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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1 - 1000년 로마의 시작 ㅣ 리비우스 로마사 1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3월
평점 :
로마만큼 다양한 인간 군상이 스쳐 지나간 시대는 많지 않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민음사, 2008~2010)나 테오도르 몸젠의 《로마사》(푸른역사, 2013~2015, 현재 3권까지 출간)처럼 통사를 다룬 책도 유용하겠지만, 로마의 생생한 모습에 접근하고 싶다면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읽어보면 어떨까. 로마를 이해하려면 리비우스의 책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 리비우스는 142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이루어진 《로마사》를 썼다. 그는 열권씩 묶어 순차적으로 집필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문헌은 1~10권과 21~45권이다. 이번에 첫선을 보인 《리비우스 로마사 1 : 1000년 로마의 시작》(현대지성, 2018)은 원서 1~5권을 번역한 것이다.
로마의 역사는 바구니에 담겨 테베레 강물에 버려진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부터 시작된다. 목축업자 파우스툴루스는 어미 늑대가 쌍둥이 형제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을 데려가 키운다. 목축업자 아내의 보살핌 속에 성장한 형제는 형제는 테베레 강 하구에서 점령한 지역을 분할해 통치한다. 그러나 형제 사이는 나빠졌고 형이 동생을 죽여 오늘날의 로마를 건국한다. ‘로마’라는 국호는 건국자 로물루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오만왕’ 타르퀴니우스의 아들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콜라티누스 장군의 아내 루크레티아에 흑심을 품었다. 콜라티누스가 집을 비운 사이에 타르퀴니우스는 루크레티아를 위협하여 성폭행했다. 루크레티아는 남편과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난 뒤 자살하고 말았다. 오만왕의 폭정에 불만을 품은 백성들은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의 만행까지 전해 듣자 분노를 터뜨렸다. 오만왕이 폐위되면서 왕정은 무너졌고 공화정이 수립되었다. 리비우스는 루크레티아 사건의 경위와 급박하게 조성된 혁명의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다.
로마를 지탱해 온 정의와 공정, 그리고 희생이라는 도덕적 가치들은 초대 집정관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50여 년 동안 익숙해진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한 대개혁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브루투스는 무엇보다 왕정복고 시도라는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브루투스의 두 아들이 왕정복고를 시도한 타르퀴니우스 가의 음모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난다. 브루투스는 두 아들의 사형 집행을 지시하고 지켜본다. 공화정으로 이행한 직후의 로마 내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만약 집정관이 로마 내부 결속에 힘을 쏟지 않았으면 막 싹이 튼 공화정이 뿌리째 뽑혀버렸을 것이다. 사익보다 공익의 논리를 앞세운 브루투스의 지도력에 감화된 로마인들은 단결했다. 공적인 의무 앞에 사욕을 엄격히 분별해내고 자제하는 로마인의 도덕적 엄정함과 희생정신은 현대 독자들에게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리비우스는 역사 속 인물 각각의 개성을 살리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의 전개 과정을 극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로마사》를 번역한 이종인은 리비우스의 위대함을 ‘예술적 서술 방식’이라고 평가한다. 실증주의 역사관을 고집한 몸젠의 ‘과학적 서술 방식’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가이우스 무키우스는 혼자서 에트루리아 왕을 암살하려다가 적군에 잡히고 만다. 그는 왕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오른손을 불에 그슬려 고통을 참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이우스의 용기 있는 행동에 감탄한 왕은 그를 풀어주고 로마와 휴전 협정을 맺는다. 가이우스의 오른손은 큰 화상을 입은 바람에 영영 쓸 수 없게 되지만, 그의 용기에 감탄한 로마인들은 그에게 ‘무키우스 스카이볼라’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부여한다. ‘스카이볼라’는 왼손잡이를 뜻하는 단어이다. 원서 2권에서 무키우스 스카이볼라의 말은 리비우스의 손에 거쳐 이렇게 살아난다.
“나는 로마인이다. 내 이름은 가이우스 무키우스. 나는 나의 적인 당신을 죽이려고 여기에 왔다. 나는 남을 죽이려고 하는 용기 못지않게 기꺼이 죽을 용기도 있다. 용감하게 행동에 나서고 그에 따라 고통을 당하는 것이 우리 로마인의 행동 방식이다.” (141쪽)
권력이든 부든 모든 것은 세월과 함께 스러지고 만다. 그리고 인간은 삶의 유한성을 벗어나기 힘들기에 리비우스는 로마 제국의 영광을 기술하는 일에 자신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필생의 역작을 남기려는 자신의 업적이 잊힐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리비우스가 로마의 역사에 매료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 역사 속에는 ‘무한히 다양한 인간 경험’(원서 1권 서문, 17쪽)이 있고, 역사가는 그것을 기록한다. 그래서 리비우스는 인간 경험을 상당히 현실적으로 그린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신과 함께 살았던 로마인들에게 묻는다. “로마의 과거를 보면서 지금의 우리(로마인)는 잘살고 있는가?”
리비우스는 초창기 로마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서 교훈을 얻으려고 한다. 초기 로마의 성장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무엇일까. 그는 로마인의 정신에 스며든 도덕적 가치에 주목한다. 정의와 공정, 희생은 로마 초기부터 쇠락하기 직전까지 로마의 진정한 강점이었다. 탐욕과 부패한 권력에서 나오는 악덕은 미풍양속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번영한 국가도 앓는 병을 로마도 예외 없이 경험한다. 리비우스는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약이 ‘역사의 연구’라고 말한다. 악덕은 로마뿐 아니라 초기의 고성장을 경험한 거의 모든 국가가 앓는 병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책의 서문에는 로마사와 로마인에게 배우는 교훈이 적혀 있다. 이런 점에서 리비우스가 들려주는 역사에 대한 통찰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