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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읽는 시간 - 처음 만나는 고양이 세계문학 단편
에드위나 스탠턴 밥코크 외 지음, 지은현 옮김 / 꾸리에 / 2017년 12월
평점 :
“똑똑허다고? 아따 그거스로는 이루 다 말헐 수가 읎제.
그놈은 요물이랑께!”
(마크 트웨인의 『딕 베이커의 고양이』 중에서, 181쪽)
개와 고양이는 사람에게 가장 친근한 동물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키우는 동물로 애완동물의 차원을 넘어 사람의 가족인 반려동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와 고양이는 습성이 전혀 다르다. 개는 서열과 복종의 개념을 가지고 있어 사람을 주인으로 인식한다. 반면 독립생활에 익숙한 고양이는 자아개념이 강해 함께 사는 사람을 주인이 아닌 동등한 입장으로 인식한다.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고양이는 인간 옆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지만, 고양이만큼 애정과 혐오의 경계가 뚜렷하게 갈리는 동물도 없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를 신성한 존재로 여겼지만, 기독교가 유럽에 뿌리를 내리면서 고양이는 기피 대상이 되었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는 고양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욱 강화했다.
올해가 무술년 ‘황금 개의 해’라서 고양이의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는 장르를 불문하고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의 ‘장화 신은 고양이’는 애니메이션, 뮤지컬로 만들어질 정도로 오랫동안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카데미상을 일곱 차례나 수상한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톰과 제리>의 인기는 말할 것도 없다. 한때 톰은 생쥐 제리를 괴롭히는 악랄한 고양이를 상징한 캐릭터였으나 현재 톰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오히려 제리에게 당하는 톰을 동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 예술가는 고양이를 좋아했다. 고양이는 특유의 매력과 신비로움으로 작가, 화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영국의 시인 토머스 엘리엇(Thomas S. Eliot)은 아들에게 고양이의 매력을 알려주기 위해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라는 시집을 썼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는 그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오랜 준비 끝에 뮤지컬 <캣츠(Cats)>를 제작했다.
국내에선 고양이를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이 드문 편이다(혹시나 있으면 알려 달라). 그래서 고양이가 등장하는 세계 문학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고양이를 읽는 시간》(꾸리에, 2017)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애서가들이 보면 좋아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소설 속 고양이들은 도도한 매력을 지닌 영리한 동물로 묘사된다. 찰스 더들리 워너(Charles Dudley Warner)의 『캘빈-품격 탐구』는 친해지기는 쉽지만 고급스러운 매력을 가진 고양이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단편소설이다. ‘캘빈’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는 최후를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차분한 자세를 유지한다. 인간은 동물보다 우세한 존재라고 생각하면서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캘빈의 모습은 죽음의 공포에 민감한 인간의 모습과 대조된다.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동물에 대한 소유욕’이다. 소유욕과 사랑은 다르다. 요즘 부쩍 늘어나고 있는 유기동물은 귀여운 동물을 가지고 싶은 소유욕이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빗속의 고양이』에 나오는 미국인의 아내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새끼고양이를 가지고 싶어 한다. 그녀는 고양이를 자신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물건’으로 인식한다. 동물은 고통에 둔감할 것이라고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동물은 고통을 숨긴다. 에드위나 스탠턴 밥코크(Edwina Stanton Bobcock)의 『어느 고양이의 일기』를 읽으면 하루하루 처절한 삶을 이어오는 유기 고양이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 러브크래프트(Lovecraft)의 『율타르의 고양이』는 초자연적 힘이 부여된 고양이가 등장하는 환상소설이지만, 이 작품은 인간의 생명경시 풍조를 경고한다.
영국의 유머 작가로 알려진 P. G. 우드하우스(P. G. Wodehouse)는 동물보호구역 설립을 위해 거금을 기부했던 동물애호가다. 그가 쓴 ‘웃기는 고양이들 이야기’ 네 편은 국내 초역이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딕 베이커의 고양이』, 프레데릭 스튜어트 그린(Frederick Stewart Greene)의 『대나무 숲 고양이』는 미국 사투리를 사용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마크 트웨인은 미국 남부 사투리 영어로 글을 쓰곤 했다. 번역가는 원작의 미국 사투리 영어 느낌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인물 간의 대화를 전라도 사투리로 옮겼다. 전라도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은 다른 지역 독자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미국인의 대화’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맛깔스러운 전라도 사투리로 이루어진 인물의 대화는 소설의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원문의 의미는 그대로 살리되, 원문을 강렬하게 표현한 번역을 ‘초월 번역’이라고 한다. 전라도 사투리로 ‘초월 번역’한 『딕 베이커의 고양이』를 꼭 한 번 읽어보시라. 정말 재미있다.
《고양이를 읽는 시간》은 고양이가 꼬리를 흔들며 쓰다듬어주길 바라는 존재만큼은 아니어도 사람과 가까워진 동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고양이를 키우지는 않더라도 잠시 《고양이를 읽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남 눈치 보지 않고 느긋하게 자기만의 행복한 시간을 즐길 줄 아는 고양이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 Trivia
112쪽에 미국의 소설가 헨리 슬레사(Henry Slesar)의 간략한 연보가 있다. 그의 첫 소설 <회색 플란넬 수의>가 ‘1958년’에 발표되었다고 잘못 적혀 있다. 1959년에 발표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