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 절대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은 없다.

다만 우리의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셰익스피어)

 

    

 

우리는 마음먹은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은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늘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아주 작은 것에서조차 행복을 찾아내는 마음가짐이다. 마음을 다친 상처가 고통, 수치심, 절망, 불안을 낳고 이러한 것들을 거부하다 보면, 무력이나 분노, 경멸, 실망 등의 부정적인 마음 상태가 형성된다. ‘진짜 나를 무시한 채, 열등감에 휩싸인 자아에 집착하다 보면 자신의 감정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부터 시작되는 감정들은 결국 자신의 마음에 상처만을 남긴다. 이 모든 문제가 우리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차분히 생각해보면 나의 문제점을 무엇인지 되돌아 살펴볼 수 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은 시급히 개선할 수 있으며,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까지 생기게 된다.

     

글쓰기는 삶을 더듬어가는 여행이다. 우리 앞에 마련돼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생 앞에 항상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존재다. 공지영월춘 장구(越春 裝具)맨발로 글목을 돌다를 통해 우리는 희망이라는 실체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두 편의 작품 모두 작가가 주인공 겸 화자로 등장한다. 월춘 장구는 자신의 내적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가의 세밀한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월춘 장구봄이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할 장비를 뜻한다. 불완전한 삶 속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이 소설을 쓰였다. 삶의 역경을 뜨거운 인내로 녹여낼 때 거기서 싱싱하고 힘차게 자라나는 희망의 새싹이 돋아난다. 작가는 어둡고 쌀쌀한 계절을 의지로 넘길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의 본질과 이질적인 것은 상흔을 남긴다. 그리고 그 상흔으로 인해, 그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아픔의 힘으로 우리는 생의 모퉁이를 돌기도 한다. 그것이 좋은 곳으로 가는 길인지 아닌지는 나는 아직도 모른다. 블라인드 포인트, 라고 산에 오르던 친구는 말했다. 모퉁이를 돌면 그곳에 무슨 죽음과 무슨 삶이 펼쳐져 있을지 모르는 험악한 등정에서 산악인들은 언제나 그 블라인드 포인트를 돌아야 한다고. 그리고 초보자들에게 그것은 대개 죽음보다 더한 공포와 고통을 준다고. 거기서 주저앉는 사람이 참 많이도 있다고, 그러나 그 공포를 이겨낸 자에게만 산은 그 정상을 허락한다고. (17~18)

 

 

이 대목에서 맨발에서 글목을 돌다맨발글목의 의미를 재확인할 수 있다. ‘글목글이 모퉁이를 도는 길목을 의미하는데 작가가 만든 단어다. ‘맨발은 작가 자신을 포함한 상처 받는 존재를 가리킨다. 월춘 장구맨발에서 글목을 돌다의 유사성은 삶의 상처를 진솔하게 묘사하는 글쓰기다. 자기 상처를 드러내며 세상과 대화하기를 간절히 원했던 작가의 성숙함 앞에서 자신을 뒤돌아보지 않을 독자는 없을 것이다.

     

소설집의 표제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조금은 과장되고 웃음이 섞인 블랙코미디다. 6개월째 사망 선고를 받고도 끈질기게 살아가는 할머니를 관찰하듯이 바라보는 소녀인 화자와 그 가족들의 심리 묘사가 잘 드러나 있다. 할머니의 재력을 호시탐탐 노리는 가족들은 할머니 곁을 떠나지 못한다.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미음 대신에 흰 쌀밥과 갈비를 먹기 시작하는데, 이 장면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인간의 감정 상태를 읽을 수 있다. 공포관리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에 관해 생각하면 슬퍼지기보다는 평소보다 행복해진다. 자기 죽음에 관한 생각에 직면했을 때 인간의 뇌가 무의식적으로 행복감을 찾거나 유발함으로써 자각적인 고통에 자동으로 대처하게 된다. 어쩌면 할머니는 죽음의 공포에 대처하기 위해 평소에 좋아하는 갈비를 입에 댔을 거고, 의도치 않게 생명이 연장된 것이다. 할머니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행위로부터 심신의 안정은 물론 죽음의 공포를 최소화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족들은 할머니의 생명 연장을 지켜보면서 공포를 느낀다. 다음 장면은 인간의 삶과 죽음, 공포와 웃음, 비극과 희극의 양면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큰외삼촌과 막내외숙모는 다시 할머니의 방으로 우르르 몰려들어갔다. 그들의 젓가락에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갈빗살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할머니가 웃으면 함께 웃고, 할머니가 호통을 치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들의 얼굴에 눈에 띄게 공포가 어렸다는 것이고, 그 공포를 감추려는 듯 표정은 더 딱딱해지고 있었다. (76)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절망인 죽음을 마주쳐야 하는 할머니가 생의 의지를 끝까지 놓지 않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블라인드 포인트의 공포를 이겨낸 할머니의 의지인 걸까, 아니면 더 살고 싶어서 살아있는 자들을 억지로 붙잡으려는 집착일까.

    

 

 

 

Trivia

 

* 12

걸레를 빨다 말고 키다리 아저씨를 쓴 오스카 와일드를 생각했다.

 

→ 「키다리 아저씨의 작가는 진 웹스터(Jean Webster).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비종 2017-09-03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라인드 포인트‘의 공포를 이겨낸 할머니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 의지를 잡아당긴 것은 희망의 새싹이구요.^^
‘글목‘이란 말 앞에서 한참 생각이 머뭅니다. 글을 쓰려고 컴퓨터나 종이 앞에 섰을 때마다 긴장이 되거든요. 발상이 떠오를 때 시작을 하지만 제 글이 어디로, 무엇을 향해 가게 될 지 처음부터 알 수는 없거든요. 다른 이들이나 저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다만 가보는 거죠. 모퉁이를 돌 때마다 맞닥뜨리는 미지의 감성에 대한 스릴이 있습니다. 이 마음 역시 희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 글이 도달하게 될 곳이 썩 나쁘지는 않을 거라는. .^^

cyrus 2017-09-04 09:08   좋아요 2 | URL
저도 논쟁이 될만한 주제의 글을 쓸 때면 긴장됩니다. 합당한 비판을 받고 싶어서 제 생각을 소신있게 밝힙니다. 그런데 쓰다 보면 ‘비난‘받을 만한 엉터리 내용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비난 받는 글을 쓰지 않는 것이 제 글쓰기의 원칙입니다. 그 글은 실패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