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느끼면 피부가 닭살처럼 우툴두툴하게 변한다. 몸의 반응에 따른 자연스러운 신체 현상이다. 추위에 느끼면 뇌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신체 각 기관에 명령을 내리고,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털을 세우는 피부의 입모근이 수축한다. 피부가 닭살 돋는 것처럼 변하는 이유다. 그런데 사시사철 닭살 피부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 닭살 피부가 심한 사람은 여름이 두렵다. 반소매 티셔츠, 반바지를 입지 못한다. 닭살 피부도 피부 질환이다. 정식 병명은 모공각화증이다. 피부 모공에 각질이 쌓여 발생하는 증상이다. 가려움증이 없기 때문에 외관상 문제 외에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도드라진 모공을 억지로 제거하면 피부가 벗겨져 상할 수 있다.

 

내 피부는 각질이 잘 생기는 건성 피부라서 모공각화증이 잘 생긴다. 잘 씻고 다니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항상 닭살 피부를 볼 때마다 신기하게 생각했다. 닭살 피부가 피부 질환인지 몰랐던 어머니는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는 본인의 음식 취향 때문에 닭살 피부가 생겼다고 믿었다. 어머니는 닭고기, 특히 퍽퍽한 가슴살을 좋아한다. 내가 어머니 자궁 속에 있을 때도 어머니는 닭고기를 즐겨 드셨다. 순진무구했던 나는 어머니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 닭살 피부가 생닭에서 볼 수 있는 우툴두툴한 돌기와 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생각은 과학적으로 맞지 않는 황당한 속설이다. 특정 음식 과다 섭취가 태아의 피부 발달에 영향을 준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 임산부가 우유를 자주 마시면 태아의 피부는 백설 공주처럼 하얗게 될까? 그럴 일은 절대로 없다.

 

 

 

 

 

 

 

 

 

 

 

 

 

 

 

 

 

* [절판] 얀 본데손 《자연의 장난 원숭이 여인》 (일빛, 1999)

 

 

 

임산부의 모든 행동이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는 속설은 어머니의 양육 태도, 즉 모성이 태아 또는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여기는 육아 문화와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활동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은 팔자가 세다고 좋지 않게 봤다. ‘드센 여성’으로 성장하는 아기를 원하지 않는 임산부들은 집에 혼자 있을 때도 조신하게 행동했다. 지금으로선 황당한 일이지만, 옛날에는 태아를 위해서 임산부가 당연히 따라야 할 행동 요령이었다.

 

과거 서양에서는 모성 영향론(maternal impression)을 의학적 통설로 여겼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모성 영향론을 신봉한 의학자 중 한 사람이다. 고대 그리스의 귀부인이 검은 피부의 아기를 낳았다. 귀부인과 그녀의 남편 모두 백인이었다. 남편은 부인을 간통죄로 고소했다. 법정 증인을 나선 히포크라테스는 기이한 출산의 원인을 무어(Moors,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사람들)인이 그려진 그림이라고 주장했다. 부인의 방에 무어인을 묘사한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히포크라테스는 임신 중인 부인이 그 그림을 자주 보는 바람에 배 속에 있는 태아의 피부가 검은색으로 변했다고 주장했다.

 

 

 

 

 

 

 

 

 

 

 

 

 

 

 

 

 

 

* 플라톤, 천병희 역 《국가》 (도서출판 숲, 2013)

* 플라톤, 박종현 역 《국가 · 정체》 (서광사, 2005)

 

 

 

 

플라톤(Plato)은 자신의 책 《국가》에서 태아가 출생 이전부터 생명을 갖는다고 믿었지만, 사회와 가족의 복지가 태아의 생명권보다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그는 기형아가 태어나면 곧바로 내다 버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기형아 출산을 막기 위해선 기형적인 신체를 가진 사람의 외출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성 영향론에 대한 믿음은 고대 로마,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까지 지속하였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모성 영향론을 믿었고, 모성 영향론을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모성 영향론을 믿는 사람들은 어머니의 사소한 행동과 생각들이 태아의 발달과정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상상력이 지나친 사람들은 모성 영향론을 바탕으로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환상적인 가공인물을 만들었다. 흉측한 모습의 물고기를 본 임산부가 ‘물고기 인간’을 낳았다는 허구적인 이야기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고양이를 쓰다듬어서 ‘고양이 인간’을 낳은 임산부 이야기도 등장했다.

 

20세기 초 미국의 임산부들은 임신 기간 집에서 피아노를 열심히 쳤다. 그녀들은 피아노를 열심히 연주하면 음악적 재능을 가진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 속설은 아기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속설이 만들어진 목적은 임산부가 얌전하게 행동하도록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임산부가 바람을 피울까 봐 걱정하는 남편들은 아내가 딴생각을 하면 태어날 아기가 불행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남편들은 임신한 아내의 바람기를 막기 위해 피아노를 장만했다.

 

 

 

 

 

 

 

 

 

 

 

 

 

 

 

 

 

 

* [절판] 돈 캠벨 《모차르트 이펙트》 (황금가지, 1999)

* [절판] 로버트 토드 캐롤 《회의주의자 사전》 (잎파랑이, 2007)

 

 

 

 

한때 모차르트의 음악을 이용하면 태아 또는 아이의 잠재능력을 발달할 수 있다는 ‘모차르트 효과’가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모차르트 효과를 이용한 음악 교육법을 만든 돈 캠벨(Don Campbell)은 태아부터 시작해서 연령별로 아동의 발달과 음악의 관계를 설명하고, 연령별로 들으면 좋은 모차르트의 곡을 소개했다. 사실 모차르트 효과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따로 있다. 그들은 모차르트 효과를 입증한 자신들의 작업이 허점이 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캠벨은 허점투성이인 모차르트 효과 연구 결과를 과장, 왜곡하여 그럴싸한 음악 교육법으로 포장했다. 부모들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더 똑똑해질 수 있다는 낭만적 생각에 사로잡혔고, 캠벨은 자녀의 지능을 높이려는 부모의 욕망에 편승해 모차르트 효과를 ‘믿을 만한 과학 이론’인 것처럼 홍보했다. 모차르트든 베토벤이든 어느 클래식 음악가의 곡을 들으면 임산부나 태아, 육아의 정서 안정에 도움 된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듣는다고 해서 머리가 단번에 좋아질 리가 없다. 모차르트 효과의 무용성을 증명하는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그런데도 ‘클래식 음악 태교’는 머리 좋은 아이가 태어나길 원하는 임산부를 솔깃하게 한다.

 

 

 

 

 

 

 

 

 

 

 

 

 

 

 

 

 

* 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 가설》 (이김, 2017)

* [절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만들어진 모성》 (동녘, 2009)

* 장 자크 루소《에밀》 (한길사, 2003)

 

 

 

 

모든 여성이 모성애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실은 모성은 여성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자연적인 본능이 아니라 ‘여성의 종속을 정당하게 하는 남성의 발명품’이다.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에밀》에서 여성의 모성애를 강조했고, 아기를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를 환자로 취급했다. 5명의 자녀를 보육원에 보낸 루소의 ‘흑역사’를 생각하면 모성애를 강조한 루소의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프로이트(Freud)는 엄마가 아기와 어떻게 애착 관계를 맺고 어떤 정서적 교감을 나누느냐에 따라 한 인간의 정신 건강이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주장을 반박한 엘리자베트 바댕테르(Elisabeth Badinter)는 수많은 여성이 여성의 본능과 모성애를 동일하게 보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강요당했다고 말한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남들만 못하다고 느끼면 깊은 죄책감에 빠진다. 그 탓에 출산과 양육의 짐은 ‘본성’을 핑계로 여성이 짊어졌고 남성들은 양육을 ‘여성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인식했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Judith Rich Harris)는 양육을 지지하는 프로이트 심리학에 반기를 든다. 그녀는 부모의 양육이 자녀의 성장에 영향을 준다는 ‘양육 이론’을 ‘가설’이라고 주장한다.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 (꾸리에, 2016)

 

 

 

 

‘만들어진 모성’은 여성에게 무한한 희생을 요구한다. 우리 사회가 모성을 신성하게 여기다 보니, 스스로에게 또는 타인에게 모성을 강요하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는 기혼 여성은 ‘나는 왜 아이들에게 좋은 어머니가 되지 못할까’, ‘나는 왜 모성이 없는 것일까’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맹목적인 모성애는 기혼 여성의 죄책감으로 이어지고, 심할 경우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모성은 여성을 병들게 한다. 그래서 급진적 페미니스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성의 변증법》(꾸리에, 2016)에서 여성에게만 출산과 모성을 강요하는 억압적인 문화를 향해 꽤 묵직한 돌직구를 날렸다. “임신은 야만적이다.” 여성의 자유를 막기 위해 남성들이 만든 모성도 야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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