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고귀한 일상 - 일상에서 발견하는 생명과 존재의 아름다움
김혜련 지음 / 서울셀렉션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작가의 전작을 각별한 느낌으로 읽었었다.





<밥 하는 시간>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였다.

이번에 새로 나온 에세이의 제목은 <고귀한 일상>.

밥 하는 시간과 같은 결의 이야기가 담기었겠구나, 제목을 보는 순간 감이 왔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던 그녀는 마흔 후반에 하던 일을 접었고 오십 초반에 경주로 내려가 자기가 살 집을 짓고 밭을 갈며 살고 있다. 그러기까지 방황의 얘기가 <밥 하는 시간>이라는 책 속에 있었다.

온통 찾다가 돌아오니 처음부터 이미 저절로 다 있는 것을 이제 안다. 그리하여 답할 수 있다.

'그냥 살 뿐.' (28쪽)

하루 24시간을 피자 조각 나누듯이 네 조각, 아니 여섯 조각, 여덟 조각으로, 그 한 조각을 다시 두 조각으로 나누며 살아버티던 시게에서, 갑자기 하루 24시간이 한 덩어리로 주어지며 알아서 쓰라고 던져진 때가 찾아왔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인생의 룰 이랄까 그런 것을 다 뒤집어 엎고 새로운 제2의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살면서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그렇게 갈구하던 나만의 자유 시간이 자유가 아니라 형벌처럼 느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직접 그 질문에 부딪히게 되었다.

'늘 하던 일 하고 싶지, 특별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아.'

특별한 일이 따로 없다는 걸 온몸이 아는 거지.

하루하루 일상 그것이 특별함인 거지.

혼자 밥을 먹으며 이 특별한 일상이 기적 같다고 느낀다. (47쪽)

어제와 같은 이것이 그냥 시시한 반복, 아무것도 안일어남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특별함이고 고귀한 것임을 나이들며 알아간다. 특별한 일을 찾던 눈과 마음이 다시 나 있는 자리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공백에 대한 두려움, 고요에 대한 두려움, 혼자를 대면하지 못함.

《중세의 가을》에서 요한 하위징아 (Johan Huizinga)는 '공백에 대한 두려움'을 정신적 발전이 끝나 버린 시대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현대인은 공백을 못 견뎌 한다. (53쪽)

특별히 더 중요하고 집착해야할 것이 없다. 매일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이것이 다 중요하고 고귀한 것이라는 깨달음이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한 순간에 온 것이 아니라는 것만 알뿐.

내 생각은 고귀한데 나의 일상은 천박하다. 이 사실을 깨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고귀한 생각을 하는 꽤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실제 삶 속에서 나는 봐주기 힘들 만큼 천박했다.

난 평생 그럴듯한 삶을 꿈꾸면서 그 근원이 되는 것들은 죄다 무시하고 살았다. (70쪽)

'사소한 것을 고귀하게 하라' 라는 소제목 아래 세쪽에 걸친 글은 읽고, 한번 더 읽었다.

내 생각이 어떤 대단한 생각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의 삶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을뿐. 다만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서 반가운 마음이다. 내 생각이 아주 유별난 생각은 아니구나, 혼자 이상한 곳으로 와있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안심이랄까.

아직도 배움이 많이 필요하고 아직도 덜어낼게 많은 삶이다. 채운게 뭐 있다고 덜어낼게 있냐는 생각은 적어도 하지 않을 겸손함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


책은 금방 읽었는데 리뷰를 바로 올리지 못했다. 리뷰의 성격으로 쓰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랬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09-03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4 0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1-09-0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밥을 먹으며 이 특별한 일상이 기적 같다고 느낀다. (47쪽)
: 이 글을 읽으니 어느 책에서 읽은 - 행복하게 해 줄 것들을 이미 갖고 있는데 다만 행복을 느끼지 못할 뿐이라는 - 글이
생각납니다.

hnine 2021-09-05 05:29   좋아요 1 | URL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 이 말도 지금 막 생각나네요. 이것도 아마 어디서 읽은 것 같은데, 같은 맥락이겠지요.
다 시시해졌다는 말은 어떤게 더 특별히 중요하고 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의미했는데 읽으시는 분들도 그렇게 받아들이시는지 궁금해져요.

서니데이 2021-09-05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요즘 생각하게 됩니다.
전에는 잘 몰랐거든요.
커다란 상장 같은 목표도 좋지만, 매일의 날들도 바꿀 수 없을 시간 같아요.
hnine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hnine 2021-09-05 23:40   좋아요 1 | URL
저는 오늘 오랜만에 바깥 외출을 하고 왔답니다. 가까운 수목원에 다녀왔어요.
신기한 식물들 많이 보고 사진도 많이 찍고, 날은 잔뜩 흐린 날이었지만 마음은 개인 날이었어요.
매일의 날들을 새로이 바라볼 수 있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이미 새로 시작된 날 자체가 새로운 일이라는 걸.
 
소피의 선택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7
윌리엄 스타이런 지음, 한정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어에 Hobson's choice 라는 말이 있다. 'to have no choice at all' 을 뜻하는 것으로,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소피의 선택, 이 책의 여정을 다 끝내고 제목의 소피의 선택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되었고 (소설의 거의 끝무렵에 밝혀진다), 혹시 이 소설때문에 이후로 소피의 선택이라는 말도 Hobson's choice처럼 어떤 특수상황을 의미하는 관용구로 쓰이고 있나 궁금해져서 google에서 찾아보았다. 

1979년 발표된 이 소설에서 유래하여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하는 경우를 일컬는 경우에 사용된다고 한다. 어떤 것을 선택해봤자 결과는 다른 하나를 선택했을 때보다 나을게 없는 경우를 말한다. 

윌리엄 스타이런은 25살에 첫 장편소설 발표부터 문단의 호평을 받는다. 소피의 선택은 그의 네번째 장편소설로서 1979년 그의 나이 55살때 발표하여 다음해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하였고 몇년 후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인 '스팅고'가 화자로 등장한다. 작가를 꿈꾸고 있는 스팅고는 대학을 졸업한 후 출판사에 취직하였다가 사표를 내고 전업작가로 나서기위한 습작 생활에 들어간다. 뉴욕의 작은 공동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다른 방 사람들중 소피 그리고 그녀의 애인인 네이선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된다. 소피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폴란드 여자이고 네이선은 유태계 미국인이다. 난민수용소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미국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소피를 네이선이 도와주었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소피와 네이선은 둘 다 정신적으로 불안하여 언제 어떤 일을 일으킬지 모르는 상태이며 특히 네이선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중증 상태이며. 이들 사이에 있는 스팅고 역시 자신의 정체성과 작가로서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며 인간 관계 맺음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상태로서 소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괴로와하고 네이선에 대해서도 묘한 연민과 매력을 느껴서 더욱 복잡한 심리 상태를 보인다. 

네이선이 발작을 일으키고 소피에게 변태적인 행위나 가학행위를 한후 그녀를 떠날때마다 스팅고는 혼자 남은 소피가 무너지지 않도록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주며 그녀가 털어놓는 과거 얘기를 들어준다. 마치 참을성 있는 고해신부처럼.

이 소설은 작가의 개인적인 작가로 일어서기까지의 방황과 불안, 그의 가족사와 관련된 미국 노예 제도에 대한 작가적 분석, 그리고 나찌의 유태인 학살에서 보인 잔혹성과 광기에 희생되는 인간의 파국의 양상이 두개의 큰 줄기를 이루며 진행된다.

민족과 국가의 선택과 결정이 개인의 운명에 어떻게 관여하고 어떤 모습의 파국으로 몰고 가는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죄악의 모습과 광기는 모두 우리 인간에 내재하고 있는 악마성에서 비롯됨을, 복잡한 인간 관계와 심리 상태, 변태적인 행위와 가학 행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국가의 차원에서 그리고 개인의 차원에서.

소피에 대한 네이선의 비정상적이고 가학적인 애정 행위, 그런 네이선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소피의 이해 불가한 심리, 그 사이에서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려는 강박을 보이는 스팅고는 읽는 내내 이 작품에 대한 나의 판단을 어렵게 했고 혼란스러웠다. 이 정도 수위의 묘사가 이 정도 분량이나 작가에게 꼭 필요했을까 마지막까지 결론을 못내리고 책장을 덮었다. 영화에서는 어떻게 그려졌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독자가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서도 작품에 대한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짐작이다.

소피의 욕망도 나처럼 끝이 없었으나, 거기에는 다소 복잡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원초적인 욕망이 컸을 것이고, 또한 성교를 통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그 고통에서 벗어나 망각으로 빠져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죽음을 물리치려는 격렬한 싸움이 지칠 줄 모르는 성욕으로 나타났던 것 같기도 하다. (2권, 444쪽)

스팅고가 말하는 위의 대목을 겨우 찾아 작가의 변을 들은 셈 친다. 

윌리엄 스타이런은 말년에 꽤 오랫동안 심한 우울증으로 시달렸고 그의 아버지 역시 우울증으로 고통받았던 집안 내력이 있다. 


두권에 걸친 분량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을 부분을 두툼한 책의 말미에서 발견했다. 스팅고가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쓴 부분이다.

질문: "아우슈비츠에서, 신은 어디 있었는가?" 

대답: "인간은 어디 있었는가?" (2권, 474쪽)

또하나의 질문으로 답할 수 밖에 없는 대답.

신의 존재를 묻기 앞서 인간인 우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냐고 묻는 지적인가.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다음과 같은 시구절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차가운 모래 아래서 나는 죽음을 꿈꾸었으나

새벽녘에 깨어나 보니

밝은 새벽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이날은 심판의 날이 아니었다. 아침일 뿐이었다. 아름답고 빛나는 아침. (2권, 479쪽)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1-08-27 2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적당한 선에서 보여주고 묘사해도 충분히 이해할 텐데
유난히 그런 것에 집착하는 감독이나 작가들이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런 거 보면 좀 사디즘이란 생각도 들어요.
이 작품 영화나 책으로든 함 볼까 했는데 좀 괴로울 것 같아서 볼 수 있을까 싶어요.ㅠ

hnine 2021-08-28 05:37   좋아요 2 | URL
작가가 젊은 시절 쓴 작품도 아니고 실력을 인정받은 후 발표한, 시간과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겠기에 더 집중해서 읽었는데 저는 마지막까지도 작가의 의도에 공감을 다 하지 못하는 부분이 남아있었답니다. 아무리 유명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런 작품들을 어찌 제가 다 이해할 수 있겠어요 ^^
죄악을 저지르는 것도 인간, 죄악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인간.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닌, 천사이면서 또 악마이기도 한 이중적 존재, 다중적 존재인 것 같아요.

scott 2021-09-1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치 나이님
추석연휴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ʕ ̳• · • ̳ʔ
/ づ🌖 =͟͟͞͞🌖
해피 추석~
 
밤의 군대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8
노먼 메일러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노먼 메일러의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를 읽고 나니 도저히 그것으로 멈출 수 없었다. 

<밤의 군대들>은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가 나오고 나서 출간되었고 (1968년) 노먼 메일러의 또다른 대표작이면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이라는 두개의 상을 받게 한 작품이다. 역시, 누구나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 독특한 형식과 내용을 하고 있었다. 

우선 모든 글의 성격을 픽션이냐 논픽션이냐로 분류한다면 이 책은 어느 쪽으로도 분류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실제 있었던 일을 보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니 논픽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쓴 사람의 주관과 생각이 듬뿍 들어가있으니 픽션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저자는 왜 이처럼 제3의 형식의 책을 쓰게 되었을까. 아마도 신문과 방송이 대중에게 사실을 보도하는 매체의 전부였던 시대에 그 '보도를 보도해보겠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논쟁의 불씨를 짐작하면서도, 논쟁적이지 않은 작품은 쓰지 않는다는 평소 노먼 메일러의 고집을 생각할때 가능한 시도이다.

작가의 이러한 심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을 본문 중에서 찾아본다.

신문이란 사람의 행동을 왜곡한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운데, 기자들은 사람이 말한 낱말과 문장을 부수고 비틀고 추리고 짜서 결국에는 훌륭한 작가를 얼빠진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필연적인 결론이 나온다. 말을 길게 늘어놓을수록 더 바보가 된다고. 만일 헨리 제임스가 요즘 인터뷰를 했다면 통신수업에서 토론학을 배운 히피처럼 보도됐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이 보도 내용은 항상 이상하게 간추려지고 생략되어서 오해가 빚어지고 바보스러워진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놓인 오해의 장벽은 신문을 통해서 시간이 흘러갈수록 두터워진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묘한 슬픔이 훌륭한 작가의 가슴마다 비집어 든다. 작가의 작품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를 오도하는 언론기관의 잘못으로 작가는 무지한 독자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들은 고통받는다. 이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면 그게 신문에 보도되는데 행위의 동기가 비틀리고 말이 잘못 전달되곤 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으면 작가는 아예 체념하고 다른 일거리로 방향을 바꾸는데, 예를 들면 목적의식을 가지고 투쟁하든가 새 책을 쓰든가 영화를 만들든가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기껏해야 가망 없는 평판을 감내하든가 나쁜 경우엔 산 채로 자신을 매장시키는 기사에 고통을 받는다. (108, 109쪽)


1967년 10월 21일, 미국의 국방성 펜타곤 앞에서 미국의 베트남 참전을 반대하기 위해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이 모여 시위가 있었다. 이중엔 진보적 학계 인사를 비롯하여 시인, 비평가, 히피족, 대학생, 등 여러 계층,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속해있었다. 이 일이 있기 약 한달전 노먼 메일러는 하버드 동문이자 오래된 친구인 미첼 굿맨과 전화 통화를 한다. 미첼 굿맨은 노먼 메일리에게 시위 계획을 알려주며 참가할 것은 권유한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하다가 참여하는 사람들과 모임을 주관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점차 생각이 바뀐 그는 목요일에는 사전 모임에서 연설, 금요일에는 법무부에서 시위, 토요일에 펜타곤 앞에 모여 시위라는 3일 동안의 일정에 당시 잘 나가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참가하기로 하고 자기가 보고 느낀대로 써보기로 한다. 그래서 모임 연단에서 연설을 하기도 하고, 시위대에 참여하여 거의 자발적으로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하루만에 풀려나긴 했지만 감옥에서 지내보기도 하고 재판을 받기도 한다. 그가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찬성했느냐 반대했느냐 그것이 이 행사 참여 목적에서 아예 제외된다고 볼 수 없지만 그것이 주요 목적은 아니었다. 감옥에 들어가면서도 그는 어서 이 일정을 끝내고 뉴욕에서 있을 파티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서슴없이 쓰고 있고 베트남 참전 반대 군중을 가장행렬에 비유하는 비판적 의견도 감추지 않는다.

난잡하고 방자하고 부주의하게 LSD를 남용하고 그 폭식의 상패로서 자신들의 등에 모든 시대의 역사를 걸친 악한들이 지금 신만이 아는 역사의 진수를 모조리 짊어진 채 전진하고 있다 (양심의 가책 때문인가.) 다른 악한들을 치겠다고 지금 걸어가고 있다. 신파시즘의 성과학기술적 다양성을 위해서 독선과 탐욕과 (때론 자신들도 모르는) 음흉한 정욕 속에서 현재의 약속을 무너뜨리는 이 나라의 모든 기업을 대표하는 악한과 전쟁을 하겠단다. (148쪽)


그럼 저자는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중립적이었는가? 

그는 자신의 의견을 아예 <우리는 왜 베트남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로써 밝히고 있다 (이글은 따로 1967년에 단편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메일러는 전쟁을 옹호하는 입장도 알고 비방하는 입장도 알지만 결국 둘 다에 질려 버렸다. 전쟁을 옹호하는 주장은 근본적으로 조사하지 않은 가정 위에 세워졌고 끝없이 되풀이됐다. 한편 철수하자는 주장은 한 번도 그 중요성을 밝혀 본 적이 없다. 메일러는 미국의 베트남전쟁 참전을 2차 세계대전 이후 있었던 어러 사건들의 절정으로 생각했다. 정치가, 기업가, 장군, 신문 편집자, 입법가 등 미국의 가장 강력한 중년층과 나이든 와스프(WASP) 들은 의견을 한데 모아 지적인 결속을 다짐했다. 중세 기사와 맞먹는 신앙심으로 공산주의가 기독교 문화에 대한 필살의 적이라는 신념을 굳혔다. 전후 세계에서 공산주의와 대적하지 않으면 기독교 자체가 말살되리라고 생각했기에, 겸손한 타협도 있었으나 공공연히 전쟁을 벌이며 냉전 시대를 열었다. 

(278쪽)

이렇게 시작하는 <우리는 왜 베트남에 있는가>라는 글을 통해 노먼 메일러는 자신을 보수적 좌파라고 일컬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 요약해서 올려본다.

메일러는 보수적 좌파로서 그 나름대로 관점이 있다. 

모든 전쟁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을 미국입장에서 볼 때 나쁘다. 나쁜 전쟁이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더 좋은 무기를 가지고 싸울 때,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싸움은 나쁜 전쟁이다. 폭탄으로 수많은 부녀자와 아이들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일이 매일같이 일어난다면 그 전쟁은 나쁘다. 인구를 재배치하는 전쟁은 나쁘다. 전선도 없고 뚜렷한 절정도 없는 전쟁은 나쁘다. 과열된 우월감과 과열된 논쟁 속에서 나라에서 가장 용감한 남자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는 전쟁은 나쁘다. 그런 전쟁은 다른 인종들을 사냥하겠다는 내밀한 정욕에 부채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애국심을 지속할 의미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는 전쟁은 분명히 나쁘다. 그 뿌리가 너무 복잡하고 타협적이어서 그 자체를 전쟁으로서 개선할 전망이 없는 싸움은 나쁘다. 좋은 전쟁은, 더 노력하면 혼란, 악, 몹쓸 것들을 효과적으로 쓸어버릴 수 있다는 구체적 가능성을 가져야 한다. 모든 보수적 시각에서 전쟁의 의미를 살펴보니 (전쟁을 옹호할 권리는 보수주의에 유보하고) 베트남전쟁은 나빠도 보통 나쁜 전쟁이 아니다. (284쪽)

이어서 두번째 이유로 메일러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철수하고 세월이 흐른 뒤 아시아 대부분이 공산화된다고 가정할 때, 이것이 정말 문제가 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285쪽) 2차 세계대전 이후 와스프 해군 대장, 장군, 정치가, 입법가, 편집자, 기업가들이 다음번 전쟁은 기독교와 공산주의 사이에 벌어질 거라고 수군거렸는데 이들은 마르크스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으며 좋은 기독교인과 나쁜 기독교인이 있듯이 좋은 공산주의자가 있고 나쁜 공산주의자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아시아가 공산화될까봐 떨지 말고 아시아는 아시아인들에게 맡기라는 생각이다.

빨리 손을 떼라. 공산주의가 확장될수록 공산주의 그 자체의 모슨은 더욱더 커질 것이고 공산주의의 팽창 그 자체가 스스로 견제한다. 공산주의를 패배시킬 유일한 힘은 바로 공산주의 그 자체다. (287쪽)

어쨌든 그는 베트남전쟁에 반대한다는 항의를 상징적으로 보이기 위해 체포되었고 감옥에서 지낸 길지 않은 시간등,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결코 사실만 전달하겠다는 선언을 하지 않고 도리어 소설을 쓰겠다며 글을 쓴다.

훌륭한 소설이란 눈에 비치는 광경을 구체화하여 독자가 다른 광경들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연못을 들여다보려 할 때는 현미경 노릇, 숲을 탐색하려 할 때는 탑 위 망원경 노릇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확연해진다. 펜타곤 시위를 둘러싼 대중매체는 역사가의 노력에 장막을 드리우는 부정확성의 숲을 만들어놓았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 나아가 사실을 전망할 도구들까지 제공하려고 한다. (334쪽)

어쩌면 이 대목이 이 책의 의미를 요약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자신이 보고 겪은 것을 바탕으로 이 책의 1부를 썼고 제목을 '소설로서의 역사'라고 붙였으며, 2부는 '역사로서의 소설'이라는 제목으로 각 언론사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보도했는지 모아놓았다. 소설로서의 역사란 소설인가 역사인가. 역사로서의 소설을 우리는 역사라고 볼 것인가 소설이라고 볼것인가.

책의 마지막 부분을 소제목 '은유의 탄생'이라는 글로 마무리한 것은 그 자체가 얼마나 상징적인지.

미국, 새로운 인간은 신이 사랑뿐 아니라 권력도 만든다는 믿음으로 이 땅에 태어났지. 

한때는 비길 데 없이 찬란하게 아름다웠지만 지금은 짓무른 피부를 지닌 미국이라는 여인, 사생아인지 아닌지 아무도 모르는 아이를 배어 벽도 보이지 않는 지하 감옥에 갇혀 시들어 가고 있다. 이제 그 두려운 진통의 첫 신호가 왔고 계속될 것이다. 얼마나 계속될지 의사도 모른다. 다만 가짜 진통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아, 진짜다. 이제 아기를 낳을 것이다. 어떤 아기일까? 지금까지 세계가 알아 온 가장 두려운 전체주의?

신이 갇혀 몸부림친다. (427쪽)

지금의 현실과 오버랩되며 오싹해진다. 전체주의란 어떤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파고들어있는 것일까.

어쩌면 노먼 메일러는 이 책을 씀으로써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이라는 팩트를 통해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를 얘기하고 싶었으며, 보이는 것에 갇혀진 진실, 무엇을 믿고 살아야할지 혼란과 갈등이 커져가는 인간들, 0과 1사이의 경계, 옳고 그름, 득과 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더 나아가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무너져가는진 현대 사회를 향해 정신 차리고 살라고 일침을 던져주는지도 모른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9-10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치 나인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에이치 나인님 리뷰 자주 보고 싶습니다 ^.^

hnine 2021-09-11 05:4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오자도 막 나오고 ㅠㅠ
읽은 책은 다 리뷰 올리려고 하는데 요즘 독서량이 그리 많지 않기도 하고, 읽는 책들이 주로 두툼한 세계문학전집이기도 하고, 핑계라면 그렇네요.

하양물감 2021-09-10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들러서 읽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hnine 2021-09-11 05:50   좋아요 1 | URL
하양물감님 올리시는 리뷰 지금도 즐겨 읽고 있어요.
한솔이도 종종 궁금하고요. 똘똘하게 잘 자랐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양물감 2021-09-11 08:59   좋아요 0 | URL
한솔이는 이제 청소년이라 예쁜 모습은 사라졌어요. ㅋ

서니데이 2021-09-10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hnine 2021-09-11 05: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마음에 오래 남을거라고 생각했던 책의 리뷰라서 더 기쁘네요.

초딩 2021-09-1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hnine 2021-09-12 05: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도 축하드려요. 리뷰와 페이퍼 2관왕! ^^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1
노먼 메일러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와 같이한다. 아직 전쟁을 겪어보지 않고 간접 경험만 해온 세대인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만큼 전생을 실감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소설로 처음 만나게 된 저자 노먼 메일러는 나만 모르고 있었나 싶게 미국 현대 문학의 대표적 인물중 한 사람이다. 1923년 미국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에서 항공기술학을 전공하고 우등 졸업을 했으나 평소 문학에 관심이 많아 혼자서 습작을 해오던 그는 졸업후 바로 2차세계대전에 참전하여 필리핀 군도에서 복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사실주의 소설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를 발표한다. 발표하자마자 좋은 평을 받고 알려지기 시작하여 이후 잡지 출간을 비롯,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주목을 받게 되고 뉴저널리즘 소설이라고 하는 <밤의 군대들>로 196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주로 사회적 이슈를 담은 소설을 발표해오던 중 사형수의 실제 삶을 담은 소설 <처형인의 노래>로 1979년에는 두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나자와 사자>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바 있는 이 소설이 2016년 새로운 제목과 번역으로 다시 선보이게 된다.

2차세계대전이 종결되기 일 년 전 스물 두살의 나이로 군에 입대하여 미군의 필리핀 탈환 작전에 투입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노먼 메일러는 1,2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소설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을 완성하였고 그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날이 밝으면 강습상륙정이 내려지고 선발 병력이 파도를 타고 아노포페이 해안으로 진격해 들어갈 것이었다. 탑승한 병사 전체가, 호송선에 있는 사람 모두가, 몇 시간 안에 자기들 가운데 목숨을 잃는 사람이 생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8쪽)


전쟁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방식을 바꿔놓았던가. 전쟁은 물론 군대 경험도 해본 적 없이 간접 경험이 전부였던 나에게 이 소설만큼 읽으면서 내가 마치 전장에 있는 듯한 기분을 줄곧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대단한 전투 장면이 사실적으로 그려진 것이 아님에도 용병제로 군인을 모집하는 미국에서 각자 군인에 자원하여 들어온 사람들의 각자 다른 배경, 생각, 인간성, 그리고 전장의 상황 묘사를 무서울 정도로 그려놓았다. 

지리적 배경은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점령한 남태평양의 가상의 작은 섬 아노포페이. 여기에 미국이 상륙작전을 감행한다. 부대를 이끌고 있는 커밍스 소장은 초기의 소소한 전과 이후 이렇다 할 진전이 없고 장기화 조짐이 보이자 상황을 타개하고자 무리하여 보토이 만 상륙 작전을 구상하게 되고, 이를 위해 소규모 정찰대를 파견하기로 한다. 그리고 커밍스 소장은 평소 자기에게 반기를 들고 있던 '헌' 소위를 희생이 짐작되는 그 임무에 투입시키고 무리한 정찰 임무를 지시한다. 무리한 작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시대로 움직여야 하는 군대라는 체계. 무리수라는 것 외에도 거기에 얽힌 국가의, 그리고 개인의 이해 관계, 무섭고 엄연한 전쟁의 본질과 원리까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뒤집어 말하면, 전투에서 병사들은 인간보다 기계에 더 가깝다. 그럴듯하고 수용할 만한 명제다. (2권, 237쪽)

기계에 가까와야하고,

전투란 지배적인 습성을 지닌 채 들판을 빠르게 내달리고 햇볕 아래에선 난방기처럼 땀을 흘리며 빗속에서는 쇳조각터럼 굳어 버리는 수천의 인간-기계들을 조직하는 장이다. (2권, 237쪽)

인간이 기계로 효율화되는 장은 '전투'이다.

우리는 이제 기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더 이상 사과가 몇 개 있는가, 말이 몇 필 있는가를 따지지 않는다. 기계 한 대가 인간 여러 명의 몫을 해낸다. 영도자들이 신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나라에서는 기계를 숭상한다. (2권, 237쪽)

인간적인 티를 함부로 내서는 안된다.

그는 지금 로스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고 싶었으나, 그렇게 했다간 로스가 때만 되면 찾아와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동정을 구할 게 분명했다. 로스는 자기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는 사람이면 아무에게나 달라붙을 위인이었다. 그렇게 하도록 둘순 없었다. 결국 로스도 얼마 안 가 총에 맞을 사람 아닌가. (2권, 249쪽)

자기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하며 마지막으로 잠시 어머니의 따뜻한 품 같은 것을 기대하고 울며 고마음을 전해오는 '로스'를 보며 마음을 무장하고 있는, 그래도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던 '레드'의 심리를 나타낸 부분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전쟁의 실체이고 미국 사회, 미국 병사들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 대한 밑바닥을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소설이다. 계급적인 불평등과 억압이 지배하고, 명령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반사적인 복종에 무감각해져가는 체제를 구축하는 극한 상황, 죽음의 현장에서 인간은 어떤 모습인가. 여기서 커밍스 소장은 생각한다. 파시즘은 이런 인간의 실제적 본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차라리 공산주의보다 낫다고. 파시스트적인 힘이 병사들로 하여금 인간적인 한계를 넘게 하는 추진력이 된다고. 그럴때 군사 체계는 최대화 되고 병사들은 인간에서 기계가 되어간다.

적극적인 대처로 맞서기 보다 환멸과 무기력으로 빠져들었던 '헌'을 일컬어 해설에서는 현대 지성인의 표본으로 보았고 (2권, 503쪽) 작가는 그를 '생명의 그릇임에도 결국 어떠한 생명도 잉태하지 못하는 썩은 자궁, 혼탁한 자궁' 이라고 했다. 사상적 재료가 행동으로 꽃 피우지 못하는 지성을 말하는 것이다.

무서운 것은, 이 전투의 결과 누구도 승자와 패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상황 타개를 위한 작전을 수행하였을 뿐, 손해도  이득도 보지 않았고, 다음 작전에서 좀 더 성과를 내리라 헌티스 소상의 다짐으로 맺고 또한 시작을 의미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내가 마치 전쟁터에 던져진 듯한 느낌을 가장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던 대목은 윌슨이라는 병사가 죽어가는 대목이었다. 길고도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 죽음마저 쉽지 않을 만큼 지리하게 모든 고통이란 고통을 다 경험시키며, 죽음 뒤에도 끝나지 않고 다른 동료들에게 짐이 되는 극도의 비참함. 이 모든 지옥 경험과 개인의 삶과 죽음의 결과는 단 하나, 작전이 성공으로 끝났냐 아니냐 하는 결론으로만 의미를 남긴다.

커밍스 소장의 생각, '역사는 우익의 수중에 있고, 역사는 이번 세기 동안, 아니 어쩌면 다음 세기까지도 우익의 것이 될 것'이라며 미래의 유일한 도덕률은 힘의 도덕률이고 군대는 미래를 미리 보여준다는 예언은 작가가 전하는 이 소설이 보내는 경고라고 역자는 해설에서 덧붙이며 그 경고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했다.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하나.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21-07-27 0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로 알게 된 작가와 작품 리뷰 고맙습니다 나인님. 담아 갑니다. 무더위가 절정이네요. 지치지 않고 지내세요 ^^

hnine 2021-07-27 12:17   좋아요 3 | URL
너무 반가운 프레이야님.
더위와 코로나를 어떻게 이기며 지내시는지요.
저는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하고 지내는 아주 소극적 방법으로 버티고 있답니다. 오늘은 백신도 맞고 왔어요.
이 작가 작품 프레이야님도 한번 꼭 접해보시기를 추천해드려요. 이 소설 하나로 성이 안차서 저는 바로 작가의 다른 대표작 <밤의 군대들> 읽기 시작했어요.

새파랑 2021-07-27 0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쟁은 결과만 남기 때문에 너무 잔인한거 같아요ㅜㅜ 저는 이 작가랑 작품 처음 알았는데 읽어보고 싶어요 😊

hnine 2021-07-27 12:20   좋아요 3 | URL
저도 이 작품으로 이 작가 처음 알게 되었고 제가 몰랐기 때문인지 미국에서의 지명도에 비해 국내에선 그정도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제가 마치 전쟁터에 있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답니다. 아마 아들이 군대 가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겠지요. 철학이나 종교를 통해 배우는 죽음과 비교도 안되게 전쟁을 통해 느껴지는 죽음은 다른 것 같아요.

stella.K 2021-07-27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래 전 <예수의 일기>란 책을 읽으면서 이 작가를 알았죠.
예수님이 1인칭으로 나오는 소설인데 되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신앙이 좋은가 보다 했는데
안티크리스찬이란 말을 들어서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그후 좀처럼 이 작가의 작품을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일케 h님이 소개를 하시니 읽고 싶기도한데
책 두께가 장난이 아니네요. 이 더운 날 이 책을 우찌 읽으셨을까? 새삼 존경스럽네요.
암튼 언제 읽을지는 모르나 기억은 하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구요.^^

hnine 2021-07-28 05:23   좋아요 2 | URL
오, stella님은 오래 전부터 이 작가를 알고 계셨군요.
말씀하신 <예수의 일기> 검색해보니 흥미있어보이는데 왜 절판되었는지 아쉽네요.
책 두께가 장난이 아닌 책들을 요즘 몇차례 읽다보니 이력이 붙었나봅니다. 그래도 1,2권으로 되어 있는 정도는 읽어보겠는데 1,2,3,4 이렇게 네권으로 되어 있는 책들은 쉽게 손이 가지 않고 있습니다.
노만 메일러는 안티페미니스트라는 말도 있던데 안티크리스찬이란 말도 있군요. 지금 읽고 있는 그의 다른 책 <밤의 군대들>에도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시위에 본인 자신이 참석하여 겪은 일을 가지고 썼기 때문에 책 속에 메일러라는 이름이 나와요. 독특한 시도를 많이 했다는 것은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해보고 통찰해보려는 시도라고 봐도 될까요.
아무튼 현재 제 관심 범위에 있는 작가랍니다.
너무 덥지요? stella님도 건강 조심하시고, 다롱이도 회복되었으면 좋겠어요.

카스피 2021-07-28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정자들에게 군인은 인간성과 같은 감정이 없어야 쉽게 살륙을 할수가 있어야 전쟁에 승리할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그래서 늘 두가지 방법을 생각했는데 하나는 인간인 군인에게서 인간적인 감정을 없애는 것이었죠.인간적인 감정을 없앤 이른바 슈퍼솔져 영화는 과거에도 참 많이 나왔지요.나머지 하나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전쟁애서 활약하는 것인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터미네이터입니다.현재는 전자보다는 이른바 인간이 타지않는 무인기나 무인함이 나와서 전쟁에 이용되는 것이 대세인것 같은데 언젠가는 정말로 군인도 기계로 대체되지 않을까 싶네요.

hnine 2021-07-29 05:36   좋아요 1 | URL
제가 터미네이터 영화를 처음 본것이 대학 입학도 하기 전인데, 그땐 말씀하신 그런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재미있는 영화 한편 봤다고 생각했지요. 군인이 기계로 대체되는 세상이 새로울 것 같지만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 많은 것들이 기계로 대치되고 있다 생각하니 두렵기만 합니다. 모르는채 스며들고 습관화 되어가고 있는게 제일 무섭잖아요.
한 인간 자체가 하나의 우주이고 하나의 세계인데, 그런 여러 인간들이 모인 군대라는 조직에서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아무 가치조차 없다는 것이 너무 실감나게 그려진 소설이었어요.

페크(pek0501) 2021-08-06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모르는 작가의 작품이네요. 나인 님의 리뷰를 보니 제가 읽어 봐야 할 것 같네요.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더운 여름, 잘 지내시기를...

hnine 2021-08-06 14:56   좋아요 1 | URL
너무 덥지요? 그런데 내일이 입추래요. 주말 지나고나면 더위가 한풀 꺾인다네요.
요즘은 신간 제쳐두고 집에 있는 세계문학전집만 줄창 읽고 있어요. 오늘 페크님 글 오랜만에 반갑게 읽었습니다.
 
Chemistry (Paperback, Reprint)
Weike Wang / Vintage Books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먼저 말해두지만 이것은 화학 (chemistry) 교과서가 아니다. 엄연히 소설. 하지만 화학이라는 세계와 무관하지 않은 내용, 화학을 아는 사람이 쓴 소설이다.

내용은 딱히 새로울 것이 없다. 개미같이 일하여 자식에게는 자신들과 다른 삶을 열어주려는 아시아 이민 부모는 우리 나라 부모들에게서도 친숙한 모습이니까. 자신들과 다른 성공은 우선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중국에서 넉넉치 않은 가정에서 자란 '나'의 아버지는 성공에 대한 포부가 크다. 갓 결혼한 부인을 데리고 미국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을 목적으로 건너오는데 생활은 넉넉치 않고 학업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중국에서 약사로 일하던 부인은 영어라는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해 끝내 자기 전공을 못살리고 남편 뒷바라지와 곧 태어나는 자식 교육에 전념한다. 늘 그렇듯이 부모의 못다 이룬 꿈은 자식에 대한 몇배의 정성과 노력과 기대로 대물림된다. 그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여 정해진 길에서 이탈 없이, 명문 대학에 입학한 '나'는 박사 학위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데 똑같은 실험을 무한반복하는 생활 속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대체 이런 것이었던가 그제서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사귀던 남자 친구 에릭과의 관계는 더욱더 자기의 현재와 미래를 혼란에 빠뜨린다. 한번도 자기의 미래를 자기의 뜻만으로 결정해보지 못한 나는 실험실에서 비이커를 다 집어던지는 사건으로 폭발하고 더 이상 실험실에 나가기를 중단한채 집으로 잠적해버린다. 취업을 위해 먼곳으로 떠나야 하는 남자 친구로부터 결혼해서 함께 가자는 제안을 받은 나는 그가 듣고 싶어하는 답을 못해주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을 기존의 관계들로부터 격리시킨 생활을 한다.

두가지 결정이 그녀 앞에 있다. 박사 학위를 마치기 위해 학업을 계속 해야할까. 남자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와 결혼하고 그가 새로 일자리를 잡은 곳으로 떠나야할까.

말했듯이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지만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이라면 내용 곳곳에 화학과 일상을 겹쳐서 잘 비유해놓았다는 것이다. 인위적인 티가 나지 않고 오히려 기발하기조차 한 비유와 대조가 많았다. 화학은 어찌보면 물질의 세계이지만, 그래서 생명체를 움직이는 원리는 화학의 원리와 다를 것 같지만, 생명체도 엄연히 화학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화학 반응에 의하여 생명 현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 원리는 화학이라는 학문에서 통하는 여러 법칙에 준하여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한 차이점일뿐.

또 한가지 이 소설의 돋보이는 점은 그녀의 문장 구사 방식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한 문장을 길게 늘여쓰는 방식보다는 비슷한 내용의 짧은 문장을 여러 개 반복 나열하는 방식을 즐기는듯, 읽는 사람이 리듬을 느끼며 읽을 수 있고 덜 지루하게 하며 작가의 의도가 잘 전달되게 하는 효과를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복잡한 플롯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끝까지 읽는 사람의 관심을 느슨하게 하지 않고 끌고 갈수 있다는 점은 작가의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해보게 한다.

그녀 앞에 놓여있는 결정은 그녀가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데 스톱을 걸고 있는 장애물인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의 정체는 장애물이 아니라 삶 자체였음을 그녀도 나중에 알게 될까. 너무 늦게 알게 되지 않기를, 주인공에 감정이입하며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소설인데 일기 같은 소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7-12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몰리님 페이퍼 읽고 이책 급 호기심이 생겼는데
결국 에이치 나인님 리뷰 읽고
킨들로 구매 했습니다.(방금전 완독)
몇년전에 이 작가의 글이 뉴요커에 연재 된 적이 있었는데
문장이 독특하게 연결 되는 마치 화학 원소 구조 같다고 느꼈어요.
130페이지 남짓해서 한번에 휘리릭이지만

다 읽고나니 에이치 나인님 말씀처럼 화학의 여러 법칙들을 일상의 여러 행동과 사고를 유기적으로 연결 시키면서 중간 중간 중국 속담을 넣어서 부모 세대와 자식세대의 문화적 사고와 인식의 차이까지 보여주는
이과생의 간결한 인간관계 화학 보고서 처럼 읽었습니다 ^ㅎ^

hnine 2021-07-13 03:27   좋아요 0 | URL
저도 몰리님 서재에서 알게 되어 읽게 되었지요.
내용뿐 아니라 문장을 연결해가는 방식에도 작가는 자기의 전공을 반영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지요.
말씀하신 것 처럼 중국 속담으로 시작하여 한 이야기를 시작해나가는 것도 작가의 노력이 보이는 부분이었어요.
내용이나 사건들 자체는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는 내용이었다고 썼지만 저런 내용을 소설로 쓰기까지 많은 성장의 고통이 있었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짠 하기도 했어요. 전적으로 작가의 경험이라고 하지 않더라고 말입니다.


얄라알라북사랑 2021-07-12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거리 소개해주시는 부분 읽으며, 왠지 저자 혹은 저자와 가까운 이의 생애사를 옮겨놓은 소설인가 궁금해지네요. ^^

여담이지만 제목뿐 아니라 표지 기호조차 교과서 스러운데, 교과서 아닌 소설이라는 반전! 멋지네요.

hnine 2021-07-13 03:32   좋아요 1 | URL
실제로 작가 소개를 읽어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버드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고, 박사학위를 받았고요. 이 책은 그녀의 첫번째 데뷰 소설이라는데 여러 가지 상을 많이 받았네요.
정말 표지조차 화학 교과서처럼 되어 있죠? 사람 얼굴이 원자 핵, 주위를 도는 전자까지. 그런데 자세히 보면 세개의 전자 중 하나가 하트 모양이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