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삶에 커다란 안락과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불확실성과 위기의 새로운 원천이 되었다. 더 이상 세계가 과거와 같은 냉전 분위기 속에서 전쟁 위험이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나타난 현실은 그와 정반대였다. 한 개인의 잘못으로 수백 명의 목숨을 좌우하는 상황이 과거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는 이것을 가능케 하고 있다. 1986년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에 흔들리는 현대의 모습을 ‘위험사회(Risk Society)’로 진단했다. 벡의 주저 《위험사회》가 출간된 지 정확히 30주년이었던 작년에 우리는 위험사회의 부작용을 경험을 했다.

 

사람들이 인식할 수 없는 위험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그러한 위험의 정도는 점점 더 높아진다. 벡은 사회가 가장 감당하기 힘든 위험 요소를 핵발전소라고 지적했다. 핵발전소의 위험은 말 그대로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런데 핵발전소보다 더 엄청난 위험 요소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최순실과 박근혜다.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이 두 사람의 관계, 그리고 그녀들을 보호하려는 세력(친박 세력, 박사모)의 행보를 살펴보면 하나의 근대성이 관통하고 있다. ‘박정희’라는 이름의 근대성. 박정희의 지지자들은 박정희 시대를 산업자본주의가 확립된 근대성의 정치적 결정체라고 찬양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앙하는 박정희 시대의 근대성에는 또 다른 쌍생아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국가주의와 개발지상주의였다. 부국강병을 신조로 경제개발을 시도한 박정희 시대는 한동안 근대성의 신화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제적 산업화를 상징하던 근대성은 이미 낡았다. 강력한 개발 독재, 군사적 가부장주의, 압축 성장 등의 근대성의 산물은 우리 사회를 위협했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 1972년 유신 체제. 한국 현대사에서 절대로 잊어선 안 될 이 굵직굵직한 사건 사고는 무분별한 개발 정책과 대통령 독재를 정당화한 권위주의를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위험’이었다.

 

근대성에 대한 반성이 없으면 위험이 축소된다. 박정희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면서까지 왜곡된 근대성의 위험성을 축소했다. 박정희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박정희 시절의 피해자라기보다는 수혜자라고 생각한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박정희를 좋아하는 이들은 공통으로 국가 혹은 경제 발전을 위해 온갖 위험을 자초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구시대적 패권 정치와 정경유착의 관계도 우리 사회를 썩어 문드러지게 한 위험 요소이다. 이렇게 그들이 함께 빚어낸 잠재적 위험은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작년에 터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기본적인 사회질서를 위태롭게 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은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최순실과 박근혜는 우리 사회에게 새로운 위험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들의 존재는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해악의 근원이다. 탄핵을 반대하는 친박 세력과 박사모는 과거의 정치적 유산이 만들어낸 위험요소를 성찰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렇게 산재한 위험을 제거하지 못하면, 좌우 세력이 균형을 찾아가는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위험사회의 피해는 아무 잘못이 없는 시민들이 감당한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위험이 두려울수록 민주적 공동체를 만들 의욕과 시간은 줄어든다. 지금으로부터 1,000일 전인 세월호가 침몰했던 2014년 4월 16일, 그 날을 거슬러 올라가 5 ․ 16 군사정변이 일어났던 1961년 그 날부터 우리 사회는 위험사회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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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0 0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10 11:48   좋아요 0 | URL
기득권층은 자신이나 자신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 세력의 입장이 불리하면, 법을 언급하면서 잘못된 행동들이 정당하다고 합리화합니다. 정말 웃긴 일입니다. 이러니까 정작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죗값을 받지 못합니다. 세상이 자꾸 이렇게 돌아가면 평범한 사람들이 살 맛 나지 않은 게 당연합니다.

지금행복하자 2017-01-10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박근혜는 죄가 없다. 정유라가 무슨 죄냐. 엄마가 다 잘못한거다. 등등의 말이 들립니다. 진정 위험한 것은 이런 사고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같습니다. 위의 것들이 안변하면 -그들은 변할리가 없으니까요- 국민들이라도 변해야하는데... 아직도 저런말을 하다니.. 그것도 제 주변에서 놀라울 따름입니다~~

cyrus 2017-01-10 11:50   좋아요 0 | URL
올해가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라서 벌써부터 잔치판을 벌이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박근혜가 탄핵되든 말든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올해도 작년처럼 여러 차례 험한 꼴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01-10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핵발전소야 관리 잘 하면 유용한 시설이지만 박근혜와 순실은 먹혀들지 않으니..

cyrus 2017-01-10 14:15   좋아요 0 | URL
박근혜와 최순실은 헌재까지 무시하더군요... 쌍ㄴ이라는 욕이 어울립니다.

작년에 곰발님 소개 덕분에 《위험사회》를 읽었습니다. 읽기가 어려웠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그 책을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