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僧은 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十 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山절의 마당귀에 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 '여승')

 

 


지아비는 집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어린 딸은 돌무덤이 되고 옥수수를 팔던 파리한 여인은 여승이 되었다. 속세의 인연을 끊는 마지막 장면이 처연하다. 이 시는 일제 강점기에 비극적 삶을 살아가는 한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가난 때문에 가족을 잃고 여승이 되기까지의 일생을 서사적으로 잘 그려 내고 있다. 먼 그 시절에도 가족 해체의 슬픔이 있었다. 백석 시가 보여준 애잔한 정서는 일제 강점기 발붙일 곳 없이 떠돌아야 했던 유랑과 상실의 소산이지만 그 원천은 사실 시인된 자가 가진 원형적인 고독과 비애의 결과물이다.

 

이 시가 쓰인 시기는 일본의 착취와 억압이 심했다. 그때 시대 상황을 반영하여 식민지 현실에 희생당한 민족의 삶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이 시를 단순하게 보면 한 여인의 비극적인 인생사를 압축된 형태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힘겨운 현실 속에 좌절하는 우리나라 여성의 한(恨)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백석 시에 나오는 여승은 속세를 떠나도 가을밤 같이 차게 울었을 것이다. 과부가 기구한 운명을 끝내기 위해 속세와의 단절을 결심하게 된 그녀의 사연을 불경처럼 서러워하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 여승이 된다는 것은 유교 이념이 강한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여성을 사회통합의 구성원으로 수렴되기 위해서는 만든 것이 삼종지도(三從之道)다. 유교 사회에서 여자는 어렸을 때 지아비를 쫓고, 출가해서 혼인하면 남편을 따라야 하며, 노후에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 이렇듯 조선의 여성들은 삼종지도를 숙명으로 여기며 자신의 욕망을 꾹꾹 봉인해야 했다. 과거 여성들에게 최고의 출세와 신분상승은 부유하거나 권력을 가진 남성을 만나 결혼하는 것뿐이었다. 삼종지도의 숙명을 거스르거나 따르지 못한 여성은 국가가 강조하는 유교 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로 간주하였다. 결국, 이들에게 억압과 차별의 시대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 같은 곳이 바로 절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국가 이념은 숭유억불(崇儒抑佛)이었다. 남성 사대부들이 혼인을 피하고 여승이 되는 여성들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그래서 불교와 여성 둘 다 억압할 수 있는 제재와 제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승이 되려는 여성이나 절에 다니는 부녀자에게 '실행죄'(失行)가 적용되었다. 여기서 '실행'이란 '성적인 방종'이라는 의미가 있다. 조선 시대 최초의 법전인 <경제육전>에 보면 여승이 되어 절에 들어가는 여성은 절개를 잃은 것으로 해석했다. 심지어 중이 과부의 집에 출입하거나 만나는 것조차도 실행의 사례로 봤다. 당시 관료들과 사대부들의 기본적인 사고가 이러했다. 절이 문란한 풍습을 조장하고, 부녀자들과 음행을 일삼는 곳이다. 그곳에 출입을 잦거나 여승이 되는 여자는 여성의 정절을 해치는 범죄로 바라봤다.

 

"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백석 시에 나오는 여승은 과거에 어떤 남편의 아내이자 어린 딸의 어머니였다. 하지만 가정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고 그녀는 과부가 되었다. 평생 수절하면서 인고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원망에 가을밤 같이 차게 울어야 했다. 가난한 생활 그리고 과부를 향한 차별과 편견 어린 시선은 그녀가 짊어져야 할 이중고였다. 그나마 유일한 핏줄인 딸마저 저 세상을 먼저 떠나보냈다. 모든 것을 상실한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승이 되는 것뿐이었다. 운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불가에 귀의한 여인. 그녀의 모습은 유교의 엄격한 도덕에 의해 억압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여성들의 삶이기도 하다. 고달픈 조선 여성들의 삶을 알고 나서 오랜만에 백석 시를 읽으니까 나도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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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절의 역사 - 조선 지식인의 성 담론
이숙인 지음 / 푸른역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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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숙  「신부」  2007년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알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알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잡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서정주 ‘신부’)

 

 

여인이 불 켜진 방안에 혼자 앉아있고, 댓돌 위에 고무신이 한 켤레만 가지런히 놓여있다. 문틈으로 나와 있는 옷자락은 첫날밤을 앞두는 아리따운 신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말았다. 혼인 첫날밤에 생긴 오해로 신부는 평생을 그대로 앉아 있다. 먼 훗날 신랑의 손길이 닿자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았다.

 

이 시를 읽으면 슬픔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한 편의 전설과 같은 시 속에 외롭고 슬픈 신부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기다리다 한 줌 재가 된다는 것. 이 시 속에는 우리나라 옛날 여인들의 한(恨)이 있다.

 

수절을 미덕으로 삼았던 한국 여인의 애틋한 삶을 서사적으로 표현한 이 시는 유교적 열녀의 이미지를 신화적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조선 시대 여성의 정절(貞節)은 남성의 충절(忠節)과 더불어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적 규범이자 인간적 덕목이었다.

 

농촌 마을을 지나다 보면 마을 어귀나 도로 주변에서 문 모양의 나무 건축물들이 보호 울타리 속에 서 있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아마도 우리가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유적일 것이다. 이런 건축물이 '정려'(旌閭)이다.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를 표창하기 위해 마을 입구나 집 앞에 세우는 문을 말한다.

 

충신이나 효자, 열녀에 대해 국가에서 상을 내렸다는 이야기는 이미 삼국시대에도 나오지만, 이를 정려와 같은 사회제도로 정비한 것은 조선 시대였다. 태조는 조선을 세워 왕이 된 다음, 충신이나 효자, 열녀의 행실을 널리 권장하고, 정려를 세워 모범으로 삼도록 했다. 이후 조선의 조정에서는 각 고을 수령의 추천을 받아서 연초에 국가 차원에서 충신이나 효자, 열녀를 결정했다. 충신이나 효자, 열녀로 인정되면 그 집안사람들은 부역이나 조세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이를 ‘복호’(復戶)라고 한다.

 

정려가 오늘날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이를 가문의 영예로 여겨 잘 보존했기 때문이다. 또한, 정려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구실을 했다. 가족윤리가 강조되는 5월에 정려는 전통 윤리의 상징으로 되새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정려가 가지는 의미가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정려를 통해 지키고자 했던 윤리들은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삶을 규제하기도 했다. 정려가 세워진 집안의 후손들은 알게 모르게 그와 같은 삶을 따라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 특히 이러한 압력을 강하게 받았던 것은 여성이었다. 정려가 내려진 인물 중 다수는 여성이었는데, 이는 남편에 대한 정절의 대가였다. 이는 평민이나 노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정절은 정려가 요구하는 여성이 지켜야 할 가장 우선적인 덕목이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했을 경우에는 사회적인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재혼한 여성의 자식은 벼슬길에 오르는데 제한을 받았다.

 

남녀 문제와 부부의 문제가 결합한 정절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상호 개념이지만 조선에서는 여성 일방의 의무개념으로 전개되었다. 소복을 입고 언제든 가슴에 찬 은장도를 꺼내 들 준비가 된 여인. 서정주의 시에 나오는 신부처럼 평생 한 남자, 즉 한 남편만을 섬기는 여인. 전란 통에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여인. 그 연원을 따져보면 조선 시대 여성의 잔혹한 역사를 탄생시킨 내밀한 국가의 의도와 만나게 된다. 신하의 충절과 아내의 정절이 한 쌍을 이루는 유교적인 정치체제에서 정절은 가족을 유지하고 충절은 국가를 지탱하는 이념이었다. 즉 정절은 국법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부부 사이의 개인적 도덕인 정절을 국가가 관리했다는 뜻이다. 이 시기 정절을 지킨 아내에게는 국가 차원의 보상이 이뤄졌고, 반대로 개가한 과부 등 ‘정절을 해친’ 아내는 국가가 나서서 분노하고 응징하기까지 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정절을 어긴 이른바 실행녀(失行女)의 남성 가족은 관직에서 물러나거나 관직 진입 자체가 어려웠다. ‘자녀안'(姿女案)이라 하여 양반 출신으로 부정한 짓을 하거나 세 번 이상 개가한 여성의 소행을 적어 그 자손의 관직 등용을 제한했다. 이러한 정절과 관련된 법과 제도는 국가 차원에서 정절 여성을 발굴하는 동시에 여성의 음란행위를 감시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정절 이데올로기’는 순수혈통을 지켜내기 위해 여성들의 성을 구속하였고, 이 범주에서 벗어난 여성들에게는 유·무형의 가혹한 처벌이 주어졌다. 가부장적 사회의 잣대로 이분화한 순결한 여성과 타락한 여성으로 재단한다. 우리는 후자에 속하는 여성에 대한 경멸의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을 ‘뭔가 당할 만했겠지’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심지어 가슴이 파인 상의에, 허벅지가 훤하게 드러나는 짧은 치마 같은 야한 느낌이 드는 옷차림이 성범죄를 유발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여성들이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식의 여성책임론이 나온다. 이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내려오는 여성의 정조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여성이 열녀라는 타이틀을 받으면 그 여성뿐만 아니라 가문 전체에도 영광이었다. 하지만,  한 여성이 여성으로 사는 삶을 희생하는 조건으로만 사회적 출세를, 그것도 다 늙은 다음에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여성 개인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조선 시대를 절대적으로 지배한 유교라는 사상과 잦은 외적의 침입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의 수난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조선을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장벽 ‘정절 이데올로기’에 부딪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조선 시대 여인들은 수천수만 명이 훨씬 넘게 존재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열녀의 죽음이 과연 그 시대에 타인에 의해 정당하게 칭송될 수 있는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이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는지 역사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에 희생된 이름 없는 여인들의 넋을 기리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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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속 여행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1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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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자, 지구의 중심으로!”

(『지구 속 여행』 중에서, 157쪽)

 

 

 

 

호기심이 많은 열한 살의 소년 쥘은 동갑내기 사촌누이를 무척 좋아했다. 고운 빛깔이 나는 산호 목걸이를 누이에게 선물로 준다면 누이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산호 목걸이는 무척 귀하고 값비싼 물건이었다. 쥘은 산호 목걸이를 얻을 수 있는 인도에 가기로 했다. 마침 마을 주변에 있는 항구에 가면 인도로 가는 원양선을 볼 수 있었다. 쥘은 그 배를 타서 인도로 갈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동양의 세계로 향하는 쥘의 모험은 실패하고 말았다. 아버지에게 발각되고 만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쥘은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이때부터 쥘은 아버지에게 “앞으로는 상상 속에서만 여행하겠다”고 약속한다. 어른이 된 쥘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률을 공부하게 되고, 평범한 법률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쥘은 어린 시절에 활짝 펴지 못한 모험의 동경을 잊지 않았다. 무한한 상상 속에서 미지의 세계를 마음껏 탐험했다. 상상의 여행 속에서 그려지는 신비로운 장면 그리고 여행의 생생한 감동을 잊지 않으려고 쥘은 펜을 잡았다. 그가 처음으로 여행을 한 곳은 아프리카.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얻고 있던 열기구를 탔다. 쥘 베른의 ‘경이의 여행’(Voyages extraordinaires) 시리즈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만약에 쥘 베른이 인도로 떠날 수 있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항해사(Navigator)가 되었을 것이다. 베른은 상상의 여행을 하는 항해사가 되었고, 그가 쓴 ‘경이의 여행’ 시리즈는 독자들에게 ‘꿈속에서 여행하는 법’을 알려주는 훌륭한 내비게이션(Navigation)이 되었다. 베른이 없었다면, 모험심이 가득한 소년 쥘과 같은 어린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꿈속에서 여행하는 기회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쥘 베른의 ‘경이의 여행’ 시리즈는 그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실감 나게 소개하고 있다.

 

『지구 속 여행』(Voyage au centre de la Terre)은 ‘경이의 여행’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은 TV 드라마, 영화를 통해 약 10회 정도 영상으로 재탄생되었다. 2008년에 개봉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의 원작도 『지구 속 여행』이다. 아이슬란드의 사화산 분화구를 통해 지구 중심을 여행하며 지질시대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이다.

 

 

 

 

 

 

원작과 영화는 지구 속으로 여행을 한다는 점에서 줄거리는 같지만, 내용상 약간의 차이가 있다. 영화에서는 지질학자인 주인공 트레버와 그의 조카 션이 모험의 주인공이다. 오래전에 실종된 트레버의 형이 남긴 상자 속에 <지구 속 여행>이라는 고서를 발견하게 된다. 트레버는 조카인 션과 함께 암호를 해독하는데 그것은 지구 속 세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였다. 암호에 적힌 대로 트레버와 션은 사화산 분화구가 있는 아이슬란드로 향한다.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트레버와 션은 지구 속 여행에 합류하게 되는 산악가이드 한나를 만나게 된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원작에서도 지질학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광물학 교수 오토 리덴브로크와 그의 조카 악셀이 등장한다. 리덴브로크 교수는 희귀본 수집광이다. 아이슬란드의 고대 학자 스노리 스투를루손이 쓴 책을 읽다가 암호가 적힌 양피지를 발견한다. 양피지를 쓴 사람은 아이슬란드의 연금술사이자 학자인 아르네 사크누셈. 아이슬란드의 연금술사는 자신이 지구 속으로 여행한 사실을 기묘한 암호 형태로 남긴 것이다. 리덴브로크 일행과 함께 지구 속 여행을 함께하는 안내인은 한스 비엘케라는 남성이다. 과묵한 성격이지만, 무모하고도 위험한 여행에 끝까지 동행한다.

 

 

 

 

 

 

 

리덴브로크는 지구 속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무척 궁금해 한다. 그 곳을 진짜로 발견하면 과학의 역사에 새롭게 한 획을 긋는 동시에 기존의 학설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획기적인 발견이 된다. 하지만, 그 당시나 지금이나 지구 속을 여행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지구 속으로 들어갈수록 마그마로 인해 지열의 온도가 높아진다. 지열은 인간과 기계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뜨겁다. 그렇지만, 베른은 지구 속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상상력을 펼친다. 베른이 활동했던 당시 유럽은 ‘지구공동설’(地球空洞說)이 학자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지구 속은 텅 비어 있는 공간이며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남극과 북극에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가설이 되었지만, ‘지구공동설’도 한 때 주류 과학의 화제였다. ‘핼리 혜성’의 등장을 예측했던 영국의 천문학자 에드먼드 헬리가 지구 속 구조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고, 수학자 오일러는 지구 중심에 1000km 직경의 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구공동설은 과학이 발달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새롭게 변형되어 대중 앞에 나타난다. 20세기 들어 지구공동설 학자 레이먼드 버나드 박사는 1969년에 쓴 『The Hollow Earth』를 통해 UFO가 지구 안에서 나오며, 고리 성운이 지구 속이 비어있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근거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에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을 사칭한 트위터  UFO에 대한 극비 문서를 폭로하며 지구공동설을 주장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만약에 베른의 소설 속 내용처럼 지구 속에 또 다른 지구가 있다면 과학적으로 가능할까. 리덴브로크 일행은 지중해와 비슷한 넓은 바다와 구름이 떠 있는 대기 그리고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고대 동식물을 보게 된다. 그렇지만, ‘지구 속의 또 다른 지구’는 과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사람도, 동물도 살 수 없는 불가능한 상상의 세계에 불과하다. 또, 리덴브로크 일행은 절대로 지구의 중심으로 향하는 길을 걸을 수 없다. 뉴턴의 구각정리에 의하면 지구 속 공간에 작용되는 중력의 합이 0이기 때문에 그 곳에 들어간 인간은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중력이 없는 세계는 곧 인간과 동식물마저 살 수 없는 죽음의 세계다. 

 

그렇다고 베른이 과학적 이론에 문외한 통속소설 작가 수준은 아니다. 지금도 베른의 작품이 널리 읽혀지고, 영화나 드라마도 재탄생되는 이유는 근대 과학적 지식에 모험과 판타지를 결합한 소설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베른의 ‘경이의 여행’ 시리즈는 독자의 이목을 끌 수 있는 흥미로운 관심사에 자신만의 상상력을 첨가하는 스토리텔링이 만난 환상적인 작품이다. 독자는 베른이 창조한 세계가 허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진짜 같은 허구’의 세계에 매료된다. 소설 속 세상을 마치 실존의 세상으로 믿는 ‘베르니안’(그의 넘치는 상상력에 심취되어 소설 속 세상을 마치 실존의 세상으로 믿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이라 불리는 독자들까지 생겨날 정도이다.

 

『지구 속 여행』에 당대의 과학자 이름이 실명 그대로 나온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의 지리적 환경과 화산 분화구 주변의 풍경을 장황하게 느껴질 정도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야기에 사실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기상천외한 지구 속 모험이 얼른 시작되기를 바라는 독자라면 이 내용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베른의 뛰어난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는 인상적인 장면이기 때문에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읽을 수 없을 것이다.

 

 

 

 

 

베른의 『지구 속 여행』을 읽었으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전 4권 / 열린책들, 2013~2014년)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제3인류』를 먼저 읽은 독자라면 이 작품이 베른의 『지구 속 여행』에게 큰 빚을 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SF 소설과 과학소설의 창시자로 인정받고, 지금도 새롭게 변용되는 쥘 베른의 영향력은 경이적이다.

 

 


P.S. 다음 ‘경이의 여행’ 목적지는 달이다. 거대한 포탄을 타고 달에 가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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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정 작가의 전작을 읽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작품이 나온 연도를 무조건 확인한다. 그리고 작품 출판 연도순으로 독서를 한다. 좀 특이한 방식이다. 책 많이 있는 분들 중에서도 이런 식으로 독서법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많이 없을 것 같다. 사실 작품 하나하나 출판 연도순을 확인하는 것이 무척 까다롭고, 번거로운 작업이다. 책 뒤에 있는 작품 연보와 간단하면서도 의외로 가내수공업에 가까운 구글링으로 정리한다. 그런데 책에 나온 작품 연보만 믿어서는 안 된다. 가끔 인터넷에서 나오는 작품 연보와 살짝 다르기 때문이다. 귀찮지만, 둘 다 꼼꼼하게 확인한다. 굳이 이런 작업을 하는 이유는 작가의 작품들을 발표 연도별로 정리하면 작품세계의 변천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기별로 작품세계를 구분할 수 있고, 전작을 다 읽게 되면 한 번 전체 작품에 대해 간략하게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달 전부터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들을 읽고 있는데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발표 연도순으로 정리해봤다. 참고한 도서는 국내에서 유일한 포의 단편 전집으로 알려진 『우울과 몽상』(하늘연못, 2002년)이다. 영문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확인한 내용이라서 연도가 잘못 표기될 수도 있다. 앞으로도 수정하거나 추가해야 될 내용이 있으면 댓글을 통해 알려도 좋다. 포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나름 도움이 되는 참고자료가 되었으면 좋겠다.

 

 

(※ 글 쓰는 공간이 초과되어 나머지 작품 목록은 '에드거 앨런 포 (단편 #2)'라는 제목의 페이퍼로 따로 작성했다)

 

 

 

 

 

작품명

 

원어명 (발표 연도)

메첸거슈타인

Metzengerstein (1832년)

봉봉

Bon-Bon

(1832년, Originally "The Bargain Lost")

병 속에서 발견된 수기

MS. Found in a Bottle (1833년)

밀회의 약속

The Assignation (1834년)

베레니스

Berenice (1835년)

모렐라

Morella (1835년)

남 추어올리기

Lionizing (1835년)

한스 팔의 환상 여행

The Unparalleled Adventure of One Hans Pfaall (1835년)

페스트 대왕

King Pest (1835년)

그림자 : 한 편의 동화

Shadow - A Parable (1835년)

침묵 : 한 편의 우화

Silence - A Fable (1838년)

리지아

Ligeia (1838년)

블랙우드식 기사 작성법

How to Write a Blackwood Article (1838년)

곤경

A Predicament (1838년)

종루 속의 악마

The Devil in the Belfry (1839년)

어셔 가의 몰락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1839년)

윌리엄 윌슨

William Wilson (1839년)

에이러스와 차미언의 대화

The Conversation of Eiros and Charmion (1839년)

비즈니스맨

The Business Man (1840년)

군중 속의 남자

The Man of the Crowd (1840년)

모르그 가의 살인

The Murders in the Rue Morgue (1841년)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지다

A Descent into the Maelström (1841년)

요정의 섬

The Island of the Fay (1841년)

모노스와 우나의 대화

The Colloquy of Monos and Una

(1841년)

악마에게 머리를 걸지 마라

Never Bet the Devil Your Head

(1841년)

엘레오노라

Eleonora (1841년)

일주일에 세 번 있는 일요일

Three Sundays in a Week (1841년)

타원형 초상화

The Oval Portrait (1842년)

적사병 가면

The Masque of the Red Death (1842년)

마리 로제 미스터리

The Mystery of Marie Rogêt (1842년)

저승과 진자

The Pit and the Pendulum

(1842~1843년)

고자질하는 심장

The Tell-Tale Heart (1843년)

황금 곤충

The Gold-Bug (18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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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크:  '에드거 앨런 포 작품목록 (단편 #1)'

 

 

 

 

검은 고양이

The Black Cat (1843년)

사기술

Diddling (1843년)

안경

The Spectacles (1844년)

누더기 산 이야기

A Tale of the Ragged Mountains

(1844년)

열기구 보고서

The ballon Hoax (1844년)

때 이른 매장

The Premature Burial (1844년)

최면의 계시

Mesmeric Revelation (1844년)

직사각형 상자

The Oblong Box (1844년)

범인은 너다

Thou Art the Man (1844년)

싱검 밥 귀하의 문학 인생

The Literary Life of Thingum Bob, Esq. (1844년)

도둑맞은 편지

The Purloined Letter (1844~1845년)

천일야화의 천두 번째 이야기

The Thousand-and-Second Tale of Scheherazade (1845년)

미라와의 대담

Some Words with a Mummy (1845년)

말의 힘

The Power of Words (1845년)

심술궂은 어린 악마

The Imp of the Perverse (1845년)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광인 치료법

The System of Doctor Tarr and Professor Fether (1845년)

M. 발드마르 사건의 진실

The Facts in the Case of M. Valdemar (1845년)

죽음의 머리 : 스핑크스

The Sphinx (1846년)

아몬틸라도 술통

The Cask of Amontillado (1846년)

아른하임의 영토

The Domain of Arnheim (1847년)

열기구 종달새 호에 탑승하여

2848년 4월 1일

Mellonta Tauta (1849년)

절름발이 개구리

Hop-Frog (1849년)

폰 켐펠렌과 그의 발견

Von Kempelen and His Discovery (1849년)

X투성이의 글

X-ing a Paragrab (1849년)

랜더의 별장

The Landor's Cottage (1849년,

‘아른하임의 영토’ 후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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