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요일 하루에 잡은 벌레는 총 다섯 마리. 집게벌레 두 마리, 그리마 한 마리, 그리고 모기 두 마리. 바퀴벌레 한 마리만 잡았으면 ‘벌레 퇴치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다. 집에 있으면서 이렇게나 벌레를 많이 잡은 경우는 처음이다. 내가 잡은 벌레들은 흔히 ‘해충’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들 중에 해충이라고 부르기에 애매한 녀석이 있다. 그가 바로 그리마다. 이 녀석의 별명은 ‘돈벌레’다. 돈 많은 부잣집에서만 산다고 해서 돈벌레라고 불렸다. 옛날에는 이 벌레가 집안에서 발견하면 부자가 될 길조로 여겼다. 그런데 그리마가 기어가는 모습이 마치 지네와 같아서 혐오스럽게 생겼다. 돈벌레라고 반기기는커녕 일단 잡아야 하는 곤충으로 낙인 찍혔다. 이 녀석, 기어가는 속도가 장난 아니다. 잡으려고 하면 눈 깜작할 사이에 사라져 어둡고 비좁은 곳으로 숨는다. 이런 녀석이 재수 없게 나한테 걸리고 말았다…‥ 당분간 돈복이 들어오기가 힘들겠군.

 

그리마가 해충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녀석의 식성 때문이다. 그리마는 바퀴벌레의 알을 먹는다. 바퀴벌레의 번식력은 엄청나다. 최근에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암컷 바퀴벌레의 무성생식으로 번식한 사례가 발견되었다. 즉, 바퀴벌레는 수컷 없이도 번식이 가능한 셈이다. 그리마가 바퀴벌레의 알을 잡아먹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집에 그리마의 출몰이 잦다면, 녀석이 좋아하는 먹잇감이 많다고 볼 수 있다.

 

 

 

 

 

 

 

 

 

 

 

 

 

 

 

 

 

 

 

* 조슈아 아바바넬, 제프 스위머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함께읽는책 · 2011)

    

 

     

집게벌레의 별명은 ‘꼬집는 벌레’다. 집게벌레에 물려본 적이 없는데, 한 번 물리면 아프다고 한다. 옛날 유럽인들은 집게벌레가 잠들 때 귀로 들어가 고막을 찢고, 뇌에 침투하여 알을 낳는다고 믿었다. 그런데 가끔 사람을 무는 것만 빼면 이 녀석도 양호한 편이다. 집게벌레의 먹이는 살아 있거나 죽은 벌레, 초목(草木)이다. 결벽에 가까운 집게벌레의 청결함은 ‘곤충계의 서장훈’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집게벌레는 온종일 혀(!)로 자기 온몸 구석구석 핥는단다. 어떻게 보면 고양이의 그루밍과 같다. 그러므로 집게벌레를 ‘반려 곤충’으로 추천한다.

 

내가 집에 있을 때 잡지 않는 유일한 벌레가 있다. 바로 거미다. 이 녀석은 나의 동반자다. 내가 바닥에 엎드려 배를 깔고, 책을 읽으면 바닥을 기어 다니는 거미를 만난다. 거미의 크기는 아주 작다. 손으로 살짝 건드려도 죽는다. 거미가 사람을 물지 않아서 좋은데, 단 한 가지 불편한 점이라면 구석진 곳에 치는 거미줄이다. 창틀이나 책장에 가느다란 거미줄이 붙어 있다. 거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모조리 제거한다. 퇴근하고 나면 방 청소를 한다. 먼지떨이로 책장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 다음에 밀대 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청소하다 거미줄이 보이면 걸레로 닦아낸다. 거미줄 없어도 거미들이 알아서 잘 살 거로 믿는다.

 

거미 공포증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공포증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거미의 해로운 면이 강조되는 미신 또는 도시전설이 나오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인간이 자면서 1년 동안 8마리의 거미를 삼킨다는 도시 전설이 있다. 이 내용은 나무위키 항목으로 나와 있다. 말 그대로 ‘도시 전설’이니 이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거미 연구가들은 거미가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일이 절대로 없다고 말한다.

 

 

 

 

 

 

 

 

 

 

 

 

 

 

 

 

 

* 백석, 김재용 역 《백석 전집》 (실천문학사 · 2012)

 

 

 

작은 거미를 만나면 죽이지 않고, 창밖으로 보낸다. 거미가 연약해서 살살 건드려서 손가락이나 종이 위로 올린다. 거미를 올려놓은 손가락이나 종이를 창틀 벽에 갖다 댄다. 그러면 거미가 알아서 창틀 벽으로 향해 기어간다. 왜 이렇게 번거로운 일을 하느냐고. 작은 거미를 보면 볼수록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거대한 바닥 한가운데서 기어가는 거미를 보면 마치 정처 없이 떠도는 외로운 나그네, 또는 길을 잃어 혼자서 아무 데나 걷는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작고 연약한 거미에게 각별한 관심을 주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백석의 시에 있다. 이 시를 읽고 난 후로 작은 거미만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백석, 『수라(修羅)』, 실천문학사, 39~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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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8-09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 님의 거미에 대한 태도·처리 방법은 저와 아주 비슷하군요. 시인 백석의 거미에 대한 연민도 비슷합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cyrus 님이나 백석의 거미에 대한 연민을 거의 동일하게 느끼리라고 봅니다. 집안/집밖 곤충 가운데 거미처럼 인간과 친근한(?) 곤충도 없을 테니까요(정확히는 곤충이 아니라 절지동물이라고 하지만요). 거미처럼 인간의 상상력과 과학적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곤충이 있을까요? SF 영화 스파이더맨, 강철보다 강한 거미줄, 생체모방공학, 거미줄의 기하학, 방적돌기의 정교한 미세구조 등등은 거미가 인간한테 베풀어준 상상력의 결과이자 첨단 과학기술의 원천이라 할 수 있죠. 정말 흥미진진하고 친근한 동물인 것 같습니다.

cyrus 2017-08-10 12:18   좋아요 0 | URL
과거에는 거미와 요부를 결합시킨 ‘위험한 괴물’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거미와 여성에 대한 남성의 공포감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공포의 존재였던 거미가 사랑하는 여인과 도시 전체를 구하는 스파이더맨의 탄생에 영향을 준 점이 아이러니합니다.

2017-08-10 0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10 12:22   좋아요 1 | URL
자세한 설명 없이 들으면 ‘권연이’가 사람 이름인 줄로만 압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