삶이란 없으며,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의 힘듦도 인정하면서 회피하기 보다 당당히 맞서려는 노력이 우리의 삶을 자신감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이 요점이다. 시지프스가 매일 밀어올리는 바위도 알고 보면 삶의 무게, 인생의 짐을 비유하는 것이 아닐까.

짐이라는 표현대신 의무, 책임, 도전이라는 말로 바꿔 생각해보라는 권유와 함께,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짐을 기꺼이 짊어지려는 태도, 회피하고 외면하고 대충대충 넘어가는 대신 당당히 짊어지겠다는 태도로 살아갈때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행복이고 자신감이라고 말한다. 

'마지못해'와 '기꺼이'는 같지 않다. 어찌어지해서 결과물은 같게 나올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인생은 결과물로 판가름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거쳐온 과정에서 이미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제목 속의 '기꺼이'는 어쩌면 이 책의 키워드가 될수도 있을 것 같다. 마지못해가 기꺼이가 되기 위해서, 마지 못해 사는 삶이 아니라 기꺼이 사는 삶이 되기 위하여 이런 책도 읽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흔히 번아웃 증후군 (Burnout syndrome)이라고 부르는 '탈진증후군'은 허버트 프로이덴베르거 (Herbert Freudenberger) 에 의하면 자기 자신보다는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 일하고는 결국 만신창이가 되고 바닥까지 탈진한 후 남을 원망하며 좌절하는 증상이다. 번아웃되기까지 온 힘을 쏟아붓는 대상은 엄격히 말하면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이라는 것이다. 자기애의 부족이고 나약함의 결과이며,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심리이고 집착의 결과이다.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과 그 대상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것은 다르다. 사랑한다는 것은 능동적이고 자기 감정의 작용이지만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할수 없을때 다른 누군가의 인정으로 자기애를 메꿔보려는 심리이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대하느냐, 나를 어떻게 인정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 성공 여부를 결정짓겠다는 것이다. 비참함으로 끝나는 인생이 대부분이다.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베란 울프의 "고민은 어제 생긴 일이 아니다" 라는 말을 저자가 바꿔 표현한 "불행은 난데없이 들이닥치지 않는다"는 말도 새겨들을만하다. 

자기애와 관련된 내용은 계속 나오는데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무리해서 일하고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맺고 끊음없이, 부탁을 받으면 무리해서라도 해내려고 하는데 그것이 과연 나를 위한 것인가 남에게 보이고 싶은 나의 모습에 부합하기 위한 것인가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는 이면에는 열등감이라는 심리가 작용할 수 있음은 미처 생각못했다.

열등감이 심한 사람은 남이 뭔가를 부탁하면 기분이 좋다. 자기가 인정받았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신의 역량을 넘어선 일을 하고, 결국 건강을 해친다. 건강을 해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원인이 자기 열등감에 있음을 자각하지 않는 한, 평생 동안 무리해서 일을 하고 결국 삶이 허망하게 끝날지도 모른다. (89쪽)

한순간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고맙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상대에게 낮게 평가받는게 두려워서, 무리하고 있지 않은지 자신을 되돌아볼 일이다.

불행의 원인은 두가지, 외로움과 열등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자기도 모르게 이것에 굴복하는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기꺼이 오늘을 살기 위해서는 나의 문제나 나의 짐을 피하지 말고, 현재의 편함은 미래의 비극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의 짐을 내가 지고 갈 각오로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아갈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때는 나오지 않는 에너지가 나온다. 힘이 들면서 동시에 힘이 만들어진다. 

수동적인 성격, 수동적인 성향은 100% 타고 나는 것일까?

수동적인 태도는 애정 결핍증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은 수동적이지 않다. 수동적인 태도와 자기 비하의 감각은 서로 떼어놓기 힘들 만큼 깊이 연관되어 있다. (182쪽)

'시켜서 했다'가 아니라 '스스로 했다'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 내가 짐이라고 여기며 내 인생을 불행의 삶이라고 스스로 단정시키지 않기 위해, 자각과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이런 일을 당했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나는 그만한 일도 견뎌냈다"라고 말하면 원망이 아니라 자신감이 솟아난다.

당신의 경험을 잘못 해석하지만 않는다면 틀림없이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경험을 '손해 봤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살아가는 한,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자기가 들인 노력은 자신감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230쪽)

편안한 인생은 애당초 없다는 전제가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하고, 그러니 그 짐을 당당하게 내것화하라는 말이 설득력있다.

내용을 다 읽지 않더라도 40개 소제목속에 내용이 다 포함되어 있다. 분량도 많지 않기 때문에 전자책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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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 로베르트 발저 산문.단편선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임홍배 옮김 / 문학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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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트르 발저의 산문집 <산책자>를 읽고 난 이후로 지금까지 어떻게 그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산책자>는 나에게 큰 공감대를 남겨 놓은 바 있다. <산책자>와 같은 해 (2017년)에 로베르트 발저의 다른 산문집이 출판되었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바로 이책 <세상의 끝>인데, 다른 출판사에서 다른 역자에 의해 나왔지만 읽어보니 이 책에 실린 몇편의 글은 좀 더 먼저 출판된 <산책자>에도 실렸던 글임을 알수 있었다.

로베르트 발저는 1878년 스위스 태생이다. 8형제 중의 일곱째로 태어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계속 다니지 못하고 14살 나이에 취직을 하여야 했다. 이 책에 보면 실로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건 아마 작가 본인이 다양한 직업을 전전한데서 비롯되었으리라 생각된다.14살에 시작하여 51세 요양병원에 입원하기까지 그가 거쳐간 직업을 보면 은행, 극단활동, 출판사, 보험회사 경리사원, 공장 사무직원, 종업원 교습소, 미술상 비서, 군복무, 보조사서 등 정말 다양한데, 오래 머물지 못하고 자주 옮겨 다닌 이들 중 어느 것도 일정한 직업이 아니었고 거처 역시 일정하지 않은 상태로 전전하며 살아왔다. 

51세때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아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는데 이 병력은 로베르트 발저 가족에게 있어 새로운 일은 아니었다. 로베르트가 열여섯살 때 죽은 그의 엄마 엘리자 발저는 생전에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었고 화가였던 형 칼 발저는 자살로 삶을 마감, 넷째 형 에른스트 발저도 정신질환을 앓다가 사망, 둘째 형 헤르만 발저 역시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51세에 요양병원에 입원하여 78세에 사망하기까지 그의 요양병원 생활 대부분은 직업 대신 산책하는 시간으로 채워졌고 친구보다 자연과 교감했으며 산책하는 동안 혼자 느끼고 생각하고 꿈꾸는 것은 대화 대신 글로 남겨졌다. 글 쓰기는 그렇게 일종의 생계 수단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자연으로 가라. 그러면 자연은 그대를 반겨줄 것이니. 자연은 자신의 품에 안겨오는 모든 이를 사랑하고, 그대 또한 자연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자연에서는 잃을 것이 없으며, 자연은 누구도 해친 적도 없다. 

자연의 공간과 시간은 그 자체가 곧 즐거움이며, 맑은 공기는 청량음료처럼 마실 수 있다. 자연은 그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대가 이 세상을 아름다운 집처럼 받아들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대 자신과 다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준다. (30쪽,「자연」중에서)


저는 별을 좋아하고, 달은 저의 은밀한 친구입니다. 제 위에는 하늘이 있습니다. 저는 사는 동안에는 하늘을 우러러보기를 잊지 않겠습니다. 저는 대지 위에 서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입지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은 저와 농담을 하고, 저는 흘러가는 시간과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저는 이보다 더 소중한 즐거움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낮과 밤은 제 동반자입니다. 저는 아침저녁으로 친숙한 발에 의지하여 일어섭니다. (83쪽, 「어느 시인이 어느 신사에게 쓰는 편지」 중에서)


특별히 튀는 표현이나 문장이 없어도 어느새 마음에 적셔들어오는 문장들. 로베르트 발저 글의 특징이기도 하다. 

대부분 짧은 글들이고 그 속에서 화자는 시인이기도 하고, 사무원이기도 하고, 젊은 여인이기도 하고, 가난한 청년이기도 하지만 그 모든 인물들 속에는 로베르트 발저 자신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아래 인용부분을 보면 그가 자연과 교감했다고 해서 사람 사귀기에 아예 벽을 쌓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오히려 그는 자기와 어딘지 비슷한 구석이 있어보이는 사람을 발견하는데 영민했으며 친해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늘 같은 결말이다. 


밖에 나오자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 곁을 떠나왔다. 우스운 기분도 들었고, 익살맞은 느낌도 들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고, 소담스럽게 함박눈이 내리는 허공으로 저녁종이 울려 퍼졌다. 도시는 한 편의 동화 같았다. 눈은 바람에 날려 회오리를 그리며 너무나 달콤하고 부드럽게 떨어져 내렸다. 눈송이 하나가 마치 키스라도 하듯 내 입으로 떨어졌다. 내 모자와 외투는 주위의 모든 사물과 사람들처럼 이내 하얀 눈으로 덮였다. 이 고요한 정적 속에서 등불이 빛났다. 이제 이 세상에는 오로지 아름다운 보금자리와 사랑스러운 사람들, 온갖 유쾌한 기분과 다정한 말들, 이루 형연할 수 없는 편안함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141쪽, 크리스마스이야기」중에서)


친해보려고 무작정 찾아갔던 사람의 집에서 나오며,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고 가벼운 자책에 빠지기도 하지만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위 상황과 배경 묘사를 통해 마치 잃어버린 무엇을 다시 찾기라도 한듯 개운함마저 보여주고 있다. 혼자가 되었을때 다시 찾는 안식. 외로움을 댓가로 하는 편안함인 것이다. 


<산책자>의 번역은 소설가 배수아가, <세상의 끝>은 서울대 임홍배 교수가 하였다. 두 권의 책에 중복되어 들어가 있는 글들이 있다보니 자연히 두권의 번역을 비교해보게 되었는데, 한 단편의 제목이 <세상의 끝>에서는 「주인과 피고용인」으로, <산책자>에서는 「주인과 고용인」으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피고용인과 고용인은 완전히 반대의 뜻이지만 번역자가 잘못 번역하였다기 보다는 우리말스럽게 옮기려고 하다보니 번역자도 알면서 그렇게 번역한게 아닌가 짐작해본다.

혼자 산책하는 일은, 단지 시간 보내기 위한 수동적 활동만은 아니요, 어떤 사람에게는 스스로 선택한 나를 찾아가는 방식이고 여정이며 허물어지지 않고 매일 새로 태어나려는 의지이고 노력임을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 그런데 저 마지막 인용문의 첫 문장 말이다.

밖에 나오자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 곁을 떠나왔다. 우스운 기분도 들었고, 익살맞은 느낌도 들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고, 소담스럽게 함박눈이 내리는 허공으로 저녁종이 울려 퍼졌다.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안좋다. 너무 쓸쓸하게 읽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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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30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삶이나 가족력이 마음 아프네요. 그럼에도 산책을 통해 자신과의 타인과의 만남을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걸 보면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hnine 2021-02-11 04:44   좋아요 1 | URL
그렇죠?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도 그런데, 로베르트를 엄마처럼 돌봐주던 누이도 로베르트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고, 가깝게 지내던 친형도 자살로 세상을 마감하고, 본인도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고 나니 요양원 밖에 갈 곳이 없었어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그의 삶과 생각이 그대로 남아있는 글이 이렇게 세상에 남아서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으니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끝나진 않은거죠.

scott 2021-02-10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이치 나인님,
로베르토 발저
매일 걸었던 글쟁이 크리스마스날 산책 나갔다가 길에서 숨을 거둔 이 고독한 글쟁이,,,로베르토 발저
이달의 당선 추카~추카~
설연휴 가족들 모두 평안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에이치 나인님 서재방에 들어 올때마다
프로필속 멍뭉군에게
뭐라도 주고 싶으 ㅋㅋ

/}__/}
( • ▼•)
🍖

hnine 2021-02-11 05:30   좋아요 1 | URL
제가 멍문군 (이름이 ˝볼더˝입니다~) 에게 말해주었어요. 너 귀여워하시는 분 한분 늘었다고요.
로베르트 발저의 마지막이 참 가슴아프죠. 고독한 글쟁이였으면서 끝까지 자기와 소통이 될 만한 사람을 만날까 싶은 한가닥 기대가 그의 글 속에 나타나있어요.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scott님도 당선 축하드려요~
이번 설은 저희 집에서 저희 식구 세명만 차례 지내고 산소 방문은 설 연휴 기간 이후로 미루기로 했어요. 음식 준비만 해도 되고 교통지옥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어 그것은 한편 좋네요.
scott님도 평안하고 행복하세요.
(아래 강아지 그림 너무 귀여워요. 따라 그려봐야겠어요.)
 
나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5
앙드레 브르통 지음, 오생근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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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집에 싸르트르의 <시지프스의 신화>를 세권이나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다시 들춰보는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실주의에 대해 조금 더, 아주 조금 더 이해를 하게 되나보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어쩌다 이 책을 고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앙드레 브르통의 <나자>는 사실주의에 반기를 들고 나선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초현실. 현실과 현실 너머의 세계가 만나는 곳이다. 상상력과 환상의 세계이며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곳, 현실에서 다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실험의 세계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이 책의 첫 페이지 첫 문장도 다른 작가나 철학자들의 물음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는 위의 질문에 바로 이어 말한다. 이런 질문은 왜 내가 어떤 영혼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아는 것으로 귀착되는 문제가 아닐까 한다고. 

내 존재를 객관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들, 어느 정도 확고하게 나를 나타내 주는 것들로 생각되는 내 모습은, 삶의 어느 순간 전혀 알 수 없는 활동을 함으로써 무효화되면서 그 진정한 영역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게 나라고 믿는 것들이 있다면, 그래서 가끔 이건 나답지 않다고 여겨지는 순간이 있다면 (우리 보통 그렇지 않은가?) 작가의 다음 말을 들어보자.

나 자신에게 나의 모습을 미리 상정하기 때문이고 시간과 타협할 이유가 전혀 없는 내 사유의 완성된 형태를 선행성의 차원에서 자의적으로 설정하기 때문이며... (12쪽)

그건 우리가 그렇게 설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미리 말하자면 무의식의 영역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알기 위한 작가의 노력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여러 가지 취향, 내가 어떤 대상에 대해서 느끼는 친근성, 내가 빠져 드는 매력, 나에게 발생하는 사건들, 오직 나에게만 발생하는 사건들을 넘어서, 또 내가 실천한 수많은 행동, 나만이 체험하게 된 감정들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나의 차별성이 무엇이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나는 부단히 노력하겠다. 

내가 이 차별성을 인식하는 정도가 얼마나 분명하냐에 따라서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무엇을 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세계의 운명에 대해 나만이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메시지가 무엇인가의 문제가 밝혀질 수 있지 않을까? (12, 13쪽)


작가는 이 작품에서 '나'라는 화자가 되어 자기의 실제 경험을 서술하고 있다. 소위 자동기술이라는 방식으로서, 머리를 써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 자기의 느낌과 떠오른 것들, 경험한 것을 오직 자기의 감정에 충실하여 기술하는 방식이다. 이 작품이 있게 한 그의 경험이라는 것은 1926년 10월 4일 파리의 어느 거리에서 '나자 (Nadja)'라는 이름의 여자를 우연히 만나 10월 13일 마지막 만나기까지의 경험이다. 이처럼 날짜, 만난 장소, 방문한 장소까지 글, 사진, 그림까지 동원하여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가 나자를 처음 만나던 날의 상황과 느낌을 적은 부분을 발췌하여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 10월 4일, 그야말로 할 일이 없고 매우 침울한 오후가 계속되던 날들 가운데 어느 저녁 시간에, 나는 마치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만의 비결이라도 있는 것처럼 라파예트 가를 서성대고 있었다. (...)

나는 옷차림이 매우 초라한 한 젊은 여자가 내 쪽으로 한 열 걸음쯤 떨어진 지점에서 오고 있는 것을 보았고, 그녀 또한 나를 보고 있거나 이미 본듯 했다. (...) 

나는 주저하지 않고 모르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다행히 그녀는 미소를 지었는데, 그것은 너무나 신비스럽고 마치 자초지종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미소였다.

저 눈 속에 스쳐가는 범상치 않은 빛은 무엇일까. 어떻게 저 눈 속에는 어두운 고통의 빛과 밝은 자부심의 빛이 동시에 비칠 수 있을까? (65-67쪽)

나도 궁금해졌다. 어두운 고통의 빛과 밝은 자부심의 빛이 동시에 비치는 눈빛이란 어떤 모습일지. 고통과 자부심, 어두움과 밝음이 동시에 말이다.

10월 5일, 6일, 7일, 이들은 계속 만나서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듣고 상대방을 알아가고 상대방에게 나를 설명하고 책과 그림에 대해 말하고 그림을 그리고 저녁을 먹는다. 

그녀가 내게 무엇을 요구하건, 그 요구를 거절한다는 것은 몹쓸 짓이라고 할 만큼 그녀는 순수하고 지상의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로웠으며 생활에 별로 집착하지 않았다. (91쪽)

나자에 대해 작가가 무엇을 어떻게 느꼈는지 계속 서술하고 있지만 쉽게 공감이 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음으로 넘어가는데 방해로 느껴지지 않은 것은, 꼭 공감해야한다는 법은 없으며 작가도 그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위에 말한 작가 자신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본다면 작가는 이런 자기 감정이 일반적인 대중들에게 속속들이 공감되기를 바랐겠겠는가?

만남은 10월 13일까지 계속되었고, 10월 13일 나자는 과거의 어떤 자기 경험을 뜬금없이 꺼냈느데 그 순간 작가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녀가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순간 나의 마음은 그녀에게서 영원히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끔찍한 사건을 그녀가 빈정거리는 투로 이야기함으로써 내가 느끼게 된, 절대로 회복 불가능한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은 후에 더 이상 눈물을 흘릴 수 없다고 생각될 만큼 오랫동안 울었다. 나자를 더 이상 만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그녀를 만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울었다. (117쪽)

그녀는 그에게 여러 개의 추상적인 그림을 그려 선물했고, 이 날이 나자와의 마지막 만남이 된다. 이 그림들은 책 속에 그대로 실려 있으며 그는 마치 나자를 다시 보듯이 그림 속 이미지를 해석하려고 노력한다. 

이후 작가는 나자가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는 소식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지만 그것이 얼마나 속물적 바보들에 의한 결정인지 토로하며 괴로와한다. 

상식을 벗어나는 비정상적인 행위가 공공장소에서 자행되면, 그 순간부터 객관적으로 입증되고 불법적인 성격을 갖게 되는 그 행위는 다른 그 어떤 행위보다도 몇 천 배 더 끔찍한 구금의 원인이 된다. 내가 보기에 모든 종류의 감금은 임의적인 것이다.

인간에게서 자유를 박탈해도 되는 이유가 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들은 사드를 가두었고 니체를 가두었고 보들레르를 가두었다. 밤에 불쑥 찾아와 당신이 저항할 수 없는 강제력을 동원하거나 별별 수단을 다 써서 구속복을 입히는 방법은, 경찰이 당신의 호주머니에 권총을 슬며시 집어넣고 위협하는 방법이나 다름없다. (144쪽)


그는 논리의 창살을 '가장 가증스러운 감옥'이라고 하면서 자유와 광기와 큰 기쁨을 누리지 못하도록 충동을 억누르는 장치에 대해서 쓰고 있다. 

논리 대신 그는 무엇에 의지하고 싶은 것인가?

다시 한번 말하겠는데, 무의식의 존재만을 인정하고 싶고, 무의식만을 믿고 싶고, 내 눈 속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빛의 한 점, 그 어둠의 덩어리에 부딪히지 않도록 나를 이끌어 주는 빛의 한 점을 내 스스로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무의식의 드넓은 방파제를 한가로이 거닐고 싶다. (160쪽)

나자의 존재는 바로 이것이었구나 싶었다. 그를 이끌어주는 빛의 한 점. 그는 그 빛의 한 점을 뚫어지게 바라보듯이 나자를 바라보고 싶었구나. 그래서 나자의 입에서 뜬금없이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나왔을때 그의 마음에서 의도치 않던 변화와 실망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구. 


책의 맨앞 <뒤늦게 전하는 말>(후기를 대신하는 말)에서 작가는, 여러 해가 지난 후 책이라는 형식 안에서 글을 다시 다듬으려고 하는 작업은 이미 사소한 사건들을 일정한 방식으로 서로 유기적인 관계로 재구성하게 하고 객관적인 진술이 되게 하여, 순전히 감정에 의존하여 쓴 글과는 구별되게 한다면서, 인간의 삶 속에서 주관성과 객관성은 일련의 경쟁 관계에 놓였다가 결국 그 싸움에서 아주 쉽게 곤란한 상태에 빠져 버리는 쪽이 대체로 주관성이라고 했다. 

그래서 객관성을 폄하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변함없이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오류투성이일지라도 주관성 속에 글이 머물러 있는 것이지마는, 좀 더 정확한 표현에 이르게 하기 위해 객관성에 대해 사소한 배려를 해야겠다고 결심하였음을 밝히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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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1-23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서재 대문 사진 바뀌었습니다.
먼저 사진의 그 반려견의 어렸을 때 모습인가요?
아님 새끼를 낳은 것인가요?
암튼 귀엽고 앙증 맞습니다.
우리집 다롱이는 다 늙어서 안쓰럽기도하고
사람 손을 더 타서 귀찮기도 하고 그러네요.
이런 맘 가지면 안 되는데...ㅠ
그래도 아직은 잘 먹긴합니다.

hnine 2021-01-24 09:16   좋아요 1 | URL
stella님, 저 녀석이 이래봐도 2012년생이랍니다. 이름은 ‘볼더‘이고요. 올해 나이 열살이니까 사람 나이로 치면 저와 함께 늙어가는 연령이랄까요 ^^ 사진은 바로 며칠 전에 찍은 거예요. 시츄가 원래 좀 어려보이는 종이긴 하지만 유난히 동안 페이스인가봐요. 그래도 나이는 못속여서 예전보다 행동이 느려지고 불러도 잘 안오고 그래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제가 이해해야지...ㅋㅋ

scott 2021-01-25 19:28   좋아요 1 | URL
앗! 프로필속 볼더 혀를 낼름 ㅋㅋㅋ(맛있는 냠냠이 먹고 행복해하는것 같음)
열살 이 아닌 사진속에서는 세살로 보여여 ㅋㅋ
에이치 나인 님이 잘해주셔서 더욱 동안이 된것 같은 ㅋㅋㅋ
볼드 아픈데 없이 건강하게
(ᵔᴥᵔ)

hnine 2021-01-25 23:46   좋아요 1 | URL
남편이 찍은 사진인데 어떻게 찍었는지 현장 목격을 못해서 모르겠어요. 남편 말로는 이런 사진 쉽게 찍을 수 있는 거 아니라고 하더군요. 집에 식구가 적다보니 볼더가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답니다. 아들도 오랜만에 집에 오면 제일 먼저 볼더부터 찾아요.
 
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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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유명한 <동물 농장>과 <1984년> 이전에 <카탈로니아 찬가> 가 있었다.

시간순서로도 그렇지만, 작가의 스페인내전 참전기록 <카탈로니아 찬가> 없이 <동물농장>과 <1984년> 같은 소설이 나왔을까 싶어서이다. 

카탈로니아는 스페인 북동부지방 이름으로서 항구도시 바르셀로나가 위치해있는 곳이다.

전체주의, 파시즘을 혐오하던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 (1935-1939) 취재를 위해 종군기자로 갔다가 카탈로니아에서 직접 의용군에 지원해버린다. 이 책의 첫문장은 그 입대 전날 기록에서 시작한다.

의용군에 입대하기 전날이었다. 나는 바르셀로나의 레닌 병영에서 장교 탁자 앞에 서 있는 한 이탈리아인 의용병과 마주쳤다. (9쪽)

여기서 ''는 조지 오웰 작가 자신이다. 자기처럼 의용군에 지원한 한 이탈리아 출신 의용군을 보며 호감을 느끼면서 그의 행색과 표정으로부터 여러 가지를 읽고 있다.

이 이탈리아인 의용병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가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남루한 군복과 사나우면서도 애처로워 보이는 얼굴은 당시의 특별한 분위기를 상징하는 것 같다. 그는 그 전쟁과 관련한 내 모든 기억과 얽혀 있다. 바르셀로나의 적기, 초라해 보이느 병사들을 가득 태우고 전선으로 기어가던 가늘고 긴 기차, 전선 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나오는 전쟁에 찌든 잿빛 소도시, 질퍽질퍽하면서도 얼음속처럼 추운 산속 참호.

1936년 12월 말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으로부터 불과 일곱 달 전이다. (11쪽)


파시스트에 맞서는 공화파 통일노동당 소속으로 1936년 12월에 의용군에 지원하여 1937년 1월부터 5월까지 스페인 아라곤 전선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 기록이니, 소설이라기 보다 다큐멘터리에 더 가깝다고 보여진다.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엔 자기 의견이나 생각이 많이 들어가있기는 하지만 허구의 인물이나 사건이 아닌 실제 사건, 실제 인물, 실제 상황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어떤 이념과 기대를 가지고 내 조국도 아닌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현장에서 그 이념과 기대는 어떻게 실현되고 있었는지, 몸으로 겪어 얻은 결론은 무엇인지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의용군에 입대는 하였으나 기대하던 전투에 투입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고 무기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상태로 전선에서 대기 상태로 몇 주를 보내며 그는 점차 이 내전의 실상과 목적을 파악해가는데, 전쟁은 그가 목적으로 하던 혁명, 즉 노동자를 위한 혁명을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었으며 전체주의에 저항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된다. 작가에게는 파시즘에 대항하는 혁명이 더 중요했고 그 혁명을 이루기 위해 거칠 수 밖에 없는 전쟁이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혁명보다는 전쟁의 승리가 더 중요한 공산주의, 리더 없이 나가야하는 무정부주의의 한계 등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이 책 5장에 보면 구체적이고 날카롭게 나타나있다. 


6, 7장엔 파시스트들과의 참호전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와중에도 작가 특유의 유머코드는 군데군데 살아있다.

그 포탄들은 너무나 천천히 날아 달리기를 해도 쫓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포탄이 날아가는 소리가 마치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가며 휘파람을 부는 소리 같았다. (114쪽)


8장, 즉 이 책의 중반부 쯤 오면 작가가 파악해가고 있는 공산주의 실상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스페인내전에 처음 투입되었을때 작가가 본 스페인의 모습, 즉 사회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것 같은 스페인의 모습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이론적으로는 완전한 평등이었다. 실제적인 면에서도 완전한 평등에 가까웠다. 사회주의를 미리 맛보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 예컨대 속물 근성이라든가, 돈을 악착같이 벌어 모으려는 태도, 상관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 그곳에는 농민과 우리만 있었다. 누구도 주인으로서 다른 사람을 소유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상태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그것은 지구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게임 속에서의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한 국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경험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줄 만큼은 지속되었다. (...) 냉담과 냉소보다는 희망이 더 정상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공동체, ,동지>라는 말이 대부분의 나라에서처럼 허위가 아니라 진정한 동지적 관계를 의미하는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우리는 평등의 공기 속에서 숨을 쉬었다. (...) 그 결과 사회주의의 수립을 갈구하는 내 용망은 전보다 훨씬 더 실제적이 되었다. (140, 141쪽)

그가 애초에 지향하던 사회주의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드러내주는 부분이라서 인용해봤다. '이론적으로는'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으로 봐서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이 오래 가지 못하였음을.

작가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아주 다른 길로 구별되어 갔으며 스페인은 점차 프랑코의 독재 영향권으로 들어가 공산주의의 주도 아래 들어가는 것을 목격해갔다. 전쟁은 사회주의 국가 실현을 위한 혁명을 위한 길로서가 아니라, 공산주의 정권의 승리를 위한 필수적인 전쟁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는 것을 알아가면서 작가는 큰 실망과 패배감을 느낀다.

그해 4월말, 보름의 휴가를 얻어 들른 바르셀로나는 노동 계급의 지배가 아닌 다시 부르조아적 분위기가 지배적인, 그가 의용군 입대차 머물렀던 1936년 12월과 이미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가 휴가차 바르셀로나에 머무르는 동안 그의 이런 생각을 굳히게 되는 큰 사건이 일어나는데 바르셀로나 시가전이다. 정부의 치안대 (공산주의자)가 전국노동자연맹 (무정부주의자) 거점인 전화교환국을 점거하여 노동자연맹을 쫓아낸 것을 계기로 치안대와 통일사회당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 대 전국노동자연맹과 무정부주의연합 (통일노동자당)이 맞섬으로써 이들 사이의 분열이 공고화 된 것이다. 조지 오웰은 통일노동자당 소속이었고, 애초에 통일사회당과 통일노동자당은 파시즘에 대항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노선을 걷고 있었으나 이제 통일사회당은 통일노동자당을 일컬어 '위장한 파시스트 조직'이라며 바르셀로나 시가전과 그에 이어진 바르셀로나 전투에 대한 누명을 씌우기 시작했다. 조지 오웰이 이 책을 쓰기로 시작한 동기 중의 하나가 자기가 본 것을 바탕으로 통일노동자당에 대한 이런 누명을 벗겨내고자 한 것이라고 볼수 있고 이 책의 11장에서 본격적으로 이것을 증명해보이는 기술을 하고 있다. 

바르셀로나 시가전은 통일노동자당의 단독공작을 통해 일어난 폭동이었다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이었고, 스페인 내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을 커져갔으며 통일노동자당과 전국노동자연맹의 간부들도 차츰 몸을 사리게 되고 전쟁에 대한 외국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등)의 지원과 조력이 끊어질까봐 눈치보는 분위기가 팽배해져갔다. 

더불어, 바르셀로나 전투에서 작가가 목격한 것은 통일사회당, 공산주의, 통일노동자당 사이의 분열이라는 것도 있지만 또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정작 민간인들의 모습이었다.

그때를 돌이켜볼때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는 당시에 우연히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 갑자기 내 시야에 흘끗 들어온 민간인의 모습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의미 없는 소동으로 비칠 뿐이었다. (191쪽)

독재와 전체주의에 맞서 민중들이 주인이 되는 평등 사회를 이루자는 이념아래 전투가 벌어지지만 정작 그 민중들에게 그런 전투는 의미없는 또하나의 노동으로 비춰질 뿐이라는 것. 

얼마전에 읽은 치누아 아체베의 <사바나의 개미언덕>의 한 대목도 그러했다.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해 한 대학에서 열린 연설회에 정작 노동자들은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 시가전 후 다시 전선으로 돌아온 작가는 전쟁이 끝난 뒤 스페인의 운명을 예측하고 있었다. 즉, 스페인에는 공산주의자들 영향이 더욱 강력한 우익정부가 들어설 것이고, 그 정부는 결국 파시스트적 경향을 가질 수 밖에 없을거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투에 참가한 작가는 목에 총상을 입고 타라고나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받고서 탈출하듯이 서둘러 영국으로 돌아온다. 스페인내전의 결말, 자기 이념의 결말을 보고서 내린 결단인 셈이고 스페인내전에 의용군으로 참전한지 여섯달 후의 일이다. 그리고 이듬해 이 글을 쓰게 된다. 자기가 참전하여 목격한 사실을 토대로 스페인내전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과 통일노동자당의 누명을 벗기고자 하는 개인적인 노력의 일환, 이것이 이 책 <카탈로니아 찬가>의 탄생 배경이라면 배경이다. 문학적 목적으로 쓰였다고 보기엔 그 목적이 처음부터 뚜렷하다. 차라리 정치적 목적이라면 모를까.


그의 예견대로 스페인 내전은 군부 반란군 (프랑코 군부)이 승리를 거두었고, 스페인 공화국은 사라지고 프랑코의 파시즘 국가가 탄생하였다.


경험은 인식을 지배한다고 믿는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록은 인식과 추론을 바탕으로 한 것보다 우위에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스페인내전의 경험은 이 책 한권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작가의 사상과 가치관은 터닝포인트를 겪었고 세계를 보는 눈도 달라졌을 것이다. 동물농장과 1984가 이 책보다 나중에 쓰여졌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 책 제목이 카탈로니아에 대한 오마쥬 (Homage to Catalonia) 인 것도 너무나 잘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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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1-16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하여튼 저하고 맞지 않는 작가입니다. 꼭 집어서 한 명 더 고르라면,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
사실 이런 얘긴 하지 말아야 건전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데, 글쎄 지금 취중이란 말입니다. 하하하...!

hnine 2021-01-17 04:31   좋아요 0 | URL
솔제니친 책은 저도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한권 읽었는데 먼저 읽은 동생이 말하기를 이 책 한권이 딱 하루 얘기라고 하면서 읽어보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중학교때 얘기라 벌써 오래전 일이어요. 지금 읽어도 재밌게 읽진 않았을텐데 중학생때이니 어땠을까요.
책을 그렇게 많이 읽으시는데 맞지 않는 작가도 있으시겠지요. 저도 그런 작가가 있나...생각해보니, 딱히 없는 것 같아요. 맞지 않는 작가 나올때까지 더 많이 읽어야겠어요 ㅋㅋ (이 무슨 엉뚱한 결론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