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후드 프로젝트 - 유전자와 문화의 이중 나선 사이에서
데이비드 슬론 윌슨 지음, 황연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과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무한한 자연의 진리를 알아내려는 과학자들의 지적 분야인가? 아니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학문인가? 우리는 과학이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바꾸는 실용 학문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생각해도 과학을 공부해야겠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대부분 사람, 특히 문과 출신들은 과학이 수학 다음으로 어려운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과학적인 사고 없이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문과생으로 수능시험을 준비하기 전까지 고등학생 1학년의 나는 과학을 암기 과목처럼 공부했다. 이런 잘못된 학습법은 대학생이 될 때까지 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늦바람이 들어 독서로 과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이런 학습법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학의 묘미를 점점 이해할수록 과학을 재미없게 공부한 것을 후회했다. 과학은 정말로 우리의 생활과는 관계가 없고, 어렵기만 한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과거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의식과 함께 비로소 과학은 존재 의미가 있게 된다. 과학이 오직 인간에게만 고유한 학문이라면 우리는 과학을 수행 도구로 삼아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진화생물학자 데이비드 슬론 윌슨(David Sloan Wilson)《네이버후드 프로젝트》(사이언스북스, 2017)는 진화론이 인간의 삶의 질을 궁극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진화론의 유용성에 천착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5년간에 걸친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미국 뉴욕주 도시 빙엄턴(Binghamton)의 변천 과정, 인구 구조, 빈부 격차 등을 진화론적 관점으로 분석한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빙엄턴 네이버후드 프로젝트(BNP)’이라고 명명한다. 《네이버후드 프로젝트》는 도시에 대한 과학적 실험의 결과물이다. 600쪽이 넘는 이 책을 보는 독자는 누구나 이 한 권의 책을 낳기 위해서 저자와 BNP에 참여한 사람들이 흘린 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과학이 종교와 문학 영역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어떤 의미에서 과학이 좋은 학문인지를 역설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종교와 같은 문화도 진화한다고 주장한 진화론자답게 ‘진화적 패러다임(Evolutionary Paradigm)이 인간 조건을 이해하기 위한 통찰을 제공’[1]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과학은 인간을 둘러싼 외부 세상을 이해(경청: listening)하며 현존하는 세상의 문제들을 개선하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하기(고찰: reflecting) 위한 학문이다.

 

진화론의 대가로서의 면모만이 이 책을 채우고 있지 않다. 진화를 ‘진보’와 동일시하는 인식을 비판하는 부분에서, 그리고 과학과 종교를 조화시켜 문화적 다양성으로 인류의 진화 과정을 설명한 테아르 드 샤르댕(Teilhard de Chardin)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우리는 저자의 색다른 진화론적 관점을 확인하게 된다. ‘신 무신론자’로 분류되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 샘 해리스(Sam Harris),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를 비판하는 대목도 눈여겨 볼만 하다. 재미있게도 윌슨 역시 무신론자이다. 그러나 그는 종교를 인류에게 해로운 것으로 규정하는 신 무신론자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또 종교를 없앤다고 해서 인간의 비합리적인 믿음 및 행동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유전자와 문화의 이중 나선 사이에서’라는 부제가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저자는 이 부제를 통해 유전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가 얽힌 복잡한 상호 작용을 간명하게 드러낸다. 즉, 인류는 유전적 진화에 덧붙여 문화적 진화를 진행해왔으며, 두 진화는 상호작용으로 연결되었다. 유전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류가 어떻게, 왜 출현하고 살아남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실마리가 된다. 이 실마리를 놓치면 인류, 우리의 미래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상할 수 없게 된다. 진화는 양면의 동전이다. 인류는 이 땅에 처음 등장하자마자 가장 오래된 ‘운명의 동전’, 즉 ‘진화’라는 이름의 동전을 던졌다. 매번 결정적 고비를 맞이할 때면 삶과 직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전을 던졌다. 다행히 인류는 몇 차례 ‘행운’이라는 결과를 얻어내 순탄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기세등등한 인류가 동전의 영향력을 잊어버린다면 인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중대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잃어버리게 된다. 윌슨은 인류가 ‘진화 과정의 현명한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한다. 따라서 과학은 실생활과 분리될 수 없으며, 진화론은 역동적인 우리의 유전자, 문화를 이해하게 해주는 유용한 이론이다.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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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3-06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유전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의 상호작용을 보니 저자가 비판한 「이기적 유전자」의 밈(meme)이 떠오르네요.

cyrus 2018-03-06 15:20   좋아요 1 | URL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테아르 드 샤르댕을 옹호하는 저자의 주장이 흥미로웠습니다. <네이버후드 프로젝트>를 읽기 전에 역시 저자가 쓴 <종교는 진화한다>를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