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가장 큰 섬인 크레타에 에피메니데스(Epimenides)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는 “모든 크레타 섬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말을 했다.
* 마틴 가드너 《이야기 파라독스》 (사계절, 2003)
문제는 그도 거짓말을 일삼는 크레타 사람 중 한 명이다.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말이 참이라면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반대로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말이 거짓이라면 그는 참말을 하고 있다. 도대체 어느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헷갈린다. 에피메니데스의 한 마디는 이처럼 스스로 진실이면서 거짓이고, 거짓이면서 진실이기도 한 모순의 연속이다. 논리학에서 지금까지도 논쟁거리가 되는 ‘거짓말쟁이의 역설(Liar Paradox)’이다. (마틴 가드너, 15쪽)
1947년, 명제의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프로그램이 내장된 ‘논리 기계’가 처음으로 미국에서 개발되었다. 기계 개발자들은 이 기계에 거짓말쟁이의 역설을 입력해봤다. 그러자 기계는 시끄러운 기계음을 내면서 참, 거짓, 참, 거짓을 교차하는 형태로 무한 반복했다. (마틴 가드너, 19쪽)
* 마틴 데이비스 《수학자, 컴퓨터를 만들다》 (지식의풍경, 2005)
* 박정일 《튜링 & 괴델 : 추상적 사유의 대단한 힘》 (김영사, 2010)
앨런 튜링(Alan Turing)은 논리적인 생각을 표현한 프로그램을 집어넣으면 그 기록된 대로 수행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고 싶었다. 그가 고안한 튜링 기계(Turing Machine)는 수식과 언어를 연산 처리해낼 수 있는 기계이며 현대 컴퓨터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 수학계를 군림한 힐베르트(Hilbert)는 ‘명제들의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방법이 있다’고 선언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 세상의 모든 수학 문제 또는 명제는 명쾌하게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튜링 기계는 힐베르트의 믿음을 깨뜨려버렸다. 그 기계조차도 참, 거짓을 판별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 (까치, 1999)
* 이진경 《수학의 몽상》 (휴머니스트, 2012)
사실 튜링 기계보다 한 발 먼저 힐베르트의 믿음을 박살 내버린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쿠르트 괴델(Kurt Godel)이다. 괴델은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 인간 이성의 한계를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어떤 대상에 대한 절대적이고 완전한 설명을 제시할 수 있는 수학 명제나 해결 방식은 없다. 그의 주장은 ‘모든 수학적 정리는 증명할 수 있다’는 ‘완전성 정리’가 지배적인 시절 나온 것으로 ‘불완전성 정리’라고 이름 붙여졌다. 괴델의 정리는 결국 20세기 수학 기초이론의 핵심이 되었고 “컴퓨터라 해도 풀 수 없는 수학적 문제가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되어 인공지능 개발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가짜 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 두 회사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정보를 자동 분석해 참인지 거짓인지를 구분해주는 프로그램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과연 인공지능의 시대에 거짓이 사라지게 될까? 인공지능이 인간의 교묘한 거짓을 잘 찾아내도 이 세상에 거짓말쟁이들이 계속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거짓말쟁이 중에 컴퓨터 알고리즘이 포함될 수 있다. 정보를 편집, 변형, 조작하는 기술을 가진 컴퓨터 프로그램 또는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사실인 정보와 가짜인 정보를 구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거짓을 가려내는 똑똑한 기계의 도움을 받으면 정보를 검증하여 분석하는 작업 절차가 간소화된다. 하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우리 인간의 몫이다. 기계에 의존한 삶이 보편화하면서 스마트폰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대신하고, 계산기가 암산을 대신하는 등 암기와 사고 등 뇌의 기능을 인터넷이 대신해 주면서, 뇌를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제 거짓 정보를 가려내는 일도 인공지능에게 맡기려고 한다.
어쩌면 미래 사회에 이런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거짓말하는 기계’와 ‘거짓말을 찾아내려는 기계’ 간의 대결. 가짜 정보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은 ‘거짓말하는 기계’를 이용하여 공공기관 및 시민의 약점을 노릴 것이다. 해커가 ‘거짓말을 찾아내려는 기계’의 시스템에 침투해서 거짓말쟁이의 역설과 유사한 명령어를 입력시킬 수 있다. “내가 입력시키는 모든 명령은 거짓이니 받아들이지 말 것.” (마틴 가드너, 19쪽) 기술이 향상되어도 기술 자체로 거짓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