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에는 내년도 올해만큼만 살리라는 말로 한해를 정리했었는데
올해는 '내년엔 좀 바꿔보리라' 이런 분위기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조급해하지 말고,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 이 이상 생각의 진전이 없는 중 지난 여름에 찍은 위의 사진을 우연히 사진 폴더에서 보게 되었다.

 그래, 그런 여유, 그런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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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2-22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한가로운 미소와 평화를 지켜줄 수 있는 이 사회였음 좋겠어요. 저도 같이 미소지어지는 사진이에요.

hnine 2008-12-22 16:14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감사합니다.
제가 좀 조바심 내는 경향이 있거든요.
저의 그 성격이 아이에게까지 전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좀 느긋해지도록 노력해야겠어요.

미설 2008-12-22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보여요^^ 너무 귀엽네요~

hnine 2008-12-22 16:32   좋아요 0 | URL
미설님, 장난도 많지만, 혼자 자라서 그런지 삐치기도 잘 삐치고 아무튼 무척 감성적이어요.

무스탕 2008-12-22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해먹 저좀 빌려 주세요. 저도 저렇게 아이처럼 늘어지고 싶어요...

hnine 2008-12-22 23:51   좋아요 0 | URL
ㅋㅋ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래요.
예전에 저도 해먹에 저렇게 누워보려고 시도해본 적이 있는데 계속 되집어지는 통에 포기한 웃기는 추억이 있답니다 ^^
 

 

교수들은 별로 달가와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늘 라디오를 켜놓고 있었다. 대학 실험실은 읽고 생각하고 머리를 써야하는 장소라기보다 몸을 움직여 일하는 일종의 육체 노동 장소이기 때문에 라디오의 음악 소리가 하등 방해될 것이 없었다. 그것도 고상한 클래식 음악 채널이 아닌, 로컬 방송 채널, 즉 제일 수다스럽고 번잡스런 채널에 거의 고정되어 있다시피 했다. 하루 종일 있다보면 유행하는 노래를 하루에도 몇번씩 듣기 일쑤였다. 그래서 귀에 익숙해진 노래들 두 곡을 올려본다. 그당시 이 노래들이 영국에서만 인기였는지, 한국에서도 알려져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Spice girls는 요즘 우리의 원더 걸스에 비유할수 있을까?  어린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좋아했고, 네명의 멤버중 특히 좋아하는 사람의 옷이나 머리 모양을 따라하고 다니는 여자 아이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네명은 본명 외에 불리는 이름들을 모두 하나씩 갖고 있었는데 Posh spice라고 불리던 Victoria Posh는 나중에 축구 선수 베컴과 결혼하여 더 유명해졌다.

 

 

 

영국에서는 말투가 단순히 말투 이상의 무엇 (신분, 출신, 교육 정도 등등) 을 나타내는 수가 많은데, 위의 노래 시작 전에 나오는 이들의 영어 억양이나 발음은?

>> 접힌 부분 펼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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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내 책상은 동생과 함께 쓰던 방에서 아빠의 서재로 옮겨졌다. 서재라고 해서 넓직하고 근사한 그런 서재라기 보다, 아빠의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는 책장 세개가 나란히, 그리고 작은 티 테이블, 아빠 책상, 그리고 오갈 데 없어 어울리지 않게 자리잡은 서랍장, 부엌에 가지 않고도 커피를 끓여 마실 수 있게 전기 포트, 커피, 설탕 등이 한 쪽 구석에 있는, 크지 않은 방이었고, 거기에 내 책상이 또 한 공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나는 거기 책상에 앉아 책도 읽고 라디오도 듣고, 편지도 쓰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보낼 엽서도 꾸미고, 일기도 쓰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내가 거의 잠자러 서재를 나설 시간쯤 되서야 아빠께서는 들어오셨다. 내가 뭐하고 있나 잠깐 들여다보시고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가끔 음악을 들으셨다. 아 참, 그 방에는 위에 말한 것들 외에도 낡은 턴 테이블과 수백장의 LP판이 책꽂이가 아닌 LP판 전용 꽂이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책장 위에 올려져 있었다. 어떤 날은 클래식을, 어떤 날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어떤 날은 영화 스타워즈 주제 음악, 아빠의 취향은 그야말로 어느 한 분야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날도 늦게 오신 아빠께서는 판을 하나 골라서 턴테이블에 올려놓으셨는데, 그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순간 나는 그야말로 꼼짝도 할수가 없었다. 몰입되었다고 해야하나. 아빠를 무척 어려워했기에 이 곡의 제목이 무엇인지, 어떤 느낌이라던지 하는 말은 감히 꺼내지도 못하고, 눈은 그냥 보던 책을 향하고 있었고 고개도 못든채 그냥 안듣는 척 하면서 듣고만 있었다.
슬픔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감정이 밀려와 온 몸을 휩싸고나면, 어느새 그 슬픔의 감정을 서서히 덮치고 솟아오르는 느낌은 숭고함이라고 해야하나, 지금도 나의 부족한 표현력으로는 형언할 방법이 없다. 너무나 아름다운 음악. 금방이라도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아서 참느라 애쓰며 듣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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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1-25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윗 글을 읽어서인지 서늘하게, 아릿하게 들려와요. 감수성 여린 시절에 이 음악을 들었다면 그 충격이 쩌릿쩌릿했을 것 같아요. 이 아침에, 아름다운 음악 듣고 갑니다.

무스탕 2008-11-25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그렇게, 제 발길을 딱 붙잡은 노래가 있었어요.
정말 길을 가다가 레코드 가게 앞에서 발이 멈춰 버렸는데 노래가 끝나도록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가 노래가 끝난 다음에 들어가서 물어봤지요. 이 곡의 제목이 뭐냐고요.
'브룩크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OST 라고 알려주더군요.
제가 이 영화를 봤거든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들은 기억이 안나는거에요;;
하여간, 그 이후로 브룩크린.. 은 정말 잊혀지지가 않아요.

hnine 2008-11-25 12:25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나중에라도 이 음악 들을때에는 처음 듣던 장소, 시기, 그리고 아버지 생각이 함께 날 것 같아요. 좋지요 이 곡? ^^

무스탕님, 그 음악도 참 좋지요. 발이 멈춰 버렸다는 말씀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겠네요. 저는 그 영화는 못 봤어요. 아마 'Love idea'라는 제목이 붙어 있지 않았나 싶은데. 오랜만에 그 곡도 들어보고 싶네요.

상미 2008-12-17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쩌면 내가 준이보다 더 너희 아빠 서재를 기억하고 있을거 같아.
네가 묘사한것처럼 다 떠올라.벽면 가득 책장들, 네 책상위치도.
아빠를 어려워했었구나... 나 30년지기 친구 맞니?

hnine 2008-12-17 22:18   좋아요 0 | URL
이렇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게 새삼 너무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지는구나. 아빠를 어려워했었다는 말 조차 이제서야 할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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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8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18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양물감 2008-11-18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옹??

hnine 2008-11-18 12:47   좋아요 0 | URL
ㅋㅋ... 사연 많은 꽃다발이랍니다 ^^

마노아 2008-11-18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잘하셨어요. 너무 알흠다운 꽃이잖아요. 특히 소국은 사람을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요^^

hnine 2008-11-18 12:48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쑥스러워서 사진 일부러 허옇게 편집한 것 좀 보세요 ㅋㅋ ^^

바람돌이 2008-11-18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옆구리 찌르고 싶어요. ^^

hnine 2008-11-18 12:49   좋아요 0 | URL
어머, 바람돌이님은 옆구리 안 찌르시나요? 저도 못그러는 편이었는데 이제부터는 가차없이 옆구리 찔러서라도 권리(?)를 찾기로 했답니다 ^^

미설 2008-11-18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구리 찔렀어도 너무나 행복해 보이세요^^

hnine 2008-11-18 12:50   좋아요 0 | URL
저 표정 뒤에는 그 정반대의 표정이 숨어 있답니다 ㅋㅋ...눈물 콧물로 받아낸 꽃다발이지요.

비로그인 2008-11-18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찔를건 찔러야지요 ㅎㅎ 저도 윗분께 동감이에요. 행복해 보이십니다~

hnine 2008-11-18 12:50   좋아요 0 | URL
역시 행복은 그냥 오지 않더군요. 쟁취했습니다! ^^

웽스북스 2008-11-1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히 사진에 대고 손 흔들고 싶어요
반가워요 hnine님~ 하고요 ㅎㅎ

늠흐 행복해보여요. 특히 두번째 사진 ^_^

hnine 2008-11-18 12:52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첫번째 사진은 제가 혼자 찍었고, 두번째 사진은 보다 못한 제 아이가 와서 찍어주었답니다. 꽃 하나에 울고 웃고 ^^
실제로 길에서 웬디양님 만나면 알아보고 손 흔들수 있을 것 같아요.

무스탕 2008-11-18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찔러서 저렇게 나온다면 백 번이라도 찔러야지요 ^^
꽃도 화사하니 이쁘고 나인님도 곱습니다 ^__^

hnine 2008-11-18 19:21   좋아요 0 | URL
주름이 자글자글한데도 곱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찔러서 받아내고야 마는, 그런 나이가 어느덧 되어 있네요 ^^

춤추는인생. 2008-11-19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환하게 웃으시는 나인님 사진이 훨씬 아름다우신걸요.
조용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신 분이라는것을, 글말고도 나인님 사진에서 조심스럽게 짐작해봐요.
옆구리 찔러 절받아도 꽃은 참 사람마음을 기쁘게 하쟎아요.^^

hnine 2008-11-19 00:49   좋아요 0 | URL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들어보기도 하고, 저 정말 기분 좋습니다.
내성적인 것은 맞는데, 늘 조용조용하진 않지요. 다린이 말 안들을 때는 막 소리도 지르는걸요. 형편없는 엄마일때가 많지요.
저 꽃다발은 제가 지금까지 받아본 꽃다발 중에 제일 무거운 꽃다발이었어요 ^^

순오기 2008-11-19 0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화꽃다발에 살짝 가려진 얼굴 표정이 좋아요~~ 옆구리 찔러 권리찾기에 동참합시다!^^

hnine 2008-11-19 08:40   좋아요 0 | URL
와~ 무슨 캠페인 제목 같아요 '옆구리 찔러 권리 찾기!' ㅋㅋ
찌르기 전에 알아서 해주면 참 좋으련만, 그쵸? ^^

울보 2008-11-19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이뻐요 꽃도 님도 이제야 님의 얼굴을 보았네요,
저도 옆구리 찔르면 절을 받을 수있을까요,,
그런데 왜 ?옆구리 찌르셨을까,

hnine 2008-11-19 15:30   좋아요 0 | URL
ㅋㅋ 꽃을 들고 있는 사람이 험상궂어 보이는 법은 없는 것 같아요.
꽃이 없이도 늘 저렇게 웃으며 살 수 있다면 참 좋겠어요.
그러고보니 저도 류의 사진들은 많이 보고 있지만, 울보님 얼굴 뵌적은 오래된 것 같으네요. 좀 보여주세요~~ ^^

상미 2008-12-17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날짜를 보아하니 ,어떤 내용일지 감이 잡히는군요...ㅋㅋ

hnine 2008-12-17 22:14   좋아요 0 | URL
ㅋㅋ 아무렴요~ ^^
 

나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부터 얼마나 피아노가 배우고 싶었는지 모른다. 1970년대이니,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지만, 요즘 말로 나의 로망이었음이라. 엄마께서는 쉽게 허락을 안하셨고, 몇년을 조르고 졸라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겨우 레슨을 받게 되었다. 하루 하루 피아노를 배워나가는게 너무 좋아서, 선생님께서 내주신 숙제보다 훨씬 더 해가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고,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진도가 훨씬 빨랐다. 그러나 나는 그때 진도가 빨리 나가고 어쩌고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른손, 왼손, 그 다음에는 양손으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되어가는 과정들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던지. 지금 생각해도 그때 피아노 배우기만큼 나에게 배움이 즐거움 그 자체였던 적이 있었나 싶다.

늦은 나이에 혼자 떠난 유학 생활. 인터넷은 커녕, 기숙사 방에는 TV도 없었다. 가자 마자 구입한 CD플레이어와 가져간 책 몇 권이 전부. 아무 할 일이 없던 주말에는 주중에 못느끼던 '혼자'라는 생각이 예전에 느껴본 적 없는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아리게 했다. 눈물이 막 나려고 할때의 그 가슴 통증 같은 것이, 눈물이 나지 않을 때에도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치고 들어왔다. 어느 주말, 할일 없이 교정을 어슬렁 거리다가 문득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고, 소리 나는 쪽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학교 음대 건물 옆을 지나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봤다. 그리고 비어있는 피아노 연습실에서 피아노를 쳐봤다. 이후로, 주말에 내가 하는 일은 혼자 기차타고 여기 저기 미술관이나 박물관 구경다니는 것 아니면 한나절 피아노 뚱땅거리는 것이 되었는데, 한때 취미로 배워두었던 피아노가 그렇게 나에게 위로가 되어줄 줄은 몰랐다. 어떤 친구가 그때 피아노만큼  나를 이해해주고 다독여 주었으랴.

결혼하고, 아이 낳고, 정신 없이 사는 몇 해 동안 피아노를 칠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아이가 크면 꼭 음악을 알게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꼭꼭 다지고 있었다. 앞으로 아이 인생의 어느 시기에 그것이 큰 위안이 되어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에게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없는 형편에 무리해서 피아노를 구입해놓고, 아이에게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고, 건반을 직접 눌러보게도 하면서 흥미를 가지게 하느라 애쓰기도 했다. 아이가 일곱살이 되던 작년에 드디어 아이 입에서 피아노가 배우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말!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일주일에 한번 나는 아이 손을 잡고 레슨을 다녔고,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데리고 오는 그 일이,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아이도 즐겁게 잘 배워오고 있었는데, 요즘 들어 아이의 연습하는 태도가 예전같지를 않고, 엄마인 내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져 오기 시작해왔다. 연습을 시킬 때마다 몇 번씩 알려줘도 모르는 것 하며, 그러면서 딴청을 피우고, 연습 해라, 오늘  레슨 날이다, 일일이 챙겨서 시키는 것에 나도 모르게 지쳐갔다. 자연히 연습시키면서 큰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화도 내고, 피아노 연습하다말고 아이가 우는 일도 빈번해지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지 딱 1년이 된 어제, 나는 아이에게 피아노 이제 그만 배우자라는 말을 했다. 네가 너무 힘든가보다, 좀 쉬었다가 다시 배우고 싶어지면 그때 다시 하기로 하자, 배우는건 너인데, 엄마가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그래가면서. 아이는 고개를 숙인채 아무말도 안하고, 나는 피아노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ㅡ, 집에서는 그런지 몰라도 레슨 받을 때에는 재미있게 잘 하고 있다고. 남자 아이들이 대체로 자발적으로 연습하는 경우가 드물기는 하다고 그러신다. 그러면서 다음에 하신 말이 갑자기 내 가슴에 팍 하고 꽂혔다. 여기서 피아노를 그만 두게 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그럴 때에는 좀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고. '기다려주기'. 난 대체 누구의 기준으로 아이가 흥미없어 한다, 가르쳐줘도 잘 모른다, 이럴 바에는 그만 두는게 낫다고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전화를 끊고 아이와 마주 앉아 다시 얘기를 나누어보았다. 자기는 피아노를 계속 배우고 싶단다. 눈물이 글썽글썽.

기다려준다는 것. 어떤 과정을, 또는 관계를, 무슨 이유에서든지 끝내는 것이 낫겠다, 끝내자, 일방적 결정을 내리기 전에, 기대를 내려 놓고, 한발 물러서서 기다려 주는 것. 그것을 깨우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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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8-09-07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다 때가 있더라구요. 정말로 그만두고 싶으면 본인이 먼저 말을 할 것 같아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욕심을 내서 거의 4살 무렵부터 배웠다고 하는데요,
자기 몸만큼이나 큰 바이엘 책을 낑낑거리면서 들고 다녀도 불평 한 번 안했대요 ㅎㅎ
그런데 초등학교 5-6학년 올라가면서부터 너무 치기 싫어지고 이건 아니다 싶어서 별렀다가 6학년 졸업하면서 그동안 배웠던 피아노 책을 다 모아서 엄마한테 들고 가서 '엄마 저는 이제 공부를 하겠어요. 피아노는 그만둘래요' 그랬다는 -_-;;;
(그렇다고 공부나 잘했으면 몰라 ㅎㅎ)
엄마가 아마도 기가 막히셨겠지만 '그래 그렇게 해라'하고 다시는 피아노 얘기 꺼내지 않으셨습니다. 피아노 값이랑 학원비가 매우 아까우셨을텐데 ^^;
지금 생각해보면 고맙지요.

hnine 2008-09-08 00:50   좋아요 0 | URL
Kitty님, 제 얘기가 공감이 되셨겠네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 저도 피아노가 싫어지더라구요. 공부에만 집중하겠다고 Kitty님처럼 엄마께 말씀드렸다가 단박에 퇴짜맞고 결국 고등학교 가서 까지 계속 배웠지요. Kitty님께서 피아노 대신 택한 공부는 어떤 공부일까 궁금해지네요 ^^

마노아 2008-09-08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 조카는 여섯 살 때부터 집 근처 피아노 학원을 주3회 다녔어요.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몹시 재밌어 했지요. 일주일에 한차례 우리 집에 오면 피아노 앞에 제일 먼저 달려가서 즐겁게 치구요. 이제 우리 동네로 이사 오면서 학원 때문에 갈등이 있었어요. 차타고 다녀와야 하는데 엄마가 데려다 줘야 하고 둘째 아이도 데리고 가야 하고, 주2회로 줄이긴 했지만 매번 기다려서 데리고 오고, 그게 참 힘들거든요. 기초 과정은 다 끝난 것 같아서 집 근처 학원으로 바꿔주고 싶은데 아이가 계속 그 학원 다니고 싶다고 하네요. 울 언니 지금 고민중에 있어요. ^^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피아노를 1년 6개월 배우고, 1년 넘게 쉬다가 중3때 5개월을 더 배웠어요. 처음에 '도레도레도' 세시간 치고, 그 담날 '도레미 도레미 도' 세시간 치고, 그 담날 '도솔미솔도' 세시간 쳤어요.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저처럼 큰 학생이 와 있다는 것을 선생님이 잊으셔서 늘 늦게 오셨거든요. 애가 융통성도 없어서 그 단순한 것을 날마다 세시간씩 쳤더랍니다^^ㅎㅎㅎ

hnine 2008-09-08 16:04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저랑 비슷한 면이 ~ ^^
저도 동네에 마땅한 학원이 없어서 차 타고 데리고 가고, 기다렸다가 데리고 오고 하고 있어요. 레슨 시간이 40분인데 책 읽고 기다리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더라구요. 직장에 다니는 엄마 같으면 힘든 일이지요.

혜덕화 2008-09-08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경험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들려드릴게요.

한수산님의 책에서 "연주할 줄 아는 악기가 하나라도 있다는 것은 마음 속에 자기만의 방을 하나 가진 것과 같다" 이런 비슷한 글귀를 읽은 적이 있어요.그래서 큰 애가 운동도 별로 안좋아하는 것 같아서 음악으로 방을 하나 가지게 하고 싶었어요.


원래 제 성격이 아이를 철저하게 연습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또 내 목적도 아이가 음악과 친해지고 피아노 연주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였지 아이가 피아노를 잘 치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피아노 선생님께도 미리 말씀 드렸어요. 진도 안나가도 괜찮으니 아이를 너무 연습해오라고 숙제 많이 내어주지 말라고.
다른 엄마들은 진도 안나가면 안달을 한다는 데, 저는 정말 이렇게 생각했어요.
한달에 오만원을 주고 피아노 학원에 가서 바이엘 한 장을 나가도 피아노 안다니고 바이엘 한 장 못배우는 것 보다는 낫다고.
그렇게 해도 5, 6 학년 되니까 안하려고 하더군요. 집에서는 피아노 뚜껑도 안열어보면서도.
그래서 협상을 했죠. '방학 동안은 쉬고 개학하면 다니자 '라든지 아이가 쉬고 싶어 할 때마다 쉴 수 있는 기간을 주었어요. 중학교 가서는 아예 일주일에 한 번만 가고.
중 3때까지 하다가 그만 두었는데, 지금 와서 아이가 하는 말이 있어요.
공부로 스트레스 받을 때 집에서 피아노를 한 시간 정도 치고 나면 속이 시원하다고. 그러면서 "엄마 고맙습니다. 피아노를 배우게 해 줘서" 하더군요.

아이의 목표, 아니지 엄마의 목표를 낮추어 보세요.
아이들 피아노 연습, 집에서 하는 것 좋아하는 아이 많이 없어요.
말없이 학원에 가는 것만도 고맙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피아노를 잘 치면 좋겠지만 어릴 때 음표 읽고 치는 법만 배워두면, 이 다음에 자기가 치고 싶은 곡이 나오면 스스로 악보를 구해서 혼자 연습하더군요.

음악을 전공을 시키실 것 아니면,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는 것이 어릴 때의 음악 공부여야 하지 않을까, 제 생각입니다.

아이를 울리지 않아도, 아이의 어린 시절은 너무나 짧고, 커 갈수록 부모의 짐은 참 무겁답니다. 스스로 너무 무거운 짐을 지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기다려주세요. 가르쳐도 못 하니까 피아노 학원이 있는 것 아닐까요?^^

hnine 2008-09-08 16:10   좋아요 0 | URL
혜덕화님, 도움 말씀 잘 새겨두렵니다.
제가 제 기준대로 비교하고 실망하고 아이를 은연중에 다그친 것 같아요. 엄마가 억지로 끌고 가면서 가르치는건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했으면서 저도 결국 그 모습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니 더 이상 이 상태로 계속 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성급하게 여기서 그만 두어야겠다고 결정을 내리게 된 것 같아요.
이번에도 정말 제게 필요한 말씀을 들려주셨네요. 감사드립니다.

치유 2008-09-10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글 읽으며 많이 깨달았어요..늘 맘속에 음악방하나 갖고 살길 원하면서도 아이들이 싫어라 하면 그래 그만 둬라~~~~~!했더라는;;;

큰아이는 하기 싫어라하면서 결국엔 이리 저리 해서 혜덕화님 아이처럼 몇분이라도 피아노 치며스트레스도 풀곤 하는데 우리집 둘짼 큰일이네요...
기다림을 다시 새기고...반성하네요.

hnine 2008-09-10 20:14   좋아요 0 | URL
엄마 기준에만 맞춰 아이를 너무 다그치거나, 그 기준에 못미친다 싶으면 그만 두게 하는 것. 저는 이 극단적인 둘 사이만 왔다 갔다 한 것 같아요. 기다려주는 것. 힘들지만 필요한 수행같기도 해요.

프레이야 2008-09-11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딸이 얼마전 라흐마니노프의 무슨 곡으로 콩콜 2등을 했어요. 대학생들이 치는 곡이라어려워서 연습과정에서 몇번 포기하려고 그러는 걸 덤덤하게 대하며 용기를 줬었죠.
지금은 그때 포기하지 않았던 걸 잘했다며 기뻐하더군요. 기다려주기! 필요한 일인데
조급증을 내게 마련이죠. 한 발만 뒤로 물러나보는 것, 기다려주기는 인내심을 요구하
더군요. 그래도 참 잘 하셨어요. 전 할 줄 아는 악기가 없지만 각자 또다른 걸로 자기
만의 방을 갖고들 있잖아요. 아이도 아이만의 방에서 자기와의 싸움도 하고 자기를
토닥거리고 그러는 시간이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나인님, 추석이 다가와요. 동글동글 보름달처럼 웃음꽃 피는 연휴 보내세요^^

hnine 2008-09-12 13:17   좋아요 0 | URL
와~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지난 봄에 연습중이라던, 라흐마니노프의 그 곡인가요? <악흥에의 연주>였던가요? 가물가물... ^^
아이를 대할 때뿐 아니라 제가 많이 조급한 편이지요. 이번 추석엔 달 보며 그생각도 해야겠습니다. 예, 조각달이 아니라 보름달 얼굴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어요. 혜경님도요! ^^

레모냐 2008-10-21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77년 같은 반이 되기 두 해전 만화가게 옆 < 피아노집 > ( 그 때는 학원도 아니었지 )에서
처음 만났다고 기억하고 있지.
항상 열심인 너와 달리, 난 만화가 좋아서 다녔던거 같고.
우리 딸이 공부하다가 외운 곡 몇개 치고 나면 속이 시원하다고 할 때,
네 생각이 난단다.
<기다려주기> 아이 엄마가 갖춰야 할 제일 중요한 조건인데,
그게 어렵더라...

hnine 2008-10-22 04:42   좋아요 0 | URL
피아노이든 만화든, 좋아하는 것에 그렇게 푹 빠질 수 있을 때였지. 그 만화가게 이름은 <땡이 만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