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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EBS 자연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선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집짓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새집 쯤이야 우습게 볼지도 모르지만 사람인 나도 직접 안지어본 집이다.

조그만 새가, 자기가 살 목적이 아니라 알을 낳아 품을 집을 짓는 것이다. 여러 번에 걸쳐 나뭇가지 재료도 직접 구해오고 부리로 잇고 거미줄로 이어붙혀 일주일 만에 튼튼하고 촘촘한 집을 완성하였다.

"저 새가 바로 아키텍트 (architect) 네!" 라고, 옆에서 같이 보던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으로 말하자면 자기 집을 아직 지어본 적 없는 건축전공자이다.

집을 완성하자 이 아키텍트 붉은머리오목눈이는 곧 집 안에 꼼짝하고 앉아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알을 낳는 것이다. 푸르스름한 색이 도는 알. 그리고 그 알을 품는다. 2주 동안 그렇게 품고 있는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 바로 뻐꾸기라는 새가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그 둥지에 들어가 자기 알을 낳아놓는 것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뻐꾸기 알도 함께 품는다. 결국 먼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붉은머리오목눈이 새끼가 아니라 뻐꾸기 새끼이다. 이것도 모자라서, 어미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먹이를 구하러 간 사이에 이 뻐꾸기 새끼는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막 알을 깨고 나온 붉은머리오목눈이 새끼도 밀어낸다. 이제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는 뻐꾸기 새끼 독차지. 붉은머리오목눈이 어미새가 물어온 먹이를 먹으며 뻐꾸기 새끼가 자라난다.

둥지밖으로 떨어진 붉은머리오목눈이 알. 그리고 알에서 나오자마자 눈도 뜨지 못하고 둥지밖으로 떨어진 새끼.

태어나자마자 태어난 세상의 모습을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바로 세상을 떠나야하는 이들의 운명은 대체 뭐지?

태어나자마자 주인을 밀어내고 생존하는 방법을 뻐꾸기 새끼는 대체 언제, 어디서 배웠지?

그건 학습이 아니라 본능이라고 해설자가 말한다.

 

운명, 본능, 생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생명은 아름다운가? 생명의 본질은 아름답다고 할지몰라도 그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과정은 처절하고 전투적이다. 그냥 사는게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집에 있는 새도감을 찾아보았다.

아이가 어릴 때 함께 보느라 사놓은 도감이라서 먼지가 하얗게 쌓여있었다.

 

 

 

 

 

 

 

 

 

 

 

 

 

 

 

 

 

 

 

 

 

 

 

 

 

 

 

 

 

 

 

 

 

 

 

 

 

 

 

 

 

 

뻐꾸기는 어쩌다가 그런 방식으로 새끼를 낳고 번식시키게 되었을까.

뻐꾸기는 뻐꾸기대로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었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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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3-05 1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뻐꾸기 알 얘기 듣고 놀란 적이 있어요. 이기적인 생존법인 듯. ㅋ
동물의 세계는 잔인함이란 무기를 갖고 사는 것 같아요. 티브이에서 먹잇감을 공격하는 동물을 보면 끔찍하더라고요.
동물의 눈으로 본 인간의 세계는 어떠할지 궁금하네요.

hnine 2020-03-05 13:05   좋아요 3 | URL
다른 생명체를 이용해서 생존에 사용하는 것이라면 인간을 따를 수 있을까요?
생명계의 어쩔 수 없는 섭리라지만 인간은 때로 너무 이기적이다 싶을 때가 많아요. 뻐꾸기보고 뭐라 할 일이 아니겠지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면 책을 읽을 때와는 또다른 감정이 들어요. 감정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팩트로 받아들여야 할텐데도 말이어요.
 

(실버스타 스탤론 주연의 '데몰리션 맨'과는 다른 영화)





데몰리션 Demolition (2015, 미국)


  • 감독: 장 마크 발레
  • 주연: 제이크 질렌할, 나오미 왓츠
  • 내가 주는 평점: ★★★★★









(사진 출처: Daum 영화)








(사진 출처: Daum 영화)










(사진 출처: Daum 영화)







가족중 누군가를 잃게 되면 잃은 직후 허무함과 슬픔의 정도가 가장 컸다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옅어질 줄 알았는데 경험해본 바로는 그게 아니었다. 막상 그 사람을 보낸 직후엔 뭐가 뭔지 실감이 안되고 그 사람이 없는 상황에 적응이 안되어 무슨 감정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가, 일상 속으로 돌아와 어찌어찌 지내던 중 불현듯 그 사람의 부재가 피부로 느껴질 때가 오는데 바로 그때부터인것 같다. 그 사람이 없는 현실에 적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그 길고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할 때.


아내와 함께 타고 가던 차가 교통사고가 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운전하던 아내는 죽고 옆자리에 타고 있던 데이비스는 가벼운 찰과상만 입고 멀쩡하게 살아남는다. 사랑했던 아내를 잃었는데도 데이비스는 바로 직장에 복귀하여 일을 하는 등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아무 슬픔도 못느끼는 것처럼 일상을 계속해나가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자기 감정을 알수가 없다. 

'정말 나는 아무렇지도 않을것일까?'


아내가 마지막 순간을 보낸 병원에서, 자동판매기 고장으로 돈만 먹고 물건을 내놓지 않는 일이 생긴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 일에 데이비스는 자동판매기 회사에 항의하는 편지를 보내게 되고 (이것이 아마도 감정 표현의 시작이 아닌가 생각된다) 항의 편지에 대한 답으로 새벽 2시에 자판기 회사 고객센터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계기로 고객센터 여자와 직접 만나게 된다. 그여자 캐런, 그리고 그녀의 십대 아들 크리스와 만나 아무 생각없이 자기 얘기를 털어놓게 된 데이비스는 비로소 출근도 안하고 거리를 헤매다니고 막노동판에 달려들어 잘 알지도 못하는 노동일을 하다가 다치는가 하면, 뭔가를 고치려면 다 분해하여 중요한게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며 부수는 도구를 사다가 아내와 함께 살던 집을 다 때려부수기도 한다 (→물리적인 의미의 demolition). 


다 때려부수어 남겨진 것은 물건의 잔해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 


여기에 줄거리를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단순히 아내를 잃은 후 남자의 애통함을 그리는 영화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살면서 파괴, 파탄의 순간을 맞는 일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게 파멸까지 몰고갈 일은 아니기도 하고, 파멸에 가까운 결과로 이끄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 까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이라면, 인간에겐 그럼 무기력하게 당하고 파괴되는 길 밖에 없는 것일까? 

어떤 엄청난 일이 일어나서 나의 삶이 산산조각 난 것 처럼 보일지라도, 부서진 조각 더미를 딛고 결국은 다시 일어나는 것. 극복하고 내 삶을 계속해나가는 것.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아닐까. 계속 노력해야 하는. 까뮈의 시지프스 신화에서 다시 떨어져내릴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돌을 위로 밀어올리는 시지프스처럼 말이다. 돌을 굴려올리는 시지프스의 삶을 형벌이라 보아야만 할까? 돌을 밀어올리면서 형벌, 운명에 대한 굴복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시지프스는 끊임없이 어제와 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돌을 제 자리에 되돌려놓는 좀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 행위에 형벌 이상의 어떤 의미는 없는 것일까?' 같은. 


파멸, 파괴가 끝이 되는 삶이 아니라, 그것을 딛고 극복하려는 몸부림과 노력으로 채워가는 삶을 수행해나가는 것이, 옳은지 어떤지 쉽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최소한 그렇게 삶을 계속해나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가 겪는 과정을 보았다.


영화 중간에 느닷없이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쇼팽의 녹턴은 또 어떤가. 느리고 섬세한 영화의 또다른 OST도 다시 들어야한다.


슬픈 영화이다. 아내를 잃는 사건 때문이 아니다.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힘겹게 결국 일어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슬프고 또 고맙다.





"LIFE: Some disassembly requ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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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2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년 전에 이 영화를 보고 슬픔의 자각과 표현은 사람마다 다르구나, 다를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ost중 warmest regards란 노래가 너무 좋아 한동안 그 노래만 듣고다녔어요.
이 리뷰보니 간만에 이 영화 다시 보고싶어지네요.

hnine 2019-12-12 21:42   좋아요 1 | URL
설해목님도 이 영화 보셨군요.
말씀하신 warmest regards도 찾아서 들어봤어요. 일단 warmest regards라는 말이 참 좋네요. 기억해놓았다가 저도 써보고 싶을 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detachment라는 영화를 네플릭스에서 보고났더니 계속 비슷한 영화를 추천해주는데, 저와 코드가 맞아서 추천해주는대로 잘 보고 있답니다. 이 영화 다시보시면 또 어떨까요?
혹시 다시보시게 되면 데이빗이 집으로 찾아온 카렌에게 그릴드치즈를 권하며 멋적게 웃는 장면을 한번 보아주세요. 매력적! ^^

프레이야 2019-12-21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놓친 영화네요. 바로 찾아 봐야겠어요. 좋은 영화 소개해 주셔서 고맙구요.
나인 님,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주인공들도 좋아하는 사람들이군요.
겨울날씨답게 싸한 날이에요.
감기조심하시구요.

hnine 2019-12-21 12:56   좋아요 1 | URL
한번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프레이야님은 어떤 관점으로 보실지 궁금해요. 한 인간의 일상이 붕괴되는 과정이 상영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저는 마지막 몇 분에서 결론을 찾고 싶었어요. disassembly 와 reassembly 를 왔다 갔다하며 사는게 인생이 아닐까요.
새로운 책 출간을 축하드려요. 또 하나의 자식을 낳은 셈이라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얼마나 뿌듯하세요.

프레이야 2019-12-21 13:52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렇구말구요. 그 과정이 우리 삶인 것이겠지요. 축하 감사드려요. 세번째 아이 출산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또 느끼는 점들도 있고 그렇게 또 하나의 마디를 긋고 한발짝 가볍게 나아가려구요. 나인님 마음에 늘 평안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
 

얼굴보다 정직한게 손이 아닐까 한다.

키도 크고 미인이셨던 나의 이모는 머리 손질도 집에서 직접 하시기 보다 미장원에 가서 손질받으실 때가 더 많을 정도로 멋장이셨다. 같은 옷을 입어도 품새가 다르셔서, 누가 봐도 귀티나는 이모와 함께 어딜 가거나 길을 걷노라면 사람들의 눈길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외모의 반전은 이모의 손에서 나타났다. 엄격한 시어머니와 까다로운 이모부와 한집에 살면서 집에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아기자기 예쁘게 꾸미시고 사시는 이모의 일상이 드러나는 손이다. 거칠고 구불구불 관절이 불거진 손. 그 당시 편찮으셨던 이모부 간병까지 하셔야 했기 때문에 이모의 손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으리라.

키가 작으시고 이모처럼 미인은 아니셨던 우리 엄마는 손 만은 이모보다 고우셨다. 직장생활 하시느라 직접 살림은 하지 않으셨고 부엌에도 직접 들어가시는 일이 거의 없으셨던 엄마였다.

 

오늘 아침 캘리포니아에서 시골 생활을 하신다는 어느분의 블로그를 보게 되었다. 텃밭 가꾸시고, 한국에서도 못보는 시루에다 떡도 찌시고, 빵도 만드시고, 바느질도 단정히 해서 꾸민 화려하지 않으면서 정이 가는 집, 그 누구와의 집과도 다른 집이었다. 얼굴 사진은 공개하지 않으셨지만 사진에 언뜻 언뜻 보여지는 그분의 손. 예전에 보던 이모의 손을 보는 것 같았다. 옹이 지고 거칠고 주름 많은 손.

 

의학의 힘으로 얼굴의 수정, 보완 기술은 날로 발전하여 요즘은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사람 찾는게 어렵지 않는 시대가 되었으나 손은 아직 얼굴보다 솔직한 것 같다.

여자손이 그렇게 크고 못생겼냐고, 학교때부터 친구들로부터 장난말을 들어온 나의 손. 그 당시엔 얼굴도 아니고 손 좀 못생기면 어떠냐는 생각으로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었지만 나이가 좀 들고 여전히 손이 예쁘고 가녀린 사람들을 보면 나도 지금이라도 손을 가꾸면 저렇게 될까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보다 더 나이가 든 지금은 내 손의 솔직함을 받아들이자는 쪽이다. 내 손이 거칠어질수록 그 속엔 내가 보낸 시간이 새겨지는 것이고 내가 건강하게 활동하고 그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고 다듬고 노력하며 살았다는 것인데. 내가 내 손을 한번씩 쓰다듬어 주고 기특해해야지.

 

말주변이 없는 사람에게 손은 또하나의 입이 되어줄수도 있다. 사랑한다, 응원한다, 격려한다는 말 잘 못하겠으면 손 한번 꼭 잡아줄 수도 있고, 어깨를 토닥여줄수도 있고.

내 손. 못생겨도 자랑스런 내 손.

 

 

 

 

 

 

 

신부입장

 

 

- 신미나 -

 

 

날계란을 쥐듯

아버지는 내 손을 쥔다

드문 일이다

 

 

두어마디가 없는

흰 장갑 속의 손가락

쓰다만 초 같은 손가락

 

 

생의 손마디가 이렇게

뭉툭하게 만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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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해 못하는 점은 어째서 대부분의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철학의 문제들이 논리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논리적 접근은) 답을 얻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아마도 실험적 접근이 더 나은 방법일 것이다."

- 서문 일부 발췌 -

 

(What I do not understand is why most philosophers of science believe the problems of the philosophy of science can be solved by logic.

This is not the best way to reach a solution. An empirical approach seems to be a better way.)

 

생물학은 과학이다. 이것은 이 책의 본문 첫 문장이기도 하다.

" Biology is a science." (page 1)

이 말은 곧 생물학은 이론적 추정이 아니라 실험과 그 결과에 바탕을 둔 학문이라는 뜻이다.

이론적 추정이 쓸데없다거나 무가치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직접 실험으로 입증할 수 없는 주제들이 있다. 고생물의 출현, 다윈의 이론 같은 것들이 그 예이다.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도 다윈의 머리 속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그 생애의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항해를 하며 자료를 수집하여 물증을 얻는데 보냈던가. 다윈의 진화론을 더도 덜도 아닌 네글자 사자성어 (자연선택, 아니면 적자생존)로만 말할 수 있으면 안다고 하기엔 다윈의 진화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완전하지도 않다. 실험과 관찰로 다 보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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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자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예술품 중 하나인 고려 청자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우리 나라에 차(茶)가 들어온 것과 관련있다.

차가 들어왔다는 것은 단지 마실 것으로서의 차만 들어왔다는 것이 아니라 차 '문화'가 들어오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차를 만들고 마시는 도구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수요에 따라 청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처음엔 중국에서 청자 만드는 기법을 따라했지만 점차 중국의 영향보다 고려의 독특한 기법이 쓰이면서 고려 청자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아래는 국립중앙박물관 3층 청자실 (303호) 에서 찍어온 고려 청자 몇점

 

 

 

 

 

 

 

 

 

 

 

 

 

 

 

 

 

 

 

2. 백자

 

조선을 대표하는 백자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제작기술 위에 중국 백자의 영향과 자극을 받아 15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우아함과 화려함으로 표현되는 청자와 달리 조선의 백자는 단아하고 깨끗한 기품을 지니고 있다. 색과 무늬 대신 풍만한 부피감과 깊이감은 무엇이든 품어줄 것 같은 매력을 지녔다. 화려하고 섬세한 청자를 볼때처럼 "아!" 하는 감탄사는 금방 나오지 않지만 두고 두고 보고 싶게 하는 매력은 백자가 더한 것 같다.

백자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역시 달항아리라고 부르는 '백자대호'인데 아래 사진은 지난 10월 영국박물관 한국관에서 만난 백자들이다.

 

 

 

 

 

 

 

 

 

 

잘 보면 가운데 배 부분에 가로줄이 보인다. 위 아래 두 부분을 따로 만들어 붙였기 때문이다.

 

달항아리를 더 유명하게 만든 화가는 김환기. '항아리와 시'라는 제목의 아래 그림은 1954년작으로 홍콩 경매에서 39억원에 낙찰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기억하기로 나 중학교때 (1979-1981) 미술책에도 나왔던 그림. 그땐 그림은 잘 몰랐고 저 글씨체에 더 눈이 갔었다.

 

 

 

 

 

사실 달항아리 나도 가지고 있는데 (↓),

 

 

 

 

 

높이가 한뼘도 안되는 초미니달항아리 되시겠다 (얼마 전 박물관 기념품 샵에서 구입).

너무 작아서 그런지 달항아리 특유의 풍성함이나 포용감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게 문제 ^^

 

3. 분청사기

 

 

그런데 청자보다, 백자보다, 현대적으로 더 각광받는 도자기가 있으니 바로 분청사기.

고려 말 청자에서 태어나 조선 초 궁에서 백자를 공식적으로 선택하기 전까지 200여년 동안 집중적으로 만들어져 강렬하게 살다간 것이 바로 분청사기이다.

그럼 분청사기는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가.

고려 말기로 가면 청자의 질이 확연이 떨어지게 되는데, 청자의 태토 (바탕 재료가 되는 흙) 에 불순물이 많이 섞여 색도 나빠지고 표면도 거칠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건이 안되니 원래의 청자 수준에 이르는 작품을 재현하기 힘들어지고 이 문제를 보완하고 결점을 가리기 위해서랄까 분장을 하기 위해 흰 흙 (백토) 을 칠하거나  담그거나 덧대는 등 변화를 주어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장회청사기, 줄여서 분청사기이다 (일제 시대 고유섭이 처음 이름 지어줌). 그래서 형태나 문양은 청자에 가깝고 색깔은 청색와 흰색이 섞인 듯한 회백색을 띄고 있다.

청자와 같지 않으니 더 이상 귀족들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서민들의 사랑도 받게 된 분청사기는 실용적인 용도로도 만들어졌고 만드는 기법도 청자에 비해 과감하여 제작 방법도 덤벙기법, 귀얄기법, 도장기법등 섬세하기 보다 과감하고 실험적이고 대범하다. 현대적이라고 각광받는 이유이다. 자유로움, 창의성, 변화, 실용성, 수더분함.

 

아래는 국립중앙박물관 3층 분청사기실 (304호)에 소장되어 있는 분청사기 몇점을 찍어 온 것이다.

 

 

 

 

 좌우 대칭쯤은 신경 안씀.

 

 

 

 

흘러내린 유약도 과감하게 그대로 두었다.

 

 현재 서울 신사동 소재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자연의 빛깔을 담은 분청-귀얄과 덤벙>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분청사기의 현대적 미감을 보여주는 전시가 될 것 같아 관심이 간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물음 하나는,

"현대적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 호림박물관에 전시 중인 '분청 덤벙문 호'

 

 

 

 

 

 

 

덧붙여 런던에서 찍어온 사진 한장 ↓

 

 

 

영국 박물관 앞에서 본 앤틱샵. 한국 사람이 경영하는 곳인가? 달항아리가 전면에 전시되어 있었다.

(2018.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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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30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에서도 달항아리가 인기인 모양이네요.
며칠째 추운 날이 계속되고 있어요.
영국의 겨울도 이만큼 추울까요?
오늘은 달항아리나 분청사기 그런 것보다 날씨가 더 생각나요. 너무 추워서요.
연말의 남은 날들이 이제 아주 조금 남았네요.
따뜻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hnine 2018-12-31 07:45   좋아요 1 | URL
영국의 겨울은 기온은 한국보다 더 낮지 않지만 한국만큼 난방을 세게 안해서 더 춥게 느껴지기도 해요.
하도 춥다고 해서 단단히 입고 나갔다 왔더니 저는 생각만큼 춥진 않더라고요.
추운 날은 달이 더 선명해보이기도 하죠. 다른 미술품들도 그렇겠지만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개인차도 있고 시대 상황을 반영하기도 하고, 풍족한 상황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 상황에서 더 마음 속으로 들어오기도 하고요.

서니데이 2018-12-31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새해인사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글들 감사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2019년입니다.
가정과 하시는 일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따뜻한 연말, 그리고 좋은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nine 2019-01-01 07:47   좋아요 1 | URL
2019년 처음으로 알라딘 댓글에 대한 댓글 씁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