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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와 민주주의 ㅣ 현대의 지성 59
노르베르토 보비오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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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흔히 ‘우파’와 ‘좌파’라는 용어와 혼동되고, 상호 대립적이고 양립할 수 없는 정치적 가치와 사고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엉뚱하게도 우리나라의 자유주의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와 반공주의와 손을 잡고 말았다. 잘못된 만남이다. 이로 인해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들은 반국가 및 반체제세력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씌웠고, 반면 무소불위의 권력에 기댄 위정자들은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유신체제식 자유주의’를 펴나갔다. 억압적인 유신체제는 정부는 물론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허용하지 않았다. 자유주의의 기본적 원칙뿐만 아니라 주권 재민 사상, 인권 존중 이런 것들을 훼손시켜왔다. 유신체제의 반공주의는 ‘자유’를 지키자는 이념과 아주 거리가 멀다. 전체주의의 압력에서 벗어나서 개인의 자유를 찾으려는 이념이라기보다 북한과 사회주의에 향한 증오의 이념이었다.
우리 사회의 오랜 과제는 자유와 평등, 이 두 개의 가치가 보장되는 것이다. 평등 문제와 관련된 자유민주주의적 이론 경향은 크게 ‘자유평등주의’와 ‘자유지상주의’로 나눌 수 있다. 존 롤스(John Rawls)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사회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의론’을 집중적으로 연구, 자유주의에 평등주의의 장점을 도입했다. 그렇지만 자유지상주의자적 입장에서 롤스에 대항하는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국가의 역할이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사회민주주의는 부르주아적 지배질서의 한계 내에서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동시에 사회주의적 목표를 구현하려고 한다.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Norberto Bobbio)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정치적 구분과 대립이 인류의 발전에 커다란 구실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좌우가 서로에 대한 차이점을 인정하지 않고, 대립하는 상황을 사회 분란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자유주의는 사회주의로부터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 낙인찍혔다. 자유주의는 이미 허점이 드러난 이상적 공산주의 사회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마르크시즘(Marxism)과 전체주의적 권력에 근거를 둔 사회주의를 경계했다.
전통 사회주의의 한계는 명백히 지적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정의에 입각한 평등의 가치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이것은 자유주의적 평등이론의 사상적 기초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도 뜻깊은 성찰을 제공해주는 개념이다. 마르크스는 모든 구조적 불평등을 철저히 분쇄해야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고 사회주의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세울 수 있는 유일한 토대라고 했다. 그러나 자유라는 것은 각종 권리의 행사에 부당한 제약을 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야말로 진정한 자유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체제이다. 보비오는 두 가지 이념 사이에 생긴 차이점의 간격을 줄이고,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결합한 ‘자유사회주의(Liberal socialism)’를 제안한다. 자유사회주의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참여적 민주주의를 수용하면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성과물이나 가치의 균등한 배분, 즉 사회적 시민권을 포함하여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형태이다.
일부 지식인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자유사회주의’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결합해서 경제 불평등이 어느 정도 교정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 사회가 ‘자유사회주의’의 실효성을 검토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자유주의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바로 잡는 일이다. 자유주의의 중요한 가치인 ‘자유와 관용’은 기득권층에 흡수돼 버려 보수주의에서는 ‘질서와 안정’의 하위 개념이 되고 말았다. 자유주의에 대한 올바른 분석이란 자유주의에 대한 일방적인 예찬론에서 벗어나 자유주의가 발전 과정에서 보여준 문제점도 숨김없이 지적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주의의 원리와 가치를 존중한다면 개인적 자유, 정치적 자유, 관용 등을 배반하는 사실들을 정직하게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다수의 횡포’라는 것이다. 대중은 다수가 지지하는 여론에 쉽게 순응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가 이를 악용했을 때, 민주적 정치 문화에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한국 정치의 이념 대결은 매우 후진적이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 배제한 채 일방적 주장만 내세우면 민주사회의 통합과 균형이 파괴된다. 이런 점에서 진보와 보수는 극단주의와 거리를 두고 좀 더 현실적이고 온건한 정치적 지형으로 이동해야 한다. 두 가지 이념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사람들에게 ‘자유사회주의’는 여전히 매혹적인 정치적 기획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우리 사회는 한 단계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너무 멀기만 하다. ‘자유사회주의’의 수용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신중할 필요가 있다.
※ 패러디한 리뷰 제목의 원본 : 오모리 후지노의 라이트노벨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