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신화에 크레타 미노스 왕의 미궁(Labyrinthos) 이야기가 있다. 미노스의 왕비는 황소와 정을 통해 머리는 소, 몸은 사람인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는다. 왕은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을 짓고 미노타우로스를 가둔다. 괴물의 제물은 아테네의 소년, 소녀들이었다.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괴물을 처치하기 위해 미궁에 들어간다. 테세우스를 보고 한눈에 반한 아리아드네는 그에게 실타래를 줬다. 테세우스는 미궁의 문설주에 실 끝을 묶고 안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풀어놓은 실을 따라 무사히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미궁에 빠지다’, ‘미로를 헤매다’라는 말을 자주 쓴다. 살다 보면 출구가 안 보이는 것 같은 미궁과 미로에 봉착하게 마련이다. 로댕은 ‘우리는 자기를 둘러싸는 깊은 미궁 속에서 항상 방황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미로 게임을 즐겨본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미궁=미로’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미궁을 연구하고 분석한 《우주의 자궁 미궁 이야기》의 저자 이즈미 마사토는 ‘미궁=미로’ 관념을 부정한다. 미궁은 의도적으로 탈출구를 찾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다. 발명가 다이달로스가 애초에 미궁을 그렇게 제작했더라면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고도 탈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즉 미궁은 탈출할 수 있는 통로 또는 도달 가능한 목적지가 있다는 전제하에 정밀한 계산으로 설계된 구조물이다. 실타래를 사용하지 않아도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다. 막힌 통로를 만나더라도 다시 지나간 통로를 되짚어 나오면 된다.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탈출구를 찾아낼 수 있다. 반면 미로는 (이즈미 마사토가 정의한) 미궁과 정반대의 뜻이 된다. 미로에는 탈출구가 없다. 또한, 통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므로 복잡한 상황에 부닥칠 때 사용되는 관용어구 ‘미궁에 빠지다’는 틀린 거고, ‘미로를 헤매다’ 또는 ‘미로에 빠지다’가 정확하다. 다만, 미로를 무조건 미궁으로 통일해서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궁이나 미로나 이 구조물에 들어가면, 누구나 길을 잃어버려 헤매기 때문이다.

 

 

 

 

 

 

 

 

 

 

 

 

 

 

 

 

 

 

 

이즈미 마사토는 미궁이 이성의 힘을 통해 질서 정연하게 만들어진 구조물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무질서하고 흐트러져 있는 세계보다는 질서 정연한 세계 속에 있을 때야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의 토대가 되는 규칙과 질서였다. 그런 규칙과 질서를 부여하는 권위가 바로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이었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ringer)에 따르면 인간은 개인이 느끼는 약점이나 한계를 보완(또는 부정적 현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추상 충동’을 느끼기 시작한다고 분석했다.

 

 

 

 

 

 

 

둥그런 구멍 따위의 작은 것들이 뭉쳐 있는 것을 보면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환 공포증’을 느낀다고 말한다. 환 공포증의 원인을 연구한 학자들은 환 공포증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독성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거나 천적의 위협을 피하려는 생물의 몸에는 원 무늬가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공작나비의 경우 앉아 있을 때는 보호색을 띠지만, 천적이 다가오면 날개를 펴서 눈알 모양의 무늬로 위협을 준다. 이런 무늬를 볼 때 인간의 뇌는 몸에 무의식적으로 신호를 보낸다. 위협적인 대상을 피하라는 일종의 신호인 셈이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환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정신을 집어삼킬 것 같은 동그라미의 무시무시한(?) 존재에 맞서려면 그 형태 한가운데에 점 하나 콕 찍으면 된다. 아니면, 동그라미 안에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그려 넣으면 된다. 점을 찍거나 동그라미 안에 그림을 채워 넣는 행위는 ‘추상 충동’이다. 보링거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발생한 ‘추상 충동’이 예술 창작의 원동력으로 봤다.

 

 

 

 

 

 

미로는 인간의 ‘추상 충동’에 의해서 탄생한 ‘이성의 구조물’이다. 고대의 미로는 인간이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 맞닥뜨려야 할 통과의례를 상징한다. 이렇게 인간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안은 채 힘든 통과의례를 치러야 한다.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날아오를 수가 없고, 막다른 통로 속에 갇혀 버린다. 힘든 과정 없이 미궁에 극적으로 탈출한 이카로스는 하늘을 나는 흥분에 도취하여 추락했다. 미노타우로스는 완전한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고, 미궁 안에서만 머무르는 괴물로 살아갔다. 이카로스와 미노타우로스는 공통으로 미궁이라는 통과의례를 넘어서지 못했다.

 

중세의 미로는 천상으로 도달하기 위한 순례의 길이다. 이 또한 종교인들이라면 절대로 피하면 안 될 일종의 통과의례이다. 인간은 미로를 제작함으로써 목적지로 향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파악하게 된다. 즉 미로는 인간에게 시련과 고난을 선사해주면서도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지혜의 힘을 북돋워 주는 안정적인 구조물이다. 중세 시대의 교회 건물 바닥에 미로가 디자인 요소로 그려졌다. 흑사병과 죽음 앞에 불안을 떨면서 살아간 중세 사람들은 바닥에 그려진 미로를 바라보면서 심신에 안정을 찾았을 것이다. 미로를 빠져나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만 있으면 이 세상 어떠한 두려움을 잊고,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근대의 미로는 세속화의 바람을 맞으면서 과거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종교의 힘이 약화된 근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선택이 불가피한 시련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미로는 교회 건물 밖으로 나가 왕족 및 귀족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정원 도안으로 전락했다. 특히 연인들에게 미로는 최상의 안식처였다. ‘사랑의 미로’는 탈출구가 없어도 된다. 단둘이서 사랑을 나눌 수만 있다면 밖으로 나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현대의 미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미로를 만나선 안 된다. 왜냐하면 현대의 미로는 출구와 입구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 <큐브>의 등장인물들처럼 이유를 모른 채 거대한 구조물 안에 갇혀 있다고 상상해보자. 특히 그 구조물이 출구와 입구를 모르는 미로라면 불안감과 공포심이 극대화된다.

 

 

 

 

 

 

 

 

 

 

 

 

 

 

 

 

 

 

 

 

 

프란츠 카프카의 「작은 우화」는 미로 같은 현실에 마주한 인간의 불안감을 우화 형식으로 표현한 짤막한 글이다. 나는 단 5줄에 불과한 이 글이 꿈도 희망도 없는 미로에 갇힌 인간의 심리적 상태를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아아.” 하고 쥐가 말했다. “세상이 날마다 좁아지는구나. 처음만 해도 세상이 하도 넓어서 겁이 났었는데. 자꾸 달리다 보니 마침내 좌우로 멀리 벽이 보여 행복했었지. 그러나 이 긴 벽들이 어찌나 빨리 마주 달려오는지 어느새 나는 마지막 방에 와 있고, 저기 저 모퉁이엔 내가 달려 들어갈 덫이 놓여 있어.” ㅡ “넌 오직 달리는 방향만 바꾸면 되는 거야.”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었다. (프란츠 카프카 「작은 우화」, 《변신 (단편전집》 605쪽)

 

 

카프카도 종종 작품에 미로 구조를 도입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갑자기 달라진 세상과 마주친다. 미로 같은 세상의 몽환적 풍경 때문에 당혹스러워한다. 무턱대고 카프카의 미로에 들어간 독자들도 점점 자신을 에워싸는 불투명한 상황에 빠져나가지 못한다. 우리를 절실히 구원해 줄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기대하지 말라. 카프카도 자신이 만든 미로에 갇힌 다이달로스와 같은 신세가 됐다. 미로를 방심하면 금물이다. 한 번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때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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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14 2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이야기지만,요즘 나뭇잎들이 허공의 미로를 단 한번의 처녀비행이자 마지막 비행을 합니다.....바람의 미궁으로 헤매는 시간입니다.^^.

cyrus 2016-11-15 07:59   좋아요 1 | URL
정말 멋진 표현입니다. 어제 바람이 많이 안 불었는데도 바닥에 낙엽이 많았습니다. 가을이 짧아졌다고 해도 가을다운 분위기는 여전한 것 같습니다. ^^