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 털보 과학관장이 들려주는 세상물정의 과학 저도 어렵습니다만 1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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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라면 누구나 과학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연의 힘을 알리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대중이 과학을 이해해야 한다. 누군가 대중에게 과학의 가치를 이해시켜야 한다. ‘과학을 들려주는(보여주는) 과학자’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대중의 공감을 얻고 소통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야 한다. 어려운 과학을 쉽게 설명해보자는 시도는 오래됐다. 그러나 과학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과학 초심자를 위한 기본적인 책이 많은데도 대부분 사람은 과학을 어렵다고 여기고 기피한다. 사람들이 과학책을 안 읽는 것일까, 아니면 과학 초심자를 위한 책이 어려운 것일까?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은 칼 세이건의 말을 빌리면서 “과학은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너무 쉬운 과학’은 단순 암기 지식으로 변질된다. 과학을 공부해서 ‘생각’한다면 급변하는 시대 속에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생긴다. ‘너무 쉬운 과학’은 재미가 없다. ‘너무 쉬운 과학’은 누군가를 가르칠 때 사용하는 지식이다.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받은 지식은 머릿속에 남지 못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지식을 가르치기보다는 상대에게 실마리를 주고 스스로 지식을 찾아내도록 전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크라테스식 공부법으로 지식을 습득하려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너 자신을 알라”이다.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이 글귀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의 수준을 똑바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수준을 알았을 때, 비로소 겸손함을 배우고 진리를 사랑하게 되며 이러한 진리를 배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된다.

 

이정모 관장이 강조하는 과학 공부는 소크라테스식 공부법과 통한다. 이정모 관장은 과학이 ‘실패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과학자인 본인도 과학은 잘 모른다고 말한다. 그는 과학을 공부하면서 겪는 실패와 좌절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겸손한 태도를 갖춘 사람은 진리를 사랑한다. 기꺼이 배울 마음을 가지면 지식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면 겸손해진다. 그래야 지식을 배울 마음을 갖게 된다. 과학은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소크라테스와 이정모 관장 이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수염’이다. 수염 없는 소크라테스와 이정모 관장의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다.

 

이정모 관장의 신작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바틀비, 2018)은 살면서 알아두면 좋은 과학 상식만 들려주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그냥 암기하고 지나치기 쉬운 과학 상식을 우리 일상과 세상과 엮어가면서 생각 거리를 준다. 우리는 왜 감자와 가지를 먹어야 하는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감자와 가지를 먹는 이유를 모른다.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해서 감자와 가지를 먹는 건 아닐 거다. 모든 식물은 광합성 작용을 한다. 식물은 태양이 주는 빛을 흡수해 광합성을 하고 열매를 맺는다. 태양에너지를 이용해서 광합성을 하는 식물은 지구 생태계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인간과 동물은 식물을 먹어서 그 에너지의 일부를 사용하는 생명체이다. 광합성 원리를 이해한다면 감자와 가지를 먹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이정모 관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감자와 가지를 먹고 있는 게 아니라 ‘햇빛을 먹고 있는 것’이다. 편식하는 아이들을 달래는 것은 부모와 아이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아이들은 특히 ‘채소’ 먹기를 아예 거부해 부모의 애가 타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부모는 자신이 먼저 채소를 즐겨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이들이 채소도 맛이 있다는 사실을 알도록 해주면 좋습니다. 아이들에게 채소를 먹일 때 ‘몸에 좋고 맛도 좋은 햇빛’을 먹고 있다고 알려주면 어떨까.

 

이 세상에 지적인 과학자들이 많은데 간혹 합리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특히 어떤 과학자들은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해 실험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학술논문을 표절하는 일을 저지른다. 앞서 말했듯이 과학은 ‘실패하는 학문’이며 과학자나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과학이 주는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그래서 이정모 관장은 과학관이 ‘과학을 보는 곳’이 아니라 ‘과학을 경험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에 당연히 ‘실패’도 포함된다. 손으로 과학을 만져보는 경험은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다. 직접 과학 실험을 하면서 실패한 결과를 얻는 것도 마찬가지다. 실패에 익숙해져야 과학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고, ‘훌륭한 과학자’로 성장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실패를 자랑스럽게 전시하는 과학관이 많아져야 한다. 그러면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달라질 것이다. 과학은 무모하다. 그런 ‘무모한 도전’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과학이 최고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과학자들이 생소한 분야의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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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3-26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은 생각하는 방법이라는 표현이 가장
와 닿네요.

예전에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황씨
사건의 폐해 그리고 오로지 성공지상주의
에 매몰된 사회에서 실패를 인정하는 일은
여전히 요원해 보이기만 합니다.

cyrus 2018-03-26 16:46   좋아요 0 | URL
정부가 적극적으로 과학 연구에 투자를 하더라도 ‘실패하는 과학‘이라는 인식이 형성되지 않은 이상 도전의식이 넘치고 정직한 과학자들을 육성할 수 없어요.

2018-03-26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26 16:48   좋아요 1 | URL
‘비뚤어진 생각을 한 사람‘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보다 해악이 많고, 위험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