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이론 - 입문
애너매리 야고스 지음, 박이은실 옮김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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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Queer). 생소한 단어라서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퀴어 문화축제’, ‘퀴어 영화’는 들어봤어도 ‘퀴어’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퀴어는 ‘괴상한’을 뜻하는 영단어로, ‘동성애’를 뜻하는 속어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에 사용되는 퀴어는 모든 성 소수자(LGBT: Lesbian 레즈비언, Gay 게이, Bisexual 양성애자, Transgender 트랜스젠더 혹은 Transsexual 트랜스섹슈얼)를 일컫는 용어로 쓰고 있다. 외국에 비해 한정된 성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에선 성 소수자에 대한 개념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를 혐오하고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퀴어 문화축제는 성 소수자들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한편 사회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자들에게 성 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퀴어는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퀴어 이론(Queer theory)을 처음으로 제시한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퀴어의 규범화는 결국 퀴어의 비극적 종말이 될 것이다[1]라고 우려했다. 퀴어는 시대 및 사회 상황에 따라 앞으로 얼마든지 유동적일 수 있다. 그리고 퀴어 이론은 젠더 이분법을 강요하는 이성애 중심주의(Heterosexism)에 의문을 던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이론이다. 이성애는 사회 존립 기반을 형성하는 안정적인 인간관계 모델이다. 이것에 의존하는 규범적인 젠더 이분법을 전복하는 것이 퀴어 이론의 목적이다. 그래도 퀴어와 퀴어 이론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호주에서 활동 중인 퀴어 학자 애너매리 야고스(Annamarie Jagose)의 설명을 참고하면 된다.

 

 

거칠게 말하면 퀴어란 염색체적 성(sex), 젠더(gender) 그리고 성적 욕망 사이의 소위 안정된 관계(이성애-cyrus 주)에 모순들이 있다는 것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태도 혹은 분석 모델을 가리킨다. ‘자연 그대로의’ 섹슈얼리티란 존재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퀴어는 ‘남자’ 혹은 ‘여자’라는 말과 같은 명백히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는 것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퀴어 이론 : 입문》 10쪽) 

 

 

따라서 퀴어와 퀴어 이론을 ‘규범적인 이론’으로 고정해서 말하는 것은 유동적인 퀴어 정체성에 부합되지 않는다. 퀴어 이론은 ‘가능성들의 구역(a zone of possibilities)’[2]이다. 퀴어 정체성은 누구와 싸우고 연대하는가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한다.

 

야고스가 쓴 《퀴어 이론 : 입문》(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2)퀴어 정체성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고, 차별과 혐오에 맞서 어떻게 투쟁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퀴어 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가벼운 입문서’로 취급하는 건 오산이다. 앞서 말했듯이 퀴어 이론은 유동적이다. 퀴어를 이해하는 입장들이 제각각 다르고 모순되기 때문에 퀴어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다. 야고스는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발전해 온 동성애 및 레즈비언 담론의 지형과 역사적 맥락을 들려주기만 한다. 일반[3]은 퀴어를 ‘성 소수자’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은 편협하고 피상적인 간단명료한 퀴어의 정의를 거부한다. 그래서 이성애자인 일반에 속한 독자는 이 책을 읽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책을 펼치는 내내 독자는 이제껏 살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젠더 개념과 가치들을 새로 생각해보게 된다. 당신은 이성애와 섹슈얼리티를 하나하나 따져 보는 퀴어 이론의 광범위한 시도에 놀라게 될 것이다.

 

야고스는 퀴어 이론의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퀴어 이론을 비판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까지 살핀다. 이 책에는 ‘게이 남성-레즈비언’, ‘MTF트랜스젠더-여성’의 연대를 반대하는 쉴라 제프리스(Sheila Jeffreys)의 입장이 언급된다. 야고스는 게이 남성을 가부장적 가치를 고집하는 남성으로 분류하여 비판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입장이 ‘동성애 혐오’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성 소수자가 살기에는 숨이 턱턱 막히는 곳이다. 동성을 사랑하고 성을 바꾸려 하는 것이 중대한 범죄일까? 퀴어 이론을 공부하면서 성 소수자의 현실을 알아보자. 그리고 ‘다수’, ‘일반’에 속한 당신의 생각이 정말로 옳은지를 스스로 질문해보자. 그것이 《퀴어 이론 : 입문》을 읽기 위한 목적이다.

 

 

 

 

 

[1] 《퀴어 이론 : 입문》 8쪽

[2] 《퀴어 이론 : 입문》 8쪽

[3] 이성애자. ‘성 소수자(특히 동성애자)’를 뜻하는 이반(二般, 異般)과 대비되는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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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8-02-25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수가 소수에게 무심코 행하는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름을 틀림이라 억지부리며. .

cyrus 2018-02-26 06:45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나와 ‘다른 대상‘이 낯설게 느껴지면 그것을 ‘틀린(비정상적인) 대상‘으로 간주하여 기피하고, 혐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