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표지 사진이 없는 책 : 《명상록 · 행복론》 아우렐리우스 · 세네카 (범우사, 1994년)

* 《명상록》아우렐리우스 (도서출판 숲, 2005년)

 

 

 

2013년 올재 클래식스 6번째 시리즈로 발간된 《명상록》은 황문수 씨가 번역했다. 이 번역자의 약력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인터넷 서점의 ‘작가 소개’에 따르면 황문수 씨는 경희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고 한다. 70~80년대에 나온 철학 서적들, 특히 버트런드 러셀, 플라톤, 칼 야스퍼스, 윌 듀란트 등의 저서를 번역했다. 《명상록》도 마찬가지다. 사실 황문수 씨 번역의 《명상록》은 1974년 범우사에서 펴낸 책이다. 이때 나온 책의 부제는 ‘자성록(自省錄)’이다. 1987년에 세네카의 글과 함께 수록한 번역본이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제목이 《명상록 · 행복론》이다. 《행복론》의 번역은 최현 씨가 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범우사판 《명상록》은 최현 씨가 번역한 것이다. 거의 절판된 거나 다름없는 황 씨 번역의 《명상록》을 사단법인 올재가 재출간한 것으로 보인다.

 

오래된 서양 고전 번역본들은 거의 일역본을 중역한 것이다. 황 씨 번역의 《명상록》도 일역본을 중역했을 가능성이 있다. 황 씨의 문장에 지금은 잘 쓰지 않는 한자어가 많은 편이다. 한자에 생소한 젊은 독자들은 《명상록》의 진미를 느끼는 데 어려울 수 있다. 천병희 교수의 《명상록》은 그리스어 원전을 옮긴 번역본인데, 여기도 문장 속에 생소한 한자어가 몇 개 있다. 그래도 번역자 입장에서는 우리말로 풀이하기 어려운 문장을 번역하기 위해 최대한 원문과 비슷한 의미의 한자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프랭크 맥린 (다른세상, 2011년)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로마 전성기에 등장한 5현제 중의 한 사람이다. 마르쿠스가 통치한 시기는 태평성대를 구가했지만, 역시 나라의 정세가 흔들리는 크고 작은 위기가 여러 차례 있었다. 홍수와 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발생해서 인명피해가 생겼고, 설상가상 전염병까지 퍼지기도 했다. 외세의 침략에도 시달렸다. 중동에 위치한 파르티아 제국과 훈 족의 위협으로 로마 제국의 국경 지역으로 이주한 게르만 족의 위협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황제는 독서와 사색을 즐기는 학구적인 성격이었다. 마르쿠스 통치 시절의 역사학자는 내성적인 황제가 감당해야 할 운명이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였다고 기록했다. 19년 동안의 통치 기간은 황제 입장에서는 힘겨운 시기였다. 그래도 마르쿠스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았고, 전쟁을 진두지휘해 모범을 보였다. 외세로부터 로마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 그는 고전 문헌들로 가득한 서재가 아닌 전쟁 막사에서 숨을 거두었다.

 

마르쿠스는 하드리아누스(Hadrianus)의 아들이자 그의 후계자인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의 양자로 들어왔다. 어린 마르쿠스를 유난히 아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그에게 ‘진실한 아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마르쿠스는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이었다. 그가 얼마나 착했으면 로마 전역에 아내의 추문이 알려졌는데도 결코 아내를 꾸짖지 않았다. 마르쿠스는 《명상록》에 아내를 좋게 표현했다.

 

내 아내가 그토록 고분고분하고 곰살궂고 검소한 것도, 내 자식들을 위하여 유능한 스승들을 구한 것도 신들 덕분이다. (천병희 역, 《명상록》 제1장 30쪽)

 

마르쿠스는 상대방의 결점을 비판하는 성격의 인물이 아니었다. 자신과 함께 아우렐리우스 가문의 양자로 들어왔고, 같은 해에 공동 황제로 임명된 루키우스 베우스(Lucius Verus)의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하기보다는 그가 스스로 반성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대했다고 한다. 루키우스 베우스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마르쿠스는 죽을 때까지 단독 황제의 자리를 유지했다.

 

 

 

 

 

 

 

 

 

 

 

 

 

 

 

 

 

* 《비판이란 무엇인가? / 자기 수양》미셸 푸코 (동녘, 2016년)

 

 

 

 

《명상록》을 보면 마르쿠스가 로마의 황제라는 의식과 신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자기성찰에 충실했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셸 푸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삶에 가장 해로운 것들, 즉 권위에 대한 탐욕, 집착,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에 ‘통치받지 않으려고’ 했다.[1] ‘황제’, ‘대통령’ 등 권위와 관련된 이름을 누구나 가지는 순간, 그 권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 위에 군림하려고 든다. 이럴 때 국민의 권리는 유린당하고, 국민과 유리된 권위가 통치하는 국가는 파멸에 직면한다. 자신에게 채찍질하는 마르쿠스의 비판적 글쓰기는 ‘자발적 불복종의 기술’[2]이다.

 

마르쿠스는 젊었을 때에 해야 할 일들 중 하나로 ‘대화편’을 써야 한다고 했다. (《명상록》 제1장) 이 ‘대화’는 나 자신을 사유하는 존재로서 스스로 묻고 답하는 행동이다. 그건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일이다.

 

지금 나 자신의 영혼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어떤 경우에나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 하며, 지배적 원리라고 불리는 나의 이 부분을 나는 지금 어떤 일에 사용하고 있는가를 음미해야 한다. 지금 나의 영혼은 어떤 영혼인가? (황문수 역, 《명상록》 제5장 71쪽)

 

자기 수양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성을 통해 자신의 감정 및 행동을 분명히 인지하고,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된다. 푸코는 비판의 기능이 있는 자기 수양을 ‘배운 것을 버리는 것(de-disccere)’이라고 했다. 자기 수양은 상대방의 타당한 비판을 받아들일 줄 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평생 몸에 배야 할 기본 덕목이다.

 

내가 올바르게 생각하지도 않으며 올바르게 행동하지도 못한다고 나에게 설득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즐거이 나의 태도를 바꾸겠다. 나는 진리를 추구하고 있으며, 진리로 말미암아 해를 입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류와 무지에 안주하는 사람은 해를 입는다. (황문수 역, 《명상록》 제6장 85쪽)

 

배운 것을 버리는 것. 내가 스스로 발견한 결점이든 상대방이 알려준 내 결점이든 이를 과감히 떼어내는 삶의 태도는 한 인간이 평생 살면서 치러야 할 투쟁이다. 혼자 투쟁하려면 이를 실천하려는 충분한 힘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마르쿠스와 푸코는 자기 수양을 위한 훈련법으로 ‘글쓰기’를 강조한다. 이들의 제안은 비판적 목소리를 ‘비난’으로 매도하고, 잘못에 대한 반성을 선행하지 않는 세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비판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결점을 들춰낼 줄 아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이게 안 되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너무 많다. 박 씨, 최 씨,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보호하려고 매 주말마다 영혼 없이 태극기를 휙휙 휘날리는 사람들. 이들은 사회에서 배운 낡고 편협된 것들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못 버릴 듯하다. 과거의 쓰레기들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말고, 무덤에 갈 때 남김없이 들고 가길 바란다. 이건 그들에 향한 악의에 찬 저주가 아니다. 더 나은 세상으로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간곡히 부탁하는 말이다.

 

 

 

 

[1] 미셸 푸코 《비판이란 무엇인가? / 자기 수양》 46쪽

[2] “비판은 자발적 불복종의 기술, 숙고된 불복종의 기술일 것입니다.” (같은 책,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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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1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1 08:03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언제 읽어도 좋은 문장들을 많이 만납니다. 필사하기 참 좋은 책입니다. ^^

우마우마 2017-02-21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시 읽어보고 싶어져요. 고등학교 때 왠지 멋있어 보여서 명상록을 샀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뭘 알고 읽었나 싶어요. ㅎㅎ 남기신 댓글처럼 필사를 해볼까 싶어집니다.

cyrus 2017-02-21 12:35   좋아요 0 | URL
<명상록>이 처음 읽을 땐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해보니까 곱씹을만한 글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제가 노인이 돼서 <명상록>을 다시 읽으면 책을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