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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들어온 너에게 ㅣ 창비시선 401
김용택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평점 :
문학 지망생들은 ‘문학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는 기성 문인들도 마찬가지다. 문단 내의 추문이 잇따른 이 상황 속에 문학에 대한 확고한 자의식을 지니지 못한다면, 문학을 하는 행위의 소중한 의미를 망각하기에 십상이다. 이런 시기일수록 문인에게 자신의 글쓰기를 총체적으로 점검해 보는 행위는 더할 나위 없이 의미 있는 작업이리라. 대부분 뛰어난 문인들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정교한 자의식과 진솔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왜 시를 쓰는가?’에 대한 확고한 자의식이 실종된 시인에게서 탁월한 시가 나올 수 없다. 나는 김용택의 『오래 한 생각』을 읽으면서, 문학과 시의 근원적 의미에 대해서 오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느날이었다.
산 아래
물가에 앉아 생각하였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있겠지만,
산같이 온순하고
물같이 선하고
바람같이 쉬운 시를 쓰고 싶다고,
사랑의 아픔들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바람의 괴로움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이런
생각을 오래 하였다.
(『오래 한 생각』, 《울고 들어온 너에게》 20쪽)
문학을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숙명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지독할 정도로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서 투명하게 성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시인이나 문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용택은 진정한 시인이 아닐까. 『사랑을 모르나보다』 같은 시는 엄밀한 자기 성찰의 표정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쓸 때는 정신없어.
써놓고 읽어보면
내가 어떻게 이런 시를 썼지?
놀라다가, 며칠 후에 읽어보면
정말 싫다. 사는 것까지 싫어
당장 땅속으로 푹 꺼져버리거나
아무도 안 보는 산 뒤에 가서
천년을 얼어 있는 바위를 보듬고
얼어 죽고 싶다.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 사랑을 모르나보다.
(『사랑을 모르나보다』, 《울고 들어온 너에게》 69쪽)
난해한 시를 읽으면 정말 싫다. 시인들에게 묻고 싶다. “어떻게 이런 시를 썼지?”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시인과 독자 사이의 본원적인 교감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는 데는 사회적인 환경의 변화도 있지만, 시인들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즉 쉽게 공감할 수 있어야 할 시가 쓸데없이 어려워지는 이유를 시인도 잠시 펜을 내려놓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난해한 시는 대체로 자폐성이 있다. 그 시를 쓴 시인은 마음을 꽉 닫아놓고 ‘나는 나대로 이렇게 쓸 거야’라고 생각하는 자폐성이 있다. 시는 몇 마디 말로 이루어진 가장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문학적 대화이다. 시도 다른 말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대화이다. 시인이 힘 있고 감동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대화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오는 시를 쓸 수 있다. 이는 시인들이 짊어져야 할 숙명적인 책임이다.
김용택의 시는 담백하고 착하다. 화려한 기교와 인공조미료가 가미된 듯 문장을 요란하게 꾸미고 멋 부리기를 하는 시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거짓 없고 꾸밈없는 글쓰기를 지향해온 시인답게 열두 번째 시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는 순박한 마음이 담겨 있다. 자연을 소재로 한 시는 천진하고 순박한 자연을 그대로 닮았다. 『시인』은 꽃 한 송이로 자연의 순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감동을 안겨주고, 깊은 깨달음을 준다.
내가
저기 꽃이 피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저기 꽃이 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꽃을 보라고
다시 말했다.
(『시인』, 《울고 들어온 너에게》 25쪽)
시를 읽는 것은 시인과 서로 대화가 돼서 알아들을 때 재미있게 느껴진다. 시인 혼자 어려운 말을 사용하는 시보다는 서로 대화가 될 수 있는 시를 읽는 게 편하다. 간혹 가벼운 시마저 어렵게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다. 그럴 때 ‘이게 시냐?’, ‘이런 시를 쓰고 다니는 시인이 누구냐?’라고 묻기 전에 한 번 더 읽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시인이 이야기하고자 말을 듣기 위해 좀 더 바싹 다가앉아야 한다. 이렇게 해도 요즘에 나온 시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시집 읽기를 그만두는 것이 좋다. 시의 난해성 앞에서 절대로 좌절하지 마시라. 그런 시들은 거친 생각을 도정(搗精)하지 않고, 언어를 다듬지 않은 공허한 문자 덩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