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누구나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를 원한다. 실제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보다는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첫 만남에서는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만나는 사이에 첫인상이 형성된다. 사람들이 첫인상을 형성할 때에 사용할 수 있는 정보는 대단히 제한적이다. 쓸 수 있는 정보라고는 기껏해야 상대방의 외모, 목소리, 복장이 전부다. 사람들은 첫인상으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판단하려 든다. 얼굴, 신장, 체격 등의 겉모습과 제스처, 말투라는 극히 제한된 정보로 그 사람의 성격까지 판단해버린다.
* 말콤 글래드웰 《블링크》 (21세기북스, 2016)
이렇듯 첫인상은 매우 짧은 순간에 결정된다. 첫인상이 좋으면 쉽고 편하게 생각되지만, 반대의 경우는 부정적인 사람이라는 편견을 갖게 된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첫인상을 ‘블링크(blink)’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블링크’는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을 가리킨다. 글래드웰은 상대의 첫인상을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초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눈으로 헤어스타일, 액세서리, 옷 등 잘게 쪼개진 정보를 모은 뒤 살아온 과정에서 축적된 판단력으로 사람을 단번에 평가한다는 얘기다. 첫인상을 결정하는 시간은 학자마다 다르긴 하나 길어야 7초다.
첫인상이 나중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초두 효과(primary effect)’라고 한다. 사람은 일단 첫인상이 형성되면 후에 들어오는 정보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처럼 먼저 제시된 정보가 나중에 들어온 정보보다 전반적인 인상 형성 및 인물 평가에 영향을 준다.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의 뇌는 낯선 장소가 안전한지, 상대가 사기꾼은 아닌지 재빨리 판단해 움직이는 ‘생존 기계’로 진화해온 결과다.
* 생텍쥐페리, 황현산 역 《어린 왕자》 (열린책들, 2015)
한 사람의 실속 있는 내면이나 진가를 보지 않고 겉모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만의 색안경에 갇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생텍쥐페리(Saint Exupery)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천문학자 이야기는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어른들의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행성을 발견한 터키의 천문학자는 국제천문학회가 참석하여 소행성의 존재를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터키 천문학자의 단출한 복장 때문에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몇 년 지난 후, 터키에 서양식 문화가 유입되었고 터키의 독재자가 국민들에게 서양식 복장을 하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고 선포했다. 터키 천문학자는 멋있는 서양식 복장을 하고 국제천문학회 연단 위에 다시 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든 천문학자가 그의 말을 믿어주었다.
* 존 파렐 《빅뱅-어제가 없는 오늘》 (양문, 2009)
* 데이비드 보더니스 《아인슈타인 일생 최대의 실수》 (까치, 2017)
아인슈타인(Einstein)과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itre)의 첫 만남은 《어린 왕자》속 천문학자 이야기와 묘하게 겹친다. ‘빅뱅(big bang)’을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이 조지 가모(George Gamow)로 널리 알려졌지만, ‘빅뱅 이론’으로 자라게 될 생각의 씨앗을 먼저 발견한 사람은 조르주 르메트르이다. 가모는 빅뱅 이론을 체계화화한 학자다. 그는 빅뱅 이론을 뒷받침해줄 증거-우주의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를 관측했다-를 발견했다. 프레드 호일(Fred Hoyle)이 ‘빅뱅’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빅뱅 이론을 비웃은 학자였다.
르메트르는 벨기에 출신의 과학자이자 가톨릭 신부였다. 그는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한 점에서 출발했으며 그 점이 바로 ‘태초의 우주’의 탄생을 알리는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주의 모습을 ‘불꽃놀이’에 비유했다. 르메트르는 아인슈타인이 고안한 방정식을 토대로 ‘팽창하는 우주’를 증명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우주 팽창 가설에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르메트르는 직접 아인슈타인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주장을 설명했지만, 아인슈타인은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아마도 르메트르는 위대한 과학자를 만나러 갔을 때 평소에 입던 검은색 신부 복장(사진 속에 르메르트가 입은 옷이다)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르메트르가 교회 신부라는 이유로 의심의 눈길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벨기에 신부의 주장을 묵살한 천재의 판단은 실수였다.
대부분 우주론을 설명한 책에 보면 르메트르를 ‘조연’급으로 언급한다. 이렇다 보니 르메트르는 조지 가모, 심지어 빅뱅 이론을 무시한 호일보다 인지도가 밀린다. 우주 팽창을 이해하려면 먼저 르메트르의 생각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는 신의 존재를 믿는 신부였지만, 자신의 종교관을 무너뜨릴 수 있는 ‘생각의 씨앗’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다. 《빅뱅-어제가 없는 오늘》은 르메트르의 일생과 ‘종교’라는 이름에 갇힌 그의 과학적 성과를 재조명한 유일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