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위즈덤하우스, 2015)은 춘추전국시대에 태동한 공자노자의 사상을 소개하여 노자는 공자의 어떤 점을 비판했고, 그것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한 책이다. 공자는 ‘인(仁)’이라는 보편적 기준을 내세워 세상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자는 보편적 기준에 맞춰 가면서 살지 말라고 강조한다. 노자는 ‘인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고 보았다.

 

이 책에 《도덕경》뿐만 아니라 《논어》 문장도 나온다. 그래서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을 읽기 전에 예습하는 차원에서 《논어》를 봐 두는 것이 좋다.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에 《논어》 자로(子路) 편 23장의 원문과 그것을 풀이한 문장이 나오는데, 최진석 교수는 이 구절을 이렇게 풀이한다.[1]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화이부동, 소인동화불화)

 

훌륭한 사람(군자)은 각각의 차이를 인정하는 조화를 도모하지 모두 유니폼을 입혀 놓은 것처럼 하지 않는데, 좀 부족한 사람(소인)은 유니폼을 입혀 놓은 것처럼 똑같게 하려 하지 차이를 인정하는 조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군자는 자기중심과 원칙은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이들과 잘 어울린다. 반면 소인은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특정 생각을 받아들이도록 일방적으로 강요한다. 그런 소인의 행동을 최 교수는 ‘유니폼을 입혀 놓은 것’으로 비유하여 풀이했다. 원문을 직역하지 않은 풀이는 봤어도 외래어가 들어간 풀이는 처음 본다. 살짝 튀긴 하지만, 원문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화이부동’을 쉽게 풀이한 학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 김학주 역 《논어》 (서울대학교출판부, 2015)

* 이을호 역 《한글 논어》 (한국학술정보, 2015)

* 김원중 역 《논어》 (휴머니스트, 2017)

 

 

 

* 김학주 : “군자는 화합이나 뇌동(雷同)하지는 않고, 소인은 뇌동하나 화합하지 않는다.”

 

* 이을호 : “참된 인물은 진정으로 화합하지 고개만 끄덕거리지 않는다. 하찮은 인간은 고개만 끄덕거리지 진정으로 화합하지 않는다.”

 

김원중 : 군자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지만 [부화]뇌동하지는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지만 조화를 이루지는 못한다.

 

 

 

요즘 청소년 권장도서 목록에 《논어》가 종종 포함되기도 한다. 청소년 독자들을 위한 《논어》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논어》는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논어》를 여러 번 읽어도 공자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논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꼭 그렇지만 않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후대의 학자들이 정리하여 다듬어진 책이 《논어》다. 《논어》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 있는 의도가 체계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주석가들은 《논어》를 끊임없이 정독하여 공자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시도한다. 논어 자체가 갖는 모호성 때문에 풀이가 다른 주석서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김학주 교수의 말대로라면 《논어》의 사상을 얘기한다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2] 특히 더 우스운 일은 자신이 생각한 것, 자신이 눈으로 본 《논어》 풀이가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공자가 경계한 소인의 행동이다.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에 딱 달라붙은 ‘보편적 기준’이라는 이름의 유니폼을 입고 행동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다. 본인이 입고 있는 유니폼이 상대방에게 입으라고 강요한다.

 

 

 

 

 

 

 

 

 

 

 

 

 

 

 

 

 

 

* 신영복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돌베개, 2004)

 

 

 

신영복 교수는 ‘화이부동’의 ‘동’이 자기 존재의 확장을 위해 상대방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합병의 논리라면, ‘화’는 상대방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공존의 논리로 해석했다. 최근에 《도덕경》을 읽어서 그런 것일까. ‘화’를 해석한 신 교수의 주장이 노자의 생각과 조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자는 ‘보편적 기준’을 강요하는 사회를 반대했다.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유니폼의 상태가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잘 모를뿐더러 자신들이 입은 유니폼을 거부하는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다.

 

 

 

 

[1]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57~58쪽

[2] 《논어》(제2전정판, 2007년)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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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0-14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영복교수님의 화이부동 해석이 가슴에 와닿네요.
부화뇌동하지 않고 주체적 삶을 살면서도 화이부동 할수 있는 군자. 이상적인 인간이네요.

cyrus 2017-10-14 16:05   좋아요 1 | URL
<강의>를 처음 읽었을 때 신 교수님의 화이부동 해석이 마음에 크게 와 닿지 않았어요. ‘아, 그렇게 해석할 수 있구나’하면서 넘어갔어요. 그런데 도덕경과 논어를 여러 번 읽게 되니까 이제 좀 하나씩 뭔가 느끼기 시작했어요. ^^;;

2017-10-15 0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5 17:35   좋아요 0 | URL
동양철학 리뷰를 쓰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열심히 쓴 글이 지적받으면 기운이 빠져요.. ㅎㅎㅎ 추천한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