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모리 후지노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소미미디어, 일본에서는 11권까지 발행, 국내는 10권까지 발행)

 

 

 

 

아이소라 만타의 라이트노벨 《기어와라! 냐루코 양》(약칭 ‘냐루코 양’)은 제1회 GA문고 대상 전기 장려상을 받은 작품이다. GA문고는 라이트 노벨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브랜드이다. 이 회사는 매년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장려상 입상 작품을 선정한다. 그리고 장려상 수상작 중에 우수상과 대상 작품을 선정한다. 수상 선정 절차가 좀 까다로워서 그런지 대상 작품이 잘 나오지 않는다. 최초로 GA문고 ‘대상’을 받은 라이트노벨 작품이 오모리 후지노의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약칭 ‘던만추’)이다. 이 작품은 제4회 GA문고 대상 후기 장려상을 수상했고, 그 해 GA문고 대상의 영광까지 안았다.

 

 

 

 

 

 

 

《던만추》가 정식 발매된 해는 2013년이다. 라이트노벨이 발매된 후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출판되었다. 《던만추》가 발매되고 있을 때, TV 애니메이션 《기어와라! 냐루코 양 W》이 방영되고 있었다. 두 작품이 ‘GA문고 수상작’이라서 애니메이션 중간에 《던만추》가 깨알같이 나오기도 한다. 그것도 두 번이나.

 

 

 

 

 

《던만추》의 TV 애니메이션도 유명한데, 인기몰이의 주역이 바로 《던만추》의 히로인 ‘헤스티아(Hestia)’다. 그녀의 복장은 남성 덕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녀의 가슴 아래에 파란 리본 끈 장식이 있다. ‘가슴 끈 디자인’은 헤스티아의 특정 신체 부위를 부각해주는 효과가 있다. 인터넷 검색 창에 ‘헤스티아’를 검색하면 대부분 《던만추》의 헤스티아 사진이 나온다. 헤스티아의 복장이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보시길.

 

헤스티아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화로(火爐)의 여신이다. 로마 신화에서는 ‘베스타(Vesta)’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가장 유명한 여성들이 즐비하다. 올림포스(Olympos) 12신 중에는 헤라(Hera), 아프로디테(Aphrodite), 아테나(Athena), 아르테미스(Artemis), 데메테르(Demeter)가 있다. 신들과 연관된 여성들이 더 많다. 프시케(Psychē), 이오(Io), 메데이아(Medea), 아라크네(Arachne), 헬레네(Helene) 등이 있다.

 

그런데 헤스티아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헤스티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는 여신이다. 신들을 위한 무기를 잘 만드는 재능 빼곤 특별히 존재감 없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Hephaistus)보다 비중이 없다.

 

 

 

 

 

 

 

 

 

 

 

 

 

 

 

 

 

* 아폴로도로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도서출판 숲, 2004)

 

 

 

그리스 신화를 집대성한 아폴로도로스의 《비블리오테케(Bibliotheke)》에 보면 헤스티아는 딱 한 번 언급될 뿐이다. 그녀는 크노로스(Cronus)와 레아(Rhea)가 낳은 3남 3녀 중 가장 먼저 태어난 장녀이다. 그 다음으로 태어난 자식들이 데메테르, 헤라, 플루톤(Pluton), 포세이돈(Poseidon) 순이다.

 

크로노스는 데려온 형제들을 묶어 다시 타르타로스[1]에 가두고 누이인 레아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자식들이 태어나는 대로 모두 삼켜버렸다. 자식들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될 것이라고 게[2]와 우라노스[3]가 예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맏이인 헤스티아를, 그 다음에는 데메테르와 헤라를, 이어서 플루톤과 포세이돈을 삼켰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20쪽)

 

[1] 지하에 있는 세계

[2]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

[3] 하늘의 신, 게의 남편이자 크로노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식들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까 봐 두려워하여 자식들을 집어 삼킨다. 막내아들 제우스(Zeus)만 살아남게 되는데, 성인이 된 그가 크로노스의 뱃속에 있는 신들을 구해낸다. 크로노스가 자식들을 토해냈을 때 마지막에 나온 신이 헤스티아다. 그래서 그녀는 먼저 태어났음에도, 크로노스의 뱃속에서 마지막으로 부활하는 바람에 막내가 되었다.

 

 

 

 

 

 

 

 

 

 

 

 

 

 

 

 

 

* 낸시 헤더웨이 《세계 신화 사전》 (세종서적, 2004)

 

 

《세계 신화 사전》의 저자 낸시 헤서웨이가 헤스티아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는데, 헤스티아의 특징을 아주 잘 표현했다.

 

온화하고 수줍은 헤스티아는 별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올림포스 신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헤스티아에 관한 이렇다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 신화 사전》 253~254쪽)

 

헤서웨이의 말이 사실이다! 그리스 신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되면, 헤스티아가 주연급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이름은 남아 있을 뿐, 등장 장면이 단 한 개도 없는 '아웃 오브 안중', ‘투명 여신’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안습한 건, 헤스티아가 원래 올림포스 12신에 속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점이다. 헤스티아도 크로노스의 장녀이기 때문에 올림포스 12신으로 대우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제우스는 자기 아들인 풍요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를 올림포스 12신 자격을 부여해주고 싶었다. 마음씨 착하고, 다툼을 싫어하는 헤스티아는 스스로 12신 자격을 포기, 디오니소스에게 양보한다. 이렇게 되면서 헤스티아의 존재감은 확 줄어들게 된다.

 

헤스티아는 신들의 구애를 거부할 정도로 순결을 영원히 지킨다. 그녀를 숭상하는 무녀들도 평생 순결을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기면, 가혹한 형벌을 받는다. 그리스 신화의 헤스티아와 《던만추》의 헤스티아의 성격을 비교해보면, 약간 비슷하면서도 뚜렷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신화의 헤스티아는 조용한 성격이라서 올림포스에서 일어나는 신들의 분쟁에 나서지 않는다. ‘중립’이 아닌 무관심에 가까운 태도이다. 《던만추》의 헤스티아도 여신임에도 신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 없고, 늘 혼자 집에 틀어박혀 지낸다. 그러다가 우연히 벨 크라넬(Bell Cranell)이라는 인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헤스티아는 초보 모험가인 벨을 자신의 파밀리아(familiar) 첫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헤스티아는 자신의 체면을 버리면서까지 벨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던만추》의 헤스티아는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평생 순결을 지켜야 하는 신화의 헤스티아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도서출판 숲, 2005)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2》 (민음사, 1998)

 

 

 

고대 그리스인들은 헤스티아에 관심 없었지만, 로마인들은 그녀를 ‘베스타’라고 부르면서 국가와 가정의 수호신으로 숭배했다. 로마에 그녀를 위한 축제도 열렸다. 그녀를 모시는 신전의 제단에는 화로가 놓여있고, 그 위에 불이 타올랐다. 화로 위의 불이 꺼지면 로마를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재앙이 온다는 신호로 여겼다. 그래서 베스타의 무녀(巫女)들은 화로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살펴야 했다. 오비디우스《변신 이야기》율리우스 카이사르(Caesar)를 베스타로부터 보호받는 위대한 인물로 묘사했다. 그 정도로 로마에서의 헤스티아, 아니 베스타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그리스 신화는 남성 위주의, 남성의 시각으로 그려진 이야기다. 남성은 ‘사랑과 전쟁’이 있는 이야기를 선호한다. 오만방자한 신들 때문에 인간이나 영웅이 엄청 고생하는 이야기가 신화 중에 제일 기억이 남고, 가장 유명하다. 그래서 싸움을 싫어하는 헤스티아는 비중이 없는 여신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헤스티아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 아르테미스에 비하면 훌륭한 덕성을 가진 여신이다. 그렇지만 남자들은 착한 여신보다는 ‘남자를 고생시키는 나쁜 여신’들을 좋아했다. 특히 아프로디테는 남자들이 욕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팜 파탈(femme fatale)’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남자들은 아프로디테의 바람기를 싫어해도 그녀의 뛰어난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그녀의 벌거벗은 몸은 남성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인기 주제였다. 이렇게 아프로디테에 관련된 신화는 오랫동안 널리 구전되었고, 오늘날까지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헤스티아보다 제일 불쌍한 존재가 베스타의 무녀들이다. 그녀들은 연애는 물론, 결혼을 할 수 없었다. 처녀성을 잃으면 채찍질 또는 생매장당하는 형벌을 받았다. 뭐든지 잘못 하면 무녀들의 책임으로 전가했다. 순결을 잃어버리면 ‘정결하지 못한 여성’으로 비난받았고, 가해자의 책임보다는 피해자의 책임을 더 따지는 불합리한 상황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시대가 바뀌어 아프로디테가 ‘사랑스럽지만, 음란한 비너스(Venus)’로, 헤스티아가 ‘순결을 지키는 위대한 베스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여자에게는 순결을 요구하면서 다른 여자에 흑심을 품는 남자의 이중성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육체의 쾌락을 인정하면서도, 여성의 순결을 고귀하게 여기는 남자의 이중성은 교활하다. 겉으론 자기가 개방적인 척하면서 속으론 처녀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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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2 16: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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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02 16:51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생존 번식의 본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식이 자신을 뛰어넘는 걸 두려워합니다. 세상에는 뜨는 존재가 등장하면, 지는 존재가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권력을 오래 누리고 싶을수록 상승 하락의 원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문학 작품이나 역사에 보면 자식을 위협하거나 자식 간에 갈등을 빚는 아버지들이 나옵니다. ^^;;

2017-03-03 15: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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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15: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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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15: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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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16: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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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16: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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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16: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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