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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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면 먹먹해 지는 일이 있다. 알라딘 서재를 검색하다가 누군가의 글에서 '읽기가 고통스러운 작가'로 '솔직하고 글 잘쓰는 작가'로 공선옥이란 이름을 접했을때, 난 그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조금씩 그녀를 알고 싶어졌다. 첫사랑의 설레임(?)은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을 뿐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5.18광주에서 87년 6.10 항쟁 직전까지인 것 같다. 소설에서 시대적 배경은 뚜렸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소설에서 나오는 인물들이 겪는 사건을 종합해볼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 시대는 우리사회가 밑바닥에서 부터 부글부글 끓어 오르던 시기이고 거기서 청춘을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 이며, 작가가 가장 예뻤을 때로 기억하는 시기이다.  

소설은 지금 젊은이처럼 제한적이나마 자유를 누리지도 못했고, 순수하게 '혁명'을 꿈꿀 수 있었던 그 때. 그리고 그 시대를 살면서 서로 보듬고 깨져가며 성숙해져가는 아픈 성장이 눈부신 그 때를 담담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그 담담함 속에서 느껴지는 슬픈도록 아름다운 찬란함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누군들 아름다운 청춘이 없을까만은... 그 시대의 청춘은 왜 그리 고달프고 아펐는지...아니 모든 청춘들이 고달프고 아팠으리라... 

그래도 그때는 진보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예전만큼 확고하게 진보에 대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사회가 변해버린건지 내가 나이가 들어버린건지, 나이들면 현명해 진다던데..나이들수록 현실에 움츠려들고 타협해버리는 자신을 이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다. 시대가 아니라 무엇이든 변화하려는 그 젊은 날이, 그 패기가, 그 순수함이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볼때 지금의 내 모습은 불편하다.  

   
 

 ...상대보다 힘이 세다고, 더 많이 배웠다고, 더 많이 가졌다고, 더 우월하다고 믿는 자들이 부리는 오만과 횡포와 모욕과 폭력과 무례함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그 오만과 횡포와 모욕고 폭력과 무례함을 견뎌야 한다고. 모든 오만한 자들이, 모든 무뢰배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때까지, 견디고 견뎌서, 그 견디는 힘으로 우리가 아름다워지자고. 왜냐하면 모든 추함은 모든 아름다움 앞에서 결국 무릎을 꿇게되어 있기 때문에. 동물에서 출발한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인간이기에, 동물적 본능의 시간에서 조금이라도 인간의 시간을 살기위해 몸부림치기 때문이라고, 동물의 시간에서 인간의 시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난한 몸부림의과정이야 말로 진보의 역사라고....

 
   

 자신의 청춘도 젊음도 누리는 것을 죄스러워했던 사람들.... 난 그런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그러나 예전처럼 아프게 만나지 않고 행복하게 만나고 싶다.  지금은 마치 세월이 거꾸로 흐르는듯 느껴지고,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시절이다. 그렇게 싸우면 얻은 것들이 손바닥에서 모래 흐르듯 허무하게 무너져 가는 세월들....그러나 " 그 어떤 것도 지속될 수 없으므로, 슬픔은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영원히 슬픔에 잠기도록 하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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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9-06-24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선옥의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을 읽으면서, 그 작가가 참 무서웠습니다.
'읽기가 고통스러운 작가'... 딱 맞는 표현인 듯 하네요.
정작 그 뒤에는 그의 소설을 별로 접하지 못했지만...

머큐리 2009-06-25 11:06   좋아요 0 | URL
저는 산문집 한권...소설은 이 책이 처음입니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을 읽어봐야겠어요...
 
불량소녀 백서
김현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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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이란 에세이스트... 예전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쓴 책이 있어 그냥 발칙한 십대가 하나 있구나 했었다. 그런 그녀가 어느덧 20대 후반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아마도 20대 중반에 쓴 책이 아닌가 한다. 그녀를 본격적으로 다시 인식한 건 2008년 촛불이 타오르던 때 시사인의 칼럼을 통해서 였다. 그때 쓴 글이 아마도 '우리안의 이명박'이란 글이었는데... 우리 안에 물욕성이 이명박을 당선시킨 동력이었고 (이명박은 전과 14범에 거짓말쟁이 라는 것은 모든 국민은 알고 있었다) 그 물신성을 극복하지 않고는 언젠가 또다시 고통을 받아야 할 것 이라는 내용은 짤막한 글이었다. 난 그 글에 깊은(?)공감을 했고 그녀를 다시 인식했다.  

얼마 전 촛볼과 기륭전자 비정규직 근로자 농성, 용산사태를 겪으며 쓴 글들을 묶어 새롭게 책을 출간했다. '그래도 언니는 간다' 라는 제목이었는데... 김현진이 '언니는 간다'라는 영화를 제작하고 큰 재미를 못 본 것에서 제목을 결정한 것 같다. (영화는 확실히 에세이보다 어려운가 보다) 

이래저래 관심이 가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어쩌면 평범하고 진부한 이야기들...여성이여 스스로 자존감을 느끼고 당당하게 살자는 말은 이제 너무 흔해서 진부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하게 수사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라기 보다 김현진이라는 어린 소녀가 여성이 되기까지의 분투기였고 여기서 단순한 수사적 얘기는 매우 처절한 분투기로 전환된다. 그러나 처철한 분투기 자체는 어둡고 회피적이 아닌 즐겁고 희망찬 것이다.  

'불량소녀'는 체제가 여성에게 불리하게 씌우는 차별을 거부하고, 당당하게 주인으로 사는 여성이다. 즐겁게 살기에 '소녀'로 사는 여성들.. 그러나 '나쁜년'과는 엄연하게 차이가 있는 여성이다. 왜냐하면 불량소녀들은 여성들과 연대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의 편견과 당당하게 맞서기 때문이다. 여성임에도 남성과 연대하여 남성이 원하는 '여성성'을 가장하여 같은 여성을 착취하는 '나쁜년'과는 질적으로 틀린 여성이 '불량소녀'다.  

난 김현진의 불량소녀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발랄한 페미니즘을 본다. 나 스스로가 불량소녀들의 도발을 감당해낼 수 있을지 모를 발랄한 그녀들은 이제 이 세상의 주인으로 당당히 나서야 하는 새로운 젊음이고 저자가 여성들과 함께 나누고픈 자신의 경험이다. 학문으로 글로서 패미니즘이 아니라 생활로 경험으로 깨지고 무너지면서 쓴 그녀의 불량소녀가 아직도 남성세계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러 여성들과 남성이라는 한계로 자신도 모르게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진 남성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것 같다.  

그냥 딸이 있다면 나는 '불량소녀'로 키울 것이다. 그녀의 경험과 아픔과 변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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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6-20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으셨나보네요^^ 저번에 반가웠어용!~

머큐리 2009-06-21 06:15   좋아요 0 | URL
너무 일찍가서 아쉬웠어요...ㅎㅎ
 
단 한번의 시선 1 모중석 스릴러 클럽 2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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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여러가지 패턴이 자리잡혀 있겟지만, 가장 고전적인 패턴이야 말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독자가 어느 정도 사건의 개요에 접근했다고 느끼는 순간 뒤집혀서 멍~하게 만들어 버리는 패턴들. 

이 소설의 장점은 마지막까지도 반전을 던져 준다는 것....  그리고 전혀 지루하지 않게 끝을 향해 달려가게 만든다는 것. 전철 안에서 감질나게 읽느라 죽을 뻔한 소설이다.  

매니아들은 다 읽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혹 추리소설을 접해보고 싶은 분들은 이 책부터 시작해도 무난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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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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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처럼 일본 소설이 읽히고 있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 그 유행을 흐름을 쫒고 있나 보다. 미미여사의 '모방범'으로 시작한 일본 추리소설 탐독하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알게 되었고 그의 소설들을 읽다보니 최소한 게이고라면 어느정도 수준의 만족은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머 망설이지 않고 사서 읽어도 후회는 안한다는 뜻이다.  

'용의자 X의 헌신' 을 재미있게 본 터라 다른 책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었는데 작품 전반에 흐르는 추리적 요소도 추리적 요소지만 나름 사회성 짙은 주제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해서 최근 일본 사회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준다. 다만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주지만 정말 탄성이 나오는 작품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는 것. 그럼에도 은근히 중독성있는 작가다.   

예지몽은 '용의자 X의 헌신'에서 사건을 풀어낸 천재 물리학자가 주인공이 되어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과학적으로 풀어나가는 몇개의 단편 모음집이다. 물리학자 이면서 사건을 풀어나가는 해결사로서의 '유가와'는 게이고가 탄생시킨 최고의 캐릭터가 아닌가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냉정한 태도는 탐정으로서의 자질을 보여주고, 최신 물리학이론을 대입하여 기묘한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 태도는 미신에 대한 과학의 승리를 찬양하는 듯 보인다.  

만일 유가와라는 캐릭터을 좋아한다면, '탐정 갈릴레오'를 같이 읽으면 좋을 것이다. '탐정 갈릴레오'는 게이고가 유가와를 등장시킨 초기 작품 같은데, 초기 게이고 소설을 음미하는 맛까지 전해준다. 종교적 열정과 미신을 믿지 않는 나는 '유가와'같은 존재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너무 딱딱해서 정떨어지는 면이 없진 않지만.... 

  

그나저나 모르는 사이에 게이고의 소설이 많이도 출간된 모양이다...에고 언제 다 읽을런지 이젠 추리소설도 만만치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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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공선옥 지음, 노익상·박여선 사진 / 월간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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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나 해야 겠다. 난 공선옥이란 작가의 작품을 읽어 본 적도 없고, 그저 이 책 저 책 뒤지면서 이런 작가가 있구나 하는 정도의 수준이다. 그러나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다는 작가의 말에... 이 사람 꽤 솔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위대한 예술이고 사상이고 다 걷어내고 자기 존재의 생존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공선옥에 대한 평들을 보니 글 잘쓰는 작가로 통하는 면도 있고...어떤 점에선 '불편한 작가'로도 통하는 것이다. 글 잘쓰는데 불편하다면...그건 마주치기 싫은 현실은 아주 잘 표현해내는 작가라고 보면 되는 것일까? 글 한 편 안 읽어 봤으니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 이 책을 마주했다. 마흔 이라는 나이와 떠남 이라는 행위가 결합된 제목의 책..... 

이 책은 '말'지에 연재한 글을 묶어서 펴낸 것이다. '말'지를 구독하지 않았으니, 이런 글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고, 기행문인가 했더니 기행문하고는 조금 틀리다. 낮선 곳을 신기한 곳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진기한 풍습을 안내하는 책이 아니라 그야 말로 문득 길을 나서서 만나는 사람과 고장에 대한 작가의 단상을 풀어논 책이다. 문제는 만나는 사람과 고장이 어디이냐 이다. 이젠 잊혀져 가는 농촌, 길에서 등짐지고 가는 할머니, 자식들 다 떠난 곳에서 남아 마을을 지키는 어른신들, 미선이와 효순이.... 이 땅에서 한 세월 부지런하고 순박하게 살았던 바로 우리 이웃들이 작가가 길을 나서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삶의 고단함과 무상함을 본다. 따뜻한 인정과 속절없는 세월을 본다. 작가의 눈에 비친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너무 평범해서 잊혀진 사람들이다. 텔레비젼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화려한 도시인들이 아니고 그냥 자연속에서 주어진 삶을 묵묵하게 견뎌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삶의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그들의 이야기가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고통이 어우러지고 살아온 날들의 고단함과 살아가야 할 날들에 대한 희망도 있다.  

공선옥이 길에서 만난 너무도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에 나는 문득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의 껍질이 한꺼풀 벗겨진 기분이다. 의도했는지 의도하지 않았는지 작가가 만난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이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 지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고...그러다 보니 정말 공선옥은 불편한 작가 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이 책을 시작으로 공선옥의 작품을 시작하려고 한다. 나는 공선옥으로 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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