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과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아침 식사로 밥은 아니지만 빵이나 오믈렛 등을 먹었던 기억이 나는 것을 보니까, 아마 그 이후에 생긴 습관인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5분 이내에, 아니 3분 이내에 사과를 입에 물어야 한다. 그래야 잠이 깬다. 그래야 하루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사과를 한 개 (아주 큰 사과의 경우엔 반 개) 물에 씻어 껍질 째 아삭아삭 먹기 시작해서 거의 다 먹어갈 무렵이 되어야 나는 비로소 내가 된다. 사과만 먹어도 정신은 깨어나지만, 그것으로 끝내긴 심심하니까 이어서 마실 것을 한잔 만들어 먹게 되는데 이건 변천사가 있다. 코코아였을 때도 있고, 녹차에 우유타서 먹었을 때도 있고, 지금은 커피를 마신다 (물론 설탕, 우유 다 넣어서).
이것으로 나의 아침 식사는 끝.
어디 여행가서 숙박을 하고 와야할 경우에 나는 사과를 챙겨서 간다. 사과를 못먹고 시작하는 하루란, 아침 굶고 시작하는 하루처럼 생각만해도 히스테릭 해지므로. 지금도 친정에 가서 자고 온다고 하면 부모님은 다른 것은 몰라도 사과가 냉장고에 있는지 보시고, 없으면 일부러 사다놓으신다. 이 정도면 중독이라 부를 수 있겠지.
내가 사과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어느 종류의 사과를 좋아하느냐고 가끔 묻는데, 그런게 어디있나? 사과라고 이름 붙은 것은 뭐든 상관없다. 아오리, 홍옥, 부사, 가정용 사과, 제수용 사과, 꼬마 사과, 기스난 사과...안가린다.  

 



 

 

 

 

 

 

 

 

 

2. 편지 

이건 예전에 중독되었던 것이고 지금은 아니다. 중학교 때였는데, 편지 쓰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다. 학교에서 매일 보는 친구,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 재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 선생님, 사촌 언니, 심지어 군인아저씨께 의무적으로 써야했던 위문편지마저도 즐거워라 썼으니까. 저녁 먹고 책상에 앉으면 우선 오늘은 누구에게 편지를 쓸까 부터 생각했다. 편지를 한장 쓰고 나야 공부가 되었다. 편지를 쓰다쓰다 더 이상 쓸 상대가 없으면? ㅋㅋ 방송국에 엽서라도 썼다. 노래 신청하고, 사연 쓰고. 

이 버릇은 고등학교에 가서 비관적, 자학적 일기를 써대는 것으로 대치되었다. 

 

3. 커피 

나는 중학교 입학전,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 방학 때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를 즐기시던 아버지께서 당신 커피를 타시면서 내 것도 한 잔 타주시기 시작한 그 날부터 시작해서 곧 나는 하루도 커피를 안마시고 못배길 정도로 커피를 즐기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루에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것도 아니다. 하루에 한 잔으로 시작했고 대학생이 되면서 하루에 두잔 마시는 날도 가끔 있었다. 실험실에서 오래 지내는 날이 많아지면서 하루에 석 잔. 지금까지도 하루에 그 이상을 마시는 날은 없다. 그 이하를 마시는 날도 거의 없다. 하루 석 잔.
아이를 가지면 커피가 마시고 싶어 어떻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너무나 신기한 일은 아이를 가지고부터 커피를 마시기는 커녕 냄새도 못맡겠는거다. 수퍼마켓의 상품 진열대 사이를 지나다가도 커피 진열대 옆을 지나가면 속이 울렁울렁해졌을 정도이니까.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 수유를 마치고 나니 다시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정말 인체의 신비, 특히 여자 몸의 신비란 설명 안되는 부분이 참 많다. 

 



 

 

 

 4.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요즘 생긴 새로운 습관으로 뻥튀기와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과자류를 잘 먹는 편은 아닌데, 어쩌다 뻥튀기를 먹게 된 이후로 그날 이후 거의 매일 뻥튀기를 한봉지씩 (하나가 아니라 한 봉지) 먹고 있다. 파편을 온 방안에 다 날려가면서.
또 하나 내게 생기고 있는 습관은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 DJ가 처음 듣는 목소리, 처음 듣는 이름인데 알아보니 가수라네. 약간 건조한 목소리에, 어딘가 배철수 스타일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선곡되어 나오는 음악도 뭐, 괜찮고. 거의 매일 듣고 있다. 시계 보고 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라디오를 켜게 되는. 되도록이면 그 시간에 라디오 앞에 앉아 있고 싶어지는.
그런데 이게 새벽 4시에 하는 프로그램이라는거지 ㅋㅋ

 

뭔가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은,
재미있다. 취향이 살아있다는 것이니까.
크게 내 몸을 축내거나 민폐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스파피필름 2009-02-20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 중독은 특이한데요? ^^ 아침에 사과 먹으면 몸에도 좋으니까 좋을 것 같아요.. 커피는 저도 중독이에요.. 저도 한때 뻥튀기 열심히 먹던 때 있었는데 요즘에도 없으니까 안먹지 아마 집에 있으면 바닥 보일때까지 계속 먹고 있을 것 같아요. 흐흐.

hnine 2009-02-21 04:36   좋아요 0 | URL
특이한가요? 다른 과일도 아니고 사과여야 하니까 특이한것 같기도 해요 ^^
뻥튀기가 특별한 맛이 없으니 질리지가 않아요. 매일 같은 가게가서 한봉지씩 사니까 아마도 주인아주머니께서 제 얼굴 다 기억하실거예요. 뻥튀기는 우리 나라에만 있는 특산품 아닌가 싶어요. (여전히 예찬론~ ^^)

마노아 2009-02-2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스 난 사과! 훌륭해요! 저도 한 동안 사과 계속 먹었는데 사과 뚝 떨어지니까 습관도 뚝 끊어졌어요...;;;;
새벽 4시에 어떤 방송 들어요? 방금 엠비싸 fm만 검색해봤는데 하동균이 나오네요. 그 시간에 일어나는 거예요, 아직 잠들기 전이에요?

hnine 2009-02-21 04:40   좋아요 0 | URL
기스난 사과도 맛은 좋거든요. 기스가 좀 나있기로서니 천대받을 이유가 전혀 없지요 ^^ 전 냉장고에 사과가 10개 이하로 남기 전에 다시 박스로 들여다 놓아야 안심을 합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제가 좀 엽기적인 것 같기도 하네요 ㅋㅋ)
예, 그 방송사 프로 맞아요 ^^

무스탕 2009-02-20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정말 홍옥 껍질째 아삭아삭 씹어먹는거 너무 맛있어요. 사과중에 최고에요, 최고!
2. 편지는.. 제가 좀 스토커 기질이 있는건 사실인가봐요 -_- 고딩때 좋아하던 선생님께 1.2학년땐 수업을 받았는데 3학년엔 수업이 없었어요. 3학년 내내 일요일마다 편지를 썼지요. 졸업후 일이 있어 학교엘 갔더니 이 선생님께서 제 편지를 모두 읽어보고 계셨더라구요. 제가 어디 취직했는지까지 다 꿰고 계셨으니.. 그럴거면 진즉에 아는척해서 영계를 챙길것이지 ^^;
3. 커피는 들쭉날쭉이에요. 요즘은 집에 있을때는 하루에 한두 잔, 알바하러 사무실에 나가면 기본이 네 잔.. 이 편차란..;;
4. 전 과자보다 한동안 콜라에 중독된적이 있었어요. 콜라를 쟁겨놓고 살았었죠. 정말 하루라도 콜라를 안 마시면 입안에 가시가 돋을 정도로.. 요즘엔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고 정도 ^^

hnine 2009-02-21 04:44   좋아요 0 | URL
아, 무스탕님도 사과 좋아하시는구나~ 반가와요.
고등학교때 그 선생님도 무스탕님에게 어떻게 아는 척을 해야할까 망설이고 계셨던게 아닐까요? 그런데 정말 대단하시네요. 매주 일요일마다 편지를...
콜라도 중독되는 것 맞아요. 탄산중독이라고 ㅋㅋ

프레이야 2009-02-20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중독은 몸에 좋을 것 같아요.
커피와 글쓰기는 저도 중독이에요.
새벽 4시의 그 라디오 프로그램은 어딘가요? ^^

hnine 2009-02-21 04:46   좋아요 0 | URL
예, 아침 사과가 몸에 좋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미 다른 것을 먹고 배가 부른 상태에서 먹는 사과보다 이렇게 눈 뜨고 빈 속에 먹는 사과는 정말 좋아요.
지금도 듣고 있는 그 프로그램은 위의 마노아님께서 말씀해주셨네요 ^^

Kitty 2009-02-21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진짜 일찍 일어나시는 것 같아요. 정말 부지런하신가봐요.
이곳 오후쯤이 한국 새벽인데 2-4시쯤에는 서재 글이 뜸하다가
5-6시쯤에 제일 먼저 올라오는 페이퍼가 hnine님 글일 때가 많아요 ^^ 왠지 반갑다는 ㅎ
9시 넘어서야 일어나는 저는 구제불능인 듯 ㅠㅠ

hnine 2009-02-21 04:47   좋아요 0 | URL
Kitty님, 제가 원래 아침형이기도 했지만, 아이 낳고 나서 이 시간 아니면 온전한 제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새벽 3시에도 일어나고 4시에도 일어나고 그래요. 대신 일찍 자는 날이 많아요. 남들 한참 활동할 시간에요 ^^ 그러니 제가 부지런해서가 아니지요.

웽스북스 2009-02-2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와 글쓰기는 저도 중독이에요 222
저희 팀장님 어머니께서는 팀장님 가지셨을 때 줄창 커피를 그렇게 드셨대요.
그래서 우리 팀장님은 물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신다는 ㅋ

hnine 2009-02-21 16:49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지기님들 중 많은 분들이 비슷한 중독을 가지고 계시지 않을까 해요.
저도 아이 가진 동안 커피가 여전히 고팠다면 그냥 마셨을 것 같아요.

세실 2009-02-22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중독 좋은데요. 이 글 읽으면서 님도 열정적이시구나 생각했습니다. 무언가에 중독된다는 것 참 멋진 일이죠. 커피, 편지, 사과라니~~~
한동안 임태경의 세상의 모든 음악 열심히 들었는데 직장 청주로 오면서 잊고 있었습니다. 님이랑도 맞을듯 하여 검색해보니 지금은 이루마가 진행합니다. 아쉬워라..

hnine 2009-02-22 08:20   좋아요 0 | URL
임태경님 늘 건강에 남다른 신경을 써야하는 분이시더군요. 그래서 방송 맡을 때 얼마나 갈까 좀 염려스럽기도 했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오래 진행하셨다고 생각했어요. 이루마로 바뀐 다음에는 한번도 못 들었어요.
 

중학교 1학년 입학하고 첫 주.
처음 입어본 교복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내가 교복을 입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교복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 같기도 한 그 어정쩡한 느낌.
조회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 누군가의 이름을 호명하시더니 집이 어느 동네인지 물으셨다. 아직 같은 반 아이들 얼굴을 익히기 전이라, 호명된 아이가 누군가 궁금하여 뒤돌아보니 교실 뒷문 가까이에 한 아이가 앉은채 대답하고 있었다. 체구는 좀 있는 편이나 얼굴은 아주 하얗던 그 아이는 소아마비여서 걸음이 불편하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곧 '성애병원' 근처에 사는 사람이 누군지 물으셨다. 그 아이가 자기 집이 성애병원 근처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꼐서는 근처에 사는 사람중 누군가 하교시에 그 아이를 도와 함께 집에 가도록 권하시려던 것. 성애병원을 우리 집 근처의 '성혜병원'으로 잘못 알아들은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나보고 이제부터 집에 갈때 될수 있으면 그 아이와 함께 가도록 하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숫기 없는 내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던 것인지. 그 아이 인상이 어딘가 가라앉아 보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강단있어 보이기도 한, 한마디로 인상이 얼른 잡히지 않아 한번 친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일까.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성애병원 근처라는 그 애의 집은 우리 집에서 버스로 몇 정거장 가야하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결국 나는 한번도 그 애의 하교를 도와주지 못하고 1학년을 마쳤고, 누구도 그것을 뭐라 한 사람도 없는데 나 혼자 미안하고 떳떳하지 못하여 그 애를 오히려 피하며 지내고 말았다.
그 아이는 생각보다 활달하여 반 아이들과도 잘 어울렸으며, 글을 제법 잘 썼고 책도 많이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 그녀가 나중에 이런 일을 하게 될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요즘 모 방송국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주말드라마를 바로 그녀가 쓰고 있다. TV를 잘 안 보는 나도 주말에 아이가 좀 일찍 잠이 들라치면 다른 일 제치고 TV를 켜고는 열심히 보고 있는 중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실 2009-01-25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기억이 있으시군요. 주말드라마 궁금해집니다.
가문의 영광? 유리의 성? 또 뭐가 있더라~~ ㅎㅎ
고등학교 1학년때 우리반에도 소아마비였던 친구 있었는데 도와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 아이도 책 많이 읽고, 이야기도 잘 했었는데....

hnine 2009-01-25 13:58   좋아요 0 | URL
'가문의 영광'이요 ^^

세실 2009-01-27 08:57   좋아요 0 | URL
오우 즐겨봅니다. 재미있네요.
한 남자만 가슴에 품고 살아가리라 다짐했던 여인에게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왔어요. 그런 와중에도 코믹한 설정들이 재미있네요.

hnine 2009-01-28 00:24   좋아요 0 | URL
재미있지요? 단아의 사랑도, 맏아들과 진아씨의 사랑도, 둘째아들과 활달한 경찰 아가씨의 사랑도 참 예쁘지요. 동동이도 그렇고요. 세실님 말씀대로 코믹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도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아요. 웃을 수 있으니까요 ^^

하양물감 2009-01-25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양한 그녀들이 있네요^^ 음, 저는 드라마를 거의 안보기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왠지 다르게 보일 것 같아요.

hnine 2009-01-25 19:56   좋아요 0 | URL
이전에 다른 드라마도 했을텐데 제가 눈여겨 보질 않았어요. 이번엔 우연히 알게 되었지요.

하늘바람 2009-01-26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마치 소설 읽는 것처러 재미나네요.이제 부터 그 드라마를 눈여겨 볼것같아요.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nine 2009-01-26 22:18   좋아요 0 | URL
꿈은 포기하지 않는한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이 친구를 봐도 그렇고요. 소설도 몇 편 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다지 알려지지는 않았었지요. 이 드라마는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하늘바람님, 태은이 사진을 보면 저도 마음이 환해져요.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것은 그만큼 엄마의 사랑과 노력때문이라 믿어요. 복 많이 받으실거예요 ^^


상미 2009-01-29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글 읽고 ,검색 해 보니 내가 즐겨본 독특한 드라마를 몇 개 썼더라고.
내 사랑 못난이,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
올해는 드라마 덜 보려고 노력 중이라 가문의 영광은 못보고 있는데...
그 이름이 본명인거니? 아니면 나랑 그 친구는 한번도 같은 반이 아니었나보다.

hnine 2009-01-29 22:16   좋아요 0 | URL
본명 아니야.
'가문의 영광'은 시간이 좀 늦길래, 그나마 다린이가 그 전에 잠이 들면 얼른 TV켜고 보고 있지. 재미있더라.
 

Boss로 부터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제 한창 일에 박차를 가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임신이라니. 도대체 뭘 하자는 말인가 이해를 못 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때 내 나이 서른 다섯.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스에 있으면서 아이를 마냥 미루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더구나 한국에서는 학위가 아직 끝나지도 않은 남편을 당장 들어오게 하려는 압력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장남이기 때문에 져야할 짐이라고나 할까. 보다못한 남편의 지인 한분이 우리 부부에게 어서 아기를 가지는 수 밖에 없겠다고 슬쩍 지나가는 말처럼 던지시기도 했다. 

우물쭈물 하다가 Boss 에게 결국 임신했음을 알린 것은 임신 7개월째 되어서였다. 7개월 되었어도 내가 말 안하면 사람들은 임신한지도 모를 정도로 배가 안 나와 있었다. 얼마나 망설이다 말을 꺼냈는지. 고민에 또 고민. Boss의 반응은 뭐, 예상하던 대로였고. 

별다른 입덧을 하지는 않았으나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을 앞에 놓고도 전혀 식욕이 당기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안 먹은 적은 없다. 집에 돌아오면 남편이 나름대로 손수 끓여 놓은 국과 밥을 맛있게 먹었다. 자다가 화장실 가느라고 자주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불편했으나 책에서 읽으니 다 이런 거래, 생각했으며, 일하다가도 잠이 얼마나 쏟아지던지. 그럴 땐 할 수 없이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앉아 고개를 앞으로 푹 숙이고 눈을 붙이고 나오곤 했다. 엄마께서 한국에서 붙여 주신 예쁜 원피스형 임신복은 한번도 입어보질 못했다. 나의 일터는 실험실.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활동하기 편리한 복장을 하다보니 나의 임신복은 남편의 셔츠, 그리고 동네 수퍼마켓에서 산 고무줄 처리된 바지가 대신 했고, 한국에서 보내온 그 촉감 좋고 따스한 임신복은 새것인채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고 왔다. 정기 검진 받을 때마다 병원에서는 아기가 너무 작다고 했고, 출산 예정일 다가와서는 그 이유 때문에 일주일에 두번씩 병원에 가야했다. 그렇게 병원에 다녀온 날은 남편은 입을 꾹 다물고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태어날 아기에 대한 걱정으로 기분이 안좋았던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나는 더 마음이 무거웠다. 

출산예정일을 2주 앞두고. 그때까지 나의 몸무게는 6kg이 늘었을 뿐이었다. 실험실일은 몸도 마음도 힘들게 했다. 그날도 아는 이웃 집에 가서 저녁을 배불리 얻어 먹고 잘 자고 있다가 양수가 터졌다. 그게 양수가 터진 것이라는 것도 책을 찾아보고 내가 내린 판단이다. 한국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여쭤보았더니 엄마도 모르신단다. 한밤중에 병원으로 전화했더니, 간단히 짐 챙겨서 병원으로 오란다. 짐? 아무 것도 준비해놓은 것이 없었던 나는 대충 나의 옷 몇 가지와 책, 뭐 그런 것을 가지고 병원으로 가서 그날 저녁에 아이를 낳았다. 낳자마자 보았더니 아이는 그때 남편이 입고 있던 옷의 주머니에 넣어도 될 정도로 작았다. 2.5kg.  한국의 가족들에게 전화하고, 다음으로 실험실에 전화해서 내일부터 몇 주 못나가겠노라고 얘기하고, 내가 하던 실험 뒷 처리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느라 한참 통화를 해야했다. 4주후엔 학회가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아이 낳고 3주후부터 학회 발표 자료를 만들고 실험실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으며 4주째에는 비행기를 타고 학회에 참석하느라 갓난쟁이 아이를 며칠 동안 남편 혼자서 돌보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뒤돌아보면 참 여러 가지 감정이 물밀듯 밀려오는 시절이다.
아이를 낳고서 2년 후 한국으로 돌아오기 까지의 얘기는 이보다 더 구구절절이니...웃음도 나오고 그러다가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뭐, 그렇다 ^^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돌이 2009-01-24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서러우셨겠어요. 아이 가졌을때는 정말 감정도 왜 그렇게 발달하는지 조그만 일에도 그렇게 맘도 많이 상하고 울지 않을 일도 울게되고 하던데 말예요.

마노아 2009-01-24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런 날이 있었네...예요. 그런데 그 날은 참 역사적인 날이기도 했네요. 낯선 곳에서 고생 많이 하셨겠어요. 저는 일찍 나오는 바람에 그보다 더 작았답니다. 인큐베이터 두달 신세지었지요. ^^;;;

hnine 2009-01-24 00:33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그래도 무사히 아이를 낳아서 저렇게 개구장이 짓 하며 잘 크고 있으니 감사할 일이지요. 차례 음식 1탄으로 식혜 하면서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남아 그냥 끄적거려보았네요.

마노아님, 그러셨구나. 2주도 아니고 2달 동안, 어머니께서 얼마나 아기를 안스러워 하셨을까요. 2.5kg보다 더 작은 아기라면 세상에나...

미설 2009-01-24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전 알도 가졌을때 21킬로그램 이상 몸무게가 늘었던 터라, 어떻게 그렇게 하셨을까 싶네요. 담담히 쓰셨지만 이런 이야기 들으면 늘 울컥하지요.. 그래도 2.5킬로그램이 되어 나와 참 다행이었네요...

L.SHIN 2009-01-24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힘들었을텐데 담담하게 쓰셨네요.
그것이 세월의 힘일까요? ^^
죽을 것 같이 가슴 아픈 일도..시간이 지나면 점점 색이 바래더군요.

세실 2009-01-24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주밖에 못 쉬셨다니 원...어디 아픈곳은 없으신가요? 산후조리를 잘해야 하는데...
낯선 곳에서 친정엄마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셨다니 서러움도 크셨겠네요.
전 임신 4개월부터 예쁜 임신복 줄줄히 사놓고 골라 가며 입었답니다. 그때 생각하면 참 철없었어요. 히~~



hnine 2009-01-24 08:48   좋아요 0 | URL
미설님, 저도 아마 한국의 부모님 곁에서 있었다면 아기가 작다거나 체중이 안 늘어나서 걱정하거나 하는 일 없었지 않았을까 싶어요. 워낙 먹는 걸 좋아해서 ^^ 제가 그때 유일하게 먹고 싶었던 것이 바로 따끈따끈 호빵이었지 뭡니까 ㅋㅋ 그런데 결국 못먹었지요.

L.SHIN님, 말씀하신대로 세월의 힘이겠지요. 그런데 여자들 이런 얘기는 남자들 군대 얘기 만큼이나 cliche 아닌가 싶네요 ^^ 그래도 종종 생각이 나서...

세실님, 그때 긴장을 해서 그런지 아이 낳고 일주일만에 저는 반팔 옷 입고, 찬물 만지며 집안 일도 다 하고 그랬네요 ㅋㅋ 우리 나라에는 정말 예쁜 임신복 많이 나오더라구요. 나중에 임신과 상관 없이 한번 사다가 입어 볼까, 이런 생각 하는 제가 진짜 철이 없는거죠? ^^

프레이야 2009-01-2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시는 고생스러웠던 일들도 이렇게 세월이 지나서 돌아보면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 같아요. 거리를 둘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거겠죠. 6킬로그램밖에 안 늘고 예쁜 임신복도 못 입고 지나가셨다니..
근데 저도 임신복은 예쁜 거 별로 안 입고 지나가서 아쉬워요.ㅎㅎ

hnine 2009-01-24 22:19   좋아요 0 | URL
오히려 당시에는 당장 닥친 대로 적응하며 사느라 고생인지 호강인지 따져볼 겨를도 없었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 한숨 돌리고 뒤돌아보니, 쉬운 시간은 아니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정말 고생하신 분들 생각하면 이런 얘기 하기도 조심스럽지요.

기인 2009-01-25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랜만이에요 ^^ 저는 공익 다녀왔어요.. 저도 이제 결혼이고, 함께 외국나가야 되서 걱정인데, 글을 읽어보니 왠지 위안(?)이랄까, 남들도 함께 겪는 고통이라고 생각드니 그런가봐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

hnine 2009-01-25 14:04   좋아요 0 | URL
기인님, 제 글이 위안이 될만한게 뭐 있을까요. 외국에 나가시는군요. 생각해보면 그때가 어렵고도 한편 행복했던 시간이었어요. 많은 추억을 만들수 있었던 시간이니까요. 힘찬 걸음 내딛으시길 응원해드립니다.

울보 2009-01-2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무럭 무럭 엄마옆에서 잘 자라는 아이를 보면 참 흐믓하시겠어요,,
조금 있으면 새해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아이랑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하루하루 보내세요,,

hnine 2009-01-26 22:19   좋아요 0 | URL
아이 출생에 관한 얘기는 모든 엄마들이 사연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제게 온 아이가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인데 가끔 그걸 잊고 불평을 하네요.
울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상미 2009-01-29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설 연휴 마지막 날 서랍 정리를 하다가
네 편지 모아둔걸 읽었단다.
넌 기과연 시절.영국 살던 시절.
난 신혼초 아파트, 목동 아파트 살 시절이었고.

hnine 2009-01-29 22:18   좋아요 0 | URL
예전에도 말한 적 있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나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아마 제일 먼저 너를 만나보면 되지않을까 생각이 든적이 있단다 ^^

상미 2009-01-31 01:4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다음에 다 돌려줘야지 하고 있어.
그게 언제일지는 나도 몰라.ㅋㅋ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는 산업체 부설 학급이 야간 과정으로 개설되어 있었다. 우리가 수업 끝나고 하교할 무렵, 우리보다 나이가 좀더 들어보이기도 하고, 더 성숙해 보이기도 한 학생들이 우리와 똑같은 교복을 입고 등교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언덕길을 거꾸로 올라오는 그들을 보며 낮에 일하고 지칠만한 시간에 다시 공부하러 학교에 오려면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의 꿈에 대해 생각하곤 했었다. 

어느 날, 결근하신 우리 국어 선생님 대신 보강 들어 오신 다른 국어 선생님께서 책읽기에 대한 말씀을 해주시던 중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에세이, 신변잡기 같은 글을 읽지 말고 소설을 많이 읽으라고 하셨다. 그 선생님께서는 야간의 산업체 학급에서도 수업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가르치고 계신 한 학생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다. 물론 이름은 말씀해주시지 않으셨고, 말씀해주신다 한들 그때는 들어도 몰랐을터였다. 

책 읽고 글쓰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소질이 있는 학생이 한 명 있어서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종종 해주시고 계신데, 산업체 학생이긴 하지만 대학에 가고 싶어하고, 장래를 위해서도 그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입시 준비를 하라고 하셨단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 거의 없던 산업체 학급에서 혼자 학력고사 준비를 하기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노력파 스타일이었기에 암기 과목을 비롯한 다른 과목은 그래도 최소한 시험을 치룰 만큼의 성적은 나오는데, 수학만은 혼자서 아무리 공부를 해도 한계가 있노라고 했단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 1학년, 그 학생은 곧 졸업을 앞둔 3학년이었다. 그러니까 학력고사를 코앞에 둔 상황이었을 것이다. 선생님께서 덧붙이신 말씀을 나는 놓치지 않고 기억해두었다. 이번 학교 교지에 그 학생이 소설을 한편 냈다고.  

몇 달이 지나고 학년 말이 되어 그해 교지가 나왔다. 받아든 교지에서 나는 학생 소설이 나온 페이지부터 찾기 시작했다. 그해 교지에 실린 딱 한편의 학생 소설. 지금도 기억하는 그 제목은 '질경이'였다. '아! 그 학생이 쓴 소설이구나.' 한줄 한줄 읽어보았다. 자세한 내용은 지금 기억나지 않고 아쉽게도 그 교지는 이사다니면서 행방불명이 되어 버렸으나 그 때의 느낌은 기억한다. 나이는 나보다 좀 많을지라도 같은 고등학생이면서, 고등학생 신분에 이런 정도, 분위기의 소설을 쓸수 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고 진지하고, 정말 소설가가 쓴 소설 같았다. 학생이 쓴 것 같은 어설픔은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다.
그녀의 이름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 기억해두었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가고 어느 해이던가, 그녀의 이름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교지가 아니라 그녀의 이름으로 나온 소설 책으로.
그녀는 꿈을 이루었구나... 

현재 국내 대표 여자 소설가 중 한명인 그녀. 그녀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그녀에 대해 말씀하시던 그 국어 선생님의 성함과 함께 20년도 더 지난 그때 그 국어 시간이 떠오른다. 교지를 받자 마자 그녀의 소설을 찾아 읽는 나를 보고 교지에서 이런 거 읽는 애도 있다고 별나게 보던 반 친구들도. 

최근에도 그녀의 소설을 한 권 읽었다. 솔직히 그녀의 소설을 아주 쫗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그 많은 작품을 다 찾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어쩌다가 읽게 되었다. 그 옛날 그녀의 '질경이'를 읽었을 때나 지금이나 읽고 난 후의 나의 느낌은 별로 다르지 않은 걸 보면 그녀가 다시 한번 대단해보이기도 한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웽스북스 2009-01-1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경숙이군요 ^_^

hnine 2009-01-10 12:26   좋아요 0 | URL
nabi님, 그녀의 장점이 되기도 하고, 때로 답답해보이기도 하는 점인 것 같아요.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요.

웬디양님, 솔직히 이 페이퍼 써도 될지 한참 망설이다 썼어요 ^^

진주 2009-01-10 14:23   좋아요 0 | URL
하마터면 저라고 착각할 뻔 했는데..아니었군요ㅎㅎ
산업체야간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고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도 아니면서
오로지 교지에 소설을 실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착각을! ㅎㅎ
저도 3년간 되도 않는 제 소설이 교지에 실렸더랍니다.
(그때 이후로 제 문학적 소질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네요 ㅎㅎ)

hnine 2009-01-10 18:54   좋아요 0 | URL
진주님, 읽어보고 싶어요.

마노아 2009-01-1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끄덕끄덕...

hnine 2009-01-10 18:55   좋아요 0 | URL
써도 되는 내용이겠지요? 이미 써 놓고선 ^^

2009-01-10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9-01-10 18:55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저도 그건 안 읽어봤는데 읽어봐야겠네요.

하양물감 2009-01-10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그녀의 글에서 웬지 모를 갑갑함이 느껴져 어느 순간부터인가 회피하고 있습니다.

hnine 2009-01-10 18:56   좋아요 0 | URL
그 느낌을 저도 알것 같아요 하양물감님.

진주 2009-01-10 20:05   좋아요 0 | URL
요즘 신작 엄마를 부탁해는 반향이 좋던데 못 읽어봤고요,
대부분 작품들이 깊은슬픔에 미치지 못하고..거기서 거기란 느낌이 들어서 저도 바이올렛까지만 보고 서가에 가도 더 이상 눈길조차 안 주고 되더라구요. 소설 특유의 빨려 들 듯한 흡입력도 있어야 하는데 작가 이름만 봐도 가슴 막막함같은 무게가 짓눌러서....그런데 저만 그렇게 느낀게 아니었군요..

순오기 2009-01-1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녀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제가 다닌 학교에도 산업체 야간 학교을 개설하고 실제론 주간에 다녔어요. 그땐 인천 모재단이 신입생을 모집할 수 없어서 구제책으로 신설했었죠.^^ 덕분에 고등학교에 갈 수 없었던 우리 언니가 마감 이틀 전에 신문을 본 오빠 때문에 입학을 했고요~ 사람의 앞날은 정말 알 수 없지요.

hnine 2009-01-11 19:43   좋아요 0 | URL
글은 그냥 머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경험과 노력과 의지와...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탄생하는 것. 요즘은 창작 활동하는 분들이 참 존경스럽네요.

상미 2009-01-2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언젠가 인터뷰 하면서, 그분이 그렇다는걸 알게 되었지.
문학이랑 담 쌓은 나는 교지 읽은 기억도 없단다.ㅋㅋ

hnine 2009-01-21 22:26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때 교지 혹시 갖고 있지 않지?
<永登>이었던가? 제목이...

상미 2009-01-29 21:0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제목은 맞는거 같아. 친정 가면 있을지도...
 

 

 



 

 

 

 

 

 

 

 

 

 

 

 

                                                         2008년 여름 베를린 

 

  

(여행에 동행했던 남편이 말해주어 알았다. 아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언지.)

  

------------------------------------------------------------------------------------ 

방학이라 할머니 댁에 간 아이가 어제 하루만 해도 집에 전화를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컸다고 엄마 보고 싶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용건은 주로 '~ 를 해도 되냐'는, 나의 허락을 구하기 위한 것.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지금 아침마당 보시는데 나도 봐도 되요?', '컴퓨터로 You tube 검색 좀 해봐도 되요?', '치킨 먹고 있는데 같이 배달되어온 콜라 마셔도 되요?', '할머니 냉장고에 바밤바 있는데 그거 먹어도 되요?'
평소에 내가 아이로 하여금 못하게 한 것이 참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콜라를 제외하고는 다 해도 좋다고 했다. 

간간히 엄마 지금 뭐하고 있냐고 묻기도 한다. 어제는 마루에 누워 딩굴딩굴하면서 네가 빌려온 가필드 만화 보고 있다고 그랬더니 깔깔 거린다. 오늘 아침엔 할머니 할아버지랑 시립미술관으로 퐁피두 특별전 보러 간다며 전화가 왔다. 그러면서 또 엄마 아직도 딩굴딩굴하면서 가필드 만화보고 있냐고 묻는다.
"그건 어제 다 봤지. 지금은 다른 책 읽으면서 딩굴딩굴해."
"무슨 책이요?"
"어, 이모가 지난번 엄마 생일에 사준 책."
"그 중에 어떤 책이요? 제목이 뭔데요?" (꼬치꼬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칸딘스키와 클레" 
"아~ 그 책."
책상 위에 늘 두고 읽지는 않고 있던 터라 제목이 눈에 익었나보다. 뭐, 읽는다기보다 그림 구경하고 있는 중이지 ^^

아이가 없으니 몸이 더 편할 것 같은데 지병만 도졌다. 꼼짝 하기 싫은 병. 어제는 다 저녁때 일부러 동네를 한바퀴 돌고 들어왔다. 바깥 공기를 잠깐이라도 쐬어야 할 것 같아서.
삶의 리듬이란 참 무서운거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스탕 2008-12-23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께선 저에게 말씀해 주시면 되시겠습니다 :D)

hnine 2008-12-24 11:22   좋아요 0 | URL
하하...무스탕님,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의 잔존물이라네요.
사진 클릭하면 커지거든요. 그러면 뒤의 포스터가 좀 크게 보이긴 하네요.

하늘바람 2008-12-23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린이 참 좋았겠어요

hnine 2008-12-23 19:56   좋아요 0 | URL
옆에서 조목조목 설명을 해주면서 다니면 더 좋았을텐데, 그건 엄마 욕심이고, 데리고 다닌 다린이 아빠는 무척 힘들었나봐요 ^^

상미 2009-01-2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가 어릴 적 우리 엄마도 , 안되는것도 많고, 못하게 하는것도 많아서.
그래서 난 나중에 안그래야지 그랬는데,
나도 엄마가 되고 나니 안되는게 많은 엄마가 되었더라구.
그래서 애들이 뭐든 <응. 맘대로 해>라는 대답이 나오는 아빠를 좋아하는거 같아.

hnine 2009-01-21 22:24   좋아요 0 | URL
우리 집은 내가 야단을 더 치긴 하지만, 못하게 하는 것은 아빠가 더 많지. 위험해 보이고, 불안해 보이면 다린이 아빠는 못하게 하더라구. 나는 해보라고 부추키는 편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