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그림의 저 소년은 무엇인가로 온 몸을 꽁꽁 둘러싸고 있다. 상품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둘러싸는 비닐뽁뽁이이다. 간신히 눈과 손, 발의 일부만 남기고 포장했으니 내용물의 안전이야 보장되지만 저 내용물이 물건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생물이라면. 그것도 내가 낳은 자식이라면.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와서 배달전문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들 찰리. 찰리는 동양인 외모뿐 아니라 유난히 작은 체구로 아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모자라, 유난히 아들의 안전을 염려하는 엄마의 행동지침때문에 친구들과 맘대로 어울리지도 못하고 하고 싶은 활동을 맘껏 하지도 못한채 늘 위축되어 있고 자신감이 없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공원에서 보드를 타고 있는 애들을 보게 되고 묘기에 가깝게 보드를 타는 모습에 완전히 정신을 빼앗기고 만다.
'나도 하고 싶다!'
오랜만에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잘 하고 싶은 의욕이 생겼으나 보드를 살 돈도 없고 엄마의 허락을 얻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포기했을지도 모를 것을, 유일한 친구인 싸이너스의 형으로 부터 무리를 해서 보드를 겨우 대여받고, 혼자 연습하는 것을 보고 약간의 힌트를 주며 다가온 보드 전문가 경지의 동네 남자 아이들의 부추김,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어떤 것보다 의욕을 불타게 만드는 보드의 매력때문에 찰리는 보드를 숨겨놓고 엄마의 눈을 피해 몰래 몰래 배워가던 중, 결국은 엄마에게 들통나게 되고 공원에서 만천하가 다 보는 앞에서 엄마와 찰리가 한판 붙게 된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것은 못하게 하느라 찰리를 마치 어린 아기 다루듯 하길 계속하는 엄마말을 언제까지 들을 수는 없던 것이다.
"All you do is wrap me up in cotton wool!"
더 이상 참지 못한 찰리는 자기를 과잉보호하려는 엄마의 행동을 빗대어 엄마가 자기를 솜뭉치로 둘둘 말아놓지 않냐고 대들고,
"Well, you've seen nothing yet. I'll wrap you in so much cotton wool that you won't be able to move!"
이에 대해 엄마는 더욱 열받아 네가 아직 뭘 못봐서 그러는데 앞으로 진짜 솜뭉치로 잔뜩 감아싸서 옴짝달짝 못하게 만들어버릴테니 두고 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엄마는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며칠 후 정작 그 일을 찰리에게 행한 것은 찰리의 엄마가 아닌 동네 아이들. 엄마와 찰리가 한판 붙는 현장에서 구경했던 아이들은 거 나이 되도록 엄마의 보호 속에 감시받고 사는 찰리를 놀려주려고 뽁뽁이 (bubble wrap)로 찰리의 몸을 완전 포장해버린다. 이 책의 제목이 The Bubble Wrap Boy가 된 이유이다.
아이들에게 수모를 당하고 그토록 하고 싶은 보드도 못타게 된 찰리. 그래서 보드를 포기하는가?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될리는 없을 것이다. 엄마에게는 다시 타지 않기로 다짐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더욱 보안을 철저히 하고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간다. 꺼림칙한 큰 비밀을 안고 사는 댓가를 치뤄야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없는 엄마 대신 전화를 받다가 찰리는 십이년 동안 몰랐던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에게 여동생이 있고 사고로 크게 몸이 다쳐 말도 못하고 사지가 마비되어 집에도 못온채 병원 요양 시설에 수년째 수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보드를 몰래 계속 타는 것과 비할 바 안되는 큰 비밀이 엄마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그때 여동생과 사고 현장에 함께 있었지만 자기만 온전한채 동생을 잘 보호하지 못하여 동생을 불구의 몸으로 만들었다는 가책에 스스로 시달리며 살아오고 있다. 그래서 찰리에게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을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원천봉쇄하는 방식으로 키워왔던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두 모자의 비밀이 묘하게 얽히며 해소되는 과정, 여기에 찰리 못지 않은 따돌림친구인 사이너스의 우정, 그리고 찰리 못지 않게 사이너스가 주위의 인정을 받아가는 과정이 절묘하게 잘 어우러져 결말을 맺는다.
부모가 된 사람들은 아마 이 책을 읽으며 찰리 엄마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가면서도 곧 반성 모드로 들어가보게 될 것이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내 소중한 아이를 눈에 안보이는 투명한 뽁뽁이로 온통 감싸고 키우려고 했던 적은 없는지.
한편 이 책을 읽는 찰리 또래 아이들이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부모의 허락을 구하지 못할때 어떤 방식으로 헤쳐나갈지 참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찰리는 엄마의 반대 결정에 따르느라 자기 꿈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당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고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도 않았다.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다. 영국 태생인 Phil Earle은 처음부터 작가가 되기로 했던 것은 아니었고 어린이집에서 돌보미로 일해오다가 연극치료사가 되기 위해 수업을 받게 되었고, 그 후 2-3년 관련 일을 하다가 좀더 정적인 일을 하기로 하여 bookseller를 선택, 지금은 어린이책을 쓰고 파는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 책만 읽어봤지만 이 작가는 재미있게 글을 쓰려는 사람임은 분명해보인다. 찰리를 보호하려는 엄마의 행동의 하나로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할때 혹시 나무의 뾰족한 가지에 몸의 어디라도 찔릴까봐 집 안에서이지만 고글을 착용해야만 트리 장식을 하도록 허락했다든지, 중국음식배달전문점 이름 정하는 문제라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찰리라는 아이의 바탕이 자신감 없고 기죽어 지낼것 같은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 자기의 비밀이 계속하기 꺼림칙하다는 것을 알고 엄마의 비밀 역시 엄마가 더 이상 비밀로서 숨기지 않고 공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마음은, 어른들이면 오히려 갖기 힘든 따뜻한 순진함이 아닐까 생각되어 읽는 내내 유쾌하고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