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공작 사이언스 클래식 31
헬레나 크로닌 지음, 홍승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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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수컷은 화려하면서도 거추장스러운 꼬리를 가지고 있다. 꼬리의 화려함 때문에 천적의 눈에 잘 띄어 잡아먹힐 확률이 높다. 그래도 공작 수컷은 꼬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모든 정력과 에너지를 화려한 꼬리 치장에 들이고 그 치장을 바탕으로 가장 화려한 수컷이 가장 많은 암컷과 교미할 수 있다. 수컷의 화려함은 과시의 상징이기 이전에 유전자의 우수성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언제나 생존 가능한 숫자보다 많은 수의 후손을 생산한다. 강하고 건강한 개체만이 종족을 보존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동물은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퍼트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과시한다.

 

공작의 화려한 꼬리는 ‘성 선택(sexual selection)’의 결과다. 암컷의 주목을 받아 짝짓기 확률을 높이는 이익이 꼬리로 인해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손실보다 크기 때문이다. 수컷 공작의 화려한 꼬리에서 착안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성 선택 이론은 진화생물학자들에게 정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처음에는 입증되지 못한 하나의 가정에 불과했다. 다윈은 수컷 공작의 특정 꼬리 외모를 선호하는 암컷 공작의 취향이 ‘심미적 요인’ 때문으로 추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앨프리드 월리스(Alfred Wallace)는 다윈의 성 선택 이론을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암컷 공작이 단순히 꼬리에 대한 취향만으로 수컷을 고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암컷 공작은 수컷 공작의 꼬리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수컷 공작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여 교미 여부를 판단한다.

 

만약 월리스의 협력이 없었다면 다윈은 진화론을 끝내 세상에 내놓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월리스는 말년에 창조론에 경도되면서 다윈의 그늘에 가려 잊혀졌다. 그렇지만 헬레나 크로닌(Helena Cronin)은 성 선택 이론에 대한 논쟁의 역사를 정리한 《개미와 공작》에서 성 선택 이론을 거부한 월리스를 재평가한다.

 

 

인정하건대 지금까지 나는 월리스를 한때 다윈의 성 선택 이론을 거부했으며 암컷의 선택이라는 바로 그 아이디어에 확고하게 반대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제 그 인상을 바꿔야 하는 시간이 됐다. 그의 모든 항변에도, 월리스는 암컷 선택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그가 실제로 한 행동은 암컷 선택에 대한 다윈의 견해에 열심히 반대하면서 대안 이론인 ‘좋은 감각’ 견해를 제시한 것이었다. (298쪽)

 

 

암컷 공작의 ‘좋은 감각’은 아름다운 수컷 공작 꼬리를 선호하는 ‘좋은 취향’과 다른 의미이다. 조금 더 생각하면 성 선택 이론에도 허점이 있다. 순록의 거대한 뿔 역시 성 선택의 결과다. 수컷 순록들은 멋진 뿔을 암컷 순록 앞에서 자랑하며 구애 경쟁을 펼친다. 그런데 수컷 순록의 뿔을 선호하는 존재가 암컷 순록만 있을까. 인간도 순록의 뿔을 좋아한다. 아주 화려한 뿔을 가진 수컷 순록은 사냥감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되면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손실이 암컷의 주목을 받아 짝짓기 확률을 높이는 이익보다 커질 수 있다. 그리고 순록은 그 어느 동물보다 기후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기후 변화로 인한 지구온난화는 순록의 생존 조건을 더욱 혹독하게 만든다. 날씨가 따뜻해서 빙하의 결빙과 해동 주기가 변화되고, 먹이를 찾기 위한 순록 떼의 이동이 어려워진다. 그리고 눈보다 비가 더 많이 내리게 되면, 순록이 뜯어 먹을 풀들이 얼어 죽는다. 먹을거리마저 사라지니까 순록의 몸집이 점점 줄어들게 되고, 먹이를 구하기 힘든 겨울에 순록이 굶어 죽는 일이 발생한다.[참고] 개체 수 관리를 위한 정책적 노력으로 순록 개체 수를 늘릴 수 있지만, 먹을 것을 두고 벌어지는 순록의 생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암컷 순록은 화려한 뿔을 가진 수컷이 아닌 건강 상태가 양호한 몸집이 큰 수컷과의 교미를 원할 것이다.

 

종의 생존 경쟁이 치열하다고 해서 진화 자체가 이기적이며 냉혹하다고 볼 수 없다. ‘혈연 선택(Kin Selection)’ 등으로 풀이되는 호혜적 이타주의가 아직도 우리를 지탱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성 곤충이 보이는 협동 모습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다윈은 이러한 측면에서 생식적으로 불임이면서도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 무한 희생하는 일개미에 대한 경외심에 대해 일찍이 기술한 바 있다. 개체의 이익을 포기하면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협동하는 집단만이 살아남는 것 또한 진화의 섭리다. 그런데 다윈의 추종자들은 인간을 포함한 종들은 번식을 향한 냉엄한 경쟁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했다. 이렇다 보니 생존경쟁에서 이긴 자만이,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주장한 ‘사회진화론’을 다윈의 진화론으로 오해하는 상황이 생긴다.

 

 

 

 

[참고] <순록, 숫자는 늘지만 몸집은 점점 작아진다…이유는?> (서울신문, 2016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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