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회사를 다니니 외국인들을 보는 일은 흔하디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들과 길에서 엇갈릴때, 그들의 눈을 보면 무언가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단지 느낌일 뿐인지 정말 그들의 삶이 힘겨운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단지 검은 피부의 외국인을 볼때마다 추운 이 땅의 기온에 적응하고 일해야 하는 그들의 처지가 안쓰럽기만 하다.  

흔히 미국에서 성공한 이주한국인이나 한국인 2세에 대한 언론의 탄성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과연 이땅에서 이주외국인에게 어떠한 기회를 주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으며 기껏해야 설날이나 추석에서 한국 가요를 부르며, 한국에 대해 칭찬하는 관제적 홍보만 볼 뿐이다. 몇일전에 시청했던 1박2일도 마찬가지였고 결국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방가방가'는 어쩌면 그들의 시각을 차용한 영화이기에 소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장되고 욕설이 난무하는 영화임에도 이땅에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의 애환이 어느정도 녹아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청년 실업과 이주노동과의 연계가 유머스럽지만 웃지 못하게 하는 현실을 잘 반영했다고 보여진다. 이 땅에서 추방될 위험속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소위 '민증'이라고 할때, 아무리 루져라고 하지만 추방될 걱정없이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극명하게 대비하고 있기에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의 연대가 보이기에 코믹하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분명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대학진확과 장학금을 타기위해 흑인으로 분장한 백인이 겪는 에피소드를 모은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그 타자성에 대한 체험은 결국 백인과 흑인의 연대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되었듯이 '방가방가'에서 보여주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체험은 결국 피부 색깔과 언와와 생활습관이 틀리더라도 존중받아야 할 인간임을 그대로 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 등장하는 한국사람들은 그리 '독'하지 않다는 것이 어쩌면 또다른 환상을 갖게 만든다. 생활의 냉혹함이 드러나지 않는 타자성의 체험은 그저 단순한 에피소드로 머물고 말 개연성이 농후한 것이다. 더불어 영화에 등장하듯이 한국인들은 그리 착하지 않다. 경제적 이해관계에 관한 한 이제 한국인들도 야수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흉폭함은 동족에 대해서보다는 외국인들에게 더 잔인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거기에는 피부색과 언어에 대한 굴욕적인 추종과 한 짝을 이루기에 더 추하다.  

'황해'는 난무하는 폭력성 속에서 오히려 이주노동자에 대한 현실을 더 잘 그리고 있다고 보여진다. 단순한 액션 르와르로 치부하기에는 배경 자체가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조선족이라지만 언제 우리가 그들을 동포로 여겼는가? 생계를 유지할 돈벌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일자리를 찾지만 그것 역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런 내용이야 배경으로 숨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제 생계를 위한 투쟁은 범죄까지 세계화 하고 있으며 범죄의 세계나 현실적 사회질서가 유지되는 세계나 이주민을 그저 소모품으로 사용하고 버리는 것은 동일함을 보여주고 있다. 인가의 소모품화....세계화의 부산물이자 주요한 동력이 아닌가? 

'황해'가 보여주는 극현실은 그래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발버둥이다. 살아남아서 '가정'을 이루는 소박한 꿈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가정의 해체를 걱정하는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세계화의 경계에서 삶에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가정이란 해체되어 버려 언젠가 다시 재건하고자 하는 유토피아이다. 어쩌면 보수주의자들이야 말로 자신의 가치관을 위해 이주민들에 대한 관용을 정책적으로 실행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주민은 '사람'이 아니기에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거기에 보수주의가 가진 기만성이 보여진다.  

'항해'에서 보여지는 또다른 문제의식은 이미 파괴된 가정의 파탄을 결정화는 배경설정이다. 배우자의 부정 혹은 내연관계에 대한 배신의 해결이 국내가 아닌 국제적 노동분업에 따른 살인청부로 진행되어 버리는 배경에는 결국 현실 가정의 왜곡된 파괴와 거기에서 노출된 폭력적 지배욕구가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이주민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먼저 떠나간 부인의 소식을 알지 못하는 '구남'의 환상에는 배우자의 배신이 중요한 동기를 형성하고 있다.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한 배경이 주요한 모티브라고 할 때, '황해'에서 보여주는 가정 또는 관계는 주요 구성은 '소유'로 보여진다. 결국 소유의 문제는 인간을 멸절시키는 가장 중요한 동기로 보여지는 것이다. 자신의 것을 지키지 못할 바에는 완전히 파괴해 버리는 그 내적 동기야 말로 어쩌면 '황해'에서 보여주는 폭력의 내밀한 욕망이 아닌가 한다. 그렇기에 '황해'에서 보여주는 과도한 폭력장면들은 과도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악마를 보았다'와 가장 커다란 차이는 아닌지....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영화를 보고 나면 어떤 느낌이 들까?
결국 무언가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들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보고 듣는 그들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 중이고 그것이 온전하게 드러나지 않는 다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도 같이 살아가야 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우리의 '환대'는 법적 규제와 문화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두 영화가 물꼬를 터주었다고 해야 하나? 아직도 갈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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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1-01-13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막판 '이미그레이션...!!!' 그 한 마디에 소란이 일어나는 걸 보고 전 왜그리 슬펐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코미디 영화라고 하지만요.

머큐리 2011-01-14 11:43   좋아요 0 | URL
웃음속에 슬픔을 배어내게 했다면 좋은 영화란 이야기겠지요..^^

같은하늘 2011-01-13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려서 인사드립니다.^^
아이들이 방학을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바꾸신 이미지가 이 글과 잘 어울려 보이는건 왜 일까요? -.-;;

머큐리 2011-01-14 11:43   좋아요 0 | URL
음..그림제목이 '앉아있는 악마'인데요...^^;

마녀고양이 2011-01-14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아이에 대한 다큐를 보는데,
아이가 발견될까봐, 하루종일 집에 혼자 갇혀있는거예요. 기껏해야
7살쯤 된 아이인데... 저녁에 아빠가 바람 쐬어준다고 공원에 데리고 가서
자전거를 타는데, 거기가 일산 주엽역 근처 공원이더라구요.
얼마나 무안하고 창피하던지.......... 너무 가슴 아팠어요, 바로 제 동네 이야기잖아요.

머큐리 2011-01-16 11:40   좋아요 0 | URL
어느새인지 이주민들의 문제는 주변의 문제가 되고 있는 듯해요. 우리가 눈감고 보지 않으려해서 그런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