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에 프랑수아 비용의 《유언의 노래》(민음사, 2016년)와 《유언시》(문학과지성사, 1980년)에 공통으로 발견된 오류를 언급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두 책은 『유증시』의 14연 8행시를 13연으로 잘못 소개했다. 그러나 번역자들의 실수라고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조금 부족했다. 어젯밤에 《유언시》를 다시 읽고 나서야 드디어 의문점이 풀렸다.

 

내 글에 인용된 원문의 출처는 ‘프로젝트 구텐베르크’다.

※ 링크 : http://www.gutenberg.org/files/12246/12246-h/12246-h.htm

 

 

XIII(13연)

 

Item, à Jehan Trouvé, bouchier,

Laisse le mouton franc et tendre,

Et ung tachon pour esmoucher

Le boeuf couronné qu‘on veult vendre,

Et la vache qu‘on ne peult prendre.

Le vilain qui la trousse au col,

S‘il ne la rend, qu‘on le puist pendre

Ou estrangler d‘un bon licol!

 

 

《유언시》를 번역한 송면 교수는 이 13연 8행시를 ‘22연’이라고 썼다. 프랑스어를 잘 모르는 분을 위해 번역문 중간에 원어를 표시했다.

 

 

또 하나, 푸주한 장 투르베(Jehan Trouvé)에게는

질이 좋은 부드러운 양과

팔려 내놓은 관을 쓴 황소(boeuf couronné)의

파리를 쫓는(esmoucher) 채찍 한 개와

그리고 암소(vache)를 남겨 준다.

이 암소를 어깨에 메는 나쁜 놈(vilain)이 있거든 잡아도 좋고

그리하여 돌려주지 아니하거든 단단한 고삐(licol)로

그 놈의 목을 졸라도(estrangler) 좋으리라.

 

(《유언시》 58쪽)

 

 

 

이제 남은 건 송 교수가 ‘19연’으로 잘못 소개한 8행시다. 이 구절은 19연이 아니라 22연이다.

 

 

XXII(22연)

 

Item, au chevalier du guet,

Le heaulme luy establis;

Et aux pietons qui vont d'aguet

Tastonnant par ces establis,

Je leur laisse deux beaulx rubis,

La lenterne à la Pierre-au-Let.,

Voire-mais, j'auray les Troys licts,

S'ilz me meinent en Chastellet.

 

 

또 하나, 야경대장(夜警隊長, au chevalier du guet)에게는

투구를 주기로 정해 두고

가게의 대를 어루만지며 야경을 도는

사보(徙步)의 야경 대원들(pietons)에게는

훔친 멋있는 물건(rubis)

피에르 오 레(Pierre-au-Let) 가(街)의 초롱(lenterne)을 남겨 준다.

그리하여 만약(Voire-mais) 그들이 나를 샤틀레 감옥(Chastellet)으로 연행하면

나는 세 개의 백합 무늬의 방을 차지하리로다.

 

(《유언시》 56쪽)

 

 

 

정말 희한한 일이다. 어떻게 비용을 전공한 두 명의 불문학자가 똑같이 8행시의 머릿수를 잘못 적는 실수를 저질렀을까? 두 사람이 번역을 위해 참고한 원서는 같은 책이 아니다. 8행시 순서를 잘못 적은 원서를 그대로 옮기는 바람에 불문학자들이 그 오류를 발견하지 못할 수 있고, 아니면 내가 참고한 ‘프로젝트 구텐베르크’에 입력된 원문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 수정 · 첨언합니다 (2017년 2월 10일 작성)

 

 

제가 2월 7일, 그리고 오늘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유언의 노래》 13연 8행시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썼습니다. 오늘 오전에 ***님(의 댓글이 ‘비밀’로 되어 있어서 실제 닉네임을 거론하지 않았습니다)께서 제 의견에 대한 이견을 내놓았습니다. ***님의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제가 참고했던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원문이 잘못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원문은 1860년대에 나온 것이고, 그 후로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반영된 시의 순서와 머릿수가 체계적으로 정립되었습니다. 《유언시》의 송면 교수와 《유언의 노래》의 김준현 교수는 새롭게 정리된 원본 시집을 참고해서 번역했을 겁니다. ***님이 2012년에 나온 불영 대역본 시집의 시의 순서와 머릿수가 두 권의 번역본과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프로젝트 구텐베르크’는 과거 자료를 디지털화해서 옮겼기 때문에 최근의 연구 성과를 반영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글므로 제가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원문을 가지고 두 권의 번역본에 대해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한 의견이 잘못되었음을 밝힙니다. 잘못 전달될 소지가 있는 내용은 '취소선'으로 그었습니다. 좋은 의견을 주신 ***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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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0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10 12:43   좋아요 1 | URL
그래도 모국어의 시가 더 좋습니다. ^^

레삭매냐 2017-02-13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를 이용해서
불어 번역에 대해 의문점을 제시했었는데,
번역판이 다르다는 그런 대답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출판사 내부 사정을 자세히 모르고, 또 언어
에 대해서는 영어 정도 밖에 모르니 이견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저자의 이름 건에 대해서도...

예를 들어 존 버저의 경우도 자신의 이름도
자신이 버저라고 하는데 왜 굳이 우리나라
출판사에서는 꾸역꾸역 존 버거라고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틀렸으면 고치는 게 정상인데 말이죠.

cyrus 2017-02-13 15:27   좋아요 0 | URL
번역 문제는 번역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저처럼 어설프게 구글 번역기 돌리면서 하면 전문가에게 제대로 털리기 마련입니다.. ㅎㅎㅎ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사용된 명칭, 작가 이름 같은 고유명사가 고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베르테르’의 표기가 잘못 돼서 ‘베르터’로 고쳐 쓰는 사람이 있어도 대부분 사람들은 익숙한 ‘베르테르’를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