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 접속이 되지 않는 몇일 동안 조그만 사건들이 발생했습니다.
머 큰일은 아니고... 좀 의외의 일이라도 해야 할 일들이지요

옆지기가 지방의회 선거를 앞두고, 부천시 시의원 비례대표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이전 부터 조금 고민하더니 결국 결정을 내려 버리더군요.
촛불 정국 이후 이런 저런 사회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더니, 국민참여당 창당에 결합하고
이번 선거에 비록 비례대표지만 입후보하는 모습이 사실 좀 익숙하진 않습니다.  

이전 서울에서 살았던 때와 너무 많이 변하는 모습에 어쩔때는 좀 얼떨떨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지금 모습이 본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전부터 무언가 자신이 좋아
하는 일을 하고 싶어도, 자식들이 어리고 남편이 별로 도와주지 않으니 자기가 할 수 있
는 일을 하기가 어려웠던 점이 있었겠지요. 그렇게 자신의 욕망을 가두고 살다가 이제
애들도 어느 정도 크고 하니까 부담이 덜 했던지 정말 즐겁게 자신의 일을 하더군요 

사실, 솔직하게 개인적인 생각으로 옆지기의 출마가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평일은 물론 주말이면, 가정주부의 역할이 조금씩 늘어나는 현상도 그렇고.. --;
(뭐 그렇다고 열심히 하는 건 아닙니다만.. 심적 부담이...ㅎㅎ)
입후보자들 재산 신고해야 한다고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 땜에 그동안 몰래 관리해 왔던
마이너스 통장과 소액의 주식들이 몽땅 드러나서 정말 투명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렇지요 
더구나, 참여당과 민주당은 동색이라고 생각하는 저의 생각이 거의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옆지기를 열심히 돕고 싶어도 의욕이 나지 않으니 문제는 문제지요 

농담삼아... 만약에 정말 시의원이 되면 월급 나올거니까... 나 회사 좀 때려치고 한량생활
좀 하면 안되냐고 물었다가.... 지지하지도 않는 사람이 어부지리를 노리는 건 치사하다는
말에 쫌 울컥하기도 했지요.... 돕지도 않는 사람이 떡고물부터 바라냐는 직설적인 훈계(?)
였지요 

그런데 하나 보기 좋은 건 있더군요.
이념을 떠나고 당을 떠나고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자신이 좋아서 고민하고 애쓰고 힘들어
하면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다워 보이더군요.
당선이 되지 않을 확율이 더 많을 것이고, 당선되더라도 그리 쉬워 보이는 생활은 아닐지라도
무언가 꿈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과 같이 산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지지는 하지 않아도...옆에서 보조는 해야 하기에 그게 참...
잔인한 4월을 넘어 가정의 달 오월은 정말 가정해체가 되지 않도록 잘 인내하고 지혜롭게
처신해야 할 듯 합니다. (근데 왜 난 한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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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0-04-26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본격 주부의 길로 들어서시는 건가효? ^^

머큐리 2010-04-26 12:15   좋아요 0 | URL
글세요...정말 당선되어 버리면 저는 소박한 주부의 꿈을 목표로...ㅎㅎ

무해한모리군 2010-04-26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부천에 가면 옆지기님의 명함을 뿌리는 머큐님을 볼 수 있는건가요? ㅎㅎㅎ

머큐리 2010-04-26 12:15   좋아요 0 | URL
아마 그런일은 없을 듯 합니다. 집에서 애들하고 씨름하고 있을거에요..ㅋㅋ

Forgettable. 2010-04-26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텐데- 옆에서 든든히 받쳐주세요.
(한숨쉬는 머큐리님의 모습을 상상중 ㅎㅎㅎ)

본격 주부의 길 ㅋㅋㅋ 아프님 말마따나 한량생활은 꿈도 못꾸실 ^^;

머큐리 2010-04-26 12:16   좋아요 0 | URL
정말 내 평생의 로망! 한량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지...ㅋㅋ

순오기 2010-04-26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지지도 해주세요~ 나중에 서운함을 평생 곱씹을수도 있어요.^^

머큐리 2010-04-26 16:51   좋아요 0 | URL
지지까지는 몰라도...지원 정도는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어요..

L.SHIN 2010-04-26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앞치마 두르고 집안일에 전념하는 남자는, 나름대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절대,머큐님의 본격 주부생활을 부추기는 발언이 아니랍니다. 그저 나는...ㅋㅋㅋ)

머큐리 2010-04-26 16:52   좋아요 0 | URL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저의 로망은 한량이지 주부가 아니에요..ㅎㅎ

쟈니 2010-04-26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박한 주부가 되고 싶은데... 축하드려야 하는 건가요? ^^; 옆지기님이 힘차게 활약하시길 바랍니다.

머큐리 2010-04-26 16:53   좋아요 0 | URL
할거면 제대로 하던가...안 그러면 때려치라고 했는데..하는거 보니 제대로 하겠지요.. 머 것도 일단 당선되야 하는거지만..ㅎㅎ

카스피 2010-04-26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선거부터인가 각당에서 일정 부분 여성을 후보로 내세워야 된다고 하는군요.그래선지 가각당마다 여성후보를 찾는데 고민했는데 자격이 되는 여성 후보들을 설득하는데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남편들의 반대였다고 하는군요.아무튼 옆지기님의 시의원 후보를 선뜻 찬성하신 머큐리님이 대인기질에 감복하여 부딘 좋은 결과가 계시기를 바랍니다^^

머큐리 2010-04-26 23:16   좋아요 0 | URL
머 쥐어살다보면...이런 대인기질이 발휘되는 수도 있지요.. ^^;;
 
크레이지 - The Crazi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스릴러 영화다. 뭔가 오싹하면서 지속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재앙에 대한 영화들은 많다.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는 재앙영화들을 굳이 나눠보면,
크게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재앙 (2012, 투머로우 등) 과 인간의 탐욕과 욕심으로 인한 재앙
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할 것은 재앙을 통한 무차별 살인을 형상화 하여 좀더 섬찟
한 상황들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함과 더불어 찜찜함을 감수 해
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장점이 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정보의 통제와 권력
의 만행이 심리적 불편함의 밑바닥에 있는 실체라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평화로운 시골 풍경과 편안한 컨트리 음악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화염과 함께 종막을 구성한다. 그 시작과 끝의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정체모를 화학약품과 그 약품에 노출되어 미쳐가는 사람과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권력의
무자비한 통제와 민간인 제거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생존을 향해 투쟁
하는 주인공...그리고 또 반복... 

'나비와 전사'를 읽다 보니 근대에서 질병은 바이러스를 제거함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때문에 청결과 위생이 개인적 덕목으로 자리잡았고, 그로인한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질병의 원인을 외부의 바이러스에서 찿는 근대의 시선은 이 영
화에서도 날 것으로 드러난다. 보이지 않는 어떤 화학적 작용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노출
된 사람은 미쳐서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고... 이로서 공동체는 무너져 내리게 된다.
문제는 그 외부적 작용이 자연의 돌연변이로 생긴 것이 아닌 국가의 정책집행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이며, 그 사고를 무마하기 위한 국가의 조치는 사고 지역 인구의 말살과 사고지역의
소거라는 점이다.  

원래 삐딱해서 그런지...공포영화를 보면서도 현실과 겹쳐지는 부분이 자꾸 상상이 된다.
권력의 눈에는 언제나 주변으로 몰려 타자화되는 사람들이 마치 이 영화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염되어 죽음으로 이를 수 밖에 없는 사람들과 겹쳐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홉스가 말한 '자연상태' 속에서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은 권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이 조직화 되면서 발생하는 극히 사회적인 현상이 아닐까?

여전히 권력의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누구의 지시로 누가 시행하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그 시행의 효과는 분명하다. 점점 미쳐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로 부터 다른 사람들을 지키
기위한 명분으로 감염된 사람들을 처단하는 권력, 그 양자로 부터 도망다녀야 하는 주인공
의 처절한 분투기로 읽히는 이 영화는 그냥 이 사회의 축소판을 뿐이다. 
 
피와 살점이 튀기지는 않아도... 일상에서 피튀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회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공포는 용산에서 천안함에서 영화처럼 재현되고 반복된다.
물론 진실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어디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앵무새같은 언론의 지껄임을
우리는 진실이라 하지 않듯이 모든 거짓이 진실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진실은 사람들이 죽어 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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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4-2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볼때 느끼는 것중에 하나는...
인간의 정신,영혼이 참 위대하고 신비로운 것이지만 바이러스와 질병같은 외부존재에 의한 육체적(직접적으론 뇌)타격을 입는 것으로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직 현대 좀비 영화의 단골소재인 광기바이러스 같은 경우는 다행이도 없지만 영화에서 표현되기론 정말 착하고 평범했던 사람들이 미치광이 살인마가 되어가는 모습이 항상 나오죠. 비슷한 예는 치매, 주위사람들을 점점 잊고 마침내 자신까지 잊고마는데 그때가서 영혼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정신이란 곧 뇌이자 기억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좀 두서없었지만 즉,참 멋진 우리의 마음이란게 이렇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것이 뭔가 덧없고 아쉽다는거요.^^;

머큐리 2010-04-21 09:01   좋아요 0 | URL
저도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닥...ㅎㅎ 영혼의 존재와 상관없이 그냥 뭐든 생명으로 존재하는 사실이 경이롭기만 하죠..

2010-04-25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둠의 아이들 - Children of the Dark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잔인한 달 4월에 잔인한 영화를 본다.
만일에 자유주의자들이 있다면, 시장의 자유를 외치는 것 만큼 (더 바라지도 않는다) 가난으로
부터의 자유, 공포로 부터의 자유도 외쳐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등가
교환물로 측정하도록 만들어버렸다. 그렇지만 사람의 생명이나, 권리를 등가로 교환할 수 있
을까? 가난하기 때문에 생명이, 신체가 물건처럼 매매된다면 그것은 이미 지옥이다.  

어둠의 아이들에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지옥이다.  희망도 없고 아무런 감정도 없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봄날처럼 훈훈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알게된다.
부모에게 얼마되지 않는 돈으로 팔려나가 또래들과 뛰어놀고 배움을 가져야 할 아이들이
성노예로 전락하고 육체적 학대를 당한다면 그게 사람사는 세상일까?
심지어 살아있는 상태에서 아픈 아이들의 장기를 제공해주는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다면
그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인간은 인정하기 싫은 부분을 알게되면 그것을 직시하고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리고는 그 처참함을 피해자의 문제로
돌려 가난하거나, 못배웠거나, 게으름으로 인한 비극으로 몰아 세우고, 그것과 연관없는  
자신은 도덕적으로 그리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사실 거기에는 구조적 문제가 지리잡고 있고, 그것을 외면하는 순간 인간은
야수로 돌변한다.  

영화 내내, 인간이란 얼마나 잔인하면서도 나약하고, 약하면서도 강한 존재인지 생각
하게 된다. 아이들까지 노예로 만드는 이런 사회가 존재하며, 여전히 인권의 가치는 땅에
떨어진 돈보다 못한 상태임을 고발하고 있다. 더불어 조금 잘사는 나라들이 저지르는
섹스관광에 대한 그 내면의 실태를 밝히고 있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희생시키는 황폐한 현대의 성을 바라보기도 역겹다.  

문제는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더 참혹한 현실이 있을 것이란 느낌이다. 이미 세계화로 지구촌
이란 단어까지 등장한 마당에 전세계에 대항하는 자본의 투쟁만이 세계화가 아니다.
전세계를 무대로 움직이는 자본과 돈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희생당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문제도 과제가 아닐까? 한국 사람들의 동남아 매춘관광에 대한 단편적 사실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 단순한 현상 뒤에 잠재한 참혹한 인권 침해에 대해서 좀 더 깊은 인식이 있어야
할 듯하다.  

쓰레기가 되어버린 사람들, 잉여인간으로 이 사회에 섞이지도 못하고 버려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아이들이 아직도 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그것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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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일을 아니었을 것이고... 명박산성보다 더 넘기 힘든 부모산성까지 넘어야 했던 20대의
실존적 선택에 그냥 먹먹해진다. 더불어 그녀가 한 마지막 말들은 어쩌면 대량 생산된 지식
기능인들이 한 번 반성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김예슬씨 “거대한 적 ‘대학·국가·자본’에 작은 돌을 던진 것
인터뷰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 

“사실 이 말로 인터뷰를 시작해야 됐는지도 모르겠다. 대학문을 넘지 않아서 수많은 차별을 감내하고 사는 농촌, 노동현장의 수많은 분들에게 나의 선언이 또다른 상처가 되었다면 사죄의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다. 그런 곳에서 고되게 일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힘들다고 주저앉거나 절망할 수 없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그런 분들도 기업이나 시장에서 제품처럼 쓰고 버려진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돌아가신 박지연씨처럼. 비단 대학생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학 나오지 못한 분들의 고통은 더 크다. 대졸자가 주류인 사회라 더 조명되지 않을 뿐이다. 그분들을 내 삶의 거울로 비추면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20대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 정해진 몇 개의 직업이 꿈이 되어버린 것들에 대해 분노하면서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상상력을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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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4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5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폭력 비타 악티바 : 개념사 6
공진성 지음 / 책세상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정말 단순하게 '폭력'에 대한 개념을 알기위해 책을 읽게 될 줄 몰랐다. 사실 폭력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이 책을 읽다 보니 딱히 잘 알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
닫게 되었다.  

폭력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것은 2008년 촛불집회 이후다. '촛불 폭도'라는 말까지 사용하는
판에 시위대는 항상 폭력과 비폭력의 문제로 갈등했고, 실질적으로 폭력을 가했던 경찰은
자신의 폭력을 공권력의 정당한 행사로 미화했다. 그리고 2년이 흐른 지금의 시점까지 경찰
의 대응은 항상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당한 힘의 행사를 이야기 할 뿐 권력의 하수인으로서
폭력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프레시안에 뜬 웃지못할 기사는 폭력에 대한 공권력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

폭력이란 모두 거부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근대사회에서 폭력은 어떤 형태로 존해하고
있는가? 이것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잠깐 살펴보는 것이 좋다. 비타 악티바 시리즈는 항상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풀어주는 맛이 있다.  

정치학적으로 근대 국가의 탄생을 사회 계약으로 보는 서구의 관점은 일단 개인이 자연상태
속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돌입하기에 자신의 안전을 위해 자신이 남들에게
행사할 수 있는 폭력의 권리를 이양하는 것으로 본다. 모든 폭력의 권리를 국가에게 이양
함으로 국가는 외부적으로 적의 침탈로 내부적으로 성원의 폭력으로 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다. 여기서 국가의 폭력 독점 현상이 나타난다. 사회에서 올바르게 폭력을 구사할 수
있는 주체는 국가일 뿐이고, 국가는 대표적인 폭력기구인 군대와 경찰로 폭력을 조절하고
이용한다. 그리고 폭력의 행사에 관한 판단은 법체계를 구성함으로 완성한다.
국가가 행하는 폭력이 사회의 개인들에게 위임받은 공권력이라면, 개인이 행하는 폭력은
사회가 규정한 법체계에 따라 규정된다. 하지만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적 힘의 행사는 정당성을 인정받기 힘들다. 그건 그저 폭력일 뿐이다.  

물론 정태적인 사회 분석으로 보면 타당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동태적인 사회의 변동을 생각
하면 무조건 긍정하기 힘든 면이 분명히 있다. 일단 국가가 규정한 법체계보다 양심이나
신앙, 신념이 더 우월하다고 느끼는 개인의 저항은 끊이지 않고 있다.
공권력의 입장에서 볼 때, 사회에 혼란을 주는 폭력이지만, 국가보다 분명하게 우월한
도덕적 지위에서 나오는 저항을 무조건 폭력으로 몰아붙이기도 힘들다. 여기에 폭력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폭력도 정당성이 있는가?  
또 하나 물리적 폭력 말고 상징적 폭력의 문제는 없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 폭력의 정당성은 국민에게 나오기 때문에 권력의 중심인 국민은
폭력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보여진다. 특히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게 된 이유인 국민의
안전보장을 소홀히 할 경우에 국민의 저항권은 당연한 권리가 되겠다. 폭력과 비폭력은
저항의 효과를 노리는 형태를 가늠하는 방법일 뿐이고 비폭력이 선이고 폭력이 악이라는
공식은 무의미하다. 어쩌면 이 점에서 촛불은 폭력 / 비폭력 이분법적인 논리에 윤리성
까지 덧쒸우면서 스스로 자멸한 면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공권력의 폭력이 더욱 거세게 몰아쳤음에도, 이에 대한 대응은 긴장을 일으키는
저항의 비폭력의 모습도, 격렬하게 저항하는 폭력의 모습도 띄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다음 선거에서 보자는 체제 내적 동화로 끝나버리는 점도 눈에 띈다.  

상징적 문화 폭력도 마찬가지다. 권력에 대한 민중의 연대라는 것은 결국 지배자의 문화에
동화되는 것일 뿐 진정한 민중연대가 어려운 것도, 기층에 대한 상층의 문화적 우월성을
통한 상징적 폭력 때문이다. 상징적임으로 폭력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의식을 통제하여
실질적 투쟁의지를 잠식시키기에 그 효과는 더욱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지점에서의 내 생각이 넘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도 떠오르고
...결국 기층과 함께할 유기적 지식인의 존재가 있어야 이러한 상징적 폭력까지 깨뜨릴 수
있는 것인지... 지식인의 역할이 얼마나 위선적인 것인지... ) 

현대는 폭력이 만연한 시대다. 테러와의 전쟁도 그렇고 사적 폭력이 이제 공권력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가지고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시대다. 이런 시대일수록 폭력에 대한 불안감은
가중하고 안전에 대한 희구가 높아지는 것 같다. 더불어 공권력은 폭력에 대한 공포감을 지속
적으로 유포하면, 개인의 권리를 더욱 더 침탈하는 것이 대체적인 흐름인 것 같다.
어느때보다 안전한 사회에서 살면서 어느 때보다 불안감에 떨명 안전을 희구하는 경향이
지속될 수록 폭력에 대한 혐오감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폭력에 대한
주체와 욕망에 대한 분명한 구분이고, 막연한 불안이나 공포로 과도한 국가의 폭력을 인정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경계는 언제나 모호하고 그것을 인지하기에 피통치자들은
너무 뿔뿔히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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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0-04-08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요 책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 제목보고는 다른 책을 떠올렸는데. 톨스토이의 <국가는 폭력이다>. 요것도 한번 읽어보세요.

머큐리 2010-04-09 08:38   좋아요 0 | URL
찜해 놓고 읽어야죠... '폭력의 철학'도 겸사겸사 뒤적이고 있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