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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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을, 같은 사람이 읽는데 이렇게 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을까.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만 이 책은 나에게 또 한번 그런 예가 되어 주었다. 스물 몇살,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끝까지 다 읽기는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명성만큼의 감흥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삼십 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 책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몇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 몰입하여 읽고 있었다. 


인생이라는 것은 내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는 하나의 실험이다. 선배들이 인생을 살았다고 해서 그것이 나한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내가 귀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면, 나는 인생 선배들이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16쪽)



자기가 한 일로 얻은 평판, 즉 자기에 대한 자신의 평가에 얽매여 있는 노예이자 포로일 뿐이다. 세간의 평판은 우리 자신의 사사로운 평가에 비하면 나약한 폭군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 아니 결정한다기보다 암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소위 체념이라는 것은 고착된 절망에 불과하다. 우리는 절망의 도시를 떠나 절망의 시골로 들어가서 밍크와 사향쥐의 용기*에서 위안을 찾아야 한다. 진부하지만 무의식적인 절망은 인류의 경기와 오락이라고 불리는 것 밑에도 숨어 있다. 거기에 놀이는 전혀 없다. 놀이는 노동 뒤에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망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지혜의 한 특징이다. 


*밍크와 사향쥐는 덫에 걸리면 다리를 제 입으로 물어뜯어서라도 벗어난다고 한다. (책 속의 주석) (14쪽)


절망이 고착하여 체념이 되고 운명으로까지 받아들이면서 그 절망은 어디에 근거하는지 우리는 제대로 보고 있는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알게 된 본성에 근거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한 어떤 일로 얻은 세간의 평판에 의해서인지. 밍크와 사향쥐 조차도 위기의 순간에서 벗어나고자 다리를 입으로 물어뜯는 방법을 써가며 최선을 다하는데 우리는 절망에 절망을 더하여 고착화시킨 삶을 택하고 있지는 않는가. 

무의식적인 절망이 팽배한 그 절망의 도시를 떠나 시골로 들어가, 인간이 아닌 자연에서 발견하는 것이 있고, 절망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지혜라고 했다. 숲속의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을 하기 위해 인간은 지혜를 발휘하여야 한다. 인간의 지혜란 동물의 본능일 뿐이다.


거짓투성이의 인간 사회여

세속적 위대함을 좇느라

천상의 온갖 안락이 허공에 흩어지는구나.

(46쪽, 조지 채프먼, 시인)


날마다 아침은 나에게 자연과 같이 소박하고 순결하게 살라고 권했다. 나는 그리스인들처럼 진지하게 새벽의 여신을 숭배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호수에서 목욕을 했는데, 그것은 하나의 종교 의식이었고, 내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기도 했다. 

하루 중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시간인 아침은 각성의 시간이다. 

우리 자신의 타고난 천성 덕분에 잠을 깨는 게 아니라 하인이 기계적으로 흔들어주기 때문에 잠을 깬다면, 공장의 종소리 대신 천상의 음악이 보내오는 파동과 대기를 가득 채운 향기와 함께 우리가 새로 얻은 힘과 내면의 열망에 의해 깨어나 전날보다 더 고결한 삶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그런 날을 과연 하루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날에 대해서는 별로 기대할 게 없다. 

하루하루는 어제 내가 더럽힌 시간보다 더 이르고 더 신성하고 더 찬란하게 빛나는 새벽의 한 시간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삶에 절망하여 어두운 내리막길을 따라가고 있는 사람이다. (130쪽)


아침의 몇시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아침에 눈을 뜨면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너무나 고마운 사람으로서, 한번만 읽을 수 없는 구절이었다.

이쯤 읽었을 때 잠시 쉬면서 저자 소개를 다시 읽어보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고, 이 책의 제목 '월든'은 콩코드의 숲 속에 있는 호수들 중 하나이며 소로가 손수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2일을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4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잠시 떠났던 때를 제외하고는 소로는 거의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 열여섯 살에 장학금을 받고 하버드대학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엔 콩코드로 돌아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학교 방침에 불응하여 3주 만에 그만 두었다. 다음 해에 사설 학교를 차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형과 함께 자신의 교육 이념에 따른 학교 운영에 집중하였으나 형이 병에 걸리는 바람에 2년 만에 학교를 문닫을 수 밖에 없었다. 소로는 랠프 월도 에머슨과 친분을 가지며 초월주의* 문학의 일원이기도 했고 초월주의 문학 기관지를 편집하는 일에 종사하였다. 

(*초월주의, transcendentalism: 실재를 인식함에 있어서 객관적 경험보다 시적, 직관적 통찰력을 중시하는 태도)

28세 되던 해에 소로는 에머슨의 동의를 얻어 에머슨이 구입해놓은 월든 호수 주변의 땅에 손수 집을 짓고 숲속에서의 독거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이 곳에 머물면서 그는 <월든>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에만 직면해도 인생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고, 죽을 때 내가 인생을 헛산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매우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체념하고 싶지도 않았다. (132쪽)


그는 이 책에서 한번도 외롭다고 하지 않는다.


내 집에는 많은 친구가 있다. 특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아침에는 더욱 그렇다. 월든 호숫가에 살면서 떠들썩하게 웃어대는 물새나 월든 호수 자체가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저 외로운 호수가 도대체 어떤 친구를 갖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호수는 그 파란 물속에 푸른 악마가 아니라 푸른 천사들을 갖고 있다. 태양도 혼자다.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태양이 둘로 보일 때도 있지만, 하나는 가짜다. 하느님도 혼자다. 하지만 악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악마는 많은 패거리를 거느린 군단이다. 목초지의 현삼이나 민들레, 콩잎, 괭이밥, 등에, 호박벌이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209쪽)


혼자일 망정 외롭지 않을 수 있다.

그는 숲속 오두막에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고 살지 않았다. 날마다 또는 하루 걸러 마을로 걸어가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적당량만' 받아들이면 나뭇잎의 흔들리는 소리나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처럼 나름대로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는 말 (253쪽) 에서, 적당량만 받아들임이 곧 소로 다움일 것이다. 관심을 넘은 간섭, 선을 넘는 관여를 피할 수 있을 때 기분이 상쾌한 소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 전반에 숲 속 독거 생활에 대한 자기 소신과 자연에 대한 관찰이 잘 어우러져 있다. 일반적으로 처음 이 책을 대할때 지루하게 느껴질 부분이라면 아마 자연에 대한 묘사가 이어지는 곳이 아닐까 싶은데, 이번에 읽을 때에는 새나 식물, 여우, 마멋 ,오리등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 집단으로 뭉뚱그려 읽히는 대신, 인간과 동등한 하나의 개체, 하나의 대상으로 인식이 되다보니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너무나 빠르게 변해가는 인간 사회, 소신보다 남의 이목과 남의 기준에 휘둘리기 쉬운 사회에 나도 어지간히 물려 있나보다 생각했다. 본성과 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존이라는 순수한 목적에 따라 포기하지 않는 생을 이어가는 것은 인간 외의 모든 자연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소로는 자연을 관찰하고 느낀 점들을 얼마나 시적이고 아름답게 묘사했는지 모른다.


언젠가 나는 우연히도 무지개의 한쪽 끝부분에 서본 적이 있다. 무지개는 아래쪽 대기층을 가득 채워 주위의 풀과 나뭇잎을 물들였고, 나는 마치 착색된 수정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처럼 눈이 부셨다. 세상을 무지갯빛 호수였고, 나는 잠깐이나마 그 호수에서 돌고래처럼 살았다. 그것이 좀 더 오래 지속되었다면 내 일과 삶까지도 무지갯빛으로 물들었을지 모른다. (309쪽)


곧 이어 내가 이 책에서 최고라고 꼽은 대목이 나온다. 


날마다 멀리까지 낚시와 사냥을 나가거라. 점점 더 널리 돌아다녀라. 많은 시냇가와 난롯가에서 불안해하지 말고 편히 쉬어라. 젊은 날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새벽이 오기 전에 근심걱정에서 깨어나 모험을 찾아 떠나라. 낮에는 날마다 다른 호숫가에 있도록 하라. 그리고 밤에는 어디에 있든 집처럼 편안하게 지내도록 하라. 이곳보다 넓은 평야는 없고, 여기서 즐길 수 있는 놀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이 사초나 고사리처럼 너의 본성에 따라 마음껏 자라도록 하라. 천둥이 울리면 울리게 내버려둬라. 그것이 농부의 수확을 망치겠다고 한들 어쩌겠느냐? 그것은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수레와 헛간으로 달아날 때 너는 구름 아래로 피하라.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을 너의 직업으로 삼지 말고 도락으로 삼아라. 대지를 즐기되 소유하지 마라. 모험심과 신념이 모자라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금 있는 곳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무언가를 사고팔면서 농노처럼 삶을 헛되이 보내고 있는 것이다. (316쪽)


낚시, 사냥, 천둥, 도락 등의 말을 단어 뜻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마음에 담는다. 이 책의 주제가 잘 요약하여 드러난 부분이라고 내 맘대로 받아들인다.

소로는 세속을 피해 숲속으로 들어가 은자의 생활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소로 자신이 생각하는 삶다운 삶을 선택하여 실행에 옮긴 용기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기준과 가치보다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것이 소로가 생각하는 삶이고 자유였다.


나는 언덕으로 에워싸인 풀밭에 서 있는 것처럼 이 눈 덮인 평원에 서서 우선 30센티미터 높이의 적설을 뚫은 다음 다시 30센티미터 두께의 얼음을 뚫어 내 발밑에 창문을 낸다. 그런 다음 물을 마시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아 물고기들의 조용한 거실을 내려다본다. 호수 속은 마치 젖빛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듯한 부드러운 햇살로 가득 차 있고, 바닥에는 여름처럼 반짝이는 모래가 깔려 있다. 이곳도 해질녘의 호박색 하늘처럼 잔잔한 평온함이 지배하고 있어서, 호수 주민들의 차분하고 한결같은 기질과도 잘 어울린다. 천국은 우리의 머리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우리의 발밑에도 있는 것이다. (438쪽)


이렇게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을 쓴 소로는 온순하고 순응적인 사람이었을까?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학 졸업후 처음 갖게 된 초등교사 자리를 강압적인 학교 분위기가 마음에 안들어 3주 만에 박차고 나왔으며 월든 호숫가에서 지내는 동안 정부에 반항하여 투옥이 된 적도 있다. 노예제도를 허용했던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책 내용중에도 나오고 '시민 불복종'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한 바도 있는, 사회적 관심과 양심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많은 저서를 남기지도 않았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책으로 출간된 것은 이 책을 포함하여 두권에 불과하고 그 밖에 여기 저기 발표한 글과 평생동안 계속 써온 일기가 그가 죽은 후 뒤늦게 출간되었다고 한다.


소로의 월든은 자연과 함께 산 그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주요 목적은 무엇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단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산 기록이다. 

더 늦기 전에, 더 나이들기 전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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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자본주의자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고 완전한 삶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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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남의 말이나 글의 의미를 따지며 곰곰히 생각하는 만큼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나의 어떤 결정을 내가 내리고 있나, 아니면 주위에 의해 결정지어지는가.

이 책은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숲속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물질적 가치에서 벗어난 생활을 칭송하는 책도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든가, 저런 사고 방식이 부럽다고 생각할게 아니라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받아들이고 나에게 솔직해질 수 있으면 좋겠고, 작가도 아마 그런 의도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와 저자의 남편 모두 한국에서 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저자 먼저 직장을 그만 두고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주를 하였고 곧 이어 남편도 직장을 그만 두고 미국 생활에 합류를 하였다. 한국에 있는 집을 팔았고, 그 돈으로 미국에서 땅을 구입, 집을 짓고 산다. 미국으로 이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로 가는 대신 이 분의 경우 도시가 아니라는 것뿐, 특별할 것은 없다. 한국에서 직장을 그만 두고 왔으므로 생계수단이 있어야 했고, 저자가 시도한 것은 가지고 있는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었다.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한다. 당연한 일이다. 기자로 일하던 사람들이었으니 글을 써서 투고도 하고 책도 쓰면서 아이 둘을 키우며 살고 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누구나 알만한 신문사 기자로 일하다가 도시를 벗어난 생활을 하게 된지라 적응이 필요했고 그러는 과정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진게 많은 것이 부자인 것은 맞지만,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난한 지 부자인지 잘 모르겠다. 실제로 소득은 극히 적다. 그러나 그 돈으로 사는 데 어려움도 아쉬움도 없다. 돈으로 온갖 시도를 해보았다. 한동안은 '소확행'과 같은 사소한 사치가 좋아 보일 때도 있었고,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여 돈을 모으는 무한도전에 몰두한 적도 있는데, 이제는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돈을 아끼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돈이 아껴야 할 그런 소중한 대상인가 싶어진다. (129쪽)


돈이 아껴야 할 그런 소중한 대상인가 싶어진다는 말이 새롭게 들린다. 저자는, 전반적인 소비를 최소화해서 무소유에 가까운 삶을 목표로 하지 않았고 좋게 보지도 않는다. 돈을 쓰며서 또는 쓰지 않고 아끼면서 얻는 것은 행복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문제는 돈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필요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안에서 풍요자유를 구할 수 있다. 2달러짜리 물이 지금 이 순간 필요한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통해서 누리고 싶은 기분은 정확하게 무엇인가? (131쪽)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필요한 일이고 인간의 자연적인 욕구이기도 하다. 다만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대개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 규정되어 나는 정작 원하지도 않는데 그것을 가지기 위해 현재의 여러 가지를 희생하며 살고 있는 것이라면.


돈으로부터의 자유는 돈을 끝없이 가져서 나의 인간다운 특성으로부터 달아나 완벽한 권력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아예 버려서 내가 인간으로서 소비하며 느끼는 즐거움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돈을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다른 가치로 무한히 전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집 또한 부동산 가치 자체가 아니라 안전한 공간에서의 휴식,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과 같은 가치로 누리는 것처럼 말이다. (148쪽)


소비로 자신을 채우고 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저자는 그것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 자기 삶의 철학을 얘기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건 자존감이 아니라 적극적인 탐구 끝에 얻은 나에 대한 이해다. 언제, 어떤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지, 무엇이 나를 채워주는지, 어떤 거리감이 좋은지, 나를 아는 만큼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쫓아다니지 않을 수 있다. 시골에 오지 않아도 궁금해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이다. (257)


우리 사회는 획일화된 패턴의 삶에서 조금 벗어나 사는 것 같은 사람을 가만 두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이 많이 읽힌 것은 아닌가 생각하면 아이러니 하기도 하지만, 이제 사회로부터의 그런 기준, 시선, 잣대로 인해 잊고 무시하고 살았을지 모를 나 자신을 들여다봐야 할 때이다. 그러한 사고,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우리는 도시에 살든, 숲속에 살든, 진정 나로 살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신이 있다면 인간을 놀리는 걸까? 인간이 간절히 원할 때는 들어주지 않다가, 막상 그런 변화가 필요 없어지면, 변화가 찾아오는 게 얄궃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원인은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그만뒀다. 대신 나의 주인이 됐다. 지금을 나의 행동, 나의 책임,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불행이나 잘못의 원인과 책임을 나에게 돌리지 않고, 그 상황을 내 일부로 인정했다. 내 힘으로 잘못과 불행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내 것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그 상황의 중심에 선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보다 더 상위의 강력한 힘은 변화가 필요 없는 맥락와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 정도의 힘이 생기면, 변화가 드디어 저절로 찾아온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변화가 아니라 변화가 필요 없는 맥락에 모든 것이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102쪽)



저자가 책에서 자주 언급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뒤이어 읽고 있다. 오래 전에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몇 페이지 읽고 바로 접어두었던 책이 지금은 마음에 쏙쏙 들어오는 것은 그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일까, 내가 그때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현명한 사람, 존경할 만한 사람, 성공한 사람. 그들 조차도 무수한 가능성 중 단 하나의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보지 않은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그들은 할 말이 있을 수가 없다. 인생과 성공과 완벽에 대한 기준을 버리는 것이다. 인생은 그저 사는 것이지, '잘'살아야 하는 숙제가 아니다. 아무도 '잘' 살 수가 없다.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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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18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책 <도시인의 월든>도 읽어보면 소로의 <월든>에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더군요.

hnine 2025-12-19 05:08   좋아요 0 | URL
이 책중에 인용도 자주 되어 있듯이 이 작가가 소로의 월든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서 저도 지금 읽고 있는데, <도시인의 월든>도 읽으면 더 잘 이해가 되겠군요.
좋은 책을 한권 읽고 나면 이어서 읽고 싶은 책이 연달아 생겨서 숙제 같기도 하지만 즐겁습니다.
 
독일어 시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
지그프리트 렌츠 지음, 정서웅 옮김 / 민음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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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를 모델로 한 소설 하면 서머싯 모옴의 <달과 6펜스>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검색해보니 그 외에도 몇 작품이 있지만 내가 읽은 것은 <달과 6펜스>가 유일하고 이제 한권 추가되었다.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 에밀 놀데를 모델로 한 바로 이 소설 <독일어 시간>이다.
그걸 알고 집어든 책이고, 내용이 난해하거나, 지루하지도 않은데 왜 그리 읽는데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결국 끝냈다.
1, 2권으로 되어 있는데 알라딘에서 리뷰 올릴땐 리뷰 한편당 두 권 선택이 안되니 1권만 읽은 것 처럼 올라가지만 아시는 분들은 아실 것.
화자가 되는 것은 '지기'라는 이름의 아이. 의도적인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의 저자와 이름이 같다.
소년 감화원의 독일어 작문 시간에 백지로 제출한 벌로 혼자 독방에 감금되어 있어야 하는 소년 '지기 예프젠'. 그가 작문 노트를 백지로 제출한 이유는 '의무의 기쁨'이라는 제목에 합당한 추억들을 불러들이느라 시간이 가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년 '지기'가 떠올린 추억은 어떤 추억일까? 그 추억이 결국 이 소설의 내용 전체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 경찰서에서 근무하던 아버지기 맡은 임무는 외딴 집에 고립되어 있는 화가 난센의 거동을 살피는 일이었다. 지기는 이웃 화가 난센의 작업에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는 동시에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데만 열의를 보이는 아버지를 지켜본다. 여기서 화가는 짐작하다시피 소설의 모델이 된 에밀 놀데이다. 아버지라는 인물이 맹목적인 복종심으로 관철된 의무감으로 사는 사람을 나타낸다면 화가 난센은 역시 독일인이지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체제에 반항할 줄 아는 자를 나타낸다. 서로 대립되는 입장이지만 둘 다 당시 독일인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소년 지기는 둘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목격하는 자이다.
화가는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하는 소년에게 그림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림을 보는 법을 가르친다.


본다는 것은 뚫고 들어가 증대시키는 거야. 또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이기도 하지. 너다워지기 위해서는 항시, 사물을 바라볼 때마다, 너 자신을 찾아내야 해. 발견되는 것은 사실화되는 거야. 
사물을 바라본다는 것은 너 자신도 동시에 바라보는 거야. 네 시선이 다시 네게로 되돌아오는거지. (131쪽)

11살 소년이 알아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느꼈을 것이다.
창작 금지의 감시라는 아버지의 의무에 대해 소년 지기는 화가의 그림이 압수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화가의 그림을 몰래 빼돌려 자기만 아는 장소에 보관하게 되는데, 이것이 나중엔 화가의 그림을 훔친 것으로 되어 소년원에 송치되고, 그의 의도를 분석하기 위해 소년원 원장과 심리학자로부터 심문을 받게 된다. 
네가 왜 여기 있는지 아느냐는 질문에 지기는 대답한다.


'그림들을, 제 아버지가 찾아다니는 그림들을 안전한 곳에 옮겨놓은 것 때문이지요. 그것뿐입니다.'


환각적 방어반응이니, 전향적 공격성이니, 생소한 용어로 그의 행위를 설명하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심판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이곳에 보낸 겁니다. 소년들을 말예요. 옳지 않은 양심들을 배에 실어 이곳에 날라놓는 것입니다. 그래야 즐거운 마음으로 아침밥을 먹고 밤에는 그로그주를 홀짝거릴 수 있겠지요.'


소년 지기를 통해서 작가는 독일인의 마지막 양심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독일인에게도 그런 양심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음을.
1926년에 독일에서 태어나 17세때 해군으로 징집되어 참전, 탈영하였다가 연합군의 포로가 되기도 했던 작가는 후에 대학에서 영문학, 철학을 공부하고 기자 생활을 거쳐 창작 활동에 전념한다. 42세때 발표한 <독일어 시간>은 출간되자 마자 독일에서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발판이 되어 1999년엔 괴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4년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그프리트 렌츠의 <독일어 시간>은 소년의 눈을 통해 나치 시대를 본다는 점에서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과도 비교되는데 양철북의 경우 좀더 풍자, 환상적이라면 지그프리트 렌츠의 독일어 시간은 인간의 도덕적 양심을 핵심 주제로 다루고 있다. 실제로 지그프리트 렌츠와 귄터 그라스 둘다 문학 그룹 47의 멤버로서 전후 독일의 도덕 재건과 문학적 현실참여를 목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어느 해설을 봐도 흠잡을데 없이 완벽해보이는 이 작품을 읽는 속도가 기대만큼 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앞뒤로 너무 완벽하게 짜맞춘 듯하다는 감을 일찌감치 잡아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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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11-09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달과 6펜스를 읽었는데 이 책도 재밌을 것 같네요.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그림을 보는 법을 설명하는 문장이 인상적이네요. 좋은 정보를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hnine 2025-11-09 14:36   좋아요 1 | URL
저는 <달과 6펜스>가 더 재미있었어요. 이 책도 문장력도 훌륭하고 인물로 대변되는 상징도 뚜렷하고, 작가의 취지도 분명한데, 그게 거의 예외없이 끝까지 완벽하게,너무나 드러나게 분명하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매력이 좀 떨어졌다고 해야할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달과 6펜스>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한번 읽어보셔요.

yamoo 2025-11-2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이게 에밀 놀데가 모델이었다구요?!
헐~~ 놀데 그림은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독일어 시간 모델 화가가 에밀 놀데였다니, 읽었어도 저는 왜 몰랐을까욤??

hnine 2025-11-21 15:19   좋아요 0 | URL
읽으셨어요? 하긴 여기선 에밀 놀데를 롤모델로 한 인물보다는 그 사람을 지켜보는 아이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니까요.
에밀 놀데 그림은 안 좋아하시는군요.
 
오 헨리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0
오 헨리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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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가 본명이 아니라는 것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오 헨리가 필명이 되었을까 이유가궁금해졌다. (난 책을 읽으면 작품 그 이상으로 작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는 편이다. 작품을 읽는 건지, 작가를 읽는 건지 모를 정도)

오 헨리는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던 사람. 한때 은행에서 일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 횡령 혐의로 고소당해 수감 생활을 한적이 있다고 한다. 감옥에서도 글을 쓰던 그는 자기의 수감 상태를 숨길 겸 본명과 매우 다른 필명을 지어 사용하기 시작했다는데, 오 헨리라는 이름은 그가 읽던 약학 잡지에서 (약제사로 일한 적도 있다.) 본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프랑스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프랑스 느낌이 나는 이름 (오 앙리)으로 선택했다는 설도 있다. 

많은 작가들의 공통적인 배경이라도 되는 듯, 오 헨리 역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의사인 아버지를 두었으나 어머니가 일찍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때부터 아버지는 술에 의존하는 불안한 생활을 했고 오 헨리는 고모와 할머니 손에 키워졌다. 십대때부터 견습 약제사를 시작으로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데, 어릴 때부터 그림과 글에 재능이 있었나보다. 여러 직업을 경험하는 동안에도 글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도 죽고, 할머니, 아들, 아내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두번째 부인과의 결혼도 원만치 못해 별거 생활을 하다가 오 헨리 자신도 말기 간경화와 당뇨합병증으로 호텔 방에서 쓰러져 결국 이틀 뒤에 세상을 떠났다. 

이 책에는 그의 스물 여덟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중에는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 이십 년 후, 경찰과 찬송가 와 같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이야기도 있는데 많이 알려진데에는 다 그 이유가 있었나보다. 이렇게 네 편이 읽은 중 가장 수작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단편이고, 반전의 플롯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지루할 틈이 없다. 


그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공통점 중에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 도시의 서민 여성으로 여자 점원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 남자로는 노숙자나 경찰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 등이 있다.

뉴욕은 그가 생의 마지막 8년을 보낸 곳이다. 작품마다 등장하는 거리, 술집, 백화점, 하숙방, 경찰서 등은 실제 장소들을 모델로 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 뉴욕은 인간 군상의 축소판이자 현대 도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주인공으로 삼은 사람들은 가난하거나 힘없는 소시민들이 대부분이다. 

누가 등장하든 오 헨리의 작품의 특징은 반전이 있는 플롯 구성에 있다. 감옥을 피난처로 삼으려는 노숙자와 그를 체포하지 못하는 경찰의 코믹한 역전을 소재로 한 <경찰과 찬송가>, 의무와 인간적 정이 충돌하는 경찰의 딜레마를 보여준 <20년 후>, 도둑이 사랑을 계기로 새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인 <완벽한 개심>,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허름한 하숙방을 전전하던 남자가 결국 절망 속에서 자살하는데 그 방은 알고 보니 여인이 죽었던 그방이었다는 <가구 딸린 셋방>은 도시의 고독과 절망을 나타냈다. <잘 손질된 등불>에서는 각각 세탁소와 백화점에서 일하는 두 아가씨가 나온다. 좋은 남자를 만나 나은 생활을 꿈꾸는 둘의 희망은 같지만 서로 다른 삶을 선택하여 다른 길을 걷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작품속에서는 사회적 리얼리즘의 느낌도 났다. 

유머와 반전은 현대인의 아이러니, 즉 도시에서 생존하며 겪는 욕망과 윤리의 대립이라는 고통 속에서 완충 장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오 헨리가 그의 문학에서 사용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헨리는 문학성을 문제로 들어 비평가들로 부터 저평가 되기도 하는게 사실이다. 지나친 감상주의로 인해 감정의 깊이나 현실에 대한 탐구가 부족하다는 것, 반전 결말의 묘미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목적이 되는 듯 인물의 심리를 깊이있게 분석하고 다루지 못했다는 점, 문체가 가볍다는 점 등이 그 이유이다.

모든 작가들이 같은 방법으로 문학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건 나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심금을 울리진 않아도 가슴을 치고 가는 메시지를 그 짧은 이야기 속에서 전달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 아닐까?

여행길에 들고 가서 짬짬이 읽기에 딱 좋은 책이었다. 


젊은 시절의 슬픔과 노년의 슬픔 사이에는 이런 차이가 있다. 젊은 시절의 짐은 다른 사람과 나누면 그만큼 가벼워진다. 그런데 노년에는 나눠 주고 또 나눠 줘도 슬픔이 항상 그대로 남아 있다. (156쪽, '백작과 결혼식 손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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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1-02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헨리 단편집은 중딩시절 읽었던 세계 단편문학 전집에서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hnine 2025-11-02 13:41   좋아요 0 | URL
짧고 위트와 반전을 갖추고 있어서 접근성이 높지 않은 작품들이 많지요.<마지막 잎새> 같은 것은 교과서에서 처음 읽었던 것 같기도 한데, 오래 전이라 기억이 확실하진 않아요.
오헨리의 다양한 인생편력으로 보건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더 많은 다양한 작품들을 남겼을 것 같지요.

잉크냄새 2025-11-02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헨리의 작품 중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소설에 버찌나무가 나오는데 학교 정원에도 버찌나무가 있어 수업 시간에 한동안 바라보던 기억이 나네요.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던 햇살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hnine 2025-11-02 13:45   좋아요 0 | URL
버찌나무란 벚나무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아직도 생생한 기억을 남긴 그 작품은 어떤 내용일까 궁금하네요.

페크pek0501 2025-11-09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갖고 있는데 다 재밌어요. 역시 오 헨리입니다. 특히 경찰과 찬송가, 는 어찌나 웃기던지 막 웃었고 친구에게 그 줄거리를 얘기할 정도였어요. 제목이 안 떠오르는데 호텔에서 만난 두 남녀가 꽤 부자로 행세하다가 서로 가난한 것이 밝혀지는 단편이 들어 있어요. 이 단편에서 좋은 문장이 어찌나 많던지 감탄하며 여러 번 읽었던 게 기억납니다.^^

hnine 2025-11-09 14:37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단편은 아마 <아르카디아의 두 나그네> (번역한 제목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일거예요. 저는 좋은 문장까진 신경 못쓰고 읽었는데 페크님 말씀 들으니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일단 웃지만 웃음끝엔 쓸쓸함을 남기기도 해서, 단순히 기발한 에피소드 모음집이라고 보고 싶지 않은 이유같아요.

차트랑 2025-11-12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할 일이 많은데....

hnine 2025-11-12 19:54   좋아요 0 | URL
할 일 많을 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합니다. 28편이 초단편이고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라서 시간 날때마다 읽기 좋아요.
 
엄마 생물학 - 내 몸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
이은희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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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0년 전 '하리하라의 과학 카페'라는 책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이은희 과학저술가는 내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읽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올해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바로 구해서 읽은 이 책이 그동안 나왔던 저자의 다른 책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본인의 경험담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머리말 부터 순탄치 않았던 본인의 임신과 출산 과정으로 시작한다.
엄마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하나의 관점에서 말 할 수 없겠지만 여기서는 생물학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성평등, 젠더 갈등 등 다른 문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폭넓은 관점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총 두번의 출산을 하였는데 첫 아이 출산 후 두번째 출산때 쌍둥이를 낳아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세 아이 모두 시험관 아기 시술을 통해 얻었다고 해서 그것만해도 힘든 과정이다 싶었는데 첫째 아이와 둘째, 세째 쌍둥이가 알고 보면 '시간차 쌍둥이'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큰 아이를 얻기 위한 시술을 할 때 채취하여 냉동시켜 보관했던 여분의 배아를 5년이 지나 폐기 처분하려고 한다는 연락을 병원으로부터 받고는 마음이 좋지 않아 또 한번의 임신을 시도하기로 하여 여분의 배아 중 하나를 이용하여 다음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같은 시간에 형성된 배아가 5년의 차이를 두고 태어나게 된 것. 읽고 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그동안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난자와 정자를 따로 채취하여 인공 수정을 통해 배아가 만들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임신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배아가 엄마의 자궁 속에 주입되어 자궁 벽에 성공적으로 착상이 되어야만 비로소 임신이 되었다고 말한다. 자연스런 수정이 아니라 난소를 자극하여 과배란을 유도하는 과정, 즉 원래 한번에 하나씩 만들어져나와야 할 난자인데, 억지로 과배란이 일어나도록 자극을 하고 그렇게 자극받은 난소는 여성에게 아픔과 고통, 부작용을 일으킨다. 이렇게 어렵게 얻어진 난자와 비교적 쉽게 (?) 채취된 정자를 인공적으로 수정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과정도 자연스런 수정 과정과 같을 수 없다. 가만히 있는 난자와 가만히 있는 정자에 수정이라는 사건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 때로는 난자 세포 표면에 구멍을 내어 정자와 퓨전이 일어나게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겨우 만들어진 배아를 엄마 자궁속에 넣어주는데, 넣어준 배아가 스스로 알아서 자궁벽에 가서 착상하는 것도 아니다. 자궁벽을 일부러 두툼하게 하기 위해 자궁벽에 일부러 상처를 내는 과정을 선행시킴으로 해서 자궁벽이 두꺼워지도록 하기도 한다는데, 자궁벽이 두툼할 수록 착상이 잘 된다는 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던 의사들은 자궁 내막의 두께가 임신율과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합니다. 
(Dickey , R.P. et al. "Endothelial pattern and thickness associated with pregnancy outcome after assisted reproduction technologies"  Human reproduction 1992)

자궁 내막이 두꺼울수록 임신율이 높았다는 분석 결과는 자연스럽게 인위적으로 자궁 내막의 두께를 늘릴수 있다면 임신율이 증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자궁 내막 자극술입니다. 자궁 내막 자극술은 자궁안에 가느다란 기구를 넣어 자궁 내막을 인위적으로 긁어 상처를 내는 겁니다. 상처가 나는 경우 이 부위를 메우기 위해 세포의 재생이 활발해집니다. 때로는 이것이 과다해서 상처가 난 곳이 오히려 원래 피부보다 부풀어 올라 불룩한 흉터를 남기기도 하죠. (76쪽)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도 있는 과정을 인공적으로 하나하나 유도한다는 것은 물론 그만한 과학 기술이 있어야만 가능하긴 하지만 얼마나 여러 고비를 넘겨야 하는 과정인지, 여성이 겪는 고통과 그것을 참아내야 하는 시간들을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인지.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이 책에서처럼 한 단계 한 단계,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왜 그것이 필요한지에 대해 듣거나 읽은 것은 처음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겪은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 목적이 아니었다.
본인이 경험했던 것을 생물학이라는 보편적인 과학이론으로 설명하는 한편, 그러는 과정에서 과학이론이 놓친 사실과 경험이 없는지 살피어 삶과 과학의 연결 고리와 차이점을 성찰하고 그려 내려 한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해보았고 그것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저자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생후 2개월에 큰 아이는 선천성 근성 사경이라는 검사 결과에 따라 치료를 받아야 했고 뇌성마비가 아닌가 해서 불안해야했다. 
인공 자궁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최근 과학 뉴스, 집밥이 정답일까 하는 제목의 워킹맘의 딜레마, 포유동물에게서는 드물게 인간의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폐경 현상에 대한 진화적 해석을 설명한 '할머니 가설', 여성의 가슴이 자연 선택된 게 아니라 성 선택의 결과라고 해석한 '상체에 달린 엉덩이 가설 (데즈먼드 모리스, 김석희 옮김 '털없는 원숭이' 문예춘추사 2006)' 등 사회 문화적인 이슈도 담고 있다.  

엄마로 살고 있든 살고 있지 않든,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처음부터 온갖 준비 다 하고 태어나 엄마가 되는 순간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그 목적에 맞춰 기능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를 위해 많이 읽고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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