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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강의 - 순수 미술의 탄생과 죽음
조주연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4월
평점 :
예술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불가능한 것처럼 현대미술 또한 정의하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보고 또 봐도 알쏭달쏭한 게 현대미술이다. 사람들은 현대미술에 대해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거나 일상의 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한다. 미술의 기원에서 본다면 미술은 사람들의 일상과 가까이 있었으며 인간이 소망하는 꿈을 대신해 주는 소망의 표상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미술은 과거 사람들의 필요와 즐거움의 해소와도 관련이 깊다. 우리가 친숙하게 느껴지는 고대 그리스 · 로마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있어서 현실을 아름답게 재현하는 수단이자 ‘기호’였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미술로 표현될 수 있고, ‘재현하는 기호’가 된 모든 미술 작품은 우리가 보는 세계로 다시 해석될 수 있다.
미술의 역사는 19세기까지 대체로 두 흐름에 따라 엎치락뒤치락 흘러왔다. 르네상스 고전주의처럼 옛 규범과의 완벽한 조화를 중시하는 형식 미술이 기본이라면 바로크, 낭만주의와 같이 개성과 감정을 중시하는 감성 미술이 번갈아 지배 사조로 등극했다.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획기적인 인식 전환이 일어나게 됐다. 화가들이 ‘재현’이라는 고전 미술의 전통을 거부하게 된 것이다. 사실주의(realism)에서 모더니즘(modernism)으로 넘어가는 시기다. 여기서부터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서막이 오른다. 《현대미술 강의》(글항아리, 2017)는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올랭피아』(1863년)를 현대미술의 뿌리로 보고 있다.
오늘날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고 너무나 익숙해 있어 인상주의는 마치 서양회화의 전형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인상주의가 등장할 당시 그것이 얼마나 혁명적인 생각이었고 도발적인 행위였는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인상주의자들은 자연의 한복판에서 쉬지 않고 변화하는 자연의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하기 위해 빠르게 그림을 그렸다. 인상주의 그림은 빛의 기록이니만큼 그림 속에 칠해져 있는 색들은 모두 빛을 재현하고 있었다. 또한,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반사하는 빛의 색을 기록하려 했기 때문에 사물을 똑같이 그릴 필요가 없었고 사물이 반사하는 빛과 거기서 받은 인상을 그리고 칠했다. 따라서 인상주의가 이룬 모더니즘 미학은 ‘재현’을 중시하는 전통미술의 가치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 이제 모더니즘 화가들이 그릴 수 있는 것은 형태가 아닌 선과 면이다. 모더니즘의 성과는 ‘재현하는 기호’가 완전히 사라진 순수미술의 등장이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고전주의 미학은 산산이 깨져버린다. 산업화에 따른 사회 격변과 자본의 세계화, 잇따른 전쟁의 혼란 속에서 이성이 일군 고전미의 규범이 통째로 부정되고, 독창적 발상을 좇는 무한 경쟁이 미술의 본질을 형성했다. 아방가르드(avant garde)의 서막이 오르면서 예술가들은 순수미술마저 거부하기 시작한다. 미술이 태동한 이래 인간이 그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그렸다. 나무, 바다, 꽃, 누드까지…‥. 그리고 한 단계 더 나가 그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추상미술까지 미술의 영역을 넓혔다. 더 이상 그려낼 대상이 없어졌다. 공장에서 작품을 대량으로 찍어내고 변기까지 미술품으로 등장했다. 다다이즘(dadaism), 팝 아트(pop art), 미니멀아트(minimal art)는 모더니즘의 반작용으로 형성된 반 예술 운동이다. 그렇지만 아방가르드 예술은 자신들이 거부하고자 했던 모더니즘 미학에서 완전히 결별하는 데 실패했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일상의 저 낮은 곳에 있는 변기에 예술의 지위를 부여했다. 그는 일상의 세계와는 분리된 고상한 그 무엇만이 예술이 될 수 있다(‘예술을 위한 예술’)는 모더니즘 미학에 항변했다. 그런데 뒤샹의 변기 작품이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연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으며 대형 미술관의 중심에 모셔졌다. 모더니즘을 거부하던 뒤샹의 변기 작품이 모더니즘 작가들의 홈그라운드(home ground)라고 할 수 있는 미술관의 중심에 서는 역설이 생겼다. 미술사가 핼 포스터(Hal Foster)가 지적한 대로 아방가르드는 모더니즘의 관례를 비판하는 데 성공했으나 제도 비판에 소극적이었다.
현대미술이 더 이상 기상천외한 미술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하던 터에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서막이 올랐다.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은 미술이라는 시각적 표현물이 실재의 삶과 사회 및 자연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다. 이러한 흐름은 회화나 조각은 물론 사진과 영상, 설치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서 재료, 즉 물질성은 중요하지 않다. 낱말, 사진, 쓰레기, 그리고 심지어 작가 자신의 신체마저 미술을 위한 재료가 된다.
오늘날의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거품’이 빠져 신선함을 잃어버렸고, 변화가 멈춰진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과거 현대미술의 주축인 모더니즘 미술을 파괴하지 못했고, 여전히 모더니즘의 아이디어를 잊지 못한다. ‘순수 미술의 죽음’은 관객이 공유할 수 있는 미적 가치의 파괴로 귀결된다. 이렇다 보니 현대미술은 더욱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오늘의 현대미술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정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현대미술은 정답 없는 물음의 연속이다. 그래서 미술은 어렵지만 참으로 매력적인 분야다.
※ Triv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