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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 - 최면 / 아내의 편지 / 라일락 / 데지레의 아기 / 바이유 너머 얼리퍼플오키드 1
케이트 쇼팽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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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이디스 워튼의 '징구'를 연상시키는, 짧은 소설 모음집이다. 소설이라고 해야할지 꽁트라고 해야할지, 여섯 편의 글이 묶여 있는, 책도 아주 얇은 편이다.

케이트 쇼팽은 1850년 미국 태생으로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조모, 증조모, 유모 등 여성들의 손에 주로 자랐다고 한다. 18세까지 학교를 다녔고 바로 사업을 하는 남자와 결혼 하여 여섯 아이를 낳았는데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빚더미를 남긴 채 남편이 세상을 뜬 후 (그녀 나이 32세때) 직접 잡화점 경영과 농장 경영을 맡아 하기도 했다. 글쓰기는 케이트 쇼팽의 우울증을 치료하던 의사의 권유로 시작하였고 1892년 그녀 나이 42세부터 여러 장르의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 이후로 글쓰기는 그녀의 주 수입원이자 정신적 도피처가 되었다고 한다. 주로 단편소설에 집중하여 100여편의 단편과 두편의 장편소설을 남겼는데 1899년에 발표한 장편 <각성 (The Awakening)>은 발표 당시 문제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그녀의 대표작으로 알려져있다. 말년에 건강이 나빠졌고 1904년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 자신이 직접 여성 운동에 가담했거나 페미니즘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쓴 것은 아님에도 그녀를 페미니즘 소설의 선구자라고 하는 것은 그녀가 죽고 한참 지나 비평가들이 그녀의 작품을 재해석 하면서부터이다.

여기 실린 여섯 작품 중 가장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책 제목이 되기도 한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은 짧은 분량에서 기대하지 않던 반전과 충격으로 흥미를 주는 작품이다. 자유란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한다.

이어지는 <최면>은 비교적 평범한 내용으로 최면술마저 이기는 진정한 사랑의 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내의 편지>도 이야기의 소재는 흔하다면 흔할 수 있는 내용이다. 죽음을 앞두고 자기의 숨겨논 남자로부터 받았던 편지를 남편에게 맡기고 세상을 떠난 여자. 그리고 이런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고나서 고민하는 남편.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고뇌는 산 자의 몫이된다.

<라일락>은 다 읽고 나서도 확실하게 내용 파악이 안될 수도 있는 작품이다. 옮긴이의 해설을 읽고 나서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는데 그 오묘한 기분이란. 그 시대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던 작가의 섬세함을 다시 헤아려 보게 된다.

<데지레의 아기>는 관습이 가져오는 무지몽매함과 오해에 대한 이야기인데, 여기서 희생이 되는 것은 여성뿐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결국 남성도 그 피해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것, 그 남성을 보듬어 안는 것은 역시 여성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바이유 너머>의 바이유는 저자가 실제 살던 장소이기도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바이유는 우리 스스로 쳐 놓은 정신적 울타리, 장벽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 트라우마의 장벽을 부수고 나아가게 하는 힘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하는 것이 핵심.

 

글쎄, 세간에 알려진대로 그녀를 페미니즘 소설의 선구자로 봐야할지, 페미니즘에 국한시키기보다 그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 사회성 소설을 썼다고 해야할지 아직 이 책만 읽어서는 모르겠다. 그녀의 대표작이며 발표 당시 문제작이라고 말이 많았다는 <각성>이라도 읽어봐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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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0-16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e awakening 은 저는 국내 번역본으로 [내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 으로 읽었어요. 그거 읽고 너무 좋아서 케이트 쇼팽 이란 이름을 기억해뒀죠. 지금도 아직 안읽었지만 최근에 나온 단편집 하나를 사두고 있어요.

저도 징구 읽고나서 이 책도 읽어봐야지,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인님 벌써 읽으셨군요!

나인님의 리뷰를 읽고나서야 케이트 쇼팽에 대해 알게 되는 게 생기네요. 단편을 100여편이나 썼다는 것,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는 것이요.


딱히 페미니즘 작가다, 라든가 페미니즘 정신을 담았다, 라고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료 여성들의 마음속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꿈틀거리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무엇인지 자신도 모르는채로, 심지어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라고 말하는 여자들의 마음 속에도, ‘이건 이상하다, 부당하다, 차별이다‘라는 감각이 있는거죠. 그걸 깨닫고나서 나는 페미니스트다, 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자신의 정체성을 페미니스트에 두지 않더라도 페미니즘적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으니까요. 차별을 인식하고 고정화된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깨부수고자 하는 것 자체가 페미니즘적인것 같아요.


아, 저도 얼른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사둔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도요! 세상에 읽을 책이 많아서 좋으면서 싫으네요. 언제 다 읽죠? ㅜㅜ

hnine 2019-10-16 15:01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에 대한 말씀 저도 동의해요. 오히려 그 말에 대해 색안경 쓰고 선입견 갖고 벽부터 치고 나오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 불편해요.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는 책 읽고서 혼란에 빠지면서도 여기 저기 퍼뜨리고 추천하고 다니던 때가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하네요. 여대는 특히 입학하면 이쪽 분야 책을 많이 추천받기도 하니까 대학 입학하면서 부터 책으로나마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몸으로 부딪혀 겪는것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하니까요.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 푸른사상에서 나온 책을 말씀하신다면 이 책은 따로 구입 안하셔도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 여기 실린 여섯 편 중 세 편이 그 중에 포함되어 있거든요. 저도 지금 검색해보고 알았네요.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에 훨씬 많은 작품이 실려 있기 때문에 저는 사서 볼까 생각중이랍니다. <내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이 더 읽어보고 싶지만요.
케이트 쇼팽의 이 책은 제가 징구를 읽고 올린 리뷰에 다락방님 댓글 보고 찾아 읽게 된것이랍니다. 제가 아는 작가 리스트에 한 사람 더 보태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락방 2019-10-16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푸른사상에서 나온 책 맞아요. 그거 가지고 있어요. 오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이 책은 안사고 패쓰하겠습니다. 후훗.
 
구멍투성이 과학 - 지금 이 순간 과학자들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진짜 과학 이야기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 지음, 김아림 옮김 / 리얼부커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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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무엇일까. 탐구하는 방법이다. 사실을 입증하여 보편타당성을 보이는 방실으로 알아가는 방법이다.

저자인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은 컬럼비아 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로서 대중의 과학적 이해를 돕는 프로그램에 관련된 활동을 해오며 연구실에서 알아낸 실험적 결과뿐 아니라 과학의 본질에 대한 것, 과학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에 대한 강연과 저술을 해오고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을 번역한 분 역시 생물학을 전공하신 분. 읽기 전 부터 신뢰가 갔는데 과연. 유익한 내용이 술술 읽히기 까지 하니 더 바랄게 없는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우리말 제목은 <구멍투성이 과학>이라고 되어 있지만 원제는  Failure. Why science is so successful. 우리 말 제목에 비해 다소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제목이다. '구멍'이란 'failure', 즉 '실패'를 말하는 것으로 구멍투성이 과학이란 제목은 실패가 과학에서 갖는 특별한 의미를 뜻한다.

혹자는 과학적으로 얻어진 결과라면 실패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종교적인 믿음이 아닌 이상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실패나 오류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부터 놓아야한다. 물론 실패를 목적으로 하진 않지만 내가 지금 얻은 이 결과도 맞지 않을 상황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상황에 대한 연구와 가능성을 계속 열어놓어야 한다는 자세, 그런 자세가 과학적인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저자는 실패는 생각보다 폭넓고 심오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실패는 성공의 일부라고 보았다. 그 이유는 첫째, 실패는 더 큰 통찰을 이끌어 내고, 둘째, 거의 예측 불가능한 영감을 주고, 세째, 우리가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보도록 하기 때문이다.

실패 없이 곧바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우리가 들을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며 쓸 만한 조언도 갖고 있지 않다.

핵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실험을 통해 가설을 증명하는 데 성공하면, 여러분은 측정을 한 데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가설을 증명하는 데 실패하면 여러분은 뭔가 발견을 한 것이다."

과학분야에서는 실패를 해도 잘 삼키고 소화해야 할 뿐 아니라 실패 자체를 즐겁게 맛보는 일도 필요하다. (36쪽)

여기서 말하는 실패는 예상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 것을 말하지 부주의나 경험 부족으로 생기는 '실수'와는 구별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특히 과학분야에서 실패를 다르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격려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내용이 책의 중반을 넘어가서 본격적으로 나온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163쪽)

과학에서 창의성은 실패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이다. 순수한 과학의 과정이란 그래야하는데 문제는 요즘의 연구는 실패할 만한 것을 피해서 접근하고 시도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고 그것은 현장에 있는 많은 과학자들도 느끼고 있는 점이라 생각한다. 연구비를 따기 위해서는 연구계획서를 내야하고 누구에게 연구비가 돌아가느냐 결정되는데는 경쟁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예상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는 계획서를 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실패한 결과를 논문으로 내지는 않는다. 예상하던 결과가 예상하던 원리에 의해 얻어졌을 때 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게 되고 연구 실적은 곧 논문 편수와 논문의 질로 평가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니 순수한 연구에 대한 열정은 식고, 경쟁력과 목적을 달성해야겠다는 의욕만 활활 타오르는 현장이 되어있다.

결과를 보는 자세도 중요하다. 과학적 실험의 결과는 늘 객관적인 해석이 따를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보이게 하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고 원하는 결과만 수집하게 하기도 한다.

물리학자 파인만은 과학의 실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첫번째 원칙은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187쪽)

과학자의 태도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외일지 몰라도 '정직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직성의 대상은 다름 아닌 연구자 자신이라는 것도.

과학이라면 갖춰야 할 요건중에 fallibility 라는 것이 있다. 반증가능성이라는 것이다. 과학을 신뢰한 만한 이유는 바로 과학이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가설을 설정하려면 해당 가설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기각할 수 있는 실험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어떤 가설을 확실하게 반증할 수 없다면 그것은 받아들일 만한 가설이 아닌 것이다. 가설이란 부정적인 시험 결과를 허용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가설이 틀려야만 한다는 뜻이 아니라 틀릴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을 과학이게 하는 "반증가능성"이라는 것이다. 과학이 실패를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제는 틀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라마르크 유전학도 최근에 후성유전학이라는 분야를 통해 귀환한 예를 들면서 저자는 실패가 영원히 실패일까 묻고 있다.

최근 영국의 유명한 과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과학자들이 모험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고 특이한 아이디어를 감당할 여력이 없이 좁은 길만 계속 고수한다고 한다. 인류가 20세기와 그 이전에 이뤘던 위대한 과학의 진보는 다르게 사고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 있었고 이들에게 연구의 가치나 쓸모를 성급하게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지금과 매우 대조적인 환경이다. 그래서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때보다 훨씬 많은 숫자이고 어쩌면 과도한 인력이 과학이란 분야에 매달려 있음에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과학적 방법론이 무엇인지 다시 강조하며 맺는다. 진정한 과학적 방법론이란 의심과 불확실성, 무지, 실패를 폐기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끌어안고자 하는 것이다. 과학은 단순한 사실들의 집적이 아닌 과정으로 바라보며 명사가 아닌 동사로 여기는, 즉 계속 진행되어 가는 과정으로 여기는 것이다.

인간 복제가 거론되는 세상이면 뭐하나. 그것이 과학이 아니고 기술에 불과하다면. 근본이 망각된 첨예화된 기술에 불과하다면. 근본을 무시하고 오래, 멀리 가는 것이 있던가.

오랜만에 과학에 관한 후련한 에세이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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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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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용인가 보다 작가 소개에 먼저 눈길이 간 책이었다.

델리아 오언스. 평생 동물행동학을 연구해온 학자였던 그녀가 2018년, 70대에 이르러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그리고 아마존, 뉴욕타임스 등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30주 이상 머무르며 인기 몰이를 하더니 2019년 3월엔 밀리언 셀러에 등극하였고 현재는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망라하면 250만부를 넘어섰다고 한다.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영화배우 리즈 위더스푼의 격찬이 인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직접 읽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은 평소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 이 소설을 번역한 김선형 번역가가 초대되어 이 책에 대해 소개하는 것을 듣던 날이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놓기 힘들게 가독성이 있다는 것 (잔잔하고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문학 전공자가 아님에도 문장 표현이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것, 시가 많이 인용되어 번역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는 것, 그러면서 대중의 마음에 꽂히게 하는 그 무엇, 독자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도움이 될만한, 베스트셀러들이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는 그 요소가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전 정보를 가지고서 구입하여 읽고난 소감은, 이런 정보들이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1950년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해안 습지 마을. 엄마, 아빠, 언니 둘, 오빠 둘과 살고 있는 어린 소녀 카야의 이야기의 시작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무차별적 폭력과 학대를 견디다 못해 엄마, 언니, 오빠 차례로 집을 떠나고, 다만 너무 어려 떠나지 못해 남은 카야는 아버지 눈을 피해다니며 스스로 먹고 사는 법을 배우며 버틴다. 그런 아버지 마저 집을 떠나고 혼자 남게 되자 바닷가에서 홍합을 주워다 마을 상점에 갖다주고 먹을 거리를 얻어오고 습지와 조개, 새들을 친구 삼으며 혼자 사는데 길들여 간다. 말을 할 상대도 없고 말을 들어줄 상대도 없으니 점차 더 고립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고 학교는 하루 나가고 말았을 뿐이다. 행색마저 이상한 카야가 동네에서 가끔 눈에 띨라치면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마시걸이라고 조롱하며 이상하게 볼 뿐이다. 사람대신에 카야에게는 지는 해, 바람, 비, 구름, 물결치는 바다, 새들의 움직임, 소리, 개구리, 반딧불이, 풀숲. 이런 자연 그 자체가 전부였고 그녀의 세상이었다.

다른 생물들도 그러하듯이 사람도 이렇게 계속 혼자 외로움 속에 살 수는 없는 것이다. 혹시나 집을 나간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까 기다리며 고립 생활이 일상이 된 카야 앞에 어느 날 테이트라는 소년이 나타난다. 길을 잃어 도움을 주게 된 것이 시작이 되어 서로 새의 깃털을 교환하고 테이트가 카야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며 친해지게 되는데, 테이트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그 관계는 단절되고 만다. 여기까지 읽으면 마치 이 소설은 외로운 한 소녀의 성장 소설, 러브 스토리인가보다 생각될 수 있지만 이 소설의 시작 부분은 엄연히 마을의 한 남자가 소방망루 아래 떨어진 채 시체로 발견되는 장면이었으니 범죄 소설, 미스터리 소설일 수도 있다. 이 죽음에 대한 해답은 소설의 맨 마지막에 이를때까지도 알 수 없게 쓰여 있으니 가독성이 있을 수 밖에.

 

제목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대한 유래는 책 속 몇 군데에서 언급되고 있다. 다음은 테이트와 카야의 대화에서 언급된 대목이다.

"저기 어디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 가서 꼭꼭 숨어야겠네. 누군지 몰라도 카야를 데리고 가서 키워야 하는 사람들 참 안됐다." 테이트가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무슨 말이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니? 엄마도 그런 말을 했었어."

엄마는 언제나 습지를 탐험해보라고 독려하며 말했다. "갈 수 있는 한 멀리까지 가봐. 저 멀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그냥 저 숲속 같은 곳,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을 말하는 거야." (140쪽)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곳, 즉 자연을 말하는 것이다. 이용되고 있는 자연이 아니라 그대로 존재하는 자연.

다 읽은 후 youtube에서 델리아 오언스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캐나다 국경에 가까운 아이다호 자연 속에서 혼자 살고 있는 그녀는 제목에 대해 책 속에 언급한 것 처럼 실제로 그녀가 어릴때 엄마가 그녀를 숲속에 산책을 데리고 가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독려하기 위해 하던 말이라고 한다. "Listen to what those woods had to say." 너와 자연 밖엔 없는 그런 곳까지 스스로 멀리 가보면 가재가 노래하는 것을 들을 수 있을거라고.

첫 소설이라고 하지만 그동안 그녀가 끄적거려온 종이들로 꽉 차 있는 커다란 상자를 인터뷰 도중 보여주는 그녀는 좋은 문장이나 표현이 떠오르면 자다가도 일어나 메모를 해놓았다고 한다.

 

그녀는 영리하다. 그녀의 어린 시절, 자연과 생물에 대한 사랑, 그것에 쏟아부어온 동물생태학자로서의 일생을 이 소설 속에 하나로 이렇게 잘 버무려 놓을 수 있다니.

외로움과 고립은 견뎌야 할 상태일지 몰라도 자연스런 상태는 아니다. 누구든 언젠가는 헤어나오고 싶어하는 불가피한 상황이며 상태이다. 이 소설 속에서 카야가 어떻게 그것을 헤쳐나오는지, 누가 가르쳐주지 않고 스스로 벗어나오는 과정과 방법이 궁금하지 않을지.

 

나는 살아있는 동안 가재가 노래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을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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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구 - 로마의 열병 / 다른 두 사람 / 에이프릴 샤워 얼리퍼플오키드 2
이디스 워튼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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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제목에 재미 중국인 작가의 소설인가 했고 표지 인물 그림을 보고는 Xingu는 사람이름일거라고 짐작해버렸다. 실제로 이디스 워튼이 어떻게 선택한 이름인지 모르겠고 개인적으로 중국어를 잘 모르지만 중국 이름을 영어로 표기할때 X로 시작하는 이름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다. 중국어 발음을 영어로 표기할때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 없어서 X 로 표기하고 있는 발음이 있는데  (Xu, Xiao 등) 실제 발음이 's'과 'z'의 중간쯤 된다고 한다.

이디스 워튼. 영화화된 소설 <순수의 시대>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미국의 작가이다. 그녀에게 여성 최초 퓰리처 수상이라는 명예를 안겨준 <순수의 시대> 이전에 그녀를 본격적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으로 <기쁨의 집>도 국내에 번역되어 나와있다. 뉴욕 명문가에서 태어난 그녀가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불행한 결혼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신경쇠약과 우울증 처방 차원에서 의사가 글을 써볼 것을 권하여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고 미국 태생이지만 프랑스로 거주지를 옮겨 마지막 생애도 파리에서 마쳤다고 한다.

집에 <순수의 시대>와 <기쁨의 집>을 전집류 속에 가지고 있는지 오래되었는데도 책 두께에 겁먹어 읽지 못하고 있다가 정작 이 얇은 단편집으로 그녀의 작품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 책에는 네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중 처음 두편 <징구>와 <로마의 열병>에 대해서만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머지 두편 <다른 두 사람>과 <에이프릴 샤워>는 앞의 두 작품과 동등한 수준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디스 워튼이 주로 소재로 삼아 왔다는 상류 사회 여성들. <징구>에도 그런 한 모임이 배경이 된다. 첫 페이지 문장만으로도 이 모임의 성격이 대번에 드러난다.

밸린저 부인은 혼자 뭘 하는 게 두려워 문화 생활도 여러 사람과 함께 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자기처럼 끊임없이 배움을 갈망하는 여성 몇 명을 모아 '런치클럽'을 만들었다. (7쪽)

'혼자 뭘 하는 게 두려워', '끊임없이 배움을 갈망하는', 모임 이름이 하필 '런치클럽'. 그렇게 시작된 런치클럽은 지역에서 유명세를 타게되었고 급기야 한 유명작가를 그들의 모임에 초대하는 일을 앞두고 술렁인다. 주체인 밸린저 부인 외에 귀빈 초대에 더 수준 있는 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플린스 부인, 이에 비해 소극적 회원인 레버렛 부인, 초대하기로 한 작가의 작품을 모임에서 처음 추천했던 밴 블레이크 양, 모임에서 은근히 소외를 당하고 있는 로비 부인까지, 유명 작가를 초대한 자리에서 어떤 질문을 하여 자기의 지적 욕구를 입증하고 앞으로 모임에서 자기의 입지를 더욱 다질수 있을지 내심 궁리한다. 드디어 작가 초대의 날, 로비 부인이 언급한 징구.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그 자리에서 묻지 않는다. 그것은 초대된 작가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이 이 모임에 있던 사람들로 하여금 입을 다물게 했을까. 이디스 워튼은 그 시대 상류 여성들의, 그들 자신도 몰랐을 허세와 교만과 거짓 교양을 성공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나는, 그리고 이 책을 읽었을 당신은,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려 하지 않고 이런 방식으로 대응한 로비 부인 쪽인가, 아니면 다수의 다른 부인들 쪽인가.

<로마의 열병>이라는 제목으로는 무슨 내용인지 짐작도 안가는 상태에서 다음 단편을 읽어내려가는데, 어느 새 마지막 줄에 이르러서는 작가의 예리함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비밀은 어느 순간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마지막 보루인가. 그렇다면 작품 속 두 사람은 그것을 제대로 잘 사용한 셈이다. 숨기는 것과 드러내는 것의 절묘한 대조는 <징구>와도 일맥상통한다.

신랄하고 성공적 비판 의식이다. 그 목표가 된 대상이 당시 상류층 여성이든, 그 사회이든, 아니면 시대를 막론한 인간 보편적 본성이든, 읽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어도 작가의 의도는 혼란없이, 모호하지 않게 독자에게 전달된다.

아쉽게도 문학성 뛰어난 문장 표현으로 감탄을 한 대목은 딱히 없었던 것을 보면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서인가? 이디스 워튼의 본격 장편 <순수의 시대>와 <기쁨의 집>을 읽으며 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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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9-23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디스 워튼의 이 단편집은 재미있지만 좀 가볍다는 느낌을 주죠. 확실히 <순수의 시대>와는 좀 다르고요. 저는 이 책에 실린 네 편중에 <징구>가 재미있었지만, <로마의 열병>이 참 좋았어요. <에이프릴 샤워>는 가장 별로였는데, ‘음 작가의 초기작인가‘ 싶을만큼 그저 소품의 느낌이었고요.

이디스 워튼 이라면, <순수의 시대>도 좋지만, <이선 프롬>으로 다시 만나보시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제 경우엔 아직 <기쁨의 집>을 사두기만 하고 안읽었어요.

아, 사람들이 자꾸 징구를 읽어서 너무 좋아요. ㅎㅎ

hnine 2019-09-23 13:29   좋아요 0 | URL
지금 보니까 이 책 출판사도 독특하고 얼리퍼플오키드라는 기획도 색다르고 그렇네요. 이 책에 실린 네편의 단편은 누가, 어떻게 선별해서 한 책으로 엮었는지도 궁금해지고요.
<이선 프롬>도 읽어야겠어서 이 책과 관련된 다락방님의 페이퍼 다 읽고 왔어요. 읽은 책과 일상을 연결시켜 글 쓰시는데 탁월하심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다락방 2019-09-23 13:10   좋아요 0 | URL
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나인님. 제가 좋아 죽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리퍼플오키드 기획의 다른 책은 케이트 쇼팽 이더라고요. 케이트 쇼팽이라면 또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인지라, 조만간 케이트 쇼팽의 단편집도 읽어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이선 프롬 참 좋아요, 나인님. 나인님께 말씀드리고 나니 저도 다시 읽고 싶네요.
아, 오늘 아침만 해도 알라딘 접을까, 떠날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나보디 역시 알라딘만한 데가 없구나 싶고 그러네요 ㅠㅠ

책읽는나무 2019-09-23 17:0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은 왜 떠나실 생각을???
안돼요~~
다락방님으로 인해 알게 되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부지런히 읽고, 알려주셔야죠^^

나인님 징구 얘기 읽으러 왔다가 다락방님 댓글에 대댓글 달고 가네요ㅋㅋ
이것도 알라딘이니 가능한??^^
<순수의 시대>,<기쁨의 집> 제목 기억해 두고 있었는데 제목 하나 더 얹고 가네요.<이선 프롬>까지...
저는 며칠 전 아룬다티 로이 책 읽었다고 기록하니 유부만두님이 슬며시 작가의 다른 작품 제목을 알려주시더라구요.
은근 기분 좋았습니다.
언제 읽을지 장담할순 없지만,누군가 책을 추천해 준다는 건 애정받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같이 느껴보고 싶을만큼 상대를 애정하는??
아..너무 앞서 나갔나요??ㅋㅋ
암튼 알라딘이니 가능한 것 같아요^^

hnine 2019-09-24 05:0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떠나시다니요 ㅠㅠ 저보다도 더 알라딘에 정 많이 드셨을텐데.
책읽는나무님, 동감입니다. 저도 누가 책 권해주면 참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 좋더라고요. 알라딘에서나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맞고요. 제 친구 중에도 늘 제게 책을 권해달라고 하는 친구가 있는데 제가 알려주는건 거의 구입해서 읽더라고요. 좋은 책 있으면 그 친구부터 떠올려요. 알려줘야겠다 하고요.
덕분에 아룬다티 로이 책 검색해보았어요. ‘작은 것들의 신‘을 ‘작은 신의 아이들‘이라는 제가 알고 있는 책과 혼동했다가 다른 작품인 걸 알았답니다.

syo 2019-09-23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징구 페이퍼/리뷰 중 ‘하하하하하하‘가 등장하지 않는 첫 글인 것 같아요 ㅎㅎㅎㅎ

이디스 워튼으로 들어가는 현관문 같은 책인가봐요!!

hnine 2019-09-23 12:27   좋아요 0 | URL
저는 하하하 라기 보다 ˝소~름˝ 이랬어요. <로마의 열병> 읽으면서는 나도 여자이지만 여자들 참 무섭구나 생각이 들었고 <징구>는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얼굴 없는 허세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눈에 보이지 않는, 끊임없는 배움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허세와 거리가 멀다고 믿으며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소~름 !

Falstaff 2019-09-23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디스 워튼, 미국 부르주아 계급 특유의 보수적 속물성이(워튼이 그렇다는 뜻이 아니라 그이가 주제로 하는 부류가요)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순수의 시대>니 <기쁨의 집>이니 굉장히 싫어했었거든요. ˝나는 개인적으로 찰스 디킨스 씨와 마크 트웨인 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 사람들의 책엔 신사가 등장하지 않거든요.˝ 아주 염병을 하잖아요.
근데 <이선 프롬>을 읽고나서 생각을 조금 바꿨습니다. 내용은 완전 19세기 이야기책 수준인데요,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에 가서 휘까닥 돌아버리더군요. 그래 마음을 바꿔 워튼을 좀 더 읽어봐야겠다, 생각 중인데 좋은 책 소개해주시네요.
고맙습니다.

hnine 2019-09-24 05:10   좋아요 1 | URL
저도 사실 고백하자면 그래서 <순수의 시대>를 책도 아니고 영화로 조금 보다 말았어요. 나중에 구입한 전집류에 들어있는데도 두께도 그렇고 얼른 손이 안가게 되었고요.
에필로그 부분에서 휘까닥 돌아버리게 하는건 이디스 워튼의 비장의 무기일까요? 집에 있는 순수의 시대, 기쁨의 집보다 아무래도 <이선 프롬>을 먼저 읽게 될 것 같네요. 그리고 만약 Falstaff님께서 <징구>을 읽으신다면 <이선 프롬>만큼이나 Falstaff님의 그 예리하고 유쾌한 리뷰도 기대가 됩니다.
 
밥하는 시간 - "삶이 힘드냐고 일상이 물었다."
김혜련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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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보는 타인의 삶은 평범하고 순탄해보인다.

그러나 타인이 아닌 지인의 관계가 되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 세상에 편하기만 한 삶은 없나보다 깨닫게 된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일상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래보였을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50쯤 되는 나이가 되면 사는 것이 타성에 붙을지언정 사는 것 자체에 대한 의문과 갈등은 없을 거라고. 해결되었든지 포기했든지,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안그랬다. 방향만 다를 뿐이지 사는 건 여전히 모르겠고 어렵고 확신이 없었다. 앞으로 남은 날이 더 줄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젊을 때보다 더 조급해지고 막막했다.

글쓴이는 산다는게 고통스러웠다. 현재의 삶이 고통스러워 과거를 들여다보고 내 발이 닿고 있지 않은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고 갈망했다. 지금 여기와 다른 그 평화로운 곳은 어디이고, 그곳에 다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묻고 찾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찾은 곳이 어디일까. 이 책의 제목이 말해준다. 밥 하고 청소하고 빨래 하고 산책하는, 그 사소해보이는 일상 속에 평화가 있었다.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나는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 끝에 온 '한 줌의 평화'앞에서 그것조차 누릴 수 없는 몸과 마음을 지닌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의 몸과 마음은 불안과 긴장에 길들여져 있다. 피해의식과 분노에 익숙하고 늘 초조하고 조급증에 시달린다. 자학과 갈등, 무기력에 오래 길들여져 있다. 삶이 전쟁터니 언제나 아드레날린 과잉 상태로 교감 신경만이 일방적으로 설쳐댄다. 지루한 일상을 견디지 못해 일탈한다.

일탈의 자유, 잠시 오는 해방감의 단맛을 보기 위해 일상을 파괴한다.

평화는 낯선 무엇이다. 전쟁에 길든 몸과 마음은 평화를 지루함이나 권태, 우울로 인식한다.

나의 쓸쓸함과 우울은 평화를 살아보지 못한 자가 치러야 할 당연한 삶의 몫이었다. (73, 74쪽)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불쌍한 시계추와 같다고 했다. 욕망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거나, 욕망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상태에 이르면 권태로움에 못견뎌한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그토록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평화에 이르면 그것을 지루함, 권태, 우울이라며 낯설어하고 벗어나고자 한다.

존재는 사유에 우선한다. 왜 사느냐는 물음 이전에 존재가 있었다. 그러니까 살아야 하는 것은 그 어느 사유의 결과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넌 태어나지 말아야 했다는 욕설을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로부터 듣고 자라고, 엄마로부터 안정이 아닌 불안을 배우며 자란 어린 시절은 글쓴이에게 늘 자기 결핍의 원천이었다. 그 지독한 자기 결핍이 내 안의 아귀가 되어 내 삶을 고통스럽게 했다. 그것은 어떤 명상 프로그램이나 수행 과정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마음의 문제 뿐 아니라 몸에도 이상이 왔다. 그래서 몸을 돌보기 시작했다. 내 몸을 위하고, 내 몸을 위해 밥을 짓고, 어떻게 하는 것이 몸을 위한 것인지 생각하고 행하기 시작했다.

 

내가 일상을 살기가 왜 그리 어려웠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단지 일상이 지루하고 단순 반복이어서만은 아니었다. 몸의 감각을 잃은 것은 일상을 잃은 것이다.

밥하고 청소하고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는 감각의 리듬, 삶의 느낌을 잃은 것이다.

나는 일상을 모르는 사람, 일상이 없는 사람이었다. 일상의 사소한 기쁨, 몸의 움직임을 통해 삶의 즐거움과 삶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일상의 즐거움과 든든함은 없고 일상의 부정적 측면만 있는 사람. 그런 기쁨 없이 고통과 무거움, 견뎌내야만 하는 그 무엇으로 삶을 사는 것이다.

늘 진지하기만 하고 재미없는 삶, 쓸데없이 처절한 삶,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 무언지 모르는 삶. 몸을 통해 바라본 나의 삶이었다. (113, 114쪽)

 

저자는 몸의 힘을 보여주는 사람들로 일흔, 여든이 넘은 할머니들을 들었다. 이분들의 힘은 어떤 이론이나 관념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밥해 먹고 농사짓고 자식 기르는 그 일상이 전부인 사람들의 힘, 몸의 힘인 것이다.

일상의 힘. 슬프지만 매일매일 몸을 일으키고 밥을 챙겨먹는다.

 

좌절은 관념적 지식인들에게나 있는 거지 '밀양 할매들'같은 민초에게는 그런 개념이 없다. 힘들지만 그냥 사는 거다. 밥해 먹다 나가 싸우고 또 밭 매고, 싸우다 울고, 울다가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해 나고, 비 오고, 바람이 불듯이 몸으로 사는 거다. '몸에 쌓인 힘'은 난세를 주파해가는 힘이 된다. (131쪽)

 

천지불인 (天地不仁). 자연은 내 감정이나 상황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인간이 어떠하든 자연은 제 갈 길을 간다. 자연이 나와 무관하게 변함없다는 사실은 든든하다.

내가 아무리 고통과 슬픔 속에 있어도 자연은 그토록 생기롭다는 사실이 절대적 위로가 된다. 내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는 것, 인간의 조건 안에 갇히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 (209쪽)

 

세상 모든 것을 볼때 자기 결핍이라는 눈을 통해서 볼때 삶은 괴로움 자체였다. 지독한 자기결핍이 사라지자 아픔이나 분노를 투사해 세상을 보지 않게 되었다. 세상 그대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자연을 보며 으로 사는 것. 저자는 그렇게 평화를 찾는다. 인간 관계에 갇혀 생각으로 사는 대신 말이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모두 생명을 이어가려는 대전제를 쫓는다. 이어갈까 끝낼까 고민하지 않는다. 인간도 본성적으로 그렇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지리산에서 장마철이면 거대한 나무들이 급류에 휩쓸려 내려오곤 했다. 그 나무들이 계곡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면 경이로웠다. 뿌리 뽑힌 나무가 잎을 틔우고, 다음해 봄에 꽃을 피웠다.

어떤 경우에라도 생명을 생명으로 피워내는 힘, 뿌리가 뽑히고 쓰러져 누웠어도 생명이 다할 때 까지 생명인 그것. 그것이 생명의 '근원적 명랑성'이라고 나는 믿는다. 노숙을 하며 빌어먹어도 한 끼의 밥을 먹게 하는 힘, 따뜻한 햇살 속에서 기지개를 켜고 햇볕을 향해 저절로 몸을 돌리는 그 힘 말이다. (241쪽)

 

저자가 그토록 고민하고 수행하며 찾고자 했던 삶의 의미는 저 너머 밖에 있지 않았다. 밥 먹고 청소하고 빨래를 개는 평범한 일상 자체였다.

 

온갖 관념의 세계를 헤맨 끝에 만난 게 '아무것도 아닌' 세계라는 역설. 그 역설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일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겪는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직관. 그런 것이 글을 시작하게 했다. 그러니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은 관념에서 구체적인 일상으로 내려오는 과정이다. (313쪽)

 

저자의 후기이자 이 책의 요점이다.

 

삶의 의미를 모르겠거든,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거든, 멀리서 답을 구하지 말고 내 일상을 그대로 살아가기를 계속 할 일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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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8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9-09-19 05:03   좋아요 0 | URL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 그런 소리를 퍼부어야 했던 그 엄마도 그 소리를 듣고 자란 저자의 삶 만큼이나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저자의 자기 결핍은 보통 사람의 경우 평생 벗어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는 수가 많을 것 같은데 저자의 경우는 거기서 자유로와질수 있어서 다행이어요. 오랜 시간과 노력을 댓가로 치르긴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