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큰 윈도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8 링컨 라임 시리즈 8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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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사이트를 뒤지고 설문조사에 응하다 보면 늘어나는 것은 스펨메일과 문자들 뿐이다.
스펨만으로도 일상이 짜증스러운데 내 일거수 일투족을 알고 예측하고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나에 대한 악의적인 행동을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본콜렉터'이후 두번째로 접하는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다. 시리즈 출판은 벌써 8번째 작품이라는데 내가 좀 제프리 디버에게 소원했나보다. 이 소설은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범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무언가 좀 섬짓하다. 어느날 나의 데이터상 기록에 수배자로 되어 있고, 은행에는 거액의 빚을 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어 버린다. 나는 아무 사실도 알수 없고 이건 마치 신이 일부러 장난 친듯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다면..아마 미쳐버리지 않을까? 

우리는 유비쿼터스 시대의 긍정적인면만 바라보았지 그것이 한 순간에 악몽으로 변해버리는 세상을 상상하지 않는다. 그러한 상상력의 한계을 이 소설은 메워주고 있다. "자 니들이 사는 세상이 편리하고 환상적인 세상인거 같지? 그런데 말이야 한커플만 뒤집어 보면 너는 가장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거 그거 알고 있니?" '1984'도 '멋진신세계'도 미래의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렸지만, 이 장르소설도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려내고 있다. 더욱이 정보와 데이터는 국가가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통치도구이기에 그 어둠의 심연은 깊어진다. 어쩌면 개인적 자유주의가 강한 미국이라는 사회기에 더욱 암울하게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뜬금없는건 책 제목이 '브로큰 윈도우'라는 것.'깨진 유리창 법칙'을 연상한 모양인데 주변의 사소한 것을 잘 치우지 못하면 엄청난 재앙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모양이다. 사실 우리가 흔하게 내버리는 우편물 하나가 무신경하게 사용하고 버리는 카드 전표 한 장이 어떤 반전을 가져올지 모르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깨진 유리창법칙'이 가끔은 사회적 약자를 처벌하는 강력한 신자유주의적 형벌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기에 제목만으로 따지면야 마음에 들지 않지만, 소설에서 전개되는 개연성있는 스토리를 보면 제프리 디버는 탁월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전신마비의 링컨 라임이 특유의 논리적이고 치밀한 추리를 통해 범인과 대결하는 모습은 흥미진진하다. 역시 이성이야 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치명적인 무기인 것일까? 그러나 편집증적인 연쇄살인법의 살인 유인과 살해수법 자체가 극히 이성적이라는 점에서 역시 인간에게 이성은 양날의 칼일 수 밖에 없나 보다.  

전자 데이터가 흘러넘치는 이 세계에서 살인마는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 없다. 육신은 사라질지라도 데이터는 남아서 이 세계에서 영원히 유영할 테니 ... 인간에게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데이터일 것이라는 살인자의 생각이 꽤나 그럴듯하다는 공감을 불러 일으킨 작품.
글세...그런 흩어진 잔재를 모아서 하나의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상상력이 기발하면서도 결국 인간이 이렇게까지 바닥을 치는 세상이 현재의 세상이라는 점이 좀 씁쓸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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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1-18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예전에 읽었었던 것 같은데...
링컨 라임과 범인의 이성 대비, 누가 더 차가운가 내기하는 것 같았어요.

머큐리 2011-01-19 11:44   좋아요 0 | URL
역시 양철님은 읽으셨군요..ㅎㅎ
 
평화의 얼굴 - 총을 들지 않을 자유와 양심의 명령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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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커다란 주제는 평화이고 주요한 문제의식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인권침해이다.
정전상태의 한반도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역사적으로 계속 충돌될 수 밖에 없고, 특정종교단체에 국한된 문제로 축소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일종의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과거를 정리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에 대한 논의들을 이끌어 내고 있다. 저자 스스로가 기독교인이기에 기독교적 신앙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들이 대부분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가장 커다란 울림은 누구나 이야기하는 '평화'가 사실상 실천으로 옮겨지는 순간 얼마나 사람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상으로 둔갑해 버리는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었다.  

아마 주변에 전쟁을 선호하거나 폭력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폭력과 전쟁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도 힘들 것이다. 그 미묘한 차이는 전적으로 폭력과 전쟁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위협적인 요인이었다. 자신과 타자를 나누는 근대적 세계관으로 볼 때 타자의 위협은 극대화되기 마련이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폭력과 전쟁은 용인해야 한다는 논의들이 대세를 이루기 때문이다. 여기에 절대적 평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몽상가들이거나 심지어 배반자로 낙인 찍히게 되고 그들이 사회의 동질화를 거부하는 순간 바로 경계로 밀려나 버리게 된다.  

이미 서양의 역사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나 병역면제에 대한 조치들을 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남이고 북이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해 매우 강경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이런거 보면 한민족이 맞나보다) 군사적 대치와 전쟁의 기억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과 군사독재정권의 배경까지 같다보니 병역거부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지는 모양이다. 남쪽은 종교적 덧칠까지 칠해져 있다. 주류 기독교 자체가 권력과 야합하면서 군대에 목사까지 파견하는 실정이고 적들의 섬멸을 기도하는 종자들이라 그들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평화는 불신자를 박멸하는 폭력을 허용하고도 남는다. 오히려 교리가 다른 여호와의 증인들이 신앙을 위해 병역거부를 할 때 더욱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경향까지 있고,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복무까지 특정종파 보살피기로 파악하는 편협한 이기주의를 보이고 있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저자는 기독교 내부의 평화전통을 되살리고, 기독교야 말로 평화의 종교임을 그리고 평화를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사실 양심적 병역거부가 문제가 되는 것은 시민혁명의 발발과 관련이 있다. 국가가 일정 나이의 국민을 징집하여 전쟁을 벌이는 근대에서야 양심적 병역 거부의 문제는 전면화 된다. 누구든지 국가의 부름을 받으면 나가야 하는 획일화된 행동패턴은 그 이외의 사고와 행동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신념과 평화를 원하는 마음에 대한 확고한 견해는 바로 탄압의 빌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적들이 너의 가족을 죽이고 유린하는데 너는 아무 저항도 하지 않을 것인가..... 이것이 국가의 주문이었다.   

'정당한 전쟁'이론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대량학살이 발생되는 현대의 기계전에서 과연 민간인이 희생을 당하지 않는 정당한 전쟁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의아스럽다. 정당한 전쟁은 용인하는 순간 정당한 전쟁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고 정당한 전쟁의 요소들을 아무리 치밀하게 구성한다해도 전쟁으로 무고한 사람이 죽는다고 한다면 결국 정당성을 인정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정당한 전쟁은 내부 모순으로 무너지고 만다.
어쩌자는 말일까....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병역을 이행하면 된다. 다만, 자신의 양심상 병역을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견해와 양심을 존중하여 대체 복무의 길을 열어 주자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에 따른 일체의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다.  

수긍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평화에 확고한 인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대체목무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연애인이 군대가는 것을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찬양하는 덜떨어진 국회위원이 존재하는 이 땅에서 군대는 영원한 정신적 외상일 수 밖에 없고 대체복무에 대한 논의는 병역회피의 좋은 구실로 여겨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인 듯하다. 

서양에서 먼저 진행되어 건너온 논의라 서양의 사례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고, 기독교 문명이 강하다보니 양심과 종교의 자유에 따른 병역거부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지만, 종교적 이유말고 이데올로기와 사상에 따른 병역거부의 사례가 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건 그냥 욕심이고 투정일 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종교와 군대와 양심과 평화와 무엇보다 인간의 실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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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회사를 다니니 외국인들을 보는 일은 흔하디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들과 길에서 엇갈릴때, 그들의 눈을 보면 무언가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단지 느낌일 뿐인지 정말 그들의 삶이 힘겨운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단지 검은 피부의 외국인을 볼때마다 추운 이 땅의 기온에 적응하고 일해야 하는 그들의 처지가 안쓰럽기만 하다.  

흔히 미국에서 성공한 이주한국인이나 한국인 2세에 대한 언론의 탄성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과연 이땅에서 이주외국인에게 어떠한 기회를 주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으며 기껏해야 설날이나 추석에서 한국 가요를 부르며, 한국에 대해 칭찬하는 관제적 홍보만 볼 뿐이다. 몇일전에 시청했던 1박2일도 마찬가지였고 결국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방가방가'는 어쩌면 그들의 시각을 차용한 영화이기에 소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장되고 욕설이 난무하는 영화임에도 이땅에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의 애환이 어느정도 녹아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청년 실업과 이주노동과의 연계가 유머스럽지만 웃지 못하게 하는 현실을 잘 반영했다고 보여진다. 이 땅에서 추방될 위험속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소위 '민증'이라고 할때, 아무리 루져라고 하지만 추방될 걱정없이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극명하게 대비하고 있기에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의 연대가 보이기에 코믹하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분명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대학진확과 장학금을 타기위해 흑인으로 분장한 백인이 겪는 에피소드를 모은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그 타자성에 대한 체험은 결국 백인과 흑인의 연대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되었듯이 '방가방가'에서 보여주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체험은 결국 피부 색깔과 언와와 생활습관이 틀리더라도 존중받아야 할 인간임을 그대로 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 등장하는 한국사람들은 그리 '독'하지 않다는 것이 어쩌면 또다른 환상을 갖게 만든다. 생활의 냉혹함이 드러나지 않는 타자성의 체험은 그저 단순한 에피소드로 머물고 말 개연성이 농후한 것이다. 더불어 영화에 등장하듯이 한국인들은 그리 착하지 않다. 경제적 이해관계에 관한 한 이제 한국인들도 야수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흉폭함은 동족에 대해서보다는 외국인들에게 더 잔인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거기에는 피부색과 언어에 대한 굴욕적인 추종과 한 짝을 이루기에 더 추하다.  

'황해'는 난무하는 폭력성 속에서 오히려 이주노동자에 대한 현실을 더 잘 그리고 있다고 보여진다. 단순한 액션 르와르로 치부하기에는 배경 자체가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조선족이라지만 언제 우리가 그들을 동포로 여겼는가? 생계를 유지할 돈벌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일자리를 찾지만 그것 역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런 내용이야 배경으로 숨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제 생계를 위한 투쟁은 범죄까지 세계화 하고 있으며 범죄의 세계나 현실적 사회질서가 유지되는 세계나 이주민을 그저 소모품으로 사용하고 버리는 것은 동일함을 보여주고 있다. 인가의 소모품화....세계화의 부산물이자 주요한 동력이 아닌가? 

'황해'가 보여주는 극현실은 그래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발버둥이다. 살아남아서 '가정'을 이루는 소박한 꿈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가정의 해체를 걱정하는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세계화의 경계에서 삶에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가정이란 해체되어 버려 언젠가 다시 재건하고자 하는 유토피아이다. 어쩌면 보수주의자들이야 말로 자신의 가치관을 위해 이주민들에 대한 관용을 정책적으로 실행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주민은 '사람'이 아니기에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거기에 보수주의가 가진 기만성이 보여진다.  

'항해'에서 보여지는 또다른 문제의식은 이미 파괴된 가정의 파탄을 결정화는 배경설정이다. 배우자의 부정 혹은 내연관계에 대한 배신의 해결이 국내가 아닌 국제적 노동분업에 따른 살인청부로 진행되어 버리는 배경에는 결국 현실 가정의 왜곡된 파괴와 거기에서 노출된 폭력적 지배욕구가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이주민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먼저 떠나간 부인의 소식을 알지 못하는 '구남'의 환상에는 배우자의 배신이 중요한 동기를 형성하고 있다.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한 배경이 주요한 모티브라고 할 때, '황해'에서 보여주는 가정 또는 관계는 주요 구성은 '소유'로 보여진다. 결국 소유의 문제는 인간을 멸절시키는 가장 중요한 동기로 보여지는 것이다. 자신의 것을 지키지 못할 바에는 완전히 파괴해 버리는 그 내적 동기야 말로 어쩌면 '황해'에서 보여주는 폭력의 내밀한 욕망이 아닌가 한다. 그렇기에 '황해'에서 보여주는 과도한 폭력장면들은 과도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악마를 보았다'와 가장 커다란 차이는 아닌지....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영화를 보고 나면 어떤 느낌이 들까?
결국 무언가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들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보고 듣는 그들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 중이고 그것이 온전하게 드러나지 않는 다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도 같이 살아가야 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우리의 '환대'는 법적 규제와 문화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두 영화가 물꼬를 터주었다고 해야 하나? 아직도 갈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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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1-01-13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막판 '이미그레이션...!!!' 그 한 마디에 소란이 일어나는 걸 보고 전 왜그리 슬펐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코미디 영화라고 하지만요.

머큐리 2011-01-14 11:43   좋아요 0 | URL
웃음속에 슬픔을 배어내게 했다면 좋은 영화란 이야기겠지요..^^

같은하늘 2011-01-13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려서 인사드립니다.^^
아이들이 방학을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바꾸신 이미지가 이 글과 잘 어울려 보이는건 왜 일까요? -.-;;

머큐리 2011-01-14 11:43   좋아요 0 | URL
음..그림제목이 '앉아있는 악마'인데요...^^;

마녀고양이 2011-01-14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아이에 대한 다큐를 보는데,
아이가 발견될까봐, 하루종일 집에 혼자 갇혀있는거예요. 기껏해야
7살쯤 된 아이인데... 저녁에 아빠가 바람 쐬어준다고 공원에 데리고 가서
자전거를 타는데, 거기가 일산 주엽역 근처 공원이더라구요.
얼마나 무안하고 창피하던지.......... 너무 가슴 아팠어요, 바로 제 동네 이야기잖아요.

머큐리 2011-01-16 11:40   좋아요 0 | URL
어느새인지 이주민들의 문제는 주변의 문제가 되고 있는 듯해요. 우리가 눈감고 보지 않으려해서 그런거겠지요...
 

레디앙에서 옮겨온다. : 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

1월 3일 아침, 침낭도 아니고 이불을 들고 출근하시는 아저씨를 봤습니다.
새해 첫 출근날 노숙농성을 해야 하는 아저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 겨울 시청광장 찬바닥에서 밤을 지새운다는 가장에게 이불보따리를 싸줬던 마누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살고 싶은 겁니다. 다들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남고 싶은 겁니다. 

지난 2월 26일, 구조조정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이후 한진에선 3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짤렸고, 설계실이 폐쇄됐고, 울산공장이 폐쇄됐고, 다대포도 곧 그럴 것이고,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강제휴직 당했습니다.
 명퇴압박에 시달리던 박범수, 손규열 두 분이 같은 사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400명을 또 짜르겠답니다. 하청까지 천명이 넘게 짤리겠지요. 흑자기업 한진중공업에서 채 1년도 안된 시간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그 파리 목숨들을 안주삼아 회장님과 아드님은 배당금 176억으로 질펀한 잔치를 벌이셨습니다. 정리해고 발표 다음 날. 2003년에도 사측이 노사합의를 어기는 바람에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스물한살에 입사한 이후 한진과 참 질긴 악연을 이어왔습니다.
스물여섯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세 번 끌려갔다 오고, 징역 두 번 갔다 오고,
수배생활 5년하고, 부산시내 경찰서 다 다녀보고, 청춘이 그렇게 흘러가고 쉰 두 살이 됐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생각했는데 가장 큰 고비가 남았네요.

평범치 못한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결단을 앞두고 가장 많이 번민했습니다. 85호 크레인의 의미를 알기에…
지난 1년. 앉아도 바늘방석이었고 누워도 가시이불이었습니다.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 앉아야 했던 불면의 밤들.
이렇게 조합원들 짤려나가는 거 눈뜨고 볼 수만은 없는 거 아닙니까.
우리 조합원들 운명이 뻔한데 앉아서 당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정면으로 붙어야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한진조합원들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해서 우리 조합원들 지킬 겁니다.
쌍용차는 옥쇄파업 때문에 분열된 게 아니라 명단이 발표되고 난 이후
산자 죽은자로 갈라져 투쟁이 힘들어진 겁니다.

지난 일요일, 2003년 이후 처음으로 보일러를 켰습니다.
양말을 신고도 발이 시려웠는데 바닥이 참 따뜻했습니다.
따뜻한 방바닥을 두고 나서는 일도 이리 막막하고 아까운데
주익 씨는… 재규 형은 얼마나 밟히는 것도 많고 아까운 것도 많았을까요.
목이 메이게 부르고 또 불러보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

김진숙 올림

* 이 편지글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6일 새벽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35미터 높이의 85호 크레인에 오르며 황이라 부산본부 상담부장에게 전달한 것이다. 김 지도위원은 이날 오전 5시 40분께 황 부장에게 “책상 위에 편지글이 있다”는 문자를 보냈으며, 앞서 그는 오전 3시경 홀로 크레인에 올랐다.

김 지도위원은 지난 1981년 10월 1일 대한조선공사(한진중공업의 옛 이름)에 입사해 선대조립과에서 용접 일을 했으며, 지난 86년 7월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하다 ‘명예실추, 상사명령 불복종’ 등의 이유로 해고됐으며, 지난 2009년 11월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해고 부당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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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헤부터 잔인한 노동의 현장을 알리는 기사들이 넘치고 있다.
처음에는 회사가 쓰러져서 한다는 구조조정이 이제는 상시적으로 회사 이윤을 위해 행하는 일상적
업무가 되는 분위기다.
승자독식이라지만, 임원들의 급여는 천정부지로 올려 놓으면서, 바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추운겨울 맨 몸으로 거리로 몰리고 있다. 이윤을 위해 인간을 버리는 이러한 과정을 합리적인
구조조정이라고 하는 야만의 시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이다.
링크해 둔다. :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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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07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제가 김진숙 씨가 쓴 <소금꽃나무>를 읽으면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애환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어서 마음 아팠습니다. 이 글을 다시 보게 되니
씁쓸하기도 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같은하늘 2011-01-13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image 

항상 계절이 바뀔때 김광석의 노래를 흥얼거리곤 하는데... 벌써 그가 세상을 등진지
15년이라 세월이 흘러 버렸다.  

어느 사람에게는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최고의 공연을 선사했던 가수였고 또 다른
사람에겐 실연의 아픔을 위로해준 친구였으며 영화 '공동경비구역'의 북한 장교에게는
안타까운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 최고의 가객이었다.  

그가 왜 세상을 떠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랑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속에 검은 태양을
품고 있었는지.. 그러나 그의 노래는 여전히 내가 살아 가는 일상을 도닥여주고 있고
내가 표현하지 못할 감정을 표현해 주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이 날이야 말로 그가 존재하지 않음을 실감한다.   

김광석의 노래는 다 좋지만 그래도 더 아끼는 곡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김광석의 어떤 노래들을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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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1-06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
제가 서울에 오고 싶었던 유일한 이유인 그사람..

머큐리 2011-01-06 18:43   좋아요 0 | URL
맞다..휘님이 그런 말을 한적이 있었는데..군산에서 들은거 같은데요..^^

2011-01-06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6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1-01-06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15년이라니... 우리만 차곡차곡 나이를 먹고 김광석은 여전히 청년으로 남아 있네요.

머큐리 2011-01-06 18:43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은 아직 '이승환'이 꿋꿋하게 버티고 있잖아요..^^

마녀고양이 2011-01-07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리에서를 얼마나 불렀는지, 노래방에서 얼마나 많이 들었던지. ^^
기교도 그다지 없는 소박한 음색, 그게 마음을 울린다는건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게 무엇인지 알려주는거 같아서요.

꾸미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같은하늘 2011-01-13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세월이 벌써 15년인가요? 빠르군요...
저도 김광석 참 좋아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