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랭크 맥린 (다른세상, 2011년)
* 《로마인 이야기 11 : 종말의 시작》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2003년)
과거 동 · 서양의 왕가들은 순수한 혈통을 지키기 위해 근친혼을 했다. 《명상록》의 저자 로마 오현제(五賢帝)의 한 사람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사촌지간인 파우스티나(Faustina)와 결혼했다. 마르쿠스의 일대기와 《명상록》을 같이 읽어보게 되면 황제의 결혼 생활이 실제로 어떤지 궁금할 수 있다. 역사가들은 이 주제에 상당히 흥미로워했다. 프랭크 맥린(F. McLynn)과 (역사가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시오노 나나미(Shiono Nanami)는 고대 문헌들을 토대로 황제의 결혼 생활을 주목 · 분석했다.
정설에 따르면 마르쿠스의 아내 파우스티나는 ‘정숙하지 못한 아내’로 알려졌다. 그런데 마르쿠스는 《명상록》에 아내에 향한 헌사를 남겼다.
“너무도 순종적이고, 너무도 사랑스러우며, 너무도 소탈한, 너무도 좋은 여인.”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456쪽)
“더없이 다소곳하고 더없이 다정하고 무엇보다도 전혀 꾸밈이 없는 여자” (《로마인 이야기 11 : 종말의 시작》 158쪽)
마르쿠스와 파우스티나가 부부로서 함께 지낸 생활은 30년. 그 짧지 않은 세월 속에 파우스티나는 14명 혹은 15명의 자식을 낳았다. 시오노 나나미는 파우스티나가 다산한 사실만 가지고 두 사람의 성생활이 활발했으며 결혼 생활이 행복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서술했다. 시오노 나나미가 역사가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가끔 그녀는 역사를 서술할 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다. 물론, 성생활이 부부의 행복에 무척 중요하다. 그렇지만 성관계를 더 많이 한다고 해서 무조건 부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성관계의 빈도보다는 부부 간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만족감을 느끼는 성관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1]
* 《고대 로마인의 성과 사랑》 알베르토 안젤라 (까치, 2014년)
로마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사랑’해서 결혼하고, 섹스하지 않았다. 로마인은 결혼을 가문과 국가의 기강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사회적 규범으로 받아들였다.
마르쿠스 시대의 역사가들은 파우스티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를 근거로 현대의 역사가들과 《명상록》의 번역가들은 파우스티나가 결점이 많은 아내로 소개했다. 프랭크 맥린은 파우스티나의 부정적인 측면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 근거, 정치 문제에 지나치게 간섭했던 것. 두 번째 근거는 고집 세고 잔소리가 심한 황후의 성격이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Xanthippe)와 닮았다는 점. 마지막으로 황후가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해 방탕한 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마르쿠스와 파우스티나는 완전 정반대의 성격이다. 마르쿠스는 늘 차분한 성격에, 어떤 일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성관계를 좋아하지 않았다. 파우스티나 입장에서는 굼뜨고, 무미건조한 남편이 답답해 보일 수밖에 없다.
고대의 역사가들은 동시대의 황제에 대판 평을 다분히 주관적으로 서술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가가 어떠한 사료를 참고했는가에 따라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그 사료를 참고한 학자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편집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마르쿠스 시대의 역사가들의 증언을 참고할 뿐 비중 있게 보지 않는다. 그녀는 고대의 사료를 무시하고, 파우스티나가 ‘현모는 아니었지만, 틀림없이 양처였을 것’이라고 썼다. 그 근거로 《명상록》에 있는 아내를 위한 헌사인데, 솔직히 이것만 가지고 파우스티나를 ‘양처’라고 추측하기에는 근거가 빈약하다. 시오노 나나미는 파우스티나가 전장으로 향한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홀로 기다렸으며 병사들의 기지에 방문할 정도로 남편 못지않게 존경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파우스티나를 ‘악처’로 보는 프랭크 맥린의 주장과 충돌한다.
파우스티나를 크산티페와 동일한 인물로 보는 맥린의 관점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가정을 소홀히 한 남편이다. 남들과 달리 평범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크산티페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우스티나는 악처도 양처도 아니다. 그저 자신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편을 만나 고생하면서 살다간 여인이었다. 이 두 사람이 합의 이혼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로마의 여성은 남편 그리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정숙’하도록 살아야 했다. 본능을 숨기면서까지 품위를 유지하면서 지내는 일이 답답했을 터. 로마 남성들은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성적 쾌락을 누릴 수 있었지만, 여성들은 평생 남편의 울타리에 갇혀 지냈다. 그녀들이 조금이라도 바람을 피우면 가문과 남편을 욕보이는 부도덕한 행동이라고 비난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바람을 피운 파우스티나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그녀가 그렇게 살아야 했던 원인을 단순히 그녀 개인의 결점으로만 보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을 뿐이다. 아무리 많은 사료가 남아 있다고 해도 그것만 가지고 한 사람을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음침한 마음! 여자 같으며 완고한 마음, 사납고 어린애 같으며 짐승 같고 어리석으며 교활하고 상스러우며 부정적이고 폭군적인 마음. (《명상록》 제4장, 황문수 역)
정말 마르쿠스는 파우스티나를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부부가 행복하게 살았는지 아니면 ‘황제’의 명예가 조금이라도 손상되지 않기 위해 부부가 30년 동안 끝까지 참고 지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만약 마르쿠스가 아내를 싫어했다면, 《명상록》 제4장에 나오는 저 문장이 아내를 향한 마르쿠스의 진심일 수도 있다. 파우스티나의 진짜 품성과 기질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늘 논란거리가 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2]
[1] 『1주일에 한 번 성관계 맺는 부부가 가장 행복』 뉴시스, 2015년 11월 19일
[2]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4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