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를 찾아라
배혜경 지음 / 수필세계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에 우주지감이라는 이름의 독서모임을 알게 됐다. ‘우주지감우주시 지구 감동의 첫 글자씩 따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우주시는 팽창하는 우주, 즉 빅뱅(big bang) 우주론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시간을 의미한다. 한 달에 두 번, 오전과 저녁에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라는 모임이 진행된다. 내가 참석 가능한 모임은 저녁 모임뿐이다. 이 모임에 참석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선정도서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 모임 참석자들은 각자 찻값을 내야 한다. 독서모임에 참석할 때 지켜야 할 점이 있다. 자신의 삶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 ‘참석자 준비사항에 포함된 내용이다. 말로만 봐서는 어렵지 않다.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마음으로 본 내 모습 그대로 말하자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를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우린 남이 어디서 모여 무엇을 하는지 더 궁금해한다. 한병철SNS가 자발적으로 자신을 노출하고 전시하는 거대한 감옥, 디지털 파놉티콘으로 비유했다. 우리는 SNS에서 자신이 누군지 자유롭게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낼수록 남들에게 노출하려는(전시) 욕망이 강해진다. ‘디지털 파놉티콘에 갇힌 개인은 자신을 최대한 좋게 보이려고 애쓴다. 그렇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보지 못한다.

 

디지털 노출증’, ‘디지털 구경꾼이 많아지는 요즘 시대에 진짜 를 만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길게 잡고 연습해야 한다. 책을 읽는 시간은 를 만나는 시간, ‘만을 위한 시간이다. 그 소중한 시간에 우린 책을 보며 삶의 자극을 받는다. 독서는 간접 체험을 넓히는 것 이상이다. 책을 공감을 키우는 재료이다. 따라서 독자는 작중 인물이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마치 자신이 그 사람인 양 생생하게 경험한다. 그 과정에서 책 속에 있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독서의 묘미는 책 속에 서서 자신을 제대로 보는 데 있다. 배혜경의 수필집 앵두를 찾아라는 이러한 독서의 장점을 만끽할 수 있는 책이다.

 

앵두를 찾아라에 수록된 수필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독자들을 다가온다. 그러나 그 글들은 한결 같다. 일기부터 영화 이야기, 여행기까지 모두 일상의 단상들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읽는 이를 편안하게 해준다. 책장을 넘겨주는 여자는 점자도서관에서 낭독 녹음 봉사를 해온 글쓴이의 경험이 반영된 글이다. 이 글에서 글쓴이는 시각장애인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자신만의 목소리가 어떤 것인지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 목소리를 누가 들을까 생각해 본다. 목소리와 억양이 듣기에 편안할까, 발음이 불분명한 곳은 없었을까, 가슴으로 감동이 전해질까. 갖가지 장르의 도서를 소리 내어 읽으며 내 앞에 어느 분이 있을지 상상해 본다. 안락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지그시 눈을 감고 책을 듣는 사람들을 그려 본다. (37~38)

 

 

수필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는 산문이 아니다. 글쓴이의 체험조차 사유와 반성의 대상으로 삼아 독자와 함께 음미할 수 있는 산문이 좋은 수필이다. 글쓴이가 목소리를 알아가는 과정은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글쓴이는 자기 성찰을 통해 목소리의 진정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개별적인 성찰 노력이 없고, 타인에 대한 관찰에 익숙한 사람은 인내심이 필요한 글쓴이의 체험을 공감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글쓴이의 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를 만나는 법을 못 보고 그냥 지나치게 된다.

 

살아온 삶에 대해 성찰하고, 마침내 진짜 를 발견한 글쓴이의 글에는 그런 자신을 끝끝내 보듬어 지키는 마음의 힘에 대한 성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섬에서 섬으로는 글쓴이가 섬을 여행하면서 건져 올린 통찰이 돋보인다. 글쓴이가 확인한 섬 여행의 목적은 자신을 위한 의 재발견이다.

 

 

타인의 말에 쉽게 휘둘려 분노의 파도에서 허우적대던 나는 정작 누구에게 화가 났던 것일까. 너로 인해 행복하지 않은 거라고 우기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정말 행복한 자는 행복의 한가운데 있기에 행복하다고 떠들지 않는다. 정말 불행한 자가 불행하다고 떠들지 않는 것처럼. 행복이라는 감정의 층위는 얼마나 얄팍한가. 은근하고 깊이 있는 행복을 유지하려면 좀 더 의미 있는 대상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는 길밖에. (112~113)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낯선 풍경과 정취를 보고 느끼는 것을 넘어서는 데서 여행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여행은 자아를 발견하고자 하는 은밀한 욕망을 간직한다. 우리가 찾으려는 대상은 낯선 세상일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의 진짜 얼굴이다. 글쓴이의 여행에서 낯선 곳의 매혹은 부차적이다. 풍경은 페이드아웃(fade-out)’돼 사라지고, 남는 것은 견고한 자기 성찰이다. 여행은 어디에서 시작하든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여행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교훈은 틀리지 않는다.

 

앵두를 찾아라억지 감동을 주지 않는다. 글쓴이가 거쳐 온 사색의 결과가 정제된 문장은 독자의 마음에 쉬 와닿는다. 수필집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하면서도 결코 평범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지독한 현실감을 부여한다. 누구나 한 번쯤 실제 글쓴이처럼 경험하고 생각한 것 같은 착시 감각, 그 글 속에 벌어지는 사건들이 마치 내가 겪고 있는 것 같은 일체감들이 읽는 이들이 거쳐야 할 통과의례 같다. 진정한 를 만나는 것은 마음의 통과의례를 거쳐야 발현될 수 있다. 삶의 깊이를 응시하는 진정성이야말로 출구 없는 디지털 파놉티콘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7-12-12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말씀하신 독서모임이군요^^: 마음 맞는 분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cyrus 2017-12-12 18:04   좋아요 1 | URL
이 글은 간접 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모임에 가서 좋은 알라디너님들을 알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