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 살림지식총서 417
김문경 지음 / 살림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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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같지만 다른 곡의 해석

 

클래식 애호가들은 흔히 “같은 곡이라 하더라도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고 말한다.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지휘자로 평가받는 카라얀과 번스타인을 예로 들겠다.

 

같은 곡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지휘하는 이들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게 되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들의 지휘 장면을 시간으로 재면 같은 부분을 연주하는 데 번스타인은 25초, 카라얀은 21초가 걸린다고 한다. 즉 템포가 다르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번스타인이 느릴 때는 느리게 빠를 때는 더 빠르게 하는 스타일이라면 카라얀은 전반적으로 빠르고 박력 있다고 볼 수 있다. 긴 교향곡 전체를 비교해서 듣는다면 이런 차이는 더 명확해질 것이다. 곡에 대한 해석은 물론 지휘자마다 표정도 손짓도 다양하다. 이처럼 직접 콘서트장에 클래식 음악 연주를 듣는다면 음반을 통해서 느낄 수 없는 지휘자의 음악적 해석을 만끽할 수 있다. 그들의 뛰어난 지휘가 없다면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고 심장을 울리게 만드는 연주가 되지 못했으리라. 

 

음악가들 중에서도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 위대한 음악가를 부를 때 마에스트로나 비르투오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악기 연주에 있어서 매우 뛰어난 테크닉과 실력을 가진 연주자를 비르투오조(Virtuoso, 명인 名人)라고 부르고, 특별히 지휘자일 경우에 그 사람을 가리켜 마에스트로(Maestro)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Scene #2  개성이 뚜렷한 20인의 지휘자 

 

클래식 음악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유명 지휘자 20명의 예술혼과 일생을 간략하게 조명하고 정리한 『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에는 그야말로 지휘봉 하나로 청중, 아니 전 세계인의 귀와 마음을 압도했던 명지휘자들이 등장한다.

 

흔히 지휘자라고 하면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가 먼저 떠올릴 것이다. 기인의 풍모가 느껴질 정도로 고집불통인데다가 남들 앞에서 독설을 마다하지 않는다. 만약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여기 나오는 몇 몇 지휘자들은 상당히 억울함을 느낄 수 있겠다.

 

그래도 독선적이면서도 자신의 음악 세계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완벽형’ 혹은 ‘독재자형'인 강마에의 스타일과 가까운 지휘자라면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일 것이다. 이탈리아판 강마에라고 보면 된다.

 

토스카니니가 추구한 음악세계는 완벽한 음(音) 자체였다. 그는 음의 멜로디와 세밀한 흐름까지 완벽하게 암기할 정도로 오로지 음악에 충실했다. 연주자 개인의 감정에 따른 군더더기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지는 음과 템포와 리듬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을 거부했다. 오직 작곡가의 의도에만 충실했다. 이로써 그의 지휘는 음악을 객관적인 궤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그 같은 지휘를 고집하는 그를 ‘독재자’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는 리허설 때 단원들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휘봉을 꺾거나 악보를 찢는 등 과격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지휘봉이 쉽게 부러지지 않으면 손수건이나 윗옷을 찢기도 했다. 틀린 음이나 어설픈 음을 발견하면 ‘노! 노!’(No! No!)라고 불같이 호령을 토해냈고, 단원들은 그런 그를 ‘토스카노노’라고 불렀다. 그의 ‘No!' 성격은 진짜 독재자도 포기할 정도로 완고했다.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의 찬가 연주를 거부하여 그는 무솔리니의 눈 밖에 나서 미국으로 망명했으니 실은 무솔리니가 고집을 굽혔다는 일화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진실에 어떻든지 간에 아무리 권력으로 세계를 호령하는 독재자도 지휘봉 하나로 음악을 호령하는 고집스러운 독재자를 이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어쩌면 강마에를 뛰어넘을 정도로 독설을 입에 달고 사는 지휘자가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세르지우 첼리비다케이다. 그의 독설을 겨냥하는 상대는 재미있게도 이 책에서 등장하는 명지휘자들이다. 그의 독설 집중 포격을 맞은 지휘자의 이름을 열거하면 혀를 내두른다. 토스카니니, 카를 뵘, 번스타인 심지어 ‘음악의 황제’ 카라얀까지도. 첼리비다케는 카라얀을 ‘유능한 비즈니스맨 아니면 귀가 먹은 인간’이라고 언급했다.

 

토스카니니, 첼리비다케와 반대로 브루노 발터는 유순한 성격의 지휘자라고 보면 된다. 토스카니니, 푸르트뱅글러의 명성에 약간 가려진 면이 있지만, 그래도 당대의 여느 지휘자들보다 인간적이고 겸손했으며 이러한 그의 인품이 언제나 음악에 잘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그의 음악적 해석은 상당히 온순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이 든다.

 

푸르트벵글러는 탁월한 지휘 능력에 지금도 클래식 마니아 사이에 회자될 정도로 훌륭한 녹음의 명반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나치 협력자’라는 낙인 때문에 명성마저도 흠 잡히고 마는 불행한 지휘자다. 그는 나치의 ‘제3제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나치 친위대 공연이나 히틀러의 생일 축연을 지휘한 경력으로 인해 제2차 세계 대전 후 전범재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음악 활동이 나치 선전의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사실을 알았기에 각종 핑계를 대면서 나치와의 관계에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무죄 판결을 받아 베를린필 상임 지휘자로 복귀해 죽을 때까지 재직했다.

 

그의 지휘 자세는 독특하다. 그의 지휘를 바라본 소프라노 가수는 ‘눈에 보이는 음악의 물결’이라고 표현했지만, 연주할 때 그의 손짓을 주목해야 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지휘자였다. 지휘 자세가 어색할 정도로 부자연스럽고 격정적인 동작은 흡사 경련에 가깝다. 그래서 단원들은 어디서 음을 내야 할지 난감할 정도였다고 한다.

 

 

 

 Scene #3  강마에가 그리워지는 이유  

 

『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는 지휘자의 유명한 일화를 통해 그들의 예술성을 접근하고 있어서 지휘자의 세계를 알고 싶은 독자를 위한 흥미로운 클래식 음악 입문서로 적당하다. 그리고 20인의 지휘자별 디스코그래피 중에 들을만한 명반 CD와 연주 현황 녹음 영상과 일부 음반의 미흡한 부분까지 정리하고 있다. 생존해 있는 현역 지휘자들이 좀 더 추가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여기에 소개된 지휘자들은 꼭 기억해 두면 좋은 마에스트로들이다.

 

가끔 우리는 과거의 명장을 그리워할 때가 있다. 지금도 카라얀의 흔적을 그리워하고, 그의 명반과 연주 실황 영상을 감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거 명성을 날리던 옛 지휘자들을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꼭 옛날 지휘자라서 그런 걸까. 예술의 본령은 개성인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토스카니니, 카라얀, 번스타인 같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개성이 뚜렷한 지휘자를 보기가 어려워졌다. 지휘자의 개성이 사라질수록 그 음악의 개성도 사라진다. 그저 ‘지휘’라는 행위만 남아있을 뿐이다.

 

지휘자를 바라보고 선호하는 이유는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진짜 위대한 지휘자는 곡을 철저히 분석하고 오케스트라를 혹독하게 훈련시킬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일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우리가 강마에의 모습을 그렇게도 열광했던 것일까. 과연 먼 훗날에 토스카니니나 첼리비다케처럼 강마에 같은 명지휘자가 등장하게 될까. 갑자기 드라마 속 가상의 지휘자인 강마에가 그리워진다. 오히려 그런 괴팍한 모습이 지휘자 본인에게는 오로지 완벽한 음악으로 빚어내기 위해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자신만의 역량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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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 예술-인간 정신의 위대한 발현 세트 - 전5권 - 플라톤 아카데미 행복한 책날개 선정도서 살림지식총서
권용준 외 지음 / 살림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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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 아카데미 행복한 책날개 선정도서 - 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 (김문경, 살림지식총서 417)

 

 

 

 Scene #1 같지만, 다른 곡의 해석

 

클래식 애호가들은 흔히 “같은 곡이라 하더라도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고 말한다.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지휘자로 평가받는 카라얀과 번스타인을 예로 들겠다.

 

같은 곡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지휘하는 이들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게 되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들의 지휘 장면을 시간으로 재면 같은 부분을 연주하는 데 번스타인은 25초, 카라얀은 21초가 걸린다고 한다. 즉 템포가 다르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번스타인이 느릴 때는 느리게 빠를 때는 더 빠르게 하는 스타일이라면 카라얀은 전반적으로 빠르고 박력 있다고 볼 수 있다. 긴 교향곡 전체를 비교해서 듣는다면 이런 차이는 더 명확해질 것이다.

 

곡에 대한 해석은 물론 지휘자마다 표정도 손짓도 다양하다. 이처럼 직접 콘서트장에 클래식 음악 연주를 듣는다면 음반을 통해서 느낄 수 없는 지휘자의 음악적 해석을 만끽할 수 있다. 그들의 뛰어난 지휘가 없다면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고 심장을 울리게 만드는 연주가 되지 못했으리라.

 

 

 

 Scene #2 개성이 뚜렷한 지휘자들

 

음악가들 중에서도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 위대한 음악가를 부를 때 마에스트로나 비르투오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악기 연주에 있어서 매우 뛰어난 테크닉과 실력을 가진 연주자를 비르투오조(Virtuoso, 명인 名人)라고 부르고, 특별히 지휘자일 경우에 그 사람을 가리켜 마에스트로(Maestro)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클래식 음악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유명 지휘자 20명의 예술혼과 일생을 간략하게 조명하고 정리한 『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에는 그야말로 지휘봉 하나로 청중, 아니 전 세계인의 귀와 마음을 압도했던 명지휘자들이 등장한다.

 

흔히 지휘자라고 하면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가 먼저 떠올릴 것이다. 기인의 풍모가 느껴질 정도로 고집불통인데다가 남들 앞에서 독설을 마다하지 않는다. 만약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여기 나오는 몇 몇 지휘자들은 상당히 억울함을 느낄 수 있겠다.

 

그래도 독선적이면서도 자신의 음악 세계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완벽형’ 혹은 ‘독재자형'인 강마에의 스타일과 가까운 지휘자라면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일 것이다. 이탈리아판 강마에라고 보면 된다.

 

토스카니니가 추구한 음악세계는 완벽한 음(音) 자체였다. 그는 음의 멜로디와 세밀한 흐름까지 완벽하게 암기할 정도로 오로지 음악에 충실했다. 연주자 개인의 감정에 따른 군더더기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지는 음과 템포와 리듬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을 거부했다. 오직 작곡가의 의도에만 충실했다. 이로써 그의 지휘는 음악을 객관적인 궤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그 같은 지휘를 고집하는 그를 ‘독재자’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는 리허설 때 단원들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휘봉을 꺾거나 악보를 찢는 등 과격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지휘봉이 쉽게 부러지지 않으면 손수건이나 윗옷을 찢기도 했다. 틀린 음이나 어설픈 음을 발견하면 ‘노! 노!’(No! No!)라고 불같이 호령을 토해냈고, 단원들은 그런 그를 ‘토스카노노’라고 불렀다. 그의 ‘No!' 성격은 진짜 독재자도 포기할 정도로 완고했다.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의 찬가 연주를 거부하여 그는 무솔리니의 눈 밖에 나서 미국으로 망명했으니 실은 무솔리니가 고집을 굽혔다는 일화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진실에 어떻든지 간에 아무리 권력으로 세계를 호령하는 독재자도 지휘봉 하나로 음악을 호령하는 고집스러운 독재자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어쩌면 강마에를 뛰어넘을 정도로 독설을 입에 달고 사는 지휘자가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세르지우 첼리비다케이다. 그의 독설을 겨냥하는 상대는 재미있게도 이 책에서 등장하는 명지휘자들이다. 그의 독설 집중 포격을 맞은 지휘자의 이름을 열거하면 혀를 내두른다. 토스카니니, 카를 뵘, 번스타인 심지어 ‘음악의 황제’ 카라얀까지도. 첼리비다케는 카라얀을 ‘유능한 비즈니스맨 아니면 귀가 먹은 인간’이라고 언급했다.

 

토스카니니, 첼리비다케와 반대로 브루노 발터는 유순한 성격의 지휘자라고 보면 된다. 토스카니니, 푸르트뱅글러의 명성에 약간 가려진 면이 있지만, 그래도 당대의 여느 지휘자들보다 인간적이고 겸손했으며 이러한 그의 인품이 언제나 음악에 잘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그의 음악적 해석은 상당히 온순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이 든다.

 

푸르트벵글러는 탁월한 지휘 능력에 지금도 클래식 마니아 사이에 회자될 정도로 훌륭한 녹음의 명반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나치 협력자’라는 낙인 때문에 명성마저도 흠 잡히고 마는 불행한 지휘자다. 그는 나치의 ‘제3제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나치 친위대 공연이나 히틀러의 생일 축연을 지휘한 경력으로 인해 제2차 세계 대전 후 전범재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음악 활동이 나치 선전의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사실을 알았기에 각종 핑계를 대면서 나치와의 관계에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무죄 판결을 받아 베를린필 상임 지휘자로 복귀해 죽을 때까지 재직했다.

 

그의 지휘 자세는 독특하다. 그의 지휘를 바라본 소프라노 가수는 ‘눈에 보이는 음악의 물결’이라고 표현했지만, 연주할 때 그의 손짓을 주목해야 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지휘자였다. 지휘 자세가 어색할 정도로 부자연스럽고 격정적인 동작은 흡사 경련에 가깝다. 그래서 단원들은 어디서 음을 내야 할지 난감할 정도였다고 한다.

 

 

 

 Scene #3 과거의 지휘자들이 그리운 이유

 

『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는 지휘자의 유명한 일화를 통해 그들의 예술성을 접근하고 있어서 지휘자의 세계를 알고 싶은 독자를 위한 흥미로운 클래식 음악 입문서로 적당하다. 그리고 20인의 지휘자별 디스코그래피 중에 들을만한 명반 CD와 연주 현황 녹음 영상과 일부 음반의 미흡한 부분까지 정리하고 있다. 생존해 있는 현역 지휘자들이 좀 더 추가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여기에 소개된 지휘자들은 꼭 기억해 두면 좋은 마에스트로들이다.

 

가끔 우리는 과거의 명장을 그리워할 때가 있다. 지금도 카라얀의 흔적을 그리워하고, 그의 명반과 연주 실황 영상을 감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거 명성을 날리던 옛 지휘자들을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꼭 옛날 지휘자라서 그런 걸까. 예술의 본령은 개성인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토스카니니, 카라얀, 번스타인 같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개성이 뚜렷한 지휘자를 보기가 어려워졌다. 지휘자의 개성이 사라질수록 그 음악의 개성도 사라진다. 그저 ‘지휘’라는 행위만 남아있을 뿐이다.

 

지휘자를 바라보고 선호하는 이유는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진짜 위대한 지휘자는 곡을 철저히 분석하고 오케스트라를 혹독하게 훈련시킬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일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우리가 강마에의 모습을 그렇게도 열광했던 것일까. 과연 먼 훗날에 토스카니니나 첼리비다케처럼 강마에 같은 명지휘자가 등장하게 될까. 우리가 그동안 생각했던 강마메와 지휘자의 관계는 잘못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오히려 그런 괴팍한 모습이 지휘자 본인에게는 오로지 완벽한 음악으로 빚어내기 위해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자신만의 역량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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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예술 살림지식총서 382
전완경 지음 / 살림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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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아라베스크, 이슬람 미술의 정수     

 

길을 걷다 보면 보도블록을 새로 교체하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모래와 블록을 까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유심히 보았다면 블록의 모양이 모두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똑같은 모양의 블록을 규칙적으로 배열하면 금방 길거리가 새단장을 한다. 건물의 바닥이나 화장실 안쪽 벽 등도 보도블록과 같이 타일 조각들이 규칙적이면서 빈틈없이, 서로 겹치지 않게 붙어 있다.

 

이처럼 주변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벽이나 바닥 등 평면을 빈틈없이, 서로 겹치지 않으면서 규칙적인 배열을 이루는 도형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빈틈없고 겹치지 않게 평면을 덮는 것’을 수학에서는 테셀레이션(Tesselation)이라 한다. 테셀레이션은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퀼트, 옷, 깔개, 가구의 타일, 건축물 등 세계 각 지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왼쪽) 알함브라 궁전의 아라베스크 문양 / (오른쪽) M.C. 에셔  「해방」  1955년

 

 

테셀레이션으로 가장 유명한 곳으로 단연 알함브라 궁전을 꼽을 수 있다. 이곳의 마루, 벽, 천장에 테셀레이션되어 있는 반복적인 문양들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테셀레이션 작품을 남긴 M.C. 에셔에게는 작품의 원천이자 일생을 바친 테마이기도 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가보지 못한 곳. 알함브라 궁전은 1238년 이슬람 나르스 왕조에 의해 세워져서 1492년 이사벨라 여왕의 스페인 왕국에 함락될 때까지 250여 년간 황금기의 왕실 영화와 권력을 보여 준다. 22명의 왕들은 치세하는 동안 궁전을 부분적으로 완성해 갔는데 내부에 들어가면 스페인에서의 무어 건축양식 절정기에 조성된 섬세한 이슬람 미술의 기품이 돋보이는 조각과 아기자기한 정원문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화려한 꽃과 식물의 문양이 추상적으로 어우러진 아라베스크(Arabesque)는 디자인의 원조이며 이슬람 미술의 정수다.

 

아라베스크는 양식화된 식물 모티브와 줄기 등을 뜻하는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어 아라베스코(arabesco)에서 유래했다. 아라베스크 무늬의 기원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지중해적 유산이다. 이슬람 예술가들은 자연을 양식화해 표현했다. 무한한 창조력을 가진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모든 것은 그 자체의 끊임없는 흐름을 가지며 아라베스크가 이러한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슬람은 코란의 강력한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미학적으로 통일된 예술적 문명이다. 이슬람은 신만이 영원하고, 다른 모든 것은 바뀔 수 있으며 덧없고 일시적이고 우연하다고 믿는다. 전능한 신 알라의 창조적 행위 없이는 세상에 어떠한 형태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의 창조 이외에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은 없다. 모방할 수 없는 신의 작업을 모방하거나 흉내 내려는 시도는 불경스러운 것으로 간주한다. 모든 창조물 위에 서 있는, 이름으로밖에 부를 수 없는, 무엇과도 닮지 않은 그러한 초월적이고 무한한 신 앞에서 인간의 자리는 더 이상 커질 수 없으며 예술에서의 표현 또한 지극히 한정적이다.

 

인물과 동물 문양을 금지한 이슬람 미술에서는 추상적이고 장식적인 표현이 발달했다. 이러한 미학적 감각은 아라베스크에서 절정을 이룬다. 아라베스크는 자연에서 가져왔지만 너무나 단순화시켜서 그것이 무엇인지 거의 알아보지 못한다. 장식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비현실적 무늬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신의 무한한 완전성에 비해 일시적이고 변하는 삶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장식 무늬의 무형적인 성격은 이슬람 건축에 쓰이는 재료인 치장 벽토, 벽돌, 타일, 마른 진흙과 잘 어울린다. 이로써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드는데, 이런 추상적이고 장식적인 느낌이 든다.

 

 

 

 Scene #2  종교가 빚어낸 화려한 이슬람 예술    

 

이슬람 미술의 역사는 식물의 형상을 기하학적 형상으로 변화시킨 역사다. 기하학적, 수학적 사색을 문양으로 만들었다. 이것을 이슬람의 미학적 가치에 적용해 비율과 형태를 확실히 했다. 무엇을 표현하느냐보다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더 신경을 쓰는 이슬람 문화에서 서체는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려졌다. 글은 신의 말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서체를 사용한다. 아랍어와 문자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슬람 서체는 코란의 보급과 함께 급속도로 확산됐고, 서체는 이슬람 미술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이슬람 세계의 통치자들은 서체에 조예가 깊었으며, 코란의 필사 작업에 참여한 서예가들은 상당한 자부심을 가졌다.

 

무슬림도 기독교인만큼이나 자신의 종교에 헌신적이었지만 그들이 이룬 미술은 기독교 교회가 후원자 노릇을 하며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 서양미술과는 분명 다르다. 서양미술의 주된 형식은 회화와 조각이었다.

 

이 둘은 예배에 필요한 종교적 이미지를 창조했다. 그러나 이슬람 미술에는 거창한 그림이나 조각이 거의 없다. 대신 서양 미술에서 부차적이고 장식적인 것, 예를 들어 책이나 직물 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책에는 아름답고 섬세한 그림이 삽화로 들어갔다. 직물은 종이, 그림이 폭 넓게 사용되기 이전에 이미 예술적 감각을 전파하는 편리한 수단으로 사용됐다.

 

이슬람 미술은 이슬람 세계의 변화도 반영한다. 이슬람 건축의 전통은 모스크가 출발점이다. 모스크는 무하마드가 무슬림 공동체의 중심이자 기도실로 지었다는 집에서 유래한다. 모스크에는 예루살렘의 바위 돔, 이스파한의 마스지디 샤 등이 있고 궁전들은 대부분 파괴되어 문헌에 존재하나 그라나다의 알람브라궁전, 세빌의 알-카자르 궁전은 온전하게 남아 있다.

 

 

 

 

 

이슬람 건축하면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이 바로 타지마할이다. 아그라에 위치한 타지마할은 무굴제국 5대 황제인 샤자한이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을 위해 세운 무덤 궁전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보면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한 이야기다. 그러나 국가 재정이 기울어질 만큼 공사하는 데 들어간 비용이 어마어마하고 많은 사람이 공사 도중에 숨을 거둔 아픈 사연도 담고 있다. 공사에는 매일 2만 명이 넘는 일꾼들이 동원되었고, 마침내 22년 만에 무덤이 완성되었다. 네 귀퉁이에는 '미나레트'라고 불리는 40m 높이의 탑이 세워져 있는데 신기하게도 각각 약 7도 정도 바깥으로 기울어져 있다. 탑을 일부러 기울이게 만든 이유는 강가의 약한 지반 때문에 건물이 내려앉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Scene #3  공존의 문화가 깃든 이슬람 예술   

 

아직까지도 이슬람 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매우 제한적일 듯하다. 중동 건설 붐과 석유자원, ‘세계의 화약고’로 대변되는 정세불안 등 경제·정치적 측면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뒀기 때문이다. ‘9·11테러’ 이후로 이슬람 세계를 조명하는 책들이 나오긴 했지만 종교나 사회, 국제정치 분야 등으로 한정됐다.

 

그러나 널리 분포된 이슬람 미술은 이슬람교의 포용성으로 인해 조화와 균형을 기본으로 하되 토착민족의 전통과 융화되어 지역마다 독특한 문화를 창출해 냈으며 기독교 문화와도 교호하며 공존하였다. 그래서 이슬람 문명이 거대한 문명의 용광로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슬람 예술』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오는 귀한 책이다. 제목과 달리 미술 분야뿐 아니라 이슬람의 예술 전반, 나아가 건축, 음악까지도 두루 소개된다. 아라베스크 무늬로 대표되는 기하학적 장식문양부터, 종교와 예술이 어우러진 웅장한 모스크 건축, 이슬람 예술의 독창성을 대변하는 서예, 유럽 중세 음악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수준 높은 음악 등이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예술을 발전시켰고, 동서양 문화예술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 이슬람 세계의 또 다른 면이 잘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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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 예술-인간 정신의 위대한 발현 세트 - 전5권 - 플라톤 아카데미 행복한 책날개 선정도서 살림지식총서
권용준 외 지음 / 살림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  플라톤 아카데미 행복한 책날개 선정도서 - 이슬람 예술 (전완경 저, 살림지식총서 382)

 

 

 

 Scene #1  아라베스크, 이슬람 미술의 정수     

 

길을 걷다 보면 보도블록을 새로 교체하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모래와 블록을 까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유심히 보았다면 블록의 모양이 모두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똑같은 모양의 블록을 규칙적으로 배열하면 금방 길거리가 새단장을 한다. 건물의 바닥이나 화장실 안쪽 벽 등도 보도블록과 같이 타일 조각들이 규칙적이면서 빈틈없이, 서로 겹치지 않게 붙어 있다.

 

이처럼 주변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벽이나 바닥 등 평면을 빈틈없이, 서로 겹치지 않으면서 규칙적인 배열을 이루는 도형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빈틈없고 겹치지 않게 평면을 덮는 것’을 수학에서는 테셀레이션(Tesselation)이라 한다. 테셀레이션은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퀼트, 옷, 깔개, 가구의 타일, 건축물 등 세계 각 지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왼쪽) 알함브라 궁전의 아라베스크 문양 / (오른쪽) M.C. 에셔  「해방」  1955년

 

 

테셀레이션으로 가장 유명한 곳으로 단연 알함브라 궁전을 꼽을 수 있다. 이곳의 마루, 벽, 천장에 테셀레이션되어 있는 반복적인 문양들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테셀레이션 작품을 남긴 M.C. 에셔에게는 작품의 원천이자 일생을 바친 테마이기도 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가보지 못한 곳. 알함브라 궁전은 1238년 이슬람 나르스 왕조에 의해 세워져서 1492년 이사벨라 여왕의 스페인 왕국에 함락될 때까지 250여 년간 황금기의 왕실 영화와 권력을 보여 준다. 22명의 왕들은 치세하는 동안 궁전을 부분적으로 완성해 갔는데 내부에 들어가면 스페인에서의 무어 건축양식 절정기에 조성된 섬세한 이슬람 미술의 기품이 돋보이는 조각과 아기자기한 정원문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화려한 꽃과 식물의 문양이 추상적으로 어우러진 아라베스크(Arabesque)는 디자인의 원조이며 이슬람 미술의 정수다.

 

아라베스크는 양식화된 식물 모티브와 줄기 등을 뜻하는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어 아라베스코(arabesco)에서 유래했다. 아라베스크 무늬의 기원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지중해적 유산이다. 이슬람 예술가들은 자연을 양식화해 표현했다. 무한한 창조력을 가진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모든 것은 그 자체의 끊임없는 흐름을 가지며 아라베스크가 이러한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슬람은 코란의 강력한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미학적으로 통일된 예술적 문명이다. 이슬람은 신만이 영원하고, 다른 모든 것은 바뀔 수 있으며 덧없고 일시적이고 우연하다고 믿는다. 전능한 신 알라의 창조적 행위 없이는 세상에 어떠한 형태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의 창조 이외에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은 없다. 모방할 수 없는 신의 작업을 모방하거나 흉내 내려는 시도는 불경스러운 것으로 간주한다. 모든 창조물 위에 서 있는, 이름으로밖에 부를 수 없는, 무엇과도 닮지 않은 그러한 초월적이고 무한한 신 앞에서 인간의 자리는 더 이상 커질 수 없으며 예술에서의 표현 또한 지극히 한정적이다.

 

인물과 동물 문양을 금지한 이슬람 미술에서는 추상적이고 장식적인 표현이 발달했다. 이러한 미학적 감각은 아라베스크에서 절정을 이룬다. 아라베스크는 자연에서 가져왔지만 너무나 단순화시켜서 그것이 무엇인지 거의 알아보지 못한다. 장식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비현실적 무늬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신의 무한한 완전성에 비해 일시적이고 변하는 삶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장식 무늬의 무형적인 성격은 이슬람 건축에 쓰이는 재료인 치장 벽토, 벽돌, 타일, 마른 진흙과 잘 어울린다. 이로써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드는데, 이런 추상적이고 장식적인 느낌이 든다.

 

 

 

 Scene #2  종교가 빚어낸 화려한 이슬람 예술    

 

이슬람 미술의 역사는 식물의 형상을 기하학적 형상으로 변화시킨 역사다. 기하학적, 수학적 사색을 문양으로 만들었다. 이것을 이슬람의 미학적 가치에 적용해 비율과 형태를 확실히 했다. 무엇을 표현하느냐보다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더 신경을 쓰는 이슬람 문화에서 서체는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려졌다. 글은 신의 말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서체를 사용한다. 아랍어와 문자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슬람 서체는 코란의 보급과 함께 급속도로 확산됐고, 서체는 이슬람 미술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이슬람 세계의 통치자들은 서체에 조예가 깊었으며, 코란의 필사 작업에 참여한 서예가들은 상당한 자부심을 가졌다.

 

무슬림도 기독교인만큼이나 자신의 종교에 헌신적이었지만 그들이 이룬 미술은 기독교 교회가 후원자 노릇을 하며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 서양미술과는 분명 다르다. 서양미술의 주된 형식은 회화와 조각이었다.

 

이 둘은 예배에 필요한 종교적 이미지를 창조했다. 그러나 이슬람 미술에는 거창한 그림이나 조각이 거의 없다. 대신 서양 미술에서 부차적이고 장식적인 것, 예를 들어 책이나 직물 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책에는 아름답고 섬세한 그림이 삽화로 들어갔다. 직물은 종이, 그림이 폭 넓게 사용되기 이전에 이미 예술적 감각을 전파하는 편리한 수단으로 사용됐다.

 

이슬람 미술은 이슬람 세계의 변화도 반영한다. 이슬람 건축의 전통은 모스크가 출발점이다. 모스크는 무하마드가 무슬림 공동체의 중심이자 기도실로 지었다는 집에서 유래한다. 모스크에는 예루살렘의 바위 돔, 이스파한의 마스지디 샤 등이 있고 궁전들은 대부분 파괴되어 문헌에 존재하나 그라나다의 알람브라궁전, 세빌의 알-카자르 궁전은 온전하게 남아 있다.

 

 

 

 

이슬람 건축하면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이 바로 타지마할이다. 아그라에 위치한 타지마할은 무굴제국 5대 황제인 샤자한이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을 위해 세운 무덤 궁전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보면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한 이야기다. 그러나 국가 재정이 기울어질 만큼 공사하는 데 들어간 비용이 어마어마하고 많은 사람이 공사 도중에 숨을 거둔 아픈 사연도 담고 있다. 공사에는 매일 2만 명이 넘는 일꾼들이 동원되었고, 마침내 22년 만에 무덤이 완성되었다. 네 귀퉁이에는 '미나레트'라고 불리는 40m 높이의 탑이 세워져 있는데 신기하게도 각각 약 7도 정도 바깥으로 기울어져 있다. 탑을 일부러 기울이게 만든 이유는 강가의 약한 지반 때문에 건물이 내려앉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Scene #3  공존의 문화가 깃든 이슬람 예술   

 

아직까지도 이슬람 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매우 제한적일 듯하다. 중동 건설 붐과 석유자원, ‘세계의 화약고’로 대변되는 정세불안 등 경제·정치적 측면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뒀기 때문이다. ‘9·11테러’ 이후로 이슬람 세계를 조명하는 책들이 나오긴 했지만 종교나 사회, 국제정치 분야 등으로 한정됐다.

 

그러나 널리 분포된 이슬람 미술은 이슬람교의 포용성으로 인해 조화와 균형을 기본으로 하되 토착민족의 전통과 융화되어 지역마다 독특한 문화를 창출해 냈으며 기독교 문화와도 교호하며 공존하였다. 그래서 이슬람 문명이 거대한 문명의 용광로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슬람 예술』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오는 귀한 책이다. 제목과 달리 미술 분야뿐 아니라 이슬람의 예술 전반, 나아가 건축, 음악까지도 두루 소개된다. 아라베스크 무늬로 대표되는 기하학적 장식문양부터, 종교와 예술이 어우러진 웅장한 모스크 건축, 이슬람 예술의 독창성을 대변하는 서예, 유럽 중세 음악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수준 높은 음악 등이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예술을 발전시켰고, 동서양 문화예술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 이슬람 세계의 또 다른 면이 잘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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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베이컨  「자화상」  1969년

 

 

20세기 최대의 중심 이슈는 인간이었다. 인류는 신과 자연에 대해 탐구하고 과학과 물질문명의 발전을 위해 마치 기차가 달리듯 역사의 레일 위를 열심히 달려왔으나 어느 날 갑자기 방향을 잃고 자기 혼돈에 빠졌다. 인간은 자기 외적 요소에서 해답을 구할 수 없고 끝내 문제는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베케트의 소설에서처럼 인간은 고도를 기다리며 “지금 어디인가? 지금 누구인가? 지금 언제인가?”라고 묻는 절망적인 존재가 되어있었다.

 

 

 

 

 

 

 

 

 

 

 

 

 

 

 

 

미술에서 이런 전후의 절망을 대표적으로 표현한 인물이 프랜시스 베이컨이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그는 경마훈련사인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제도권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성(性)에 대해서도 아주 부끄러운 기억의 성장배경을 갖고 있었다. 베이컨은 미술과 철학 그리고 법학에도 뛰어났던 그는 동성애자였기에 남자와의 관계를 혐오스럽게 여긴 부모님으로부터 쫓겨났으며, 프랑스, 영국, 유럽을 돌아다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고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고, 후원자를 만나 명성을 얻게 된다.

 

16세에 집을 떠나 베를린과 파리를 방황하며 실내장식공으로 생계를 꾸려나간 그에게 파리에서 본 피카소 전시회는 생을 바꾸어 놓아 1929년 런던에서 스스로 배운 화가의 길을 걸어 나갔다.30세를 넘어서야 수줍음벽을 겨우 이겨낼 수 있었지만 도박과 음주벽은 그의 일생을 늘 따라 다녔다.

 

 

 

 

루시안 프로이트  「세폭화, 조지 다이어를 애도하며」  1971년

 

 

파리에서 전시회 전, 동성 연인인 조지 다이어의 자살로 인해 그의 모습과 죽음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그려나간다. 소리 없는 사물의 목소리를 느끼고 그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죽음의 상태에서 깨어나게 하여 아름다운 즐거움과 쾌락을 포기한 억제된 욕망의 댓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자극하고 각성시키려 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특히 영화가 시작되는 맨 앞에 베이컨의 그림 두 점이 등장한다. 그 두 점의 그림이 각각 한 번씩, 그리고 세 번째 쇼트에는 두 그림을 동시에 나란히 등장한다.

 

 

 

 

 

프랜시스 베이컨  「이사벨 로손의 초상화를 위한 연구」  1964년

 

 

절규하는 듯한 노랑색 벽과 맑은 초록색 바닥, 그 위의 도발적인 오렌지색 매트리스에 길게 누워있는 남자와 등받이가 있는 어두운 녹색조의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또 한 남자. 두 사람 모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뭉개져 있다. 그것은 그와 각별한 우정을 나누던 화가, 「루시안 프로이드의 초상과 「이사벨 로손의 초상화를 위한 연구」였는데 모두 1964년작이다.

 

그것들은 앞으로 전개될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에 더없이 적절한 그림이다. 이 영화는 1973년 개봉 때 정면누드와 왜곡된 섹스행위로 상영금지가 되어 15년 뒤에나 해금이 된, 한국에서는 24년 뒤에야 비로소 개봉되었다. 그러나 정작은 외설적이지도 그다지 에로틱하지도 않은 철학적이고 실존적인 고독이 압도한 영화였다. 쟌느의 총에 맞아 쓰러져가면서도 베란다 구석에 씹던 껌을 붙여두고 죽어가는 말론 브란도의 얼굴은 영락없는 베이컨의 초상을 연상하게 된다.

 

 

 

 

 

프랜시스 베이컨  「말하고 있는 조지 다이어의 초상」  1966년 

 

 

「말하고 있는 조지 다이어의 초상」도 그가 즐겨 다루는 주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인간의 살아 있는 현실'을 다루는 화가이다. 그의 주제는 영국 예술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금기사항을 위반하고 있으며 인간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직시하는 철학만 같다. 「말하고 있는 조지 다이어의 초상」에는 그의 유년이 보인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성장배경이란 어떤 식으로든 작품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의 부모는 정착하지 않고 영국과 아일랜드를 오가며 살았고 끊임없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거나, 아니면 각각의 나라 안에서도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는 외할머니의 집 같은 어떤 특정한 장소들에 늘 애착을 갖고 있었는데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피리에 있는 그 집에서 살았다. 그 집은 정원을 마주보고 있는 모든 방들이 둥글게 구부러져 있었는데 꽤 큰 집이었다고 한다. 그가 그린 여러 그림들에는 곡선 모양의 배경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유년의 그 방들을 떠올린 것이었다.

 

이 그림의 천정에 걸려 있는 전구의 움직이는 술 장식만 보아도 초상의 공간 배경이 나선형이다. 이것들이 극도로 단순, 간결화되어 있기 때문에 인물은 그와 반대로 더욱 거친 형상이 부각되어 보인다.

 

「말하고 있는 조지 다이어의 초상」은 마치 빌로드천 같은 자주색 바닥과 보랏빛 벽, 그리고 갈색 천정과 원근법에 따라 처리된 남보랏빛 문을 배경으로 무언가 말을 하며 앉아 있다.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베이컨 자신의 말이 그 답변은 아닐까. 분명히 우리는 육신이다. 우리는 미래의 시체인 셈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의 고통과 외로움, 절망, 절규 그리고 공포의 감정들을 이성을 배제한 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해낸다. 그는 초상화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야만적이면서 격렬하고도 왜곡된 모습으로 진화시킴으로 고립된 형태를 나타낸다. 그는 비극적인 현실과 혐오스러운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 나이프를 사용하고, 유리에 비치는 반사광을 이용, 실제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사진과 다양한 사진 수집을 이용하여 내면의 초상을 그리는 기법 등으로 인간에 대한 충격적이고 비관적인 내면의 이야기를 연출한다.

 

 

 

 

프랜시스 베이컨  「누워있는 인물」  1959년

 

 

「누워 있는 인물」은 방에 갇혀 있는 절망의 한 인간을 뒤틀린 모습으로, 절규하듯, 쓰러지듯, 자포자기하듯, 아니면 튀어나가서 거역하려는 듯한 여러 이미지로 그려놓고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절대적 상황아래 놓인 외로운 홀로의 존재라는 인간 실존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그림 속의 인물은 공간에 의해 보호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갇혀져 있는 느낌이다. 그가 누워 있는 듯한 침대는 다만 윤곽만 드러내고 밑으로 길게 깔린 초록의 카펫만이 그곳이 공간으로 둘러싸인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검게 칠해져 있어 밤을 방불케 하고 있는데 우측의 수직과 하단의 대각선으로 난 가느다란 선만이 그곳이 막혀 있는 듯한 상황임을 시사한다.

 

 

 

 

프랜시스 베이컨  「십자가형」  1965년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사실적이면서 대단히 암시적으로 감각의 이면을 들춰내고 싶었다. 모든 예술이 다 그런 게 아닌가? (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이 그린 수많은 초상화들은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뜨린다. 신체를 구성하는 살도 뼈로부터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들뢰즈는 베이컨의 그림을 통해서 감각이 실제 신체의 뼈와 살에 달라붙은 표면의 형상을 말하고자 했다. 고통에서 고함으로! 얼굴에서 머리로! 이것이 들뢰즈가 베이컨의 그림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감각의 논리이다.

 

 

 

 

 

 

 

 

 

 

 

 

 

 

 

 

들뢰즈는 신체는 형상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형상은 구상이나 추상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구상은 신체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며 추상은 신체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대신 형상은 신체가 반응하는 감각을 그대로 표현한다. 고통의 감각은 고함에서 나오는 것이며, 얼굴의 감각은 머리와 고기라는 신체 표면에서 나오는 것이다.

 

베이컨의 입체적 회화는 경악에 가깝다. 육체와 영혼. 베이컨은 인간의 영혼을 들여다보기 위해 기꺼이 그 가죽을 벗기는 연쇄살인마와 같다. 다만 그가 실제 살인마와 다른 것은 그는 예술을 통해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상관관계를 다룬다는 것이다. 고깃덩어리는 그의 예술적 질료였다.

 

부풀리고 뒤틀린 인간은 얼마나 쉽게 무너지고 상처 입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반면 야수 같은 모습은 인간이 지닌 동물적 파괴성을 드러낸다. 베이컨의 그림은 또한 생명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면서도 동시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는 현대인의 이율배반적 속성을 폭로한다. 베이컨은 우리 내면에 깊숙이 숨겨진 육체와 정신의 부끄러운 본질을 빠끔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 그 형태의 잔인성에도 불구하고 심연 깊숙이 파고들어 우리의 미적 쾌감을 사정없이 뒤흔들어 놓았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우리 주변에는 이미 그것의 원초적 적대감을 듬뿍 담고 있다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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